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56)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56화(56/146)
바네사는 사소한 잡일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체바티와의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된 상태였다.
바네사는 숙소의 주인에게 열쇠를 맡기고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퓌돔은 별처럼 빛나는 도시로, 밤에도 대낮처럼 밝고 인적이 많아 무섭지는 않았다.
바네사는 졸업식 날, 리나와 체바티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퓌돔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체바티와 그 가족들은 적어도 열 번 이상 말했다.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밀로 도티 저택에서 지내도 된다고. 아니, 직장을 구해도 밀로 도티 저택에서 지내도 된다고.
다만 바네사는 후에 정말 힘들 때 부탁하더라도 처음은 혼자서 해 보고 싶었다.
이제 정말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저런 못된 편지를 보냈으므로.
“굳이 말하자면 그냥 삐진 거지, 뭐.”
바네사는 근처의 식당으로 찾아온 체바티에게 우울하게 말했다.
체바티는 이미 실습 때 함께한 마법공학 기술자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바네사는 힘없이 음식 위로 포크를 돌렸다.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찾아오지 않으셔서 삐져서 보낸 거야. 유치하기 짝이 없지.”
“아직 유치해도 될 나이예요.”
“내가 너보다 나이가 네 살은 더 많아….”
리나는 일단 델리나 저택이 있는 오렐리아 지방으로 돌아가 함께할 수 없었다.
아마 후에 가장 큰 사업체가 있는 퓌돔으로 올라오긴 하겠지만 지금 바네사가 기댈 곳은 체바티뿐이었다. 체바티도 그 점을 알아 바네사를 자주 찾아왔다.
“곧 결과 발표죠?”
“응. 며칠 내로 나올 거야. 이번에 마법부에 사람이 좀 몰렸대.”
“그렇다 해도 바네사보다 마땅한 사람은 없을걸요.”
체바티는 상냥하게 케이크 조각을 덜어 주며 말했다. 바네사는 울적하게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만약 떨어지면 정말 답이 없어. 조건도 모르는 마법사를 누가 쓰겠어?”
“조건을 모르는 마법사가 세상엔 훨씬 더 많아요. 마법진 구성을 하는 곳에 들어가고 되고 일할 곳이라면 널렸어요. 에디르네어도 엄청 잘하면서. 밤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우등상을 받고 졸업한 학생을 내버려 둘 곳은 없어요.”
체바티가 불안해하는 바네사를 보며 딱 잘라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마법부에 떨어진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고요. 마법부는 매년 마법사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럴 리가 있어요?”
바네사는 저보다 똑똑한 대답이 줄줄 흘러나오는 체바티를 보고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식탁 위로 얼굴을 박았다.
“몰라…. 선생님께 다시 편지하고 싶어. 난 바보야… 안 오실 수도 있는데 왜 그랬지…. 은혜도 모르는 바네사 로즈….”
이게 다 기드온 때문이다. 그때 감정이 널뛸 때 편지를 보내서.
아냐, 선생님 탓도 있어. 너무 다정하셔서 내가 쓸데없는 기대를 하게 만드신 거니까.
식탁 위에서 몸부림치는 바네사를 보며 체바티는 혀를 찼다.
체바티는 식사 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떠들다가 은근슬쩍 바네사를 밀로 도티 저택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바네사는 몹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칫.”
“진짜 힘들면 나중에 부탁할게.”
“지금 월세는 어디서 나오는데요?”
“잡일 같은 거 하면 돼. 항상 고마워, 체바티.”
체바티는 입술을 비죽이고는 폴짝 뛰어와 바네사를 끌어안았다.
“힘들면 꼭 찾아와요. 밀로 도티 저택은 바로 근처잖아요! 우리 엄마도 바네사 엄청 보고 싶어 하거든요.”
“당연하지. 걱정 마, 체바티.”
바네사는 체바티의 집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곳까지 함께 걷다가 헤어졌다. 체바티는 손을 흔들고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그 뒷모습을 보던 바네사는 멍하니 벤치에 앉아서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복작복작한 주변 소음에서 완전히 분리된 기분이었다. 덕분에 어제 편지로 거절당한 생각이 났다.
