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58)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58화(58/146)
⚜ ⚜ ⚜
<8월 4일, 에디르네력 1312년>
선생님께.
편지를 먼저 보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편지가 몹시도 못된 것 같아서 용기가 잘 나지 않았어요.
선생님과 선을 그으려고 했던 것은 맞아요. 다만 금전적인 부분에서 기대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던 것이지 감정적인 부분까지 끊어 내려고 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이 졸업식에 와 주지 않으셔서 매우 서운했고 그때 마침 기분 변화가 아주 심한 시기였다고 말씀드리면 변명이 될까요?
제발 그렇다고 말씀해 주세요. 저는 너무도 다시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고 싶거든요.
대신 선생님과 저 사이에 지켜야 할 규칙을 새로 세울게요. 이제 다시는 제게 어떤 것도 보내 주지 마세요. 아셨죠?
이제부터 제가 선생님께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편지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께 조금씩 선물을 보내 드려도 돼요.
말도 안 된다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답니다.
어쨌든 선생님이 편지를 보내 주셔서 몹시 기분이 좋아졌어요.
선생님이 편지를 보내 주신 날은 제가 마법부에 합격해서 출근한 첫날이었어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주아주 지쳤고요.
하지만 선생님의 편지를 보자마자 나아졌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운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제가 신입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할 수 없어도 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옆에는 대니 말런이라는 분이 앉아 계시고 앞쪽으로는 무니아 트랜이라는 분이 앉아 계십니다.
모두 정말 다정하셔서 일을 잘 알려 주시지만 전임자분이 갑자기 휴직하시는 바람에 일이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다행히도 인수인계할 사항은 정리하고 떠나셨어요.
원래 초반엔 이렇게 다들 어색하고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 것이겠죠?
돌아오면 진이 빠져요. 계속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데 익힐 시간이 없어요. 친구들이 그리워요. 아카데미의 멋진 숲 둘레길도 그립고요.
하지만 익숙해져야 하는 것을 아니까 더 이상 징징대진 않을게요.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선생님의 일상이 아주아주 궁금해요.
이 편지를 호니르에 넣고,
바로 잠에 빠질,
바네사 로즈 올림.
⚜ ⚜ ⚜
“아, 바네사.”
무니아 트랜은 건너편에서 고개를 쭉 빼고 바네사를 불렀다. 바네사가 의아하게 눈을 들자 어색하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불법 입국 마법사가 잡혔어요. 법무부에서 범죄를 수사하다가 덤으로 잡힌 자인데 우리 쪽으로 넘어왔어요. 어쩐 일인지 장관님이 직접 가시겠다고 하셨거든요. 같이 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모두 고개를 쏙쏙 내밀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며 속삭였다.
“장관님이… 약간 엄격하신 편인데….”
“근데 뭐 처음 배울 때는 그렇게 배우면 좋으니까….”
“직접 움직이시는 장관님이 어디 흔한가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누군가가 애써 장점을 찾아냈다.
바네사는 보고 있던 서류를 놓고 일어났다. 어쨌든 제 업무를 대신해 주시는 것이니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장관실로 가면 되나요?”
“네. 나쁜 분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한층 위의 마법부 장관실로 향했다.
장관 텔리오스는 항상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일이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항상 자비 없는 정확함만을 추구했다.
“일단 법무부에서 인계를 받고 바로 추방하면 되네.”
“따로 사유를 조사할 필요는 없나요?”
“그럴 필요 있나? 불법 입국자야. 우호 국가인 비톨라에서 넘어온 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일이야. 바쁜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바네사는 심드렁한 장관 앞에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걸음의 텔리오스를 따라가니 어느새 2층의 법무부에 도착했다.
어느 부서나 마찬가지로 안에는 서류로 난장판이었다. 다만 좀 더 정제된 분위기가 흘렀을 뿐이다.
“아, 어서 오십시오.”
“어디 있나?”
“저쪽입니다. 간단한 조사는 마쳤습니다.”
