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7)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7화(7/146)
<5월 21일, 에디르네력 1309년>
선생님께.
새벽은 역시 무언가를 정리하기 좋은 시간인 것 같아요. 텅 빈 종이를 보니 이제 마음이 정리되어 펜을 들 용기가 생겼어요.
젤리는 아주 맛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탕은 보석처럼 예뻐서 유리병에 담아 두고 보고만 있어요.
참고로 저는 레몬 맛을 가장 좋아해요. 선생님은 어떤 맛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저번 편지에서 마리나 교수님이 절 칭찬했다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시간이 쌓여 작은 토대를 완성한 것인지 그다음에도 다른 교수님들께 칭찬을 들은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정말 기뻤어요. 또 다른 노력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었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가끔 투덜거리는 말들이 들려왔어요.
고아니까. 불쌍해서 칭찬하신 거지. 뭐 그리 대단한 내용도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몰랐던 애의 과제가 대단할 리가 있어? 쟤, 얼마간 뒤떨어지던데.
갑자기 그렇게 잘한다고? 체바티나 리나가 도와준 것 아니야?
제 생각에는요. 제가 뒤떨어질 때 만족스러운 사람들이 있었을 거예요. 안심이 되는 거지요. 가난하고 불쌍한 고아가 수준이 낮은 것이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제 성적이 점점 높아지자 불만스러워지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 온 자신들이 뒤떨어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제 노력 같은 것은 보이지 않겠죠. 저는 이 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밤도, 휴일도 제 것이었던 날이 없어요. 자고 싶어서 운 적도 있어요.
소문을 들은 리나는 제 손을 꼬옥 잡아 주며 말했어요.
“내가 조져 줄까?”
리나는 제법 막 나가는 면이 있어요. 그리고 저와 수업을 함께 들은 체바티는 코웃음 쳤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질시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라고요.
“귀를 막아요, 바네사. 저런 말들은 가치가 없지만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거든요.”
그리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소리쳤어요.
“내 과제를 보여 주느니 죽어 버릴 거야!”
체바티는 도와주기는 해도 절대로 과제를 보여 주지 않거든요.
저도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지만 위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도 진실, 제가 몇 년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도 진실이니까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절 과하게 칭찬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정말 바보 같죠?
며칠간 쭈뼛거렸어요. 원래 제가 얼마나 씩씩한지 아세요? 편지의 저는 아주 곱게 다듬은 것이랍니다.
전 아주 어렸을 때 절 괴롭히던 애들을 절대로 두고 보지 않았어요. 일단 뛰어가서 정강이를 차고 시작했다고요.
하지만 이곳은 이상하게도 절 주눅 들게 했어요. 그래서 도서관에서만 박혀 살고요, 밤에는 기숙사에서 공부만 했어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어요.
“몰락 귀족의 자식이라 해도 과거를 모르는 애들이잖아.”
“그래, 사실 뭐 몸 파는 여자의 딸이었을지도. 그러다가 버려진 것 아닐까.”
“그럼 머리가 좋을 수도 있겠네. 아버지의 핏줄이 귀했을지도 모르겠어.”
대충 그런 말들이었어요. 주변에서 키득대는 소리가 번지는데 순간 숨이 막혔어요.
절 욕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제 부모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제 부모님은 불이 난 집에서 겨우 두 살이었던 저를 구하고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은 온몸이 화상 자국이셨다는데 전 그을린 자국조차 없이 엉엉 울고 있었대요.
그래서 더더욱 참지 못했어요. 저런 놈들을 가만히 둔다고요?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에요.
벌떡 일어났어요. 의자가 뒤로 나동그라져서 큰 소리가 도서관 내부에 울렸죠.
그때 좀 재밌는 일이 일어났어요.
철썩!
갑자기 주변에 있는 화병들과 잔에 있는 물이 모두 솟구치더니 그 무리들의 얼굴에 끼얹어진 거죠. 잠깐 지나간 제 상상처럼요!
주변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고 그 무리는 창피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어요.
물의 요정이 절 도운 건지, 아니면 제 속의 마법의 힘도 화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도움은 고맙게 받았죠. 제가 좀 잘나 보이잖아요.
하지만 저걸로 끝낼 수가 있나요?
저는 주먹을 꼭 쥐고, 그 무리 중 하나를 잡아 뺨에 주먹을 날렸어요. 빡 소리가 나게요.
주위가 고요해지더군요.
