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98)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98화(98/146)
아이는 그들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할 만큼 성숙하지도 못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 엄마가 아파서 그래. 그, 그러니까 들어오지 마. 전염되는 병이라고 했어.”
“걱정 마라.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리에트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저 어린아이가 혼자 이곳에 있으면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다. 빨리 안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숲을 다시 수색해야지.
그래서 안달루스가 미묘하게 인상을 찡그렸을 때 의아했다.
“왜 그러나?”
“악취가 나는군요.”
아주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묘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어쩐지 무언가가 썩는 냄새 같았는데 특전대원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제야 냄새를 인지한 리에트는 그대로 단검을 뽑았다.
“들어가 봐야겠다.”
소년은 그대로 뒤를 돌아 안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단숨에 달로이즈에게 붙잡혔다.
“놔! 놔아아아!”
리에트가 작고 정리되지 못한 앞뜰을 성큼성큼 지나자 아이는 발악하다가 달로이즈의 팔을 깨물었다.
달로이즈는 두툼한 제복 탓에 아프지도 않은지 느긋하게 아이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괜찮아아. 우리 나쁜 사람 아니야.”
“엄마! 엄마아!”
아이가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집 안에서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짧은 검을 움켜쥔 리에트와 가죽 장갑을 낀 안달루스가 그대로 열쇠 구멍에 녹이 슨 문을 크게 열어젖혔다. 바네사는 뒤에서 혹시 모를 공격을 경계하며 그를 보고 있었다.
커다랗게 열린 문을 타고 끔찍한 악취가 풍겼다.
“빌어먹을.”
리에트가 낮게 욕설을 지껄였다. 경계하는 상태로 들어선 집 안은 엉망이었다.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게 아니었다.
“온통 피잖아.”
주변에는 새들의 깃털, 작은 동물들의 사체와 핏자국이 가득했다. 바네사는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은 냄새를 참고 안에 빛을 불러와 시야를 완전히 밝혔다.
작은 거실은 분명히 예전에는 소박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소파를 덮은 꽃무늬 천은 끝에 레이스를 박아 장식되어 있었고, 낡았지만 등받이가 넓은 보라색 안락의자는 푹신해 보였다.
다만 지금은 먼지와 피에 뒤덮여 있었다.
“어, 엄마. 들어가면 안 돼. 어, 어, 엄마가아아….”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 아이가 꺽꺽 소리 내며 울기 시작했다.
작은 거실 옆으로 문이 총 두 개 달려 있었다. 다만 가장 끔찍한 냄새가 나는 왼편에 있는 곳이었다.
“열까요?”
“잠시 기다려라.”
리에트가 단검을 다시 허리춤의 칼집에 넣고 장검으로 교체했다. 안달루스와 바네사도 공격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그를 확인한 리에트가 벌컥 하얀 문을 발로 걷어찼다.
“우, 웩.”
달로이즈가 참지 못하고 구역질하는 소리를 냈다. 그만큼 끔찍한 악취였다.
“스타너 소위, 아이 데리고 나가.”
“우리 엄마란 말이야! 내버려 둬!”
아이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리에트가 벌컥 화를 냈다.
“그전에는 네 엄마였겠지. 마지막도 너를 걱정하는 네 엄마였을 거다! 그런데 죽은 자를 이렇게 욕보여!”
죽은 자의 몸 근처엔 온통 핏자국으로 가득했고 썩어 가는 동물의 사체들도 함께 있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 대충 그려 놓은 것이 분명한 마법진이 있었으나 웃기지도 않는 장난질이었다. 마법진을 그리는 데에 필요한 요정 가루는 피에 지워지니까.
가장 이상한 건 그 주위를 칭칭 감고 있는 거대한 뿌리였다. 이리저리 뻗은 구조에 잔뿌리가 몹시 많은 형태였는데 동물들의 사체를 휘감고 있었다.
안달루스는 뿌리의 표면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그대로 집을 빠져나갔다.
