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8)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8화(8/146)
헐떡이며 숨을 고른 리나가 으르렁댔다.
“저리 가요! 바네사는 내 거라고요!”
“어머… 이게 누구야. 델리나 집안의 첫째 딸 아니야?”
유제니아가 바네사와의 손깍지를 흔들며 생긋 웃자 리나가 살벌한 시선으로 바네사를 바라보았다. 사이에 낀 바네사만 움찔댔다.
“꼬셨어? 꼬셨어?! 넘어갔어?!”
“아, 아니 난 아무 대답도.”
안 했어…. 그러자 리나의 얼굴이 펴지더니 유제니아에게 외쳤다.
“꼬시는 것 좀 그만둬요. 나중에 바네사 휘두를 생각 있는 것 누가 모를까 봐?”
“어머. 정말 호의에서 말한 건데 서운해, 바네사.”
유제니아의 눈꼬리가 미묘하게 처지자 바네사는 제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세상에. 내가 미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다니.
“죄, 죄송해요.”
얼떨결에 바네사가 사과하자 알리사가 옆에서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유제니아는 싱긋 웃고는 바네사의 손을 풀어 주었다.
“리나가 나타났으니 난 이만 가 봐야겠네. 왕왕 짖는 게 귀엽기는 하지만 난 사냥개 취향은 아니라서.”
“지금 내가 사냥개라는 거예요?”
리나가 버럭 소리 질렀지만 유제니아의 미소는 진해졌을 뿐이었다.
“바네사. 후원은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줘. 이건 초대장.”
옅은 색의 봉투엔 우아한 글씨체로 ‘바네사 로즈’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주최하는 모임이야. 부담 가질 필요 없어. 후원 의사 때문이 아니라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덕분에 온 기회니까. 네가 진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정말 좋은 기회일 거야.”
유제니아는 달콤하게 눈을 휘고는 웃느라 정신없는 알리사의 어깨를 잡아당겨 일어났다.
“와 주면 좋겠어. 그날만을 기다릴게에….”
묘하게 말꼬리를 늘이며 가볍게 눈을 찡긋한 유제니아는 알리사를 이끌고 사라졌다.
폭풍 같은 진입과 후퇴에 남겨진 바네사는 멍청하게 봉투만 바라보았다.
“유제니아 알반이라니.”
리나는 입을 비죽거리고는 바네사를 째려보았다. 바네사는 억울했다.
“난 진짜 가만히 있었는데 저 선배가 오신 거야!”
“손을 그냥 내어줬잖아!”
리나가 배신감에 몸을 떨며 외쳤다. 바네사의 입이 딱 다물렸다. 홀린 건 맞았으니까.
“근데 저분이 누구신데? 유명한 분이야?”
“알반 가문의 후계자야. 왕국 공신 가문 중 하나지. 유제니아 선배는 후에 알반 백작위를 물려받을 거야.”
바네사의 입이 얼떨떨하게 벌어졌다. 백작?
“뭐 저런 작위야 이제 허울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저 가문이 소유한 사업체들이지. 프리바에서 가장 거대한 은행을 소유했거든.”
리나는 바네사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고는 인상을 썼다.
“…뭐, 솔직히 말하면 좋은 기회야. 그 모임 꼭 가, 바네사. 다들 가고 싶어 안달인 모임 중 하나거든. 3학년은 초대하지도 않는데 웬일이래?”
⚜ ⚜ ⚜
<5월 30일, 에디르네력 1309년>
안녕하세요, 선생님.
일교차가 심한 계절이에요. 항상 몸을 조심하시는 것 잊지 마세요! 감기라도 걸리시면 제게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없으니까요.
선생님, 제가 말이죠. 저 큰 사건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나 봐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제 마법 능력이요. 정작 본인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죠.
덕분에 전 이제 사람들의 시선이 아주 익숙하답니다. 문학 소설의 주인공이 부럽지 않아요.
오늘은요. 천사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선배가 나타나서 저에게 추가로 후원받을 생각이 없냐고 말하더라니까요.
알반 가문의 후계자래요. 유제니아 알반! 혹시 알고 계세요? 제가 본 사람 중에 정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그 선배가 속눈썹을 팔랑거리면서 제 손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데 순간 숨이 멎고 얼굴만 달아올랐어요.
바네사, 혹시 후원이 필요하면… 그 뒤로는 듣지도 못했어요.
저는 지금도 전혀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거절하려고 했는데요, 목소리가 영 나오지를 않던데요. 이게 바로 미인계인가요?
하지만 저 선배는 외모뿐만 아니라 실력도 굉장한 선배더라고요. 5학년의 수재래요. 너무 모든 것을 갖춘 게 아닌가요!
유제니아 선배는 후원에 대한 얘기는 그만두고 모임 초대장만 주고는 사라졌어요. 이 모임이 그렇게 유명하대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많은 곳에 나가 보는 것이 가장 좋겠죠.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여러 경험이 제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유제니아 선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리나는 서운함 반절, 응원의 마음 반절 정도인 것 같아요.
“바네사는 내 건데.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보석인데!”
살면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보석이라니.