「네 의도는 고맙지만 고아원은 요즘 풍족하니 다른 후원은 필요치 않단다. 과거에 이야기했듯 여기를 잊고 잘 살길 바란다.」
고아원 원장 선생님의 편지는 몹시 짧았다.
바네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에서 후원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이시의 고아원이 풍족해졌다니 잘된 일이지.
그래, 잊어버리자.
그럼에도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면 쓸데없는 생각을 덜어 내기 좋았다. 바네사는 불빛이 환한 거리를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은 무심하게 열쇠를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별말을. 옆방이 그쪽이 조용해서 참 좋다고 전해 달래.”
바네사의 방은 작은 건물의 4층이었다. 긴 복도를 지나 끝까지 걸어가면 초록색 문이 나왔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방과 욕실 하나가 붙어 있는 곳이었다.
겨우 침대 하나 놓을 공간을 빼면 나머지는 작은 책상과 높게 쌓아 올린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방의 조악한 구조와는 상관없이 안을 채운 물품들은 제법 값나가는 것들이 많았다.
깨끗하게 정리된 옷들이나 책상 위를 장식한 값비싼 호니르 등을 보고 숙소의 주인은 사업이 실패해서 나앉게 되었냐고 물어보았었다.
“정리해야 하는데….”
바네사는 난장판인 책상 위를 외면했다.
어차피 곧 다시 더러워질 책상, 오늘쯤은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그때, 눈길을 돌리다가 호니르 입구에 쌓여 있는 편지들을 발견했다.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들이었다.
바네사는 부푼 기대를 안고 급히 편지들을 끄집어냈다. 혹시 선생님이실까?
하지만 가장 위의 편지는 리나의 것이었다.
⚜ ⚜ ⚜
<7월 30일, 에디르네력 1312년>
날 보고 싶을 것이 분명한 바네사 로즈에게.
젠장, 정신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서두가 욕이라서 미안해. 빨리 퓌돔으로 올라가고 싶어.
보고 싶어, 바네사.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식사는 잘 챙기고 있어?
너는 혼자 내버려 두면 식사고 뭐고 처박혀서 공부만 했잖아. 설마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니지?
체바티가 자주 확인해 보겠다고는 했는데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아. 걔도 무언가에 빠지면 정신이 없잖아.
그러고 보니까 에반이 너한테 고백했지? 난 다 알아. 나한테 뭐 숨길 생각하지 말라고.
그래서 이 편지의 목적이 뭐냐고?
그냥 딴짓하고 싶었어. 저 멀리서 부모님이 감시하고 계시거든….
안녕….
리나 델리나가.
⚜ ⚜ ⚜
바네사는 떨떠름하게 편지를 접었다. 집안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느라 바쁘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까지 아무 내용이 없는 편지라니.
그래도 잠깐 웃음이 났다. 멀리서도 식사를 챙기려는 리나가 웃겨서.
그 뒤의 편지는 바네사가 아카데미에 요구했던 성적 증명서였고 몇 가지는 서점에 주문했던 책이 왔다는 알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연한 회색의 얇은 편지였다. 겉에 아무런 정보가 쓰여 있지 않아 의아했다.
바네사는 별생각 없이 편지를 뜯었다. 편지보다 먼저 무언가 도로록 굴러 나와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집어 드니 목깃에 꽂는 얇은 핀이었다. 그 끝에 박힌 문양은.
바네사는 놀라 팔을 휘저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진 책더미를 쓰러트렸다.
“크, 콜록, 켁.”
예민한 옆방 사람이 즉시 방 벽을 쿵쿵 두들겼지만 기침이 멎지를 않았다. 이 편지는 왕실 마법부에서 온 것이었다!