짐을 챙겨서 도서관을 빠져나왔어요. 수업도 빠지고 제 방에 틀어박혔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어요. 체바티의 말대로 가치가 없는 말이에요.
소문을 들은 리나가 달려와서 절 안아 주고 달랬어요. 친구란 참 좋은 것 같아요.
교수님들은 사태를 파악하셨고 그 무리는 교장실에 불려 갔어요. 전 잘 몰랐지만 체바티의 말이 그래요. 체바티와 다른 학생들이 교장실에 뛰어가서 모두 진술했다고 하거든요.
제게 얼굴을 맞은 사람은 사실 그냥 그 근처에 앉아 있었던 것뿐이래요. 같은 학년이라서요.
하지만 저 무리들이 한 말을 그대로 진술해 주고 사이에 앉아 있던 것을 인정했대요. 그 사람은 제게 사과의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 보지는 않았어요.
잘못된 사람을 때린 점은 크게 반성하고 있어요. 그 붉은 갈색 머리 남학생의 얼굴을 때렸어야 했는데.
하여튼 나쁜 말을 하고 다닌 그 무리는 이번 학기의 마리나 교수님 수업에서 모조리 탈락했어요. 덕분에 학점이 부족해진 사람도 있대요.
그리고 모두 다 총 2주일간의 정학을 받고 교장 선생님은 부모님들에게 경고의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이곳은 마법사 밤 반달루가 세운 아카데미이며 오직 정의만을 수호합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저런 태도를 배운 것을 부끄러워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저도 뺨을 쳤으니 3일간 수업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어요.
교장 선생님은 제 맘은 이해하지만 학생 간의 폭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마법의 힘을 아는 학생들이 있으니 서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말이죠.
저도 동의해요.
음, 그렇게 된 일이에요. 이게 겨우 2주간 있었던 일이고 극복해 내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네요. 굉장히 파란만장했지요?
혹시 제가 누구를 때려서 선생님께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에요. 하필 죄가 없는 애를 때린 데다가 가장 유명한 가문의 아들을 때렸지 뭐예요.
혹시 그 가문과 안 좋은 일이 생기시면요, 제 후원을 끊으셔도 돼요.
전 괜찮아요, 선생님. 제가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그냥 물만 끼얹고 말았어야 했어요.
선생님께 너무나 죄송한,
바네사 로즈로부터.
p.s 선생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런 말을 쓸 곳조차 없었다면 아주 비참했을 테니까요.
<5월 23일, 에디르네력 1309년>
바네사 로즈 양에게.
아카데미에서 인격을 수양해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편을 가르고 악의적인 소문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을 먼저 배우는 것이 놀랍습니다.
제가 혹시 교장에게 압력을 가한다면 바네사 양이 부담스러울지 궁금합니다.
이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제가 교장이었으면 그 학생들을 모두 퇴학 처분했을 것입니다.
당장 수많은 관료들 사이에서, 가문이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없애기 위하여 폐하께서 노력하고 계시는 나라입니다.
아주 크게 번질 수도 있는 일을 깨끗하게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교장에게 당장 편지라도 보내야겠습니다. 바네사 양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5월 24일, 에디르네력 1309년>
다정하신 선생님께.
아아아니, 선생님! 절대로 편지를 보내지 마세요. 설마 이미 보내신 것은 아니죠?
저는 이 처분에 아주 만족해요. 이제 불만이 있을 때 누구를 치기보다는 조목조목 반박하고 학칙에 따라 처분할 수 있도록 증거를 수집하기로 했거든요.
또한 교장 선생님이 제게 얼마나 정중하게 사과하셨는지 몰라요.
“그런 말을 듣게 해서 미안합니다, 바네사 로즈 양.”
저런 애들치고 부모에게 편지를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애가 없어요. 우습지요.
다행히 선생님이 제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시니 그것만으로도 전 만족스러워요.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전 제가 못 하기를 기대하는 학생들에게 패배감을 맛보여 줄 것이거든요.
아, 그거 아세요? 그 애들에게 마법으로 물을 끼얹은 날 이후부터 어쩐지 마법의 힘을 다루기가 조금 더 편안해졌다는 것 말이에요!
어쨌든 희미하게 퍼지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기는 하거든요.
혹시 편지를 보내실까 마음이 급한,
바네사 올림.
⚜ ⚜ ⚜
남자는 편지를 접었다. 커다란 손이 펜을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불쾌한 시선이 낮게 깔렸다가 결국 한숨만 내쉬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외알 안경을 낀 사람은 저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남자에게 몹시 공손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남자는 가만히 봉투 위의 선이 부드러운 글씨를 들여다보았다.
