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50)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50화(50/146)
⚜ ⚜ ⚜
<6월 12일, 에디르네력 1312년>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즘 날이 참 좋은데 가끔은 하늘도 보시면서 하루를 보내고 계신 거죠?
오늘따라 편지를 쓰는 것이 약간 떨려요.
드디어 시험이 모두 끝나고 결과까지 발표되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바네사 로즈는 밤베르크 아카데미를 떠나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제가 선생님께 받은 것들은 종이 수십 장이 있어도 다 쓸 수 없을 거예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제가 다섯 개의 졸업 우등상 중 하나를 챙기게 되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쉽게도 최고 우등상은 아니지만 세 번째로 높은 점수를 기록했으니 마음에 차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단 하나의 선물을 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염치없는, 주제도 모르는 바네사 로즈라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선생님, 제 졸업식에 와 주시면 안 될까요?
모두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 줄 텐데 저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이 와 주시면 안 되나요?
선생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뵙고 싶어요.
글씨가 못생겼죠? 오늘따라 손이 너무 떨려서 그래요.
바네사 로즈 올림.
⚜ ⚜ ⚜
바네사는 그 뒤로 호니르 앞을 떠나지 못했다. 제발, 제발 긍정의 답이 오기를.
선생님이 자신을 충분히 아끼신다는 것을 안다. 지금보다 어렸던 바네사는 몰랐지만 졸업생이 된 바네사 로즈는 알았다.
후원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제 모든 일과를 시시콜콜 보내다니.
대부분의 피후원자들은 그저 제 성적과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여 보냈다. 그러니 답장도 필요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바네사 로즈는 주에 한 번씩 애정을 담은 길고 긴 편지를 보냈다.
애초에 원치도 않는 애정이었을 텐데 그를 읽은 후원자는 다정한 답장을 해 주었다. 바쁜 일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혹시 와 주시지 않을까. 나도 졸업식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을지도 몰라. 가끔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제발 본인을 드러내 주셨으면 했다.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선생님으로부터는 아무 답장이 없었다.
다만 졸업식 이틀 전, 단단한 가지와 함께 다친 곳 하나 없는 달리아꽃 수십 송이가 도착했을 뿐이었다.
“저기 엄청 아래 지방에서 겨우 구했겠다. 작년에 날이 좋아서… 겨울에 추운 곳이 많이 없었다고 하더라. 원래 귀한 꽃이기도 하고.”
리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네사는 조용히 꽃송이 하나를 매만졌다.
굉장한 공이 들었을 것이다. 아래 지방에서 마법까지 써 가며 옮겼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지는 않으신 것이다.
“그래. 그랬겠다.”
바네사는 희미하게 웃었다.
바네사는 리나와 함께 꽃을 정리했다. 이미 잘 다듬어져 할 것도 별로 없었다. 그냥 가지고 있던 리본을 묶어 간단한 꽃다발을 만들었다.
짙은 갈색의 가지와 어우러진 붉은 꽃망울은 새하얀 리본과 몹시 잘 어울렸다.
“건네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들고 가야겠네.”
바네사는 꽃다발을 들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예쁘지.”
“응. 너 은근 붉은색이 잘 어울리거든. 졸업복은 남색이니까 멋있어 보일 거야.”
바네사는 꽃들을 유리병에 담아 두었다. 남는 꽃들은 잘 말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달리아꽃은 ‘희망, 강한 생명’이라는 꽃말이 있으니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체바티가 몰래 여기서 자고 싶대.”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에반도 그러던데 꺼지라고 했어.”
“그것도 정말 좋은 생각이다.”
두 사람 모두 숨죽여 웃었다. 그리고 몰래 방을 빠져나가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바네사는 별의 기숙사 아래에 숨어 체바티의 방에 달린 창문에 종이로 만든 비행선을 던졌다.
바네사가 일으킨 바람을 타고 날아간 비행선은 창문을 계속해서 콕콕 두드렸다.
곧 체바티가 뚱한 표정으로 창문을 열어 종이를 잡아챘다. 이게 뭐냐는 짜증스러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바네사와 리나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와. 나와!’
체바티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잠옷 차림으로 뛰어 내려왔다.
