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39)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39화(39/146)
⚜ ⚜ ⚜
<어느 밤, 아마도 에디르네력 1311년>
체바티 밀로 도티에게.
밀로 도티라는 성은 정말 어감이 예쁜 것 같아. 혀를 부드럽게 굴리다가 끝을 딱 튕기게 되거든.
무슨 헛소리냐고? 항상 생각했지만 얼굴 보고 말하긴 좀 부끄러웠거든. 갑자기 쓰고 싶어서 말이야. 네가 많이 보고 싶은가 봐.
모레아는 정말 더워. 네가 예전에 말한 적 있잖아! 예전에 모레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더위와 습기로 방 안에서 책만 보았다며.
그 이유를 알겠어. 여긴 정말 끔찍하게 덥고 축축해.
네 실습은 완벽하다니, 그만큼 부러운 일이 없네. 여긴 정말 우당탕탕이거든.
아, 물론 특전대원들 말고. 우리 학생들 말이야.
저번에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 모레아 숲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지? 현재 특전대원들은 모레아 숲에 도착해서 그 안쪽을 샅샅이 뒤지고 있어.
모레아 숲 안쪽에 마물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대. 마물의 씨앗! 기억나?
아주 예전에 귀도 교수님이 스치듯 말씀하신 적이 있는 것 같더라고. 마물들이 태어나는 곳 말이야.
그런데 특전대장님의 생각이 맞았던 거지. 씨앗은 인위적으로 조작되어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 안에서는 이상한 마물들이 아주 많이 태어나고 있어.
네 정신의 평온을 위해 자세히는 적지 않겠어. 아주 끔찍하다는 것만 덧붙일게.
하여튼 특전대원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겨우 네 명이서 저 숲에 있는 마물들을 토벌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모두 매일같이 해가 지자마자 나가서 새벽빛이 희미하게 솟아오를 때에나 돌아오셔. 그럼 이미 온몸은 만신창이지.
곧 추가로 파견된 특전대원들이 도착한다고 하지만….
다들 온몸이 너덜너덜한데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슬퍼. 우린 겨우 천을 적셔 상처를 닦아 드리거나 차를 준비할 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치료마법을 더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난 겨우 겉에 있는 상처 약간을 회복시키는 것 정도밖에 못 하잖아.
하지만 언령마법은 겨우 그게 최선이라 어쩔 수가 없었어. 이럴 때는 마법 실현 조건을 모르는 게 너무나 아쉬워.
그런데 체바티, 혹시 알고 있니? 요즘 마물의 번성이 극심한 곳들의 순서 말이야. 저번엔 다난과 아펜젤, 바라우트, 이번엔 모레아까지.
어쩐지 네가 선물해 줬던 ‘밤 반달루의 마지막 여행’에 나온 곳들 아니니? 그것도 챕터 순서까지 같은데.
3장부터 밤 반달루가 다난을 여행하거든. 다난, 아펜젤, 바라우트부터 모레아까지. 그다음은 시온인데….
음, 이건 내 착각이겠지?
쓰면서도 우습네. 그 책을 너무 여러 번 읽었나 봐. 사실 열 번도 넘게 읽었거든.
하여튼 우린 곧 만날 거야. 그럼 일단 서고트의 카페 만돌로를 가자. 그곳의 애플파이가 그리워서 기절할 것 같거든.
사실 파이보다 네가 더욱 그리운,
바네사 로즈로부터.
p.s 그런데 지금 몇 월이니? 해가 바뀌긴 했지? 나 이제 스무 살이야!
⚜ ⚜ ⚜
벌써 새벽의 빛이 눅눅한 초록빛 대지를 적시고 있는데도 특전대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들이 걱정되어 어쩔 줄 몰랐지만 그레인 중위는 태평하게 팔목에 감긴 붕대를 점검했다.
“모두 곧 온다니까. 걱정 마.”
그레인은 집 주변의 결계를 확인했다. 기드온이 집 주변에 직접 구성한 마법진은 흠결 하나 없이 고왔다.
