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36)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36화(36/146)
모슈위가 커다란 덩치를 옹송그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나 침도 못 삼켰어. 소리 들릴까 봐.”
“난 특전대원분들이 편하게 말해서 별생각 없었는데… 대장님은 대장님이시구나.”
“프리바에 딱 네 명 있는 대장급인데 저 중령이 멍청한 거지, 뭐. 좋은 소리 나오겠어?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동안 나타나지도 않고.”
에반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는 모슈위와 함께 쓰는 방을 열고 짐을 가방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바네사와 달로이즈는 이미 짐을 다 챙겨 놔서 그대로 들고 오기만 했다.
“그리고 대장도 그냥 대장이야? 발데르 공작가의 유일한 주인이잖아! 아무리 귀족 작위가 이제 허울뿐이라도 급이 다른데.”
“생각해 보니까 진짜 대단하네. 특전대 대장에 발데르 공작 위?”
모슈위가 코를 긁으며 말했다. 에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물의 씨앗이라니. 그런 건 배운 적도 없는데.”
팔을 벌린 채로 침대에 풀썩 누운 바네사가 중얼거렸다.
아닌가, 잠깐 지나치듯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점점 더 쓸모없게 느껴지는데?”
달로이즈가 헤죽 웃었다. 말과 달리 그녀는 아주 씩씩해 보였다. 해맑은 표정에 나머지 셋도 결국 웃어 버렸다.
“열심히 따라가야겠네. 우리 넷은 아카데미에 돌아가서도 ‘짐 덩어리’라는 모임을 만들자.”
“아무도 안 들어오고 우리 대에서 끝일 거야….”
넷 다 침대에 누워서 머리만 긁적였다. 내려오라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 ⚜ ⚜
<겨울의 초입, 에디르네력 1310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리나 델리나에게.
안녕, 리나. 잘 지내지?
저 겨울의 초입이라는 문구는 어때? 내가 문학적인 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니?
사실 날짜를 몰라서 저렇게 썼어. 달력은 꽤 비싼 사치품이라 작은 마을들 안에는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
살아 있음을 알리고 싶다면 바로 편지를 보내라고 했잖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제법 착한 친구라서 말을 잘 듣잖니.
내 실습지는 나쁘지 않다니까. 믿어 줘. ‘아주 조금’ 위험한 것만 빼면 배우는 것이 아주 많아.
좋아, 솔직히 조금 많이 위험한 것 같긴 해!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왔잖아, 그럼 최선을 다해야지.
너도 알지? 내가 밤베르크 아카데미의 도서관 붙박이라고 불렸던 거. 그 끈기를 이제 여기서 사용하는 거지.
출발 전에 네가 걱정하던 것이 기억나네. 하지만 난 이제 말을 아주 잘 타. 무려 특전대 대장님께서 내 뒤에서 달리시면서 계속 봐주셨거든.
민폐가 아닐까 두려워서 쉬는 시간에도 승마 연습을 멈출 수가 없었다니까! 이제 고삐를 느슨하게 잡고도 안정적인 실력이지.
특전대가 왜 마차가 아닌 말을 타고 이동하는 줄 알아? 곳곳에 모여 있는 작은 마을 하나라도 허투루 놓치지 않기 위해서래.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있었다니까. 작은 마을마다 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믿기지가 않아!
어느 ‘목적지’로 이동하는 와중에 지난 곳들 중에는 마을이 텅 비어 있는 곳도 있었어.
마물로 인한 피해를 참지 못해 다 떠나 버린 거래. 미처 수확하지 못한 곡식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마음 아프더라.
결국 특전대 대장님은 특전대원 두 명을 서부로 추가 소환했어.
현재 목적지는 서부의 모레아야. 이건 비밀은 아니지만 비밀인 것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뭔가 특전대원들의 임무는 비밀스러워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너’의 또 다른 친구들! 에반 리아스, 달로이즈 스타너, 모슈위 진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물론 내 최고의 친구는 너와 체바티지만 우리 넷은 제법 끈끈해졌어. 다들 서로가 뭐가 필요한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게 되었단다.
왜냐하면 넷 다 여기서는 짐 덩어리이기 때문에 최대한 잽싸게 움직여야 하거든.
아, 세상에. 내가 얼마나 너와 체바티를 그리워하는지 모를 거야. 어서 아카데미의 침대에 누워 너희와 떠들고 싶어.
잘 지내, 리나. 실습지에서도 기죽지 말고.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리나 델리나의 사랑,
바네사 로즈로부터.
⚜ ⚜ ⚜
바네사는 가방에 소중하게 모시고 온 호니르를 꺼내서 리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호니르 안에 있던 편지를 끄집어내서 펼쳤다.