「바네사 로즈 님께. 마법부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드리며 귀하의 출근 날짜는 해당 편지를 받은 날로부터 3일 뒤입니다. 필요한 것은 없으며 동봉된 핀을 꽂고 프리바 제2성의 세 번째 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얇은 벽을 통해 옆방에 사과한 바네사는 입을 막고 침대 위에서 발을 굴렀다. 어떡해. 너무 좋아!
그 생각은 물론 오래가지 않았다. 한 일주일 정도 갔으니 그래도 제법 갔다고 할 수 있겠다.
⚜ ⚜ ⚜
마법부는 굳이 따져 보자면 왕실 내각에 설치된 ‘마법과 마법사와 관련된 행정 업무의 일부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상당히 애매 모호한 설명이며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무언가 이상한 부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행정 업무의 일부’?
마법부가 설치된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마법사를 상대하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 법무부 사람들이 마법사를 잡으러 가면 그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그래서 마법부를 따로 설치해 관리 감독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부는 다른 부서와 부딪히는 일이 많다는 것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왕실 마법부에 출근하는 첫날, 바네사가 숙소를 빠져나오자 체바티에게서 연락을 받은 체자르가 왕성으로 향하는 길목 앞에 서 있었다.
체자르는 작은 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가는 길이 헷갈릴까 걱정이 되어 왔다고 했다.
“축하해, 바네사. 축하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하잖아요. 첫 출근인데요.”
“하하.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지.”
체자르는 어쩐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야근의 여파인 듯했다.
바네사는 체자르를 따라서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예전에 퓌돔에 왔을 때도 느꼈듯, 많은 사람들이 왕성으로 밀물처럼 쓸려갔다.
“아마 오늘은 별일 없을 거야. 요즘 마법부가 바쁘긴 하지만 신입한테 뭘 시키진 않을 테니까. 어디로 가야 한다고 했지?”
“제2성의 세 번째 층이요.”
바네사가 긴장되어 손을 계속 주무르자 체자르는 옛 생각을 하며 아련한 표정을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거든. 근데 지금은….”
그는 바네사를 위해 말을 줄였다.
어쨌든 프리바 왕성은 멀지 않았다. 멀리서 보기에도 거대하고 압도적이며, 그린 듯 우아한 성의 모습이 점점 다가오자 바네사는 초조해졌다.
제1성은 말 그대로 왕의 핏줄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성의 가장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새하얀 성벽과 화려한 금색 첨탑은 어쩐지 밤베르크 아카데미가 생각나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화려했고 겉에 양각된 조각들은 신의 손길이 닿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2성은 나중에 증축된 것으로 왕실에 내각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2성이 화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좀 더 정제된 분위기가 흐를 뿐이지.
대부분의 내각 부서들은 제2성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바네사는 그쪽으로 가는 길만 익히면 될 것 같았다.
성의 문 앞을 지키는 병사들은 들어가는 사람들의 몸수색을 몹시 꼼꼼히 하는 듯했다. 그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졌다.
그들은 바네사의 목깃에 꽂혀 있는 핀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1성과 2성이 연결되어 있지 않거든. 제1성 경비의 삼엄함은 말로 못 할 정도야. 굳이 그쪽에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해.”
“네, 주의할게요.”
바네사는 한걸음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문을 지나고도 제법 오래 걸어야 해서 볼 것이 많았다.
가는 길마다 공을 들여 꾸민 정원들이 늘어서 있었고 건물에서 뻗어 나오는 하얀 회랑들이 아름다움을 더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류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전 님루드처럼 뭔가 서류들이 날아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바네사가 바쁜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하자 체자르는 씩 웃었다.
“왕성 내부는 마법이 금지된 구역이 더 많아. 제2성은 마법사와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교류하는 곳이지.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쓸데없는 일에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
체자르는 제2성의 세 번째 층까지 데려다주고서야 바네사와 헤어졌다.
혼자 남은 바네사는 잠시 길을 헤맸다. 세 번째 층의 사람들은 몹시도 바삐 움직여서 길을 묻기 어려웠다.
바네사는 대충 복도의 문 앞에 달린 ‘마법부’라는 글자를 보고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