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70)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70화(70/146)
바네사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기드온, 리나와 체바티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지만 레타는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라 기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바네사가 살고 있는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서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데, 너무 힘들 때면 일을 그만두고 싶다가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버틴다며 울상을 지었다.
“너무 힘들 때는 신께 기도해요. 라마이라는 우리의 말을 항상 듣고 계신대요.”
“어-신의 이름이죠? 라마이라?”
“네. 요즘은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프리바의 온 땅에 신전이 가득했대요. 에디르네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것들 말이에요.”
신의 이름이 강력했던 시절이었다. 지켜 줄 자들의 힘은 부족하고, 약하고 다친 자들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밤 반달루가 나타나 모두에게 평등하게 마법에 대한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마법이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그 순간부터 신의 이름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라마이라를 믿는 자들이 점차 줄어들어 남은 신전이라고는 프리바 온 땅에 단 하나뿐이었다. 왕이 신전의 힘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신에 대한 건 아카데미에서도 겨우 한 문단으로 설명하고 지나가 버렸다. 신학이 예술품이나 여타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네사는 신을 믿는 사람을 처음 보기는 했지만 어디든지 기댈 곳이 있다면 좋은 거니까 별생각이 없었다.
레타는 열성적으로 신전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하다가 바네사가 마법을 써서 옷소매의 더러운 부분을 깨끗하게 해 주자마자 기운 없이 내뱉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레타의 그 말에는 바네사도 대꾸할 것이 없어서 난감하게 눈썹 주변만 긁었다. 타고난 재능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불편한 말이었죠? 그냥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서 그래요…. 죄송해요. 갑자기 부러워서요.”
“아니에요. 제가 도움 될 말을 해 드릴 수가 없어서….”
바네사는 괜히 마법을 썼다고 생각하며 조심히 차를 한 모금 넘겼다.
레타는 바네사를 꼼꼼히 뜯어보더니 웃었다.
“바네사는 참 좋은 사람이네요.”
바네사가 민망한 표정을 짓자 레타는 마지막에 나온 디저트를 밀어 주며 상냥하게 화제를 돌렸다.
⚜ ⚜ ⚜
<11월 1일, 에디르네력 1312년>
선생님께.
선생님,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어느새 정말 추워졌어요. 따뜻한 차 한 잔! 잊지 마세요.
요즘 정말 편지가 뜸했어요. 하지만 제게 상당히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다 듣고서도 만족스럽지 않으시면 다음 주에는 편지를 두 번 이상 보내겠어요.
첫 번째로, 이건 정말 대단한 건데요. 선생님께만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방금 처음 성공했으니까요.
제가 드디어 공간이동 마법을 실현했어요! 왜 제 글씨체가 이렇게 뱀처럼 구불구불한지 아시겠죠?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며 쓰고 있거든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잖아요. 전 아주 목이 마른 자였어요.
왜냐하면 제가 사고를 조금… 쳤거든요.
도저히 선생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할 종류예요. 저는 몹시 충동적이고 주의력이 부족하다는 수식어가 붙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긴 했는데요. 제가 여기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도망칠 수 있는 방법 하나쯤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니언이 정리한 언령마법서를 아주 오랜만에 펼치게 되었어요.
아시다시피 공간이동 마법은 언령마법에 속하지만 몹시 고난도라서 조건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도전하지 않잖아요.
저는 이 마법을 쓰는 사람을 딱 하나 봤는데 그게 특전대에 속한 기드였으니까 얼마나 드문지 아시겠죠?
하지만 목마른 자로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사람은 모름지기 발전해 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전 사회인이니까 분명히 학생 때보다는 나아져야죠.
퇴근하고 매일 밤, 제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연습했어요. 두 달 내내요!
물론 처음에는 그냥 계속 제자리에 서 있는 게 다였고 끔찍한 두통만 찾아왔을 뿐이에요.
그런데 바로 오늘! 눈을 뜨니 한 걸음 이동해 있지 뭐예요!
와, 그 끔찍한 수식들을 정복하다니.
그래서 신이 나서 펜을 들었답니다. 저도 곧 순식간에 님루드로 가서 제니언의 서재를 뒤집어 놓거나 서고트로 가서 따뜻한 수프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성실한 마법사가 선생님의 피후원자였다니. 정말 뿌듯하지 않으세요?
두 번째 소식. 이건 선생님께 말하기 조금 부끄럽긴 한데요.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좋아요, 제 발언을 취소할게요. <다이크가의 세 형제들>에서 첫째의 머리가 꽃밭이라고 했던 것 말이에요.
제가 뭘 몰랐어요. 첫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니까요.
바네사 로즈 올림.
⚜ ⚜ ⚜
두 사람은 발데르 성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공간은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도 저물어 가는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밖의 나무들은 점점 앙상해지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편안히 앉아 있는 넓고 푹신한 소파 앞의 낮은 탁자에는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차가 놓여 있었다.