“살아난다고 했어. 살아난다고 했단 말이야!”
“누가 그랬니?”
바네사가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달로이즈의 어깨 위에 들쳐진 아이는 오히려 바네사보다 시야가 높았다.
온통 눈물로 짓무른 아이의 눈을 빤히 마주하자 노아가 꺽꺽 울기 시작했다.
콧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노아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방을 어둡게 유지했다. 어린 마음에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들이 가지고 온 빛 아래에서 엄마는 너무 아파 보였다.
“노아, 어서 말해. 누가 저런 짓을 시켰어?”
“엄마, 못 살아나?”
누, 누나는 아까 이상한 힘을 썼잖아. 그런 것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노아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눈물로 엉망이 된 소년의 얼굴을 바네사가 천천히 닦아 주었다.
“다른 곳으로 가셨어.”
“저 나무가, 살려 준다고…”
“그런 건 없어. 대마법사 밤 반달루라도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어.”
노아는 다시 누워 있는 엄마를 보았다. 혹은 어머니였던 몸을 보았다.
땋은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고 악몽을 꾼 소년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함께 음식을 만들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소년은 어머니 덕분에 슬픔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따뜻했던 손은 차가워지고, 붉었던 뺨은 식어 창백해졌다. 부드러웠던 몸은 딱딱하게 굳어 바짝 말랐다.
그래도 소년의 엄마였다.
“엄, 마.”
달로이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네 엄마를 욕보인 자들을 우리가 혼내 줄게. 그리고 네 어머니는 아름다운 이 숲속에서 편히 잠드실 거야.”
노아도 알았다. 처음에는 흔들림 없이 굳게 믿어 새들을 잡아 오고 작은 동물들을 잡아 와 어머니의 차가운 몸 위에 피를 부었다.
그럼 나무가 조금씩 자라났다.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몸이 말라 가고, 고약한 악취가 풍길 때마다 눈물이 떨어졌다.
우리 엄마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났는데. 엄마가 안아 주면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었다.
그래도 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모은 희망을 안고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작은 새를 잡아 오면 나무는 다시 자라났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저렇게 더러운 피 웅덩이 속에서.
‘노아, 항상 손발이랑 귀 뒤를 깨끗하게 씻어야지.’
‘귀 뒤는 씻기 싫단 말이야.’
‘어휴, 엄마는 매일같이 이렇게 윤이 나게 거실을 닦는데. 우리 노아가 먼지를 다 묻히고 다니네!’
“어, 엄마아….”
리에트는 급히 동물의 사체들을 치웠다. 마법진은 혹시 모르니 내버려 두고 피는 물을 부어 씻어 냈다.
몸을 먹어 치우려는 거대한 뿌리는 아예 잘라 내려 했으나 제대로 잘리지 않았다.
“그, 그 사람들… 자신들이 시, 신의 종이라고 그랬어…. 그래서 살릴 수 있다고….”
울던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리에트가 이마를 쳤다.
“엄마가 살 수 있다고 그랬어. 나무가 다시 사, 살려 줄 거라고… 피를 주면….”
바네사가 어느새 다시 젖어 든 볼을 닦아 주었다. 아이답지 못하게 마른 뺨은 살이 없어 거칠었다.
“스타너 소위, 노아를 마을로 데려다주는 것이 좋겠어.”
리에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러나 몸에서 내려온 아이는 급히 엄마에게 달려갔다. 이미 말라 썩어 가는 손을 쥐어 주물렀다. 눈물이 다시 뚝뚝 떨어졌다.
“엄마, 미안해…. 잘못했어. 어, 엄마는 더러운 거 싫어하는데….”
“가자, 노아.”
“엄마….”
바네사는 새까맣게 죽은 아이의 눈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은 항상 고통스럽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홀로 남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노아의 등 뒤로 환영이 비쳐 보였다. 고아원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집을 그리던 어린 자신이.
혹시 부모님이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반복하던 행동은 언젠가부터 끝이 났다. 대신 쓸모있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차갑게 언 손으로 빨래를 짰다.
