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처리해.
그렇게 생일 쌈 회식이 끝나고.
자고 일어난 뒤, 근무를 마친 1월 12일 저녁.
“여기 어딘지 기억하죠?”
나는 은빈과 함께 음식점에 왔다.
“네. 저희가 처음 만났던 곳이요.”
“맞아요. 몰랐는데 여기가 유명한 스테이크 맛집이더라구요. 그때 정태 씨 스테이크 먹었잖아요.”
그때 스테이크가 맛있긴 했다.
“어제 팀장님이랑 고주임님이랑도 이 음식점 얘기를 했었습니다.”
“오 정말요?”
“좋은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때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으니까요.”
“아…”
지금 생각해보니 파슬리 얘기를 한 건 잘못한 것 같기도 하다.
“정태 씨가 음식 중에 스테이크 제일 좋아하는 거 같길래 사주려고 여기 오자고 했어요.”
“잘했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은빈이 가방에서 작고 길쭉한 선물 상자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정우가 주는 생일 선물이에요.”
“정우가요?”
“네. 그거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정우가 며칠 동안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서 산거예요.”
나는 곧장 포장을 뜯어보았다.
“볼펜이네요?”
“네. 그런데 그냥 볼펜이 아니래요. 뭐 녹음이랑 촬영기능이 탑재된 볼펜이라나? 정태 씨 수사할 때 쓰기 좋을 거 같다면서 어디서 구해왔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펜 끝에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거 불법은 아니죠?”
“수사 등 공익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유용하게 쓸 수 있겠네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 말에 은빈이 씨익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제 선물은 조금 이따가 줄게요.”
“…?”
“오늘은 정태 씨가 좋아하는 것들로 다 채워놨어요. 생일이니까 마음껏 즐겨요.”
그렇게 대화하던 도중.
“식사 나왔습니다.”
음식이 나왔다.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
보자마자 입에서 침이 저절로 뿜어져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요. 부족하면 더 시키고요.”
나는 곧장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었다.
입 안 가득 육즙이 흘러나왔다.
나는 대여섯 개의 고기를 한 번에 입에 집어넣었고, 은빈은 그런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런데.”
내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조금 이따 줄 거란 선물은 뭡니까?”
“비밀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오늘을 가득 채웠다는 그 말은 또 뭐고요.”
“그것도 비밀이에요.”
“……”
또 시작이다.
유추를 해보란 건가?
나는 찬찬히 은빈의 표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다림이 필요한 선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웠다는 그 표현.
그리고 지금 시간대와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유추하지 마요!”
“…?”
“선물은 조금 이따 갑자기 딱 받아요. 그리고 그때 그 느낌을 즐겨요. 그게 선물하는 맛이니까.”
…
은빈의 말이 맞다.
즐거움은 예측하지 못한데서 온다.
“뭐, 정태 씨가 궁금해 하니까 굳이 힌트를 좀 주자면…”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던 그때.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
내가 기다리던 전화였다.
허나 오늘이 아닌 내일 오기로 한 전화인데.
= “여보세요!?”
하지만 나는 그런 걸 따질 새도 없이 곧장 전화를 받았다.
= “지금 건물로 들어왔답니다.”
=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일정이 변경되었나 봅니다. 지금 들어갔습니다.”
=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은 뒤.
“은빈 씨, 미안합니다. 지금 저 바로 나가봐야 해요.”
“네??”
“선물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곧장 가게를 뛰쳐나왔다.
*
잠시 후.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문자를 보냈다.
위이이잉-
곧장 답장이 왔다.
[곧 저희 측 관계자가 정문으로 나올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 경기북부청 정보과 경감 정환태]
나는 그가 지시한 대로 건물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거기서 뭐하십니까?”
입구에 근무를 서고 있던 경비원이 다가왔다.
나는 외투 깃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기에 볼일이 있으십니까?”
“……”
“18시 이후로는 외부인 출입이 불가합니다.”
“……”
“돌아가셨다가 평일 업무시간에 다시 오십시오.”
다그치는 그를 무시하고 내가 가만히 서 있자.
“다음에 다시 오시라니까요?”
그가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어?”
눈을 크게 뜨며 허리를 숙여 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디서 많이 뵌 얼굴인데…”
“……”
“연예인이신가?”