선생님은 아카데미에 다니실 때 많은 모임에 참여하셨나요? 어떠신가요?
어쩐지 선생님은 아주 많은 모임에 참여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을 아주 잘 안답니다.
거짓말 치지 말라고요? 정말이에요!
선생님은 지적이고, 상냥하시고 배려심이 깊으시죠. 이 정도면 다 아는 거잖아요. 그렇죠?
귀도 교수님의 <원소 마법의 이해> 과목은 아주 가끔 칭찬을 받았는데 이젠 매번 칭찬을 받고 있어요. 제가 이론에는 참 능하거든요.
교수님은 다음 단계 수업인 <원소 마법의 적용>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근데 망할, (나쁜 말을 하는 저를 용서하세요) 마법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뤄야 적용 수업을 들을 것이 아닌가요.
전 아직도 제가 원하는 순간에 물방울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등 하나 켤 줄도 모르고, 어둠 속에 제 몸을 숨기지도 못해요! 마법의 힘은 제멋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려요.
물병을 앞에 두고 끙끙대는 절 본 귀도 교수님은 신나게 웃더니 자신의 발동 조건을 말씀해 주셨어요.
“나는 눈을 찡긋해야 한다. 이것이 동작이지. 상황 조건은 너희들에게 알려 주지는 않겠다. 복잡하기도 하고 내 약점이기도 하거든.”
교수님이 눈을 찡긋하자 물병 안의 물이 치솟아 올랐다가 가라앉았어요.
“어쩌다 그걸 알게 되셨는데요?”
제가 샐쭉해져 묻자 교수님은 씩 웃고는 대답해 주셨죠.
“학생 때 좋아하던 친구 앞에서 윙크를 하다가. 갑자기 내 몸이 갑자기 날아가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었지…. 그 뒤로 그 애 앞에선 이상하게 움츠러들었어….”
교수님은 아련하게 창문 밖을 쳐다보셨지만 마법을 발동시키지도 못한 학생들은 심통이 나서 물병만 바라보았어요. 몇 명은 갑자기 어디 맞은 것처럼 눈을 찡긋해 보고요.
“마법의 힘은 참으로 얄궂지. 음치에게 노래를 통해 마법을 일으키도록 하고, 몸치에게 춤을 추게 하거든. 마음을 편히 가지렴. 너희들이 평생 대단한 마법을 일으키지 못해도 이 모든 배움이 헛되지 않단다.”
저런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선생님이 절 발견한 것은 제게 빛이 몰려오는 것을 본 덕분이니까 전 꼭 마법을 실현하고 싶단 말이에요.
조건이 필요한 대단한 마법이 아니라도 언령마법이라도 어서 실현해 봤으면 좋겠어요.
잘은 모르지만 노력으로 되는 것이라면 저는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따라 의욕이 넘치는,
바네사 로즈 올림.
⚜ ⚜ ⚜
바네사는 며칠간 밤을 새워 가며 숙제를 마무리하고는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해버렸다.
이제 곧 학기에 한 번뿐인 대규모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바네사와 체바티뿐만 아니라 리나도 곧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보내게 될 것이었다. 그 전에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세 사람은 학회가 진행되어 모든 수업이 휴강인 날에 호수 근처에서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무려 2주 만의 꿀 같은 휴식이었다.
“날이 정말 좋다.”
“그러게. 정말 새파란 하늘이네!”
세 사람은 식당에서 샌드위치와 주스, 과일 몇 개를 받아 들고 잔디 위에 노란 천을 깔았다. 모두들 신이 나서 떠들었다. 주제는 다양했다.
누구랑 누가 연인 관계가 되었대. 진짜로? 잘 어울린다. 어떻게 만났대?
어느 교수님은 이번에 나이아스 숲에 가셔서 요정을 만나셨대. 요정이라니! 요정들의 날개 가루를 받아 내셨을까?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바네사가 뺨을 쳤던, 에반 리아스였다.
“뭐야.”
리나가 까칠하게 말했으나 에반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바네사만을 바라보며 잔디 위에 털썩 앉았다.
“안녕, 바네사. 정식으로 소개할게. 난 에반 리아스야. 나 꼴도 보기 싫겠지만 쪽지 대신 입으로 사과하고 싶어서.”
에반은 침착하게 말했다. 어쩐지 사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길쭉한 소년이었다.
“미안해. 내가 그 근처에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내가 비겁했어. 그 녀석들, 후려서라도 입 다물게 했어야 했다는 것을 알아. 정말로 미안해.”
바네사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이나 먼저 사과해 줘서 고마워요. 사실 선배는 잘못이 없었잖아요. 저도 때려서 죄송해요.”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서 반박하지 않은 점이 미안한 거야. 걔넨 열등감에 그런 소리 한 거니까 신경도 쓰지 마. 네가 아페르 교수님의 과제도 1등으로 꼽힌 이후로는 그런 뒷말 전혀 없어.”
에반은 씩 웃었다. 그의 호의적인 눈빛에 바네사의 얼굴이 약간 풀어졌다.
네 사람은 평온한 기류 속에서 떠들었다. 에반은 원래 함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제니아 알반의 모임에 초대받았다며?”
