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49)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49화(49/146)
⚜ ⚜ ⚜
시험은 총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상급생이 되어 선택한 수업들뿐만 아니라 공통 과정에 포함된 역사, 문학, 예술 등도 함께였다.
마법사 밤 반달루는 왕국 프리바를 너무나 사랑해서 학생들이 프리바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히고 떠나 프리바를 지탱할 새로운 인재가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은 그런 깊은 생각을 한 밤 반달루를 욕했다.
모두 중앙 현관에 걸려 있는 역대 교장들의 초상화를 보며 밤 반달루의 얼굴을 가슴에 새겼다.
갈색 머리카락에 허허로운 웃음. 눈가에 진 짙은 주름.
저렇게 학생들의 마음을 모르는 어른은 되지 않으리라!
하지만 시험이 오히려 시작되고 나니 모두의 마음은 약간 홀가분해졌다. 이미 망친 것을 어쩌겠냐는 태도였다.
“망하든가 말든가…. 이미 친 걸 어떡해?”
리나가 풀밭 위에 깔린 천의 위를 뒹굴며 말했다.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햇살이 따뜻해서 시험에 지친 많은 학생들이 호숫가 근처에 자리를 펴 놓고 누워 있었다.
바네사를 보러 찾아온 달로이즈는 쿵쿵대며 잔디 위에 발을 굴렀다.
“고롬고롬. 뭐 두 번 보면 졸업은 하겠지!”
하지만 체바티는 저런 헛소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에서는 불꽃이 튈 것 같았고 입은 쉴새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바네사, 최고 우등상을 노린다면 체바티를 먼저….”
어디 가둬. 리나가 입을 뻐끔대며 말하자 체바티는 리나를 노려보았다.
“다 들린다고요.”
“어머, 들렸어? 책이나 봐라.”
저 멀리서는 에반이 겅중겅중 뛰어오고 있었다. 바네사는 떨떠름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다행히도 에반은 참 괜찮아 보였다.
“나 진짜 졸업 못 할 수도 있겠어.”
에반은 미친 듯이 해맑았다. 어제 잠을 자지 않겠다더니 눈에 핏발이 가득했다.
에반은 스스럼없이 바네사 옆에 걸터앉더니 냉큼 뒤로 누웠다.
“으, 햇살 너무 좋다. 바네사, 넌 당연히 잘 봤지?”
“마법이론을 잘 본 것 같기는 한데 원하는 만큼인지는 잘 모르겠어.”
바네사가 솔직하게 대답하자 에반이 투덜거렸다.
“나도 우리 부모님께 저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아버지, 죄송합니다!”
“원하는 만큼?”
달로이즈가 끼어들었다.
“원하는 게 있는 거야?”
“우등상이겠지, 뭐.”
에반이 햇빛을 가리려 눈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바네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맞지만 선생님이 흡족하셔서 졸업식에 와 주실 만큼.”
체바티가 책에서 고개를 떼고 리나는 물고 있던 사탕을 그대로 삼켰다. 모두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어물댔지만 바네사는 덤덤했다.
“졸업하면 끝이니까. 그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뵙고 싶어. 정말 잘하면 오실지도 모르잖아.”
“야, 체바티.”
빨리 책 내려놔라. 최고 우등상 넘겨드려라. 에반이 입을 뻐끔대자 바네사가 냅다 옆구리를 찔렀다.
“아, 왜!”
“내 실력으로 볼 거라고! 왜 체바티를 괴롭혀!”
“걱정 마요, 바네사. 전 아무도 안 봐주니까요.”
체바티가 방긋 웃고는 책을 내려놨다. 하지만 꼬물대며 기어 와서 바네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꼭 와 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도 선생님이 너무 궁금해요. 바네사를 만나게 해 준 분이잖아요!”
리나도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게도 리나는 바네사를 만나기 전에 함께 지냈던 룸메이트는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바네사를 만난 다음부터가 진짜 아카데미 생활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바네사가 상처받을까 겁나서 조심스럽게 첨언했다.
“바네사, 기억해. 오시든 안 오시든 그분이 한 행동들은 널 아끼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거 말이야.”
바네사는 쓴웃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일단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즐기는 것, 그리고 다시 전투적으로 내일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다만 남은 시험은 ‘마법의 실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
“나 낮잠이나 좀 잘래. 안 깨어나면 때려도 돼.”