여자가 텔리오스에게 서류를 건넸으나 텔리오스는 바네사에게 바로 넘겨 버렸다.
“읽어 봐.”
바네사는 걸어가면서 서류를 읽었다. 텔리오스는 아주 짧은 시간을 주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약은?”
“아르바스 제도에서 온 마법사로 생계를 위해 밀입국했습니다. 법무부에 의해 잡힌 이유는 프리바에서 범죄 조직과 연관되었기 때문인데, 본인은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딸린 가족이 있네요.”
“핵심을 잘 읽었어. 범죄 조직 연루. 가족이 있었다면 정식 입국 절차를 밟든가. 멍청하긴.”
바네사는 말을 삼켰다. 프리바는 대륙 위에서도 매우 강성한 나라로 가난하고 실력 없는 마법사가 쉽게 입국이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죄는 맞으므로 장관 앞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추방이 아주 간단해지지. 인도적으로 굴 필요도 없네.”
“연루된 범죄가 좀 독특하네요.”
옆에서 바네사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법무부 관료가 입을 열었다.
“마법부 신입이시죠? 예, 저희도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물의 시체들을 모으고 있었거든요.”
“이유는 뭐라고 하던가요?”
“마물의 시체가 썩으면 땅에 좋지 않기에 모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아주 섬세하게 해부해서 부위별로 모으고 있던 것이라.”
바네사는 다시 서류를 뒤적였다. 불법 입국 마법사가 모은 마물 부위들의 종류가 나열되어 있었다.
수많은 마물의 이름들이 지나가고 눈에 남은 것은 ‘벨롭의 눈알’이었다.
과거에 특전대에 실습을 갔을 때, 소의 몸통에 붙어 있던 눈알들이었다. 특전대의 히솝 소위를 마비시킨.
바네사는 잠시 고개를 기우뚱했다.
“제가 혹시 대화를 나누어 봐도 되나요? 좀 이상한 것이 있어서요.”
“예, 어차피 인계해 드릴 겁니다. 근데 뭐, 입을 열지를 않네요. 어차피 추방이라서.”
“그 범죄 조직은….”
“이미 거의 다 잡혔습니다. 가끔 마물의 사체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 마물로부터 안전하다는 사기꾼들이 돌아다니는데 이놈들이 조직적으로 흘린 소문이었거든요.”
참 한심하죠? 그런 걸 믿다니. 법무부 관료가 껄껄대며 웃었다. 바네사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텔리오스는 얼마간 서류를 확인하는 바네사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은 바네사에게 필요한 서류 양식을 보내 주겠다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오라며 사라져 버렸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드셨나 본데요.”
“정말 다행이에요. 지금 속으로 식은땀 흘리고 있었거든요.”
바네사가 안내받아 들어간 곳에는 헝클어진 머리의 마법사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팔목에는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고리를 찬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
마법사는 눈을 굴려 바네사를 보고는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전 마법부의 바네사 로즈입니다. 무언가 여쭤봐도 될까요?”
그 마법사는 에디르네어로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욕설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네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도 에디르네어를 할 줄 알아요. 이것들을 왜 모으셨나요?”
“돈, 벌어야 하니까. 너 같은 것들은 모르겠지만.”
마법사는 짤막한 대답을 했다.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걸 비싸게 사겠다고 했나요?”
“그래.”
“이유는?”
“나도 모르지.”
“이유도 모른 채로 위험 지역에 들어가 마물의 사체를 긁어 왔다고요.”
마법사는 다시 기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돈 벌어야 했다고 말했잖아. 불법 입국자니까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야 했어.”
“글쎄요.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독특한 부위를 많이 모으셨네요. 그것도 모으기 힘든 것들로요.”
벨롭의 눈알, 고트의 뿔, 나로투투의 꼬리….
바네사가 품목을 하나하나 짚으며 말하자 마법사는 엉켜 버린 더러운 머리카락을 뜯어냈다.