음, 역시 대장님이야.
그레인은 마법진을 구성하는 것이 제일 싫었으므로 감탄만 했지 그릴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어제도 많이 다치셨는데 오늘도 그러실까 봐 걱정돼요.”
모슈위가 시무룩하게 탁자 위를 닦으며 하는 말에 그레인이 킬킬댔다.
“실습생이 걱정해 주니 좋구만. 사실 난 걱정해 줄 사람도 없었거든. 대장님이야 약혼자가 걱정을 좀 하려나?”
“약혼자가 있으세요?”
에반이 어쩐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레인은 코끝을 긁었다.
“뭐어, 아마? 꾸준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시니까 우리끼리 하는 소리지, 뭐.”
좁은 공간에서는 듣기 싫은 소리도 쉽게 들려왔다. 바네사는 어쩐지 속이 울렁거렸다.
그렇구나. 약혼자…. 가슴을 여러 번 쓸어내려도 무언가 얹힌 듯 답답해서 결국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레인은 잡담은 그쯤하고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절대로 이 근처를 벗어나지 말라고. 숲 근처는 너무 위험하니까 가지 말고. 난 잠시 저쪽에 널려 있는 마물의 시체를 확인하러 다녀와야겠어.”
“넵! 걱정 마세요!”
달로이즈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그레인은 히죽 웃고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에반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다가 푹 엎어졌다.
“으, 더워.”
“나도 덥다.”
모슈위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냈다. 주변을 시원하게 하는 마법은 효과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바네사는 <기본 마법서>를 펼쳤지만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속도 계속 울렁거렸다.
맑은 공기라도 쐬면 좀 나을까?
결국 바네사는 몸을 쭉 피며 일어났다.
“잠깐 집 주변이나 둘러볼게.”
“흐암. 멀리 가면 안 돼애. 결계 안. 알지?”
달로이즈가 하품하며 말했다.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오늘 새벽은 참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직 해가 제대로 뜨지 않아 푸른빛이 감도는데, 시야는 넓게 트여 있었다.
바네사는 축축한 풀 향기를 맡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어서 다들 돌아오시면 좋겠다. 오늘은 다친 곳 없이 돌아오셨으면.
하지만 그때 멀리 작은 형체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이끼가 잔뜩 뒤덮인 바위 근처였다. 바위 뒤에서 머리가 솟았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바네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린애? 여기에 왜 어린아이가.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소년은 이미 숲 안쪽으로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거기로 가면 안 돼!”
바네사가 크게 외쳤지만 멀리 떨어진 아이는 잠시 멈춰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의 소년은 결이 거친 옷을 입고 있었고 관리를 받지 못한 듯 머리카락이 덥수룩했다. 귀한 집의 자식은 아니리라.
바네사는 급히 말했다.
“이리로 와. 거기 들어가면 안 돼.”
“하지만 내가 매일 가던 곳인데? 저기 안쪽에 과일나무가 있단 말이야.”
소년은 방긋 웃고는 다시 한 발짝 내디뎠다.
바네사는 표정을 굳혔다. 그레인 중위님이 어디에 계시지? 아까 저쪽 방향으로 가셨는데.
‘절대로 이 구역을 벗어나지 말라고.’
바네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떡해.
“저기 안쪽에 마물들이 있어. 가면 안 돼. 위험해.”
바네사는 다급하게 말했지만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배를 곯는 것보다는 나아, 누나.”
“내가 줄게. 저기, 저기 집 안에 먹을 것이 있으니까-”
“평생 줄 건 아니잖아.”
바네사의 입이 달싹이다가 힘없이 닫혔다. 소년은 빙그레 웃었다. 아이답게 도톰하게 솟아오른 볼에는 검댕이 묻어 있었다.
“안녕, 착한 누나. 고마워!”
소년이 앞으로 통통 튀어 나갔다. 바네사는 눈을 크게 떴다. 안 돼.
“돌아와! 거긴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
크게 놀란 바네사는 소년의 앞에 결계를 세우려고 했다.
