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쌈.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방어태세를 취했다.
내 몸에 무언가 닿는 순간 바로 업어 쳐버릴 것이다.
그렇게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칙-
치직-
라이터 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아-
눈앞의 초에 불이 붙었다.
그 밑에는 케이크.
이어서.
“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츄-”
밝혀진 노란 불빛 앞으로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경수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션- 콘그래츄레이션-”
그는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긴 팔다리를 양쪽으로 휘저어가며 괴상한 춤을 추고 있었다.
쿠잔클럽 때 봤던 그 춤이다.
“콘그래츄 레이션 레이션 레이션 레이션 딴따단따단 딴!”
“……”
그가 화려한 자세로 마무리를 하고는 날 쳐다봤다.
나도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걸까?
“반응이 없을 줄 알고 두 번째 공연까지 준비해뒀지!”
“…?”
“나오세요!”
경수가 부르자 이번엔.
“콘- 그래 츄- 레이 션-”
치헌이 고깔모자를 쓰고 들어와 스텝을 밟아댔다.
“콘그래츄 레이션-”
희대의 카사노바 사기꾼 박임수 판례에서 봤던 다이아몬드 스텝이었다.
그도 젊은 시절 열심히 춤을 연마한 듯했다.
그 큰 덩치로 빠르게 스텝을 밟아대니 쾅쾅 소리가 나며 지면이 울렸다.
“콘그래츄 레이션 레이션 레이션 레이셔어어어언-!”
“……”
“……”
내가 변함없는 표정으로 치헌을 쳐다보자.
“하- 정말.”
치헌이 뻘쭘한 표정으로 고깔모자를 벗어 책상에 던졌다.
“팀장이 이렇게까지 하면 뭔 반응이라도 좀 해라.”
“……”
“생일이라고 집에도 안 가고 서프라이즈 해줬더니 반응이 뭐 이래?”
생일?
“뭐 남자새끼들끼리 선물은 없고. 빨리 나와.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하게.”
*
치이이이이익-
맛있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니 이제 좀 정신이 들었다.
나는 밥도 안 먹고 CCTV를 보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넌 어떻게 생일도 112냐.”
1월 12일.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내 생일.
“여기 내 단골집인데, 사장님한테 사정해서 계속 마감시간 늦췄어. 오늘만 특별히 두 시까지 열어주신대. 사장님이 정태 네 팬이기도 하고.”
구석에서 사장이 날 보고 허허 웃었다.
“1층 주차장에서 경수랑 같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자정이 될 때까지 안 나오냐. 그래서 되레 우리가 올라갔지.”
“계속 영상 보고 있었습니다.”
“적당히 해, 적당히. 아무리 중대사건 맡고 있다 하더라도 중간중간 쉬어주긴 해야 한다고. 담당형사가 체력 빠져버리면 결국 수사에 차질이 생겨버리는 거니까.”
치헌이 얘기하는 사이 소맥을 다 탄 경수가.
“한 잔 하시죠!”
잔을 돌렸다.
“자, 우리 정태 생일 축하한다!”
“정태야 축하해-”
짠-
벌컥- 벌컥-
“크-!”
치헌과 경수가 눈을 질끈 감고 목 긁는 소리를 냈다.
첫잔은 원샷이래서 나도 쭉 잔을 들이켰다.
목 끝에서 찌릿한 쾌감이 전해져왔다.
“하, 간만에 한 잔 하니 좋네. 우리 이렇게 술 마시는 게 세 번째인가?”
“맞아요. 저랑 정태 창진서 형사과 발령 받았을 때 한 번, 또 광수대 오기 전에 서장님 과장님이랑 같이 한 번. 이번이 세 번째네요.”
경수가 다시 소맥을 말아 잔을 돌리며 대답하자 치헌이 날 돌아봤다.
“아 첫 회식 기억난다! 그때 정태 네가 경수보고 좆같다 그랬었잖아 크크큭.”
“……”
그때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따로 변명을 할 수도 없다.
“팀장님보곤 강도살인 지명수배자 같다고 했었죠.”
“……”
저 말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첫 날에 얼마나 황당하던지.”
치헌은 지명수배자 같단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웃으며 계속 말했다.
“발령받아 사무실에 떡 와서는 내 면전에 대고 ‘생긴 게 험악합니다.’ 이러는 거야.”