세 사람은 달의 기숙사로 몰래 기어들어 와서 조그만 침대 대신 바닥에 서로 겹쳐 누워 있었다.
“엄청 불편한데?”
“등이 배겨요….”
“조용히 해. 이게 원래 낭만이야.”
아카데미의 마지막 날이라서 바네사는 감동적인 말이라도 한마디 꺼낼까 하다가 그냥 그만뒀다. 어차피 계속 지속될 인연이니까.
그리고 다음 날 들켜 기숙사의 관리인 선생님에게 무지막지하게 혼이 났다.
졸업식이 거행되는 연회장은 보통 열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바네사는 이곳에 처음 들어와 보았다.
높은 천장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서 연회장 내부는 온통 쏟아져 내리는 햇살로 가득했다.
학생들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서일까? 바닥엔 꽃들이 점점이 깔려 있었다.
연회장에는 밤베르크 아카데미의 졸업 로브를 입은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올해 6학년 학생들 중에는 총 여덟 명이 졸업 유예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폐하께서 직접 오신대.”
“정말로?”
리나가 입을 떡 벌렸다.
“와, 몇 년간 오신 적 없는 걸로 아는데. 로젠바움 아카데미에서 저번에 시비 걸었잖아. 왜 밤베르크에만 가시냐고.”
“밤 반달루가 창립자니까 그렇지. 프리바의 영웅 아니야.”
모두 흥분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바네사는 떠들썩한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왕이라니. 굉장히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바네사, 좀 이따 나랑 사진 찍어야 해. 알지? 내 동생이 저번에 널 본 이후로 매일 또 놀러 오라고 난리였단 말이야.”
“응. 고마워.”
“바네사, 나랑도! 나랑도 알죠? 우리 어머니, 아버지 다 왔어요. 오빠도 올 거예요.”
체바티가 바네사의 팔을 잡고 열심히 흔들었다.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최고 우등상이랑 사진 찍게 해 주고. 고마워.”
바네사의 장난스러운 말에 체바티는 활짝 웃었다.
“리나는 우등상이 없으니까 빼고 찍을까요?”
“이게 장난하나. 야, 나와. 나와!”
바네사는 두 사람의 사이에 서서 힘없이 흔들렸다. 리나와 체바티가 서로를 맞추려는 손짓이 사이에 있는 바네사를 열심히 건드렸기 때문이다.
발끝까지 내려오는 졸업복을 입고 신난 학생들이 한 공간에 있으니 몹시도 소란스러웠다. 서로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복도에서 큰 발소리가 나더니 학생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헉헉대며 숨을 고른 학생은 크게 외쳤다.
“고위 귀족들도 온대!”
“누구? 폐하께서 오니까 따라오는 건가?”
“발데르 공작이랑 알반 백작! 그리고 몇 명 더!”
“알반 백은 그렇다 치고 발데르 공까지?”
“발데르 공? 초상화나 사진 한번 본 적 없는데. 이런 곳 나오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잖아.”
“진짜 잘생겼대.”
모두 갑자기 단장에 열중했다. 왕과 프리바에 단 하나뿐인 공작, 부유하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백작까지 온다면 이 졸업식은 그야말로 취업을 위한 각축장으로 변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머리를 매만지고 졸업복의 구김을 펴려고 난리였다. 하지만 바네사는 오히려 창백해졌다.
기드, 기드가 오는구나.
리나가 속삭였다.
“바네사, 괜찮아?”
“응. 괜찮아.”
바네사는 꽃다발의 리본 끈만 매만졌다. 이제 아마 괜찮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 든 것도 꽤 오래 지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장과 교수들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학생들은 목소리를 줄였지만 낮은 웅성거림은 여전했다.
하지만 엄하기로 소문난 교수들조차 오늘만은 학생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곧 옆쪽에 달린 작은 문이 열렸다. 모두 워낙 작고 소박한 나무 문이라 ‘설마 저기로 왕이 들어오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들어오는 여자는 분명히 프리바를 다스리는 왕이었다. 널리 알려진 초상화로 익숙한 얼굴과, 짧게 자른 검은 머리 위에 올라간 왕관이 그를 증명했다.
학생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그 뒤로는 바로 기드온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제법 많았으나 바네사의 눈에는 기드온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쩐지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선이 좀 더 날카로웠다….
