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91)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91화(91/146)
그날 하루 종일 바네사는 몸의 마력이 대부분 소진될 때까지 마력의 흐름을 바꾸고 막고, 그 자체로 내던지는 연습을 했다.
제니언은 못마땅해 보였지만 그래도 ‘쓸 만은 하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바네사의 마력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 정도로 오래 마법 실현을 연습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마력이 부족해서 쓰러지니까.”
바네사는 기뻐 흙바닥 위를 뒹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갔던 제니언은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건네받은 것은 직접 만든 것 같아 보이는 ‘바르’였다. 마법진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적당한 길이의 새하얀 바르는 보관하기도 용이해 보였다.
“진짜 주는 거예요?”
“대단위 마법은 차라리 마법진 구성이 낫다는 걸 잊지 마라. 조건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된 허접한 마법사들이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것도 잊지 말고.”
“고마워요, 제니언. 이틀 내내 저 때문에 고생하셨어요.”
바네사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이 그를 위해 한 것은 레몬 파이 하나를 굽고 과일을 꿀에 절여 보관해 둔 것뿐이었다. 텅 비어있는 식품 저장고를 보고 만든 것이었으나 여전히 허전해 보였다.
“누가 짜증나게 굴면 포키스 폴리스 스타게라의 제자라고 한 뒤에 꺼지라고 덧붙여.”
제니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바네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자라니.
항상 이런 진심을 말한 뒤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제니언은 갑자기 수염을 쥐어뜯으며 허공에 성질을 냈다.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던 바네사는 소리 내어 웃었다.
“갈게요! 식사 잘 챙겨요, 제니언.”
“빨리 꺼져!”
집 안쪽에서 웅웅대는 호통 소리가 튀어나왔다.
바네사는 샐쭉하게 웃고는 퓌돔으로 향했다.
당장 내일 마법부로 특전대 발령 이야기가 들어갈 테지. 혼날 것 같으니 일찍 출근해야지.
그러고 보니 제복은 있나?
⚜ ⚜ ⚜
다음 날, 바네사는 특전대의 건물로 가기 전에 마법부의 장관실에 들렀다. 이미 출근해 있던 텔리오스 장관은 삐딱한 눈길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바네사를 보고는 못마땅하게 혀를 찼다.
“적당히 일하라고 몇 번을 말했어?”
“하하….”
바네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일한 덕에 눈에 띈 것이 아니라 놀다가 생긴 문제로 왕을 만나게 되었으니 대답이 애매했다.
“일단 마법부에서의 직무는 잠시 정지되는 식으로 하고 특전대는 겸직 형태로 가는 것이라 알아 두게. 마음에 드는 관료 뽑기가 어디 쉽나? 어디 날로 훔쳐가려 들어?”
텔리오스는 약간 분노한 것 같았다. 이제 익숙해질 만하니 다른 곳으로 발령이라니.
마법부 사람들은 아직 듣지 못했겠지만 알면 땅을 치며 눈물을 흘릴 것이 틀림없다. 텔리오스는 그리 장담했다.
“폐하께서도 정말 너무하시지 않나!”
“그, 그렇죠.”
텔리오스는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든 폐하께서는 문제가 없으시다는 식으로 나와야지. 자네는 집안이 뒷배도 아닌데 어디서나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게.”
바네사가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걸 안 텔리오스는 목을 가다듬고는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펜을 놀리며 들릴 듯 말듯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특전대가 위험하다고는 하나 그만큼 특혜도 많이 주어지는 집단이야. 자네는 아직 어리고, 보호자가 따로 없지. 이상한 놈들은 어디에나 있어. 항시 조심하도록.”
바네사는 슬쩍 미소 지었다.
“조언 꼭 마음속에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뜻을 담은 웃음에 텔리오스는 미간을 구기며 헛기침했다.
바네사는 옷깃에 꽂는 마법부의 핀을 반납하려 했으나 텔리오스는 아직은 직무 정지 상태니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후에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마법부로 끌고 올 거니 돌려줄 필요 없네.”