덕분에 응접실 안쪽은 따뜻하고 보드라운 느낌이 가득했다.
달로룸 거리에서 특전대가 수많은 마법사들을 잡아넣고 난 뒤 5일째 되는 날이었다.
기드온은 바네사에게 얼마간 가끔 짧은 편지만을 보냈는데 그날은 혹시 발데르 성에 와 줄 수 있냐는 연락이 온 참이었다.
바네사는 몰래 들어오느라 꽤나 힘들었지만 어쨌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는 짙어지는 어둠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라모나와 페레스의 적절한 도움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페레스는 제 주인을 쉬게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굴었고 라모나는 바네사 자체가 반가운 것 같았다. 그녀는 바네사가 웃는 모습이 좋다고 했다.
“미안합니다.”
기드온은 나직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네사는 이미 예상했던 것들이라 괜찮았다.
오히려 바네사는 기드온이 걱정스러웠다. 세상에, 저 많은 일들을 어쩐담?
“그래서 지금은 마법사들의 분류를 끝내고 뒤에 남은 흔적들을 캐내고 있다고요.”
“네. 공통적인 진술이 있기는 한데 워낙 작은 단서들이라 부족합니다. 최대한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긴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없네요.”
“이 일을 같이 할 특전대원들이 있기는 해요? 거의 다 파견 나가서 없잖아요.”
“저번에 본 리에트 대령도 있고.”
“또?”
“히솝 중위도.”
“또?”
기드온은 그때부터 난감하게 웃었을 뿐 별 대답이 없었다. 바네사는 입을 떡 벌렸다.
“겨우 셋은 아니죠? 그렇죠?”
“그 정도는 아니고 몇 명 더 있기는 합니다. 당신이 그들의 이름을 모를 것 같아서. 파견에서 제외될 자들을 고르느라 조금 적긴 하지만.”
아마 이 시간도 간신히 빼낸 것이 분명했다. 바네사는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내렸다.
“이렇게 바쁜데 굳이 시간 빼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도 숨은 쉬어야죠. 바로 오겠다고 답장해 줘서 고맙습니다. 요즘 자주 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기드온은 짧게 웃고는 걱정스럽게 처진 바네사의 눈매를 살살 쓸어 주었다. 하지만 바네사의 눈꼬리는 영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네사는 기드온이 숨긴 무언가를 찾아 꼼꼼하게 얼굴을 뜯어보았지만 여전히 잘났을 뿐이고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다른 부서와의 협업은 어려운 거예요?”
“협업한다면야 마법부인데.”
갑자기 바네사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기드온이 그 모습을 보고는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알고 보니 바네사는 표정을 감추는 데에 몹시 서툴렀다. 어쩐지 항상 시선을 피하더라니.
“법무부랑 할 수도 있고.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난 오히려 약간 미안한 것 같은데.”
“왜요?”
바네사가 진심으로 의아하여 묻자 이번엔 기드온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머뭇대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실토했다.
“이번 주말에는 퓌돔 밖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조금 아래 지방에 당신이 흥미를 가질 곳이 있어서요.”
아쉽다는 느낌이 가득한 말에 바네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는 그의 몸에 편안히 기대어 앉았다.
살짝 경직되었던 몸은 잠시 후 긴장을 풀고 그녀의 등 쪽으로 팔을 돌려 바네사의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 넘겼다. 바네사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퓌돔 밖은요. 성에서 쉬기만 해도 모자랄 것 같은걸요. 그리고 저도 바쁘다고요.”
그의 죄책감을 덜어 주기 위해서인지 바네사는 열성적으로 제 할 일들을 나열했다.
기드온은 그를 생각하는 바네사의 마음이 좋기도 했고, 그녀가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 흥미로워서 꼼꼼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들은 이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레티마 키나?”
“아, 처음 듣는 이름이죠? 재정부의 신입 관료라는데 저번에 한번 부딪힌 이후로 가끔 만나요.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있어요!”
“재정부라. 그곳도 참 바쁘죠.”
“안 바쁜 곳이 어딘가요?”
“그건 정말… 모르겠군요. 알게 되면 바네사에게 꼭 추천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곳으로 가야겠어요.”
기드온이 편안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바네사도 따라 몸을 기댔다. 소파는 푹신하고 넓어서 쉬기에 참 좋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편히 몸을 기대고 있어 마치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바네사는 침묵이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네사가 알던 침묵은 대부분 앞에서 누군가가 화를 내고 있거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침묵은 평온하여 안정적이었다.
아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대화 없이 온전했다.
고요 속에서 어느새 다가온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바네사의 손을 옭아맸다.
바네사가 그의 옆모습을 살짝 곁눈질했으나 기드온은 곱게도 눈을 내리뜨고 있을 따름이었다.
작게 웃고는 손을 완전히 내주었다.
맞닿은 온기에 또다시 속이 간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