“외모는 험악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그 말이야 인마. 아무튼 그래서 내가 순간 뻥져가지고 가만히 정태 쳐다보다가 ‘뭐야!?’하면서 화내니까 오히려 반대쪽에 있던 정록이랑 지환이가 깜짝 놀라더라고. 정태 이놈은 꿈쩍도 안 하는데 말이야.”
“……”
“그때 정태가 갑자기 ‘하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이러는데, 와 순간 기분이 묘하더라고. 분명 욕 같은데 기분은 칭찬들은 기분이야. 나 그런 기분 처음 느껴봤다니까.”
내가 치헌에게 처음 느끼는 기분을 선사해주었다니.
뭔가 뿌듯했다.
“그 뒤부터 같이 일을 하는데 얼마나 잘 하는지. 내가 막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니까. 근무 의욕이 막 솟더라고. 경수 네 센스랑 정태 탁월함이 합쳐지니 해결 못하는 사건이 없는 거야.”
치헌은 정말 기분이 좋은 듯 광대가 잔뜩 솟아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참 별의 별 사건도 많고 힘들기도 했는데, 진짜 재미있었어. 뭐랄까. 정말 오랜만에 ‘경찰로서 행복했다.’랄까? 정태 네 생일이라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랬어 진짜로.”
“……”
“아무튼 정태 네 덕에 지금도 재미있게 근무하고 있어.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애가 좀 인간미가 없다는 거? 좀 웃고 싹싹하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뭐 그런 거 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자, 한 잔 하자!”
우리는 다시 한 번 잔을 비웠다.
나는 잔을 놓으며 생각했다.
웃고 싹싹하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라.
남들에겐 쉽지만 내겐 너무나 어려운 행동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이들에게 내 질환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저도 정태 만난 걸 진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엔 경수가 입을 열었다.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정태는 제 목숨을 구해줬잖아요. 어후,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끼쳐요. 칼이 제 얼굴로 날아드는 상황. 순간 몸이 마비되어 버리더라니까요. 정태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죠.”
그가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정태랑 추억도 많아요. 더블 소개팅 하는데 처음 보는 자리에서 민경이 이에 파슬리가 끼었다고 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에, 정말? 푸하하 미친놈.”
“그래가지고 그때 민경 씨랑 잘 안 됐잖아요. 정태 지만 잘 되고. 뭐 결국 나중에 정태가 저랑 민경이 다시 이어주긴 했지만.”
경수의 말을 들으며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더블 소개팅을 하던 날의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 오고간 이야기들.
“그리고 나중에 또 민경이랑 은빈 씨랑 2대 2로 술 마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왕게임을 하자고 하니 정태 얘가 대통령 선거처럼 투표를 해서 왕게임 할지말지를 정하자는 거예요.”
“크크큭. 그런 거 보면 진짜 얘 골 때린다니까.”
“그래놓고 벌칙은 또 잘 수행하더라고요. 은빈 씨랑 의도치 않은 스킨십도 하고.”
경수가 숟가락으로 맥주병을 따며 덧붙였다.
“팀장님 말씀대로 정태 얘가 좀 로봇 같고 감정이 없는 놈 같긴 해도, 뭐 어쩌겠어요. 그게 얘 매력인데요 뭘.”
“매력이 아니라 병입니다.”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과 고부장님께는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 사실 저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잘 못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남의 기분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
“어릴 때부터 담당의를 지정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제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의사도 제 상태가 점점 호전될 거라고는 말하지만 치료될 거라곤 말하지 않습니다. 정신은 신체랑 달라 완벽히 치료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
“그래도 요즘은 제 스스로 느끼기에도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것에서 다채로운 감정들을 느끼고 있거든요. 특히 사건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좋은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 좋은 사람들의 가장 선두에 은빈 씨와 같이 팀장님과 고주임님이 있고요.”
그 말에 치헌과 경수가 흐뭇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과거에 제가 무례하게 행동한 게 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오해가 있으셨다면 꼭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변명 같지만 다 제 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앞으로 제 행동을 고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동안의 행동들, 그리고 이제야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것. 모두 죄송합니다.”
내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는데.
씨익-
치헌이 날 보며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딸을 볼 때 짓던 그 미소.
“사실 난 다 알고 있었어.”
“…?”
“너 정신질환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었다고.”
“…!?”
“경수도 알고 있었을 걸?”
술을 따르고 있던 경수가 입술을 양쪽으로 쭉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럴 수가.