「다정하신 선생님께.」
⚜ ⚜ ⚜
바네사는 햄과 치즈, 버터가 끼워진 빵을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어쩐지 시선이 모이는 것 같았지만 모두 무시했다.
바네사는 그날 이후로 더 열심히 돌아다녔다.
도서관에만 있지 않았고 아카데미의 카페 테라스에도 갔으며 몇몇 친구들이 주최하는 작은 모임에도 빠짐없이 나갔다.
몸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자신에겐 아무 죄가 없다고 하셨으니까.
과제가 아니라 시험에서 1등 해 버릴 거야. 짓밟아 주겠어. 바네사는 이를 갈았다.
그때 카페 테라스에서 열심히 책을 보던 바네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게 누구야. 내가 학교 안내를 해 주었던 후배 아니야? 너 요즘 유명하더라.”
실습 후에 짧은 휴식을 가지고 있는 5학년, 알리사 볼튼이었다. 그녀는 씩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바네사는 약간 당황했다가 손의 의미를 깨닫고는 악수했다. 알리사는 짙게 그을린 얼굴로 바네사 옆의 의자에 풀썩 앉았다.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은 소개도 해 주지 않는 알리사를 흘겨보고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난 유제니아 알반이야. 알리사와 같은 5학년이지. 제니라고 불러 줄래?”
유제니아라는 선배는 높게 올려 묶은 머리에, 화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돌아갈 정도였다.
유제니아는 바네사와 악수를 한 뒤에 알리사 옆에 앉아서 살풋 미소를 건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알리사는 대뜸 물었다.
“바네사, 후원자가 있다는 거 사실이야?”
바네사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왔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나갔다.
이미 사람들의 수군대는 시선에 지치기도 했고, 과제는 넘치게 많았던 덕분이었다.
“네, 맞아요. 고아원에서 후원자의 도움으로 밤베르크 아카데미에 왔죠. 왜요? 안 되나요?”
퉁명스러운 말투에 알리사가 신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리사는 입이 크고 동작에 거침이 없어서 아주 시원해 보였다.
“아, 제니 공주님께서 궁금해하기에 말이야. 불쾌했어? 내 말투가 좀 이래서. 미안.”
유제니아가 탁자 아래로 알리사의 다리를 걷어찼다. 알리사가 컥 소리를 내며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참고로, 난 공주 아니야.”
유제니아는 느긋하게 어깨 위로 넘어온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말과 달리 행동은 공주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유제니아는 보석처럼 까만 눈동자를 깜빡였다.
그 잠깐 사이에 바네사에 대한 분석은 끝났다. 살짝 곱슬거리는 연한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가 고왔다. 그 와중에 훌륭한 성적까지.
자라난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도 학습된 무기력함을 떨쳐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네사 로즈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마 이 소녀는 클수록 만개할 것이다. 바네사 로즈, 제 이름처럼.
멍청한 소년들은 절대로 알지 못할 미래일 테지.
유제니아는 매끄럽게 웃었다.
“네가 도서관에서 마법을 썼다기에 궁금했어. 혹시 네 후원자가 돈을 부족하게 주거나, 생활비는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하면 우리 부모님께 말씀드려 보려고 했지.”
유제니아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하얀 손가락을 움직여서 바네사의 손등을 살짝 스쳤다.
당장 여자도 홀릴 만큼 매력적인 얼굴과 은근한 접촉에 바네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 선배 뭐야?
“생각, 있니?”
달콤한 목소리에 바네사는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있다고 대답할 뻔했다.
“저, 저기. 그게.”
“우리 부모님은 후에 바라는 것도 없으셔. 하지만 지금까지 마법의 힘이 있는 학생을 후원한 적이 없으셔서 그게 아쉽다고 하시거든….”
유제니아가 손을 뻗어 바네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름답고 긴 손가락으로 깍지를 꼈다. 바네사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너같이 똑똑하고 매력적인 학생이라면 나도 환영이니까….”
알리사는 옆에서 턱을 괴고 두 사람을 구경했다. 유제니아의 달콤한 목소리, 긴 속눈썹의 팔랑거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시선.
그야말로 넘기지 못할 것이 없는 유혹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네.
“뭐야! 거기 손 떼요!”
그때 멀리서 리나 델리나가 눈에 불을 켠 채로 황소처럼 쿵쿵대며 뛰어왔다. 그제야 바네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