속박마법은 혹시 아플 수도 있으니 결계가 나을 것이고, 미약한 힘이지만 어린아이를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운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에도 마법은 실현되지 않았다.
바네사는 허망하게 손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러지?
하지만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년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집 안쪽에서는 바네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바네사는 급히 집의 문을 열어 누군가를 부르려고 했지만 소년의 뒷모습이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었다. 방향을 놓치면 끝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바네사는 친구들을 부를 새도 없이 결계를 넘었다.
아이만 붙잡아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놓칠 수는 없었다. 후에 저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면 위험할까 봐 머뭇거린 순간을 후회할 것이다.
“기다리라니까!”
아직 소년은 겨우 숲의 초입이었다.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바네사는 밤베르크 아카데미 둘레길을 무려 1년간 뛴 경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어른보다 빠른 법이었다. 소년의 가벼운 발걸음은 마치 바네사를 놀리는 것처럼 통통 튀었다.
“야!”
바네사가 아슬아슬하게 소년의 목깃을 붙잡으려 했지만 소년은 잽싸게 빠져나갔다. 헤죽 웃는 웃음이 얄미웠다.
“너 진짜!”
“나 잡아 봐라!”
이제 바네사는 목적도 잊었다. 쟬 잡아야겠다. 내가 고아원에서 너 같은 애들을 얼마나 교육시켰는지 모르지? 그녀는 이를 갈았다.
바네사는 손짓으로 약한 속박마법을 실현했으나 소년은 어느새 반대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였다. 마법은 허망하게 나무나 맞추고 말았다.
어느새 이미 숲의 초입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이곳부터는 정말로 위험했다.
“제발 가지 마!”
바네사가 애가 타서 소리쳤다. 하지만 소년은 빠르게 달리더니 어느새 나무 뒤로 쏙 숨어 버렸다.
“바네사?”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급하게 멈춘 바네사가 옆을 보자 검은 제복이 피로 흠뻑 젖은 기드온이 걸어오고 있었다. 핏줄이 드러난 커다란 손이 강한 힘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다가오자 바네사는 약간 기가 죽었다.
“가만히 있어요.”
기드온은 잠시 주변을 확인했다. 그는 어떤 마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바네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검날 위의 피를 대충 훑어 낸 그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 공간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그는 무표정했다. 바네사는 속사포처럼 제 상황을 쏟아부었다.
“저도 알아요. 정말 죄송해요. 좀 있다 벌 받을게요. 그런데 어린아이가 여기로 들어왔어요!”
“어린아이라니?”
기드온은 천천히 눈썹을 찌푸렸다. 근처에는 민가가 거의 없었고 있는 곳도 이미 비어 있다는 확인을 받은 뒤였다. 어린아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저쪽으로 갔어요. 멈추라고 해도 계속 뛰어가는 바람에 그 아이만 잡고 나가려고 했어요. 죄송해요.”
기드온은 바네사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녹색의 음울한 숲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아이가 들어가면 위험해서-”
“내가 찾을 테니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멀리서 바네사를 본 히솝과 안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나무 뒤로 소년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기드온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바네사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소년의 눈이 크게 휘어지더니 소리 없이 입을 뻐끔거렸다.
‘누나, 미안.’
“야, 너 무슨 소리야. 빨리 나오-”
“누구에게 말을 하는-”
쿠궁. 쿵.
“어?”
심장이 크게 울렸다. 바네사는 몸속을 흐르는 이상한 기운에 멍하니 시선을 내렸다.
창이 두꺼운 가죽 신발 아래에 빛나는 푸른 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로지 바네사의 주변에만 그려진 원형의 마법진. 완벽한 원형, 수많은 직선, 그 사이를 빼곡하게 채운 문자들과 군데군데 그려진 깃털 모양.
공간이동 마법진이었다.
바네사는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방긋 웃고는 흩어지듯 사라졌다. 뭐, 뭐야 저게?
“바네사!”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 누군가가 바네사를 감싸 안은 듯했다. 커다랗고 따뜻한 품.
하지만 그곳에서 생각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