“제가 키메라에 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좀 아는데, 키메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네요. 심지어 눈알은 잘 썩는데 공이 많이 들었겠어요. 거래하는 사람이 더 있었나요?”
“….”
바네사는 이쯤 되자 협박 비슷한 걸 해 보기로 했다. 이 사람은 바네사가 신입인지도 모를 테니 한번 던져 보는 거지.
“전 불법 입국 마법사들의 조사와 추방을 담당하고 있어요. 알다시피 서류에 도장 하나 찍으면 되는 일들이죠. 다만 추방도 단계가 있어요. 범죄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죠.”
바네사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정도라면 후에 프리바가 아닌 다른 나라에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서류들은 그 한 줄이 중요한 거잖아요.”
“넌 몰라. 난 어차피….”
바네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마법사와 눈을 맞추었다.
“에디르네어도 잘하시는 것 같고, 책임져야 할 가족도 있으시고. 인도적으로 다른 나라에 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마 이 일을 하면서 따로 챙겨 둔 돈들도 있으실 텐데요.”
“…….”
“제가 그 한 줄을 꼭 덧붙여 드리고 싶어요. 혼은 좀 나더라도요.”
마법사는 계속해서 눈알을 굴렸다. 바네사는 차분히 기다렸다.
침묵이 흐른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더러워진 마법사는 웅얼대며 입을 열었다.
“좋아. 대신 이 이야기는 ‘그들’에게는 비밀로 해 줘.”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마법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제법 흥미로웠다. 마법사의 이름은 타라인데 그녀는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밀입국자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많이 없었다. 있다 해도 쓰레기 같은 일들이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었다.
아이가 배를 곯기 시작하자 타라는 초조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접근했다.
“처음은 아까 연루된 그 사기꾼들이었어. 그냥 별것도 아닌 마물들의 지느러미나 꼬리털을 잘라 오면 된다고 했어.”
“그렇군요. 확실히 그런 소문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마물의 털을 가지면 안전하다, 뭐 그런 것.”
“불안한 사람들은 뭐라도 기대고 싶어 하니까. 그게 제법 도움이 되었어.”
아이는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먹을 수 있었다. 먹는 것이 부족해서 복수가 차오르지도 않았다.
“매일같이 그곳에 기어들어 가니 어느새 적응이 되더라. 점점 더 깊게 들어갔어. 더 많이 가져오려고.”
“마물이 많아 금지된 구역에 말이죠.”
“그래.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곳엔 심연이 있거든. 타라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이 접근했어.”
“그들이 누구죠?”
“그들은 그들이야. 난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다만 그들은 키메라를 만들고 싶어 한 게 맞을 거야. 네가 말한 대로 원하는 품목이 정확했거든.”
“위험했을 텐데요.”
“그래. 그래서 처음엔 거절했어.”
타라가 거절하자 그들은 돈을 보여 주었다. 노란 금이 주머니에서 쏟아졌다.
“몇 가지 품목은 막 죽은 사체에서 긁어내도 된다고 했어. 그래서 난 그렇게 했어. 죽을 각오를 하면 아이는 하루에 한 끼가 아니라 세 끼를 먹을 수 있었어.”
가끔은 과자도 사 줄 수 있었어. 그래서 그랬어. 타라는 힘없이 말했다.
“프리바는 참 좋은 나라야. 하지만 외부인에게는 이만큼 냉정한 나라가 없어. 좋은 나라라서 그렇겠지.”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마워요. 약속은 지킬게요.”
타라는 바네사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새파란 눈은 정직해 보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그런 소문이 있어.”
“무슨?”
“자고 있는 마물이 깨어나면 더 좋은 세상이 열린다고.”
바네사는 눈썹을 찌푸렸다. 타라는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자고 있는 마물? 밤 반달루가 재운 마물?
바네사는 입을 달싹이다가 웅크린 마법사에게 작은 담요를 덮어 주고는 방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