다음 편지는 선생님에게서 온 것이었다. 요즘 선생님의 편지는 아주 짧은 편이었는데 업무가 아주 바쁘신 것 같았다.
⚜ ⚜ ⚜
<10월 27일, 에디르네력 1301년>
바네사 로즈 양에게.
내가 반대했던 것이 무색하게 많은 것을 배우며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다만 그렇게 거대한 마법을 썼다는 건 그만큼 위험했다는 뜻인데 ‘아주 조금 위험한’ 상황이었다니.
여러 번 말해 지겨울 줄 알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나는 바네사 양을 정말로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게 보낸 편지 위의 약속처럼, 건강히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십시오.
선생님으로부터.
⚜ ⚜ ⚜
바네사는 미소 지었다.
가족의 사랑을 느껴 본 적 없는 저라도 편지 위에 깃든 걱정과 애정을 알았다.
그러니 반드시 약속을 지켜 건강히 돌아가야지.
항상 그렇듯, 선생님에게서 온 편지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되어서야 봉투로 다시 돌아갔다.
편지를 접으며 바네사는 어쩐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은 자신의 작은 질문에도 대부분 답을 달아 편지를 보내 주시는데 이상하게 기드온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무시한단 말이야.
글씨체가 너무 다르니 같은 사람일 리는 없고. 혹시 두 분이 아는 사이인 것은 아닐까?
바네사는 의심스럽게 눈을 가늘게 떴다.
“바네사아, 안 자?”
생각이 뚝 끊겨 흩어졌다.
달로이즈는 딱딱한 침대에 계속 몸을 뒤척이다가 심심해진 것 같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바네사는 턱을 괸 채로 그 모습을 구경했다. 달로이즈의 어깨에 잘 발달된 삼각근이 꿈틀거렸다.
“응, 편지를 보내야 하는 곳이 있어서. 리나한테도 보내고 체바티한테도 보내고.”
“난 엄마한테나 겨우 한 줄 적어 보냈는데! 친구들한테도 보내다니. 대단하다아.”
폭우는 아니었지만 꾸준하게 내리는 비로 예상보다 전진이 느렸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 말을 타는 것은 최악이었다. 시야는 좁았고 질척대는 진흙에 말발굽이 빠지기도 했다.
결국 특전대는 예상보다 일찍 여관에 들어와 쉬는 중이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 왔다.
“이제 곧 모레아잖아. 무슨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아? 빨리 보내 놔야지. 내 마지막 편지일지도 몰라.”
“하긴,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바네사와 달로이즈는 우울하게 입을 다물었다.
밀밭마을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서쪽의 모레아로 다가갈수록 마물의 번성이 극심해졌다.
마물들을 볼 때마다 구르고 깨지고 박고.
학생들이니까 이 정도지 특전대원들은 그야말로 팔다리를 갈아 가며 일했다.
그레인 중위는 학생들을 보며 혀를 찼다.
‘너네 선배들은 알몬토 중령님 밑에서 일해서 참 편했는데. 너넨 운도 없다. 하필 대장님이랑.’
그리고 의도치 않았지만 바네사는 미래를 예견한 꼴이 되었다. 편지 답장을 미리 한 건 분명히 잘한 일이었다.
⚜ ⚜ ⚜
모레아로 다가갈수록 잦은 비에 특전대원들은 결국 마차를 사용해서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여러 마을들을 꼼꼼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편이 나았다.
마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들른 하얀버섯마을은 다행히도 평온했다. 마물의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저희도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저쪽 끄트머리로 가면 마물이 넘친다고 하더만요. 불안해하는 마을 사람들은 이미 이곳을 떠나 버렸습니다.”
특전대원들과 학생들은 오늘과 내일만은 이 마을에서 머물며 쉬기로 했다. 왜냐하면 당장 오늘이, 놀랍게도 성 바란도 탄신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달로이즈가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벌써 11월이라고? 말도 안 돼!”
“어쩐지 다들 보라색 옷을 입고 있더라.”
모슈위가 허탈하게 말했다.
성 바란도 탄신일이라면 어쩐지 서늘한 공기와 두툼한 망토, 폭신폭신한 귀마개가 어울릴 것 같았지만 서부 끝에 위치한 마을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행히도 비는 멈춰 파란 하늘이 드러났지만 온몸에 달라붙는 끈적한 습기는 오히려 심해졌다.
바네사는 오랜만에 마을 사람들의 평온한 모습을 구경했다. 넉넉한 계절이라 모두 웃음이 가득한 모습으로 특전대원들을 환영했다.
