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최종 목표요?”
머리가 더 어지러워졌다.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아, 이제 막 경찰생활 시작한 친구한테 내가 너무 거창하게 물었구만. 질문을 좀 바꾸겠네. 경찰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뭔가?”
내가 멀뚱거리고 있자 덕규가 질문의 범위를 좁혀주었다.
이제는 곧장 대답할 수 있었다.
“경찰이 하는 일이 저를 흥분시키니까요.”
“흥분시킨다고? 재미있는 대답이군. 어떤 점이 자네를 흥분시킨다는 말인가?”
“숨겨진 걸 밝혀내는 것과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이요.”
“호오.”
덕규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고 날 바라봤다.
난 경찰이란 직업에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게 아니다.
가장 덜 지루하고 가장 많이 흥분되는 일을 찾다보니 경찰이 된 것뿐.
“완전히 경찰 체질이구만. 범죄는 숨겨져 있는 것이자 잘못된 것이고, 그걸 밝혀내 바로 잡는 게 경찰이니까.”
“맞습니다.”
“그럼 자네의 최종 목표는 가장 꽁꽁 숨겨진, 그러면서도 가장 악랄한 범죄를 밝혀내 바로잡는 것이 아닐까?”
질문을 듣는 순간 ‘그런가?’하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니까.
그러나 팀원들은 이미 ‘그렇다’고 단정 짓고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종민은 아동학대가 가장 악랄한 범죄라고 했다.
국진은 성범죄, 철수는 학교폭력이 가장 나쁜 범죄라고 했다.
수호와 경수는 최악의 범죄자는 조직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는 거라고 했다.
같은 동료의 뒤통수를 치는 경찰관들이 가장 나쁜 인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팀원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나쁜 범죄를 나더러 꼭 좀 없애달라고 부탁했다.
“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덕규가 어수선한 좌중을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탁경위, 조직 내에서 원하는 걸 이루려면 초석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우리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힘든 게 있으면 믿고 의지해.”
“……”
“주야비휴. 한 달에 15번. 파출소 팀원은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사이야. 다시 말해 가족이랑 다름없는 사이라는 거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탁경위 아빠고, 삼촌이고, 형이야. 알겠어?”
평소 같았으면 그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술에 취한 탓일까.
“… 네. 알겠습니다.”
덕규의 말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
다음 날. 야간 근무.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감사합니다. 매천파출소 경위 탁정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 나 형사과장인데. 자네가 탁정태야?”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저쪽은 나를 아는 체 했다.
“예, 안녕하십니까.”
“어, 고생이 많아. 지금 서류를 보고 있는데 어제 절도범이랑 장물범 노부부 검거한 거, 정말 자네가 한 거 맞아?”
“네, 맞습니다.”
“보고서 내용 그대로 사진이랑 장신구 보고 진술 추궁한 거 맞고?”
“맞습니다.”
“허 참, 이 친구 물건이네.”
그렇게 혼잣말을 흘린 뒤.
“우리 학교 후배가 실무에 나오자마자 멋진 활약을 하고 있구만.”
“충성! 29기 탁정태입니다!”
실무에 나가서 경찰대 선배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라고 배웠다.
“됐어, 충성은 무슨. 서에 오면 내 방에 한 번 들러. 커피나 한 잔 하지.”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
전화를 끊자 덕규가 물었다.
“누군데 그렇게 크게 경례를 하나?”
“형사과장님입니다.”
“형사과장? 왜 전화했대?”
“어제 일어났던 절도 사건에 대해 물으시고, 저보고 서에 오면 방에 한 번 들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야.”
덕규가 감탄사를 내뱉더니 다리를 탁 꼬면서 말을 이었다.
“줄타기가 벌써 시작됐구만.”
“줄타기요?”
“그래. 조직생활은 필히 줄을 잘 타야 돼. 권력을 잡고 좋은 자리 꿰 차는 거는 다 인맥 빨이거든.”
“아…”
“최안득 경정. 그 사람 줄 괜찮지. 수사한다고 고집 안 부렸으면 경무과장 갔다가 곧장 총경 달고 서장 했을 텐데 말이야.”
나는 형사과장의 이름을 머리에 넣었다.
“수사 통인 형사과장이 정태 널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나 보다. 보고서 보고 싹을 딱 알아본 거야. 서에 갈 일 있으면 꼭 방에 들러서 인사드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팀원들이 주변에서 부럽다며 궁시렁거렸다.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나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니.
나도 뭔가 기분이 좋았다.
딩- 딩- 딩-
그때, 종소리가 울리며 신고가 들어왔다.
“어허이, 첫 신고부터 자살신고네.”
경수가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정태야. 가보자.”
“네.”
곧장 장비를 챙겨 순찰차에 올라탔다.
신고내용은 ‘아들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운전석에 앉은 경수는 신고 위치를 확인한 뒤 차를 출발했다.
“자살 신고는 경찰이 처리하기 참 애매한 사건이야.”
“애매하다고요?”
“범죄가 아니잖아.”
그렇다. 타인을 죽이는 건 범죄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범죄가 아니다.