바네사가 꾸물대며 에반과 달로이즈를 밀어내자 두 사람은 옆으로 붙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에반은 투덜거렸다. 달로이즈의 튼튼한 다리에 짓눌려서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야, 도대체 누가 이렇게 좁은 천을 가져왔어?”
“네가 좀 가져오지 그랬니? 좁으면 나가.”
리나가 까칠하게 대꾸하자 에반은 즉시 말을 돌렸다.
“아니, 천이 참 아름답네. 역시 고급져.”
리나는 코웃음 쳤다. 체바티를 제외한 네 사람은 결국 모두 누워서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커다란 나무가 네 사람을 적당한 그늘로 가려 주었다.
다만 솔솔 부는 느긋한 바람에 체바티마저 책을 놓고 잠이 들자 다섯 명 모두 깨워 줄 사람이 없었다. 부족한 잠은 끝도 없이 밀려왔다.
결국 지나가던 모슈위 진이 ‘얘들아, 곧 저녁 먹을 시간이야.’라는 말로 다섯 사람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 ⚜ ⚜
결국 바네사는 책이나 조금 뒤적이다가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느긋했던 시간이 몹시 후회가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교복 단추를 잠그고 있는 바네사는 잔뜩 긴장해서 얼굴이 창백했다. 핏기마저 사라진 입술에 리나가 혀를 찼다.
“바네사, 바네사!”
“아, 응. 왜, 왜.”
더듬더듬 넥타이를 집어 들어 아무렇게나 묶는 바네사를 보며 리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네가 그러면 도대체 딴 애들은 어떻게 이 시험 보는 건데?”
오늘 바네사가 볼 시험은 ‘마법에 대한 실현 능력 평가’였다. 모든 학생들이 보는 것은 아니고 마법 쪽으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만 보는 것인데 바네사는 마법부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이 시험이 몹시 중요했다.
“모, 몰라…. 그냥 너무 떨려. 결국 졸업까지 조건을 못 알아냈네.”
바네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었다. 리나는 킬킬댔지만 곧 자신에게도 닥쳐올 시험을 생각하며 정색했다.
“조건을 아는 애들도 언령마법이나 마법진 구성에서는 널 쉽게 이기지 못한다며. 교수님들이 네 마력의 크기가 엄청날 것이라고 예상하시던데.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니군….”
리나는 투덜거리면서 꼼꼼하게 교복 소매를 다듬었다.
“토론으로 시험을 보다니. 그것도 내가 교수님들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니? 탈탈 털릴 내가 눈에 선하다, 선해.”
“너 작년에 교수님하고 토론했잖아. 실습 점수 때문에. 이건 불합리한 제도라고 무려 30분을 떠들었다면서…. 넌 잘할 거야….”
“그게 지금 위로야?”
리나가 눈을 희번덕 떴다. 졸업 준비반의 특징이라면 널뛰는 기분 변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위로는 아니고 약간 놀리는 거.”
바네사가 긴장한 몸을 털어 내고 리나를 콕 찔렀다.
“열심히 해. 그리고 긴장하지 마. 토론에서 목소리 떨리면 진짜 웃겨. 염소 목소리 나오잖아.”
“이게 진짜.”
리나는 입을 비죽대다가 웃어 버렸다. 두 사람은 주먹을 부딪치고는 기숙사의 문을 나섰다.
마법 실현 시험은 한 명씩 시험을 보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앉아 있는 교실로 들어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바네사는 에반과 눈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책상 위에 제니언이 편찬한 <언령마법서>를 펼쳤다. 교실 안은 침묵만이 감돌았고 학생들은 맹렬하게 책장을 넘겼다.
바네사도 마찬가지였다. 책은 온통 줄로 그어 놓은 흔적들이 가득했는데 이유야 명확했다.
제니언… 말 좀 쉽게 써 두면 안 되는 건가요.
저번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있어 제니언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제니언은 ‘네 머리를 탓하라’며 말린 허브 한 줄기를 보내 주었다.
나름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는 허브였는데 겨우 하나가 달랑 들어 있었다.
저자를 알면 뭐 한담.
학생들이 근처에서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바네사는 긴장한 손끝을 파르르 떨었다. 에반마저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에반이 나와서 제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할 때는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바네사 로즈.”
그녀의 이름이 불렸다. 오히려 이름이 불리고 나니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바네사는 단정한 자세로 걸어가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보통 마법 수업 교실은 참으로 요란스러운 편이었다. 교수들은 그날 수업 주제에 맞추어 내부를 변화시켜 두곤 했다.