장관은 마법부의 핀을 특전대의 핀과 함께 꽂으라고 조언했다. 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받기 더 쉬울 거라면서.
마법부에 짐을 정리하러 간 바네사는 일찍 출근했으니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야근을 한 대니 말런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네사를 보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미 소식을 들은 듯했다.
“더 힘든 곳을 가는 건 알지만요…. 진짜 이건 말도 안 돼요. 인수인계 기간도 턱없이 짧잖아요!”
“첫 날부터 고마웠어요. 항상 신경 써 주신 것을 알아요. 다음에 제가 한번 제대로 인사할게요.”
바네사는 처음 만난 날부터 잘해 주었던 그를 생각하며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대니 말런은 자리를 정리하는 바네사를 보며 코를 훌쩍였다.
“다른 사람이라도 오면 가요….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
“걱정 마세요. 인수인계도 있고 하니 다시 올 거예요.”
대니 말런과 눈물 섞인 인사를 나누고, 제2성에서 나와 특전대의 건물로 가는 길은 약간 어색했다.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바-네사아아아!”
“달로이즈.”
바네사가 씩 웃으며 황소처럼 쿵쿵 달려온 달로이즈를 껴안았다. 이미 특전대 내부에서 소식을 들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달로이즈는 어째 더 큰 것 같았다. 옷이 두꺼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팔이 더 두툼해져 있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왔어야지! 서류 읽느라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내가 서류 읽어 주는 사람이니?”
바네사가 어이없게 웃으며 달로이즈를 끌어당기자 달로이즈는 해맑게 웃으며 걷기 시작했다.
“뭐어, 비슷해. 내 졸업에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바네사 로즈 아니겠어. 난 네 자료가 없었다면 유급당했을 거야!”
그리고 분수가 있는 정원을 지나자마자 에반을 마주쳤다. 돌바닥을 툭툭 차고 있던 에반은 달로이즈와 함께 오는 바네사를 보고 눈썹을 비죽 밀어 올렸다.
“순서 뺏겼네.”
세 사람은 사이좋게 걸어갔다. 아직 시간이 충분해서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정원을 넓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겨울의 마른 바람에 떨어져 있던 낙엽이 바스락거리다 날아가 버렸다.
“제복은 이미 받았어? 옷을 보니 아닌가.”
“아직 받지 못했어. 사실 급히 결정된 일이라서….”
“그러고 보니 모슈위 빼고 실습했던 사람들이 다 여기로 왔네!”
달로이즈의 말에 에반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뒷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모슈위와 연락이 닿아 근황을 들었던 것이다.
“모슈위는 실습할 때도 엄청 힘들어했잖아. 아이들이 다치고 그런 것이 너무 힘들었대. 지금 일하는 곳은 잘 맞나 봐.”
“정말?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대?”
“그, 작은 사업체에 소속되어 있대. 의뢰받아 활동하는 호위 마법사들 알아?”
“아, 몇 번 들어 봤어. 요즘 인기라던데.”
“무언가를 지키는 일이라 좋대.”
바네사는 그 말이 모슈위에게 너무 잘 어울려서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다, 우리 뒤로는 특전대 실습이 아예 없어진 것 알아? 특전대가 너무 바빠져서 실습을 할 수 없다고 했대!”
“내가 실습을 갔다가 없어진 탓은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고. 워낙 큰일이었어야 말이지.”
에반이 히죽 웃자 바네사는 그의 허리를 툭 쳤다.
“근데 그, 어, 대장… 님이랑 같이 일하면 불편하지는 않겠어?”
에반이 약간 어색한 말투로 묻자 달로이즈는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대장님? 왜? 사이가 안 좋아? 널 괴롭히셔?”
달로이즈가 진지하게 묻자 바네사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소리야. 대장님이 날 왜 괴롭히셔?”
“나도 잘 모르겠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
달로이즈가 고개를 기웃거리자 바네사는 혀에 달라붙는 젤리를 먹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가 엊그제 자신을 좀 깨물기는 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몹시 고민이 되는 문제였다. 리나와 체바티, 에반 모두 알고 있는데 달로이즈만 모르는 건 조금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자신에게 부담인 것이 아니라 남들이 부담을 느낄까 걱정이었다.