마을에 사는 어린아이들은 특전대원들보다 학생들을 더욱 반겼다.
왜냐하면 특전대원들만큼의 위압감은 없었으나 체력은 제법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목말 태워 줘요!”
“이거, 이거 던져 주세요. 네?”
커다란 덩치에 어린아이에게 약한 모슈위는 가장 인기가 많았다. 모슈위는 양쪽 어깨에 아이들을 둘 올려놓고는 우당탕탕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모슈위를 제물로 바치고 도망친 바네사와 에반, 달로이즈는 편안하게 마을을 산책했다.
주변을 둘러싼 커다란 나무가 별로 없는 마을은 탁 트여 보기 시원했다. 축축 늘어지는 날씨에도 벌레들은 지치지 않고 울어댔다.
“모슈위는 오히려 특전대에 들어갈 생각이 점점 덜어진다고 하더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환상과는 다른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난, 난 왜 그대로지. 잘하지도 못하면서…!”
에반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헝클어져 엉망이 되었다.
“불 마법은… 나름 잘하잖아.”
바네사의 애매한 위로에 에반은 쥐어뜯던 머리를 놓고 바네사를 흔들었다.
“불 마법 와서 한 번도 한 적 없잖아! 그게 위로야?”
바네사는 흔들리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별수 있니. 콘라드 교수님의 가르침을 항상 본받아 매일 목검을 휘두르도록 해.”
달로이즈가 킬킬 비웃었다. 달로이즈와 에반의 목검 대결은 항상 달로이즈 쪽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바네사, 너야말로 졸업 후에 특전대에 와야 하는 것 아니야? 소위님이 저번에 엄청 칭찬하시더라아. 못하는 언령마법이 없다고.”
“수식 하나 배우면 연결되어서 하기 쉬운 것들이 있잖아. 마법의 조건도 모르는데 오기는 좀 그렇다. 달로이즈, 너처럼 힘이 세면 모를까.”
오고 가는 칭찬 속에서 완전히 배제된 에반만 투덜거렸다.
마물이 계속 숲에서 나타나는 와중에 조건이 하필 불과 관련된 것들일 것이 뭐람. 게다가 타고난 마력의 양도 썩 크지 않아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체력적인 것들뿐이었다.
마을 주변까지 모두 둘러본 특전대원들이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보내 주었다.
오늘 구워낸 빵은 아직도 따끈했고 수프는 기름지고 짭짤했으며, 주스는 달콤했다.
특전대원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숙소 안에 늘어져 편하게 쉬었다.
심지어 기드온마저도 제복을 대충 던져 두고, 막 씻어 낸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다만 그는 끝까지 검은 옆에 두었다.
“성 바란도 탄신일을 이렇게 보내다니. 진짜 말도 안 됩니다.”
항상 투덜대는 그레인이 투덜거림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더러운 바닥에도 불구하고 식탁 옆에 늘어져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었다.
“그럼 어떻게 보내야 하는데?”
“당연히 육즙이 터지는 잘 구운 고기와 레몬과 쪄낸 해산물, 기름진 소스들로 둘러싸여야지!”
“그냥 쉴 수 있음에 감사하세요. 생각보다 전진이 느려서 쉴 수 있는 거니까.”
안달루스가 딱 잘라 말하자 그레인의 입이 댓 발 나왔다. 안나는 흥흥대며 기분 좋게 검을 닦았다.
“음식은 맛있고 날은 좋고! 그럼 됐지, 뭘 더 바랄까. 대장님, 내일 오후에 출발하실 겁니까?”
“내일 정오가 지나면 출발할까….”
기드온은 말끝을 흐렸다. 오랜만의 휴식은 그에게도 달았던 것이다.
낮잠도 자고 음식을 먹으며 떠드는 사이 저녁이 되었다.
어둠이 찾아오자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잦아들었다. 창문 밖으로는 가끔 들리는 작은 웃음들 말고는 고요했다.
모두 가족끼리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2층의 방 안에서 바네사는 편지 몇 개를 갈무리하고 며칠 전, 리나에게서 온 편지를 집어 들다가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깔린 두툼한 갈색 담요 여러 장 위에는 달로이즈가 팔다리를 쭉 뻗고 잠들어 있었다.
“빠, 빠앙… 고소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네사는 다시 손에 든 편지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바스락대는 종이 소리에 뒤에서 곯아떨어진 달로이즈가 깰 것 같았다.
바네사는 1층으로 내려가서 나무 식탁 위에서 편지를 마저 읽고 답장을 쓰기로 했다.
특전대원들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방으로 들어가 쉬고 있을 테니 자리가 있겠지.
바네사는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다행히도 1층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