그래서 아이의 여물지 못한 머리와 작은 희망마저 미끼로 사용한 자들이 끔찍했다.
달로이즈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들려 나가는 아이를 등지고 리에트와 바네사가 나무뿌리를 분석했다.
“불태우는 것이 가장 빠르겠는데. 저 줄기들이 빠지지를 않잖아.”
“일단 그, 어머니의 몸만 빼낼게요.”
“나도 사정을 봐주고 싶지만 빌어먹을, 나쁜 생각들이 떠오르는군.”
바네사 역시 불길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일단 시도라도 해 봐야 했다.
바네사와 리에트는 끙끙대며 뿌리에 얽힌 다리를 빼내려고 노력했다.
악취에 숨이 절로 넘어갈 것 같았다. 딱딱하게 굳은 몸은 잘 빠지지 않았고 줄기들은 칭칭 감겨 있었다.
“망할, 망할, 망할.”
리에트가 입으로만 훅훅 숨을 내쉬자 바네사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불러왔다. 내부를 휩쓸고 지나간 바람은 잠시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망할 신관 놈들, 죽일 놈들, 어린아이에게 그런 거짓말을 해?”
“근데 증, 거가 없네요. 신관들이 그랬다는.”
“그렇지, 또 아이가 어디 아픈 것 아니냐는 대꾸나 하겠지. 정치란 건 너무 어려워. 일단 잡아넣고 자백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거냐고! 그럼 또 고문한 것 아니냐고 난리, 아, 이건 못 해!”
리에트는 헉헉대다가 결국 벌떡 일어났다.
“몸에 흔적 없이 뿌리를 잘라 내기 불가능해. 너무 얽혀 있잖아. 젠장, 나도 쟤한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일단 나무 본체를 먼저 봐야겠어요. 안달루스 소령님께 가요.”
리에트와 바네사는 급히 집 안을 벗어났다. 두 사람은 집의 뒤편을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를 발견하고 이어지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인영이 아른거렸다. 안달루스는 어느 하얀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바네사와 리에트는 보폭을 넓혀 달려갔다.
“아름답기는 정말 아름다운 숲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소령! 안달루스 소령!”
안달루스 소령은 고민에 빠져 있다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오지 마십시오.”
그들을 본 안달루스 소령이 날카롭게 말했다. 바닥에 깔린 눈의 흰 빛이 반사된 그의 얼굴은 몹시 창백해 보였다.
“뭔데?”
“…여기 나무들 전체가 다 마물입니다.”
리에트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나무 기둥들이 빽빽했고 제멋대로 엉켜 자라난 가지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바네사는 빛을 이끌어 근처의 나무들을 훑어보았다.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상할 정도로 매끈한 윤기가 흐르고 독특한 네모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었다.
“‘도트람의 가지’입니다. 아주 예전에 지나가듯 본 적 있어요. 그건 겨우 무릎까지 오는 크기였는데 이건….”
하늘을 뒤덮을 크기. 리에트는 입술을 짓씹었다.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 것 같나.”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마물인지 알 수가 없어요.”
“아직 크고 있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 이 마물들은 밤에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밤에 움직이는 동물들을 잡아채 잡아먹곤 하죠. 그 말에 바네사는 온몸이 선득했다.
‘도트람의 가지’라면 겉핥기나마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마물 중 얼마 없는 식물 형태의 마물이라 가끔 예시로 나오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알아채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보통 크기가 작은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작을 때는 사람들에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땅을 뒤덮는 얕은 뿌리들로 움직임을 방해하고, 줄기로 생명체를 휘감아 떨어트려 죽이는 행태를 보이나, 겨우 무릎까지 오는 크기로 사람을 들어 올려 떨어트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이미 거대한 나무들처럼 자라난 상태였다.
그런데 거대한 숲에, 얼마나 많은 마물들이 숨어 있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 그들을 공격하려 할지, 언제 깨어날지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