“그게 벌써 소문이 났대요?”
리나가 입을 비죽이자 에반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 편하게 해. 아, 난 17살이야. 하여튼 그 유명한 유제니아잖아! 바네사 너는 유제니아도 인정한 애라고 떠들더라. 나는 그 애한테 밉보였다고 큰일이라고 하기에 당장 빌러 달려 나왔지.”
“바네사, 다시 잘 생각해 봐. 이런 사람을 용서해도 되겠어?”
그 말을 듣고 바네사가 눈을 가늘게 뜨자 에반은 손을 모으고 비는 척을 했다. 넉살 좋은 행동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네 사람이 떠드는 동안 호수에 동그란 파문이 조그맣게 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일렁임은 커져 호수의 물이 파도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모두들 호수 속의 인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에반은 그래서 이번에 유급인가요? 마리나 교수님의 수업에서 탈락한 거잖아요.”
체바티는 아는 사람을 대하듯 편히 말했다. 에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너네와 같은 학년이야. 학점에 여유가 전혀 없었거든.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지. 돌아가면 혼쭐이 날걸. 우리 아버지는 비겁한 걸 싫어하거든.”
“둘이 아는 사이야?”
친밀해 보이는 대화에 바네사가 묻자 체바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경을 추켜올리고는 덤덤하게 내뱉었다.
“놀랍게도 사촌이에요.”
“뭐? 너 쟤 욕을 어마어마하게….”
바네사가 잽싸게 리나의 입을 막았다. 에반은 코웃음 쳤다.
“신나게 또 내 욕을 했겠지. 비밀도 아니야. 쟨 나를 경멸한다니까.”
“별수 있어요? 우리 친척들 중에 유일하게 멍청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내가 더하기를 못 한 건 5살 때야!”
“난 3살부터 했는데요.”
에반과 체바티가 말싸움을 하고, 바네사와 리나는 주스를 마시며 관전했다. 네 사람은 즐거웠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 다른 목적을 품고 숨어 있는 것이 있었다.
무언가가 물 밖으로 길고 검은 촉수를 내밀었다. 꾸물대며 잔디 위를 기어간 그것은 근처의 열과 마법력을 인식했다.
넷. 아주 약한 힘들. 강한 것들은 아주 멀리에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팠다. 그러니 ‘그것’은 참고 싶지 않았다. 어서 제 배를 채우고 싶었다….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먹잇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평온했다. 그게 너무 거슬려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인내심이 다한 ‘그것’이 물 밖으로 거대한 몸을 내밀었다. 폭발하듯 물이 튀어 네 사람을 적셨다.
“꺄아악!”
“무슨…!”
호수를 바라보고 앉아 있던 리나가 비명을 지르고, 세 사람이 뒤를 바라보고 경악했다. 호수 속에서 나타난 것은 마물이었다.
마물은 그들이 배운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마치 기워 붙인 듯 여러 가지 마물의 특징이 한꺼번에 보였다.
몸체는 문어같이 꿈틀거리고, 머리로 보이는 것에는 지느러미가 붙어 있었다. 눈은 동공이 네 개로 갈라져 있었고 꼬리 같은 것은 허공을 휘저었는데, 촉수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입을 벌려 포효하자 검은 연기 같은 것들이 가라앉아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푸릇한 잔디들이 까맣게 죽어 나갔다.
키이이이이-익!
“저게, 뭐야!”
“망할, 도망쳐!”
에반은 허공에 불꽃을 일으켰다. 아직 4학년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뿐이었다.
미약한 힘이기에 물에서 나온 마물에 닿자 회색 연기와 함께 푸시식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잠시 마물이 머뭇거리는 틈쯤은 벌어 주었다.
네 사람은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고 했다. 리나의 발목이 빠르게 뻗어 나온 촉수에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꺄, 아아아악!”
“리나!”
“체바티, 학교로 뛰어! 어서 가서 교수님을 불러와!”
에반이 고함치자 체바티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에반은 다시 한번 마물 주변에 불꽃을 둘렀으나 마물은 붙잡은 리나를 허공에 휘저었고 에반은 놀라 그나마 있던 작은 불을 꺼 버렸다.
바네사는 주변의 나뭇가지와 돌을 던졌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곧, 아주 멀리서도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수님들은 금방 올 것이다. 아니면 상급생이라도. 하지만 마물의 이빨은 곧 리나에게 닿을 것 같았다. 리나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야! 나를 먹어!”
에반이 버럭 소리쳤지만 마물은 그를 무시한 채로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그때 바네사의 눈에 마물의 십자로 갈라진 눈이 보였다.
‘가루가투스. 십자로 갈라진 눈이 특징이지.’
‘가루가투스의 약점은…’
빛. 아무리 많은 것이 기워졌어도 머리는 모든 것의 중심.
그 잠깐 사이에, 바네사는 저도 모르게 마물의 벌어진 입에 빛을 꽂아 넣는 상상을 했다.
아주 자세히, 아주 간절히 상상했다. 마치 자신이 보고 있는 것처럼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 같았다.
머릿속에서 길쭉한 빛이 거대한 창처럼 내리꽂히고 마물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상상이 실제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