“그러니 형법에도, 형소법에도 자살 관련 법조항이 없어. 매뉴얼만 몇 개 있을 뿐. 다시 말해 우리 경찰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자살신고를 처리해야한단 말이지.”
경찰업무 처리에 있어 법적 근거는 매우 중요하다.
법적 근거가 있어야 문을 부수고 들어가거나 사람의 신체적 자유를 구속하는 등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현장 가서 사람 살린답시고 강제로 문 따고 자살기도자 신체 억압하다가 좆되는 수가 있어. 문 따고 들어온 경찰관 주거침입으로 고소해서 유죄 떨어진 판결도 있다니깐?”
“경직법에 보호조치랑 강제 문개방 관련 규정이 있잖아요.”
“형소법도 뭉개지는 판국에 경직법은 무슨. 형법 형소법에 규정 없으면 경찰관은 결국 재판 가서 지게 되어 있어. 사람 살리려다가 되레 옷 벗고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거지. 국민들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경찰관이 무능해서 사람 못 살렸니 그런 소릴 해대니 참…”
경수가 안타까운 듯 입을 쩝 다셨다.
이런 경찰관의 고충은 대학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사태가 훨씬 심각한 것 같았다.
“뭐, 그래도.”
경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자살소동’으로 끝나니까 너무 쫄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경수가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제 신고 장소인 아파트에 거의 다 와 가는 것 같았다.
“근데 어제 너, 그 말 멋있더라.”
“네? 무슨 말이요?”
“경찰이 하는 일이 날 흥분시킨다는 말. 멋있고 또 부럽더라고.”
“……”
“사실 네 나이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도 엄청 많거든. 난 솔직히 마흔이 된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 경찰로 근무하는 건 솔직히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경수가 말끝에 한숨 같은 콧김을 푹 내쉬었다.
“에휴 이 나이 먹도록 하고 싶은 것도 뭔지 모르고. 이러니 결혼도 못하고 이러고 사는 거 아니겠냐.”
어제 들어보니 경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팀원들은 경수에게 여자가 워낙 많아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남형 얼굴이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법 했다.
“아무튼.”
그리고 경수의 말을 끝으로.
“부럽다.”
끼익-
신고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앰뷸런스 한 대가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
자살기도자가 혹시 다쳤을까 싶어 119에도 신고가 연계된 것이다.
구급대원들은 차에서 내려 아파트 출입구로 가고 있었다.
우리도 곧장 차에서 내려 입구로 들어가려던 찰나.
“앗, 저기!”
구급대원 중 한 명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을 보니.
“헉.”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베란다 밖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층수를 세어 보니 9층.
신고 장소였다.
옆에 있던 경수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자살기도자는 싱거운 자살소동이 아니라, 정말 죽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나는 그 남자를 유심히 살펴본 뒤.
“혹시 119에 충격방지용 매트리스 지원됩니까?”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낙하했을 때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바닥에 까는 튜브형 매트리스가 필요하다.
“이미 신고와 동시에 매트리스를 실은 차가 이 쪽으로 출발했습니다.”
“얼마나 걸리죠?”
“도착해서 튜브에 공기를 주입하고 낙하 예측 장소에 설치하려면, 최소 15분은 걸립니다.”
“… 너무 늦어요.”
나는 그와 얘기하면서도 난간의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자세와 행동, 얼핏 보이는 얼굴 표정을 통해 그의 다음 액션을 예측했다.
그리고 구호조치를 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저 사람 곧 뛰어내릴 지도 몰라요.”
“에? 뛰어내릴지도 모른다고?”
“고부장님이 시간을 끌어주셔야 합니다.”
“내, 내가?”
“저랑 같이 어서 올라가시죠!”
나는 흠칫 놀라는 경수의 팔을 잡고 입구로 뛰어갔다.
구급대원들은 소방에 독촉전화를 하고 있는지 오지 않았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9층을 누르고 문을 닫았다.
경수는 좀 긴장을 한 듯했다.
“사람이 난간에 매달려 있는 걸 실제로 보기는 또 처음이네. 후…”
“들어가서 절대 요구조자를 자극해선 안 됩니다. 표정과 행동을 보니 충동적으로 자살 시늉만 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뛰어내리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겁니다.”
“헉.”
난간에 매달려 있던 요구조자는 전혀 흥분한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했다.
중학생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토록 차분할 수 있는 것.
이는 마음이 막 요동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심적 선택을 다 끝냈다는 뜻이다.
“적당한 말로 시간을 끌어야 해요.”
“적당한 말? 뭐 어떤 말을 하란 거야?”
“저도 모릅니다.”
“뭐?”
“어쨌든 저보단 고부장님이 타인과 대화하고 공감하는 데 능할 겁니다.”
경찰이라고 해서 자살시도자와 대화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자살은 범죄가 아니니 경찰교육과정에서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난간의 남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출동한 이상 어떻게든 그를 살려야 했다.
“내가 대화하고… 그럼 너는 뭘 하는데?”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
띵-
그때 엘리베이터가 9층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자마자.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언젠가 들었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