멍하니 시선을 떼지도 못하고 바라보는데 남자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 정확하게 바네사를 골라냈다.
눈이 마주친 바네사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귀로만 듣고 있으니 느긋한 발걸음 소리와 급한 발걸음 소리가 뒤섞여 단상을 울렸다. 교수들은 모두 일어나 왕과 귀족들을 환영하고 그 사이에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듯했다.
장내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앞으로 나선 교장은 공간 전체를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학생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요. 우리 학생들이 아카데미에서 자유로워지는 날 말입니다.”
모두 키득대며 웃음을 참았다. 교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거짓말이라는 눈빛이지만 그럴 리가요.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합니다. 매년 그렇습니다. 누가 어디서 벽을 타다가 떨어지고….”
한 학생이 크게 헛기침했다.
“누군 마법 연습을 한다고 하다가 귀한 나무를 홀랑 태워 먹고….”
반대편에서 작게 웃음이 번졌다.
“항상 도서관에서 가장 늦게 나오는 작은 친구도, 복도를 지나며 미소 짓던 학생들도 모두 기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 항상 아쉽습니다.”
교장은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들 덕에 아카데미의 사람들 모두 참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아카데미를 떠나 더 큰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하여 아카데미를 잊게 된다 해도 우리는 모두 여러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교장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러분은 우리를 잊어도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 나가서도 밤베르크 아카데미 창립자, 밤 반달루의 정신을 기억하세요.”
학생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는 그 누구보다 프리바를 사랑했고 오로지 정의만을 수호했으며 타고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취를 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릴 6학년에 그렇게 괴롭힌 거야.’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리나와 바네사가 중얼거렸다. 체바티는 옆에서 웃음을 꾹 참았다.
“여러분들이 밤 반달루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것이 오직 옳은 일이기에 할 수 있고, 항상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기원합니다.”
교장은 그것으로 연설을 끝냈다. 6학년의 고통을 잊고 감동적인 분위기에 홀려 버린 학생들이 격한 박수를 쳤다.
그리고 교장은 뒤에서 웃고 있는 왕에게 자리를 내어주려고 했다.
왕은 고개를 몇 번 저었지만 학생들에게는 큰 의미라는 것을 알아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나왔다.
왕관이 비뚤어지자 옆에서 누군가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 난 교장처럼 저런 말 못 해. 내가 교장이 아니라 참 다행이야. 난 왕이라서 아무도 나한테 잔소리 못 하거든.”
왕은 느긋하게 말했다.
“프리바의 새로운 토대가 될 훌륭한 재목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다시 사회에서 맞닥뜨릴 새로운 전투에서 승리하길. 끝!”
왕은 눈을 찡긋했다. 짧지만 기분 좋은 연설에 모두 크게 박수를 쳤고 교장도 옆에서 껄껄대며 웃었다.
바네사는 왕이 굉장히 소탈하고 격식 없는데도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자신의 눈길을 돌리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왕이 아무리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한들 발데르 공작만큼 그녀의 시선을 잡아 두지는 못했다.
눈을 내리뜬 기드온은 딱딱한 복장이었다. 목깃이 높게 올라오는 성장 차림이었으나 알반 백작의 반만큼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위를 장식한 것은 그의 위치를 상징하기 위해 꽂힌 몇 가지 핀과 가슴팍을 수놓고 있는 단정한 자수, 커프스 버튼 정도였다.
그 단정함에도 주변에서 수군댈 만큼 빛나는 외모와 몸은 여전했으나 어쩐지 모든 것에 무심한 눈길이었다.
또한 원래도 군살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지만 과거보다 선이 더 날카로워 보였다. 어쩐지 수척하다는 표현이 옳았다.
바네사는 당장이라도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기드, 어디 몸이 안 좋은가요?
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었다. 편지는 무슨,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
곧 바네사와 체바티를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은 단상 위로 올라가 우등상을 수여받았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왕이 직접 다섯 명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왕은 학생들에게 가볍게 농담을 건넸으나 바네사는 달달 떠느라 듣지도 못했다. 모든 신경은 근처에 있는 기드온에게 쏠렸다.
‘기드온의 편지에 심장이 조여드는 것은 꽤 지난 일’이라고?
웃기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