물에 대한 마법을 배울 때는 교실 안에 실개울이 졸졸 흘렀고 불에 대한 마법을 배울 때는 안쪽에 연기와 숯이 가득했다. 그러면 학생들은 볼에 검댕을 묻힌 채로 고개를 꾸벅대며 졸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평범했다. 그저 교수 세 명이 앞에 앉아 바네사를 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바네사. 자네는 참 훌륭한 학생이었어. 뭘 해도 잘 해낼 거야.”
아페르 교수가 빙그레 웃음 지으며 덕담을 건넸다. 바네사는 어색하게 웃었다.
“교수님들 덕분입니다.”
“나 참, 무슨 소리야. 자네가 열심히 한 덕이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띄워 주는 대사가 여러 번 오고 가자 귀도 교수는 콧방귀를 꼈다.
귀도 교수는 대뜸 원소 마법 이론에 대한 것을 몇 가지 물었다. 어려운 것들은 아니었다. 바네사는 침착하게 제가 아는 걸 대답했다.
아페르 교수는 바네사에게 언령마법 몇 가지를 실현하기를 요구했는데 다행히도 바네사가 어려워하는 것들은 없었다.
제니언, 아까 속으로 욕해서 미안해요. 당신은 최고예요.
“실현 속도가 정말 빠른데. 정말 현역에 있는 마법사 같아. 그럼 범위 조정을 좀 해 볼까.”
아페르 교수는 오히려 마법이 실현되는 범위를 좁혀 보라 요구했다.
“자네는 타고난 마법력이 아주 큰 편이라 간단한 마법도 실현이 거대하게 일어나는 편이야. 오히려 좁히는 것이 어려울 것 같거든.”
대뜸 약점을 찌른 아페르 교수의 발언에 바네사는 긴장했다.
아페르 교수의 말이 맞았다. 바네사는 가끔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오히려 마력이 폭발하듯 번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네사는 수식을 계산한 뒤에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허공 한 점을 노려보았다. 마력의 흐름을 조절하여 실현 범위를 최대한으로 좁혔다.
이윽고 나타난 빛무리가 먼 곳에 있는 별처럼 작게 반짝이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콘라드 교수가 혀를 찼다.
“조건을 모르는 게 아쉬울 뿐이군, 정말로.”
그리고 콘라드 교수는 상황 예시를 내며 마법진 구성을 어찌할 것인가를 물었다.
바네사는 잠시 고민한 후 안에 채워 넣을 언어와 마법들, 직선과 마정석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콘라드 교수는 바네사가 돌 ‘나나’를 파괴한 날처럼 껄껄대며 웃었다.
“잘했네.”
몇 가지 문답이 오고 가지도 않았는데 바네사는 진이 빠졌다.
귀도 교수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조합하여 동시에 실현하기를 원했고 다행히 미리 연습해 둔 것이 있었다.
“나가 보게, 바네사 로즈.”
귀도 교수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네사가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려고 할 때 아페르 교수가 다시 바네사를 불렀다.
“바네사 로즈!”
“네?”
바네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질문이 하나 더 나올까 바짝 경계하는 표정에 아페르 교수가 껄껄대며 웃었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함께하니 못 할 것이 없더라. 이게 누구의 말인지 아나?”
바네사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도 시험인가?
“밤 반달루 님이요.”
“그래, 바네사 로즈.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함께하니 못 할 것이 없을 거야. 강한 마법사들은 많지만 노력하는 마법사들은 아주 적다네. 왜냐하면 마법사들은 타고난 것이 다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조건을 알아내지 못한 바네사를 위로라도 하듯, 아페르 교수는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는 나중에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마법사가 될 거야.”
“늙어서 주책이군.”
콘라드 교수가 귀를 후비며 말했으나 아페르 교수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배웅했다.
“아, 모두에게 덕담 한마디씩은 건넸으니 자네가 제일 잘 봤을 거라는 생각은 말게! 안심하지 말라는 소리야.”
바네사도 결국엔 활짝 웃고 말았다.
“네, 교수님. 마지막까지 좋은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바네사는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시험 순서를 기다리던 학생과 주먹을 부딪치고 행운을 빌어 주었다.
바네사는 중앙 현관을 통해 아카데미 건물에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오늘도 햇빛이 참 따뜻했다. 바네사는 세상에서 밤베르크 아카데미가 제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