이들이 어떻게 내 병력을 알고 있는 거지?
“질병 유무는 서장과 과장급, 파출소는 파출소장 급만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서류로는 그렇지. 근데 과장이 그 직원 담당 팀장한테 당연히 얘기해주지 안 해주겠냐? 정신 질환이면 특히 유의해서 관리해야할 대상인데.”
“……”
“처음에 최안득 과장이 얘기하더라고. 탁정태 애는 똘똘하고 괜찮은 것 같은데 정신질환 있다고 하니 알고는 있으라고. 뭐 네가 총 발포한 일도 있고 하니까 걱정이 좀 됐겠지. 근데 내가 며칠 뒤에 과장 따로 찾아가서 얘기했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돌발행동이 좀 있긴 하지만 나쁜 쪽으론 절대 행동 안 한다고. 다 수사를 위한, 선한 영역 안에서의 돌발행동이라고.”
내가 모르는 새에 내 주변 사람들끼리 많은 얘기가 오간 것 같았다.
선한 영역 안에서의 돌발행동.
금주희 과장이 내게 말해준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정태 처음에 매천파출소 왔을 때.”
경수가 잔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김덕규 팀장도 저한테 말하는 거예요. 소장한테 들어보니 정태가 무슨 병이 있다더라. 네가 멘토이니 유의해서 근무해라. 뭐 이해는 하죠. 병력이 있는 직원들은 좀 더 세심히 케어를 해줘야 하니 소장 팀장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
“근데 나도 첫날 딱 근무해보고 바로 덕규팀장님한테 그랬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좀 딱딱하고 로봇 같긴 한데 애는 진짜 착하다고. 그리고 완전 수사 괴물이라고.”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니 죄송하다 이런 소리 할 필요 없어.”
치헌이 잔을 들고 휘휘 저으며 말했다.
“너 충분히 괜찮은 놈이야. 병을 감안했을 때 괜찮다는 게 아니라, 너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고. 질환 여부 따위는 다 잊게 만들 정도로.”
“……”
“네 행동 때문에 우리 맘 상하고 이런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오히려 아까 말했듯 정태 네 덕분에 요즘 출근하는 게 재밌어. 수사할 맛도 나고.”
그들의 말을 듣는데 뭔가 모르게.
“그러니 이 자리는 네가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할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자리야.”
마음이 간지럽고 따뜻해졌다.
누군가 나를 좋게 생각해준다는 것.
그것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그건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고맙다 정태야 여러모로.”
“나도 고마워.”
그들의 말과 표정에 진심이 우러나왔다.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
이것이 바로 남자들의 ‘우정’이란 건가?
“자, 팀장님. 이제 닭살 돋는 멘트 그만하시고. 정태 선물 줘야죠?”
“그래 참. 선물 줘야지.”
“제가 줄까요?”
“아니, 내가 줄게. 팀장으로서 여태 해준 것도 없는데. 이번 기회에 줘야지.”
응?
선물은 없다고 했는데.
“뭐 물질적인 선물은 없고.”
치헌이 갑자기 커다란 상추를 하나 집었다.
“내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줄게.”
그리고는 그 위에 고기 5개, 마늘, 고추, 양파, 겉절이 등을 올리더니.
“자, 내 마음이야.”
자기 주먹만 한 쌈을 싸서 내게 내밀었다.
“……”
“뭐야? 안 받을 거야? 팀장 성의 무시하는 거야?”
이게 정말 그의 마음이라면.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또 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자, 아-”
“아-”
나는 있는 대로 크게 입을 벌렸다.
나는 내 턱이 그렇게 많이 벌어지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으억…”
“자 좀만 더…”
“억…”
그렇게 치헌이 내 뒤통수를 잡고 강제로 밀어 넣어.
“오케이.”
“……”
생일 쌈이 입에 다 들어갔다.
“선물까지 줬으니 다시 한 잔 하자고.”
그리고 다 같이 잔을 들었다.
치헌과 경수의 입에서 싱글벙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나는 턱이 아팠지만 그들의 미소를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나눈 대화와 웃음, 축하와 격려가 모두 소중했다.
우리는 그렇게 좋은 마음을 안고 소리를 드높여.
“탁정태!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한다!”
“정태야 축하해-!!”
“강하항이아!(감사합니다!)”
힘차게 건배를 했다.
처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