대장이랑 만나는 대원이라니, 어떻게 생각해도 썩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일부러 정원을 빙 돌아서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도 어느새 특전대의 건물 앞이었다. 덩굴이 벽면 일부를 덮고 있는 고색창연한 건물은 오늘따라 위압감이 느껴졌다.
바네사가 잠시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자 에반이 킬킬대며 웃었다. 그는 바네사의 등을 툭 쳤다.
“설마 긴장한 건 아니지?”
역시 바네사를 힐끔대며 웃고 있던 달로이즈가 먼저 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네사는 숨을 가다듬고 드디어 특전대 건물 안에 몸을 넣었다.
건물 안은 여전히 한적하다는 느낌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홀은 높았고 복도에 달린 문들은 꽉 닫혀 있었다.
특전대원들은 대다수 파견 나가 있을 것이고 아마 일부만 이곳에 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지만.
바네사는 에반과 달로이즈에게 이끌려 바로 특전대의 장이 사용하는 집무실로 향했다.
커다란 문 앞에 함께 도착한 에반과 달로이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바네사 로즈입니다.”
“오랜만에 함께 일하게 되어 반갑군.”
바네사가 원한대로 기드온은 몹시 공과 사를 딱 잘라 구분했으니까.
리에트 대령의 호기심 어린 눈빛 아래 기드온은 무심해 보였다. 밝은 눈동자가 서늘해 보여서 바네사는 약간 거리감이 들었다.
“뒤늦게 합류하게 되어 봐야 할 서류가 많다. 바로 파견되지는 않을 테지만 일을 아는 것에 부족함이 없길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바네사가 단단하게 대답했다. 기드온은 옆에 있던 작은 목함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핀을 꺼냈다. 특전대의 것이었다.
그는 바네사의 목깃을 눈짓하며 말했다.
“마법부의 것은 반납하지 않았나?”
“장관님께서 아직 직무를 정지해 둔 상태라고 하시며 그대로 가지고 있길 원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짧게 웃었다.
“놓치기 싫은가보군.”
“누가 돌려준답니까? 저건 빼야죠. 이제 우리 소속 아닙니까.”
리에트 대령이 차를 마시며 투덜거렸지만 기드온은 깨끗하게 무시했다.
그가 손을 뻗어 특전대의 핀을 건넸다. 바네사는 두 손으로 그를 받아 잠시 돌려 보았다. 백금으로 된 듯한 핀은 어쩐지 검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나가.”
기드온이 짧게 말하자 핀을 구경하던 바네사는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떠나려 했다. 핀 구경 좀 할 수도 있지, 너무하네.
그리고 바로 붙잡혔다. 바네사의 몸을 돌려 눈을 마주친 기드온이 눈썹을 슬쩍 밀어 올렸다.
“아니, 그대 말고. 리에트 대령, 나가라. 바로 계약할 것이다.”
히죽 웃은 대령은 바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복도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무렵, 기드온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었다. 그의 눈길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미 마음을 정한 바네사는 고개를 저었다.
기드온은 더 말하지 않고 몸체가 긴 펜을 건넸다. 그리고 얇지만 튼튼한 석판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석판 위에 이름을 쓰는 순간 당신은 왕 직속 특수 전투 부대에 소속됩니다. 동시에 특전대와 관련된 모든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서약을 어길 경우 따를 불이익과 위험은 오롯이 그대의 것입니다.”
나직한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다는 것처럼.
하지만 바네사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새하얀 석판 위에 마력을 담아 이름을 썼다.
Vanessa Rose (바네사 로즈)
석판 위의 글자는 아주 잠시 푸른빛을 내다가 흐릿해져 다시 가라앉았다.
기드온은 석판을 들어 다시 제 책상 위로 회수했다. 바네사가 그에게 다시 펜을 건네자 펜 대신 그녀의 손을 받아 그대로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