나는 더욱 깃을 세워 얼굴을 다 가렸다.
“일단 우리 건물에 볼일 있으신 게 맞긴 하나보네요. 혹시 모르니 일단 상부에 보고를…”
“보고 할 필요 없습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안쪽에서 말끔한 수트를 차려 입은 남자가 나왔다.
경비원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기자님?”
“업무 차 제가 방문요청 드린 분입니다. 따로 보고하실 필요 없어요. 아직까지 외부에 안 알려지는 게 좋으니 입단속 잘 하시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잠겨있던 철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최기자의 안내에 따라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그는 말 한마디 없이 걷다가.
“여기.”
건물 입구에 다다라서야 입을 열었다.
“들어가셔서 왼쪽 비상구 계단을 이용해 15층까지 가시면 됩니다. 그럼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어요. 위치는 15층 오른쪽 끝 방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눈 판 사이 탁경위님이 막무가내로 건물로 들어간 겁니다. 혹시 문제가 되면 말은 그렇게 맞춰주셔야 해요.”
“네.”
그렇게 말을 마치고 그는 주차장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곧장 입구를 통과해 비상구로 들어갔다.
다다다-
나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올랐다.
업무시간이 끝나긴 했지만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갔다간 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지도 모른다.
야근을 하는 기자들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계단을 올라.
“……”
15층에 도착했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입구만 잘 통과하면 방까진 문제없이 갈 수 있을 거라던 환태의 말이 정확히 맞았다.
나는 오른쪽 끝 방으로 가서.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남자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당신이…”
내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시호 기자입니까?”
나이는 40대 중반. 목 뒤까지 길게 기른 장발에 동그란 안경.
책상 앞에는 ‘한시호’라고 적힌 명패가 있었다.
“여… 여길 어떻게…”
그는 입을 벌린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후다닥-
얼른 마우스를 잡고 무언가를 컴퓨터에서 지우려 했다.
타닥-
꽈악-
“아아악!!”
나는 곧장 그의 팔목을 잡아 꺾고는.
“ZBC 한시호 기자님.”
그의 손목에 수갑을 걸었다.
“당신을 감금교사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수 있어요. 체포적부심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잠시 후, 광역수사대 제 1조사실.
“뭐 감금교사? 뭔 개소리야!?”
고함을 쳐대는 시호를 겨우 자리에 앉히고 나도 조사용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내가 경찰청 차장이랑 인마 어!? 같이 밥 먹고 사우나가고 하는 사이야!”
“……”
“무슨 근거로 감금 교사라는 거야? 증거 있어!?”
“있습니다.”
“있으면 증거를 설명하고 체포를 해야 할 거 아냐! 너희는 이딴 식으로 사람 체포하고 구속해? 시발 영장 안 나오면 어떡할 건데? 어떡할 거냐고!”
끼익-
그때 경수가 조사실 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남부지검에서 구속영장 청구했대. 내일 실질심사하고 별 문제없이 발부될 거래.”
영장 청구 사실을 알려준 뒤 다시 문을 닫았다.
영장에 대해선 이정재 검사에게 미리 언질을 줘 놓았다.
약속대로 잘 처리해준 모양.
“들으셨죠?”
“……”
“체포 전에 증거를 미리 설명할 의무는 없습니다. 증거는 체포 후에 설명해도 돼요. 체포과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불법체포로 저를 고소하시면 됩니다.”
“하, 참나.”
“원하시니 체포 이유 설명 드리겠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한 화이트보드를 책상 위에 올려 보였다.
보드엔 수십 장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얼마 전 발생한 연예인 박지석 살인사건과 강은영 납치사건 관련자들 이동경로입니다. 검거한 범인들 진술 토대로 경로에 있는 모든 CCTV를 분석했습니다. 이 범죄들의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서요.”
7시간 동안 열람했던 백 수십 개의 CCTV영상들.
아직도 그 장면들이 머리에 선했다.
“분석한 영상의 재생 시간을 배속 없이 모두 합치면 수백 시간에 달합니다. 영상 속에 수백, 수천의 사람들과 차들이 지나다녔죠.”
“……”
“하지만 그 모든 영상에서 주목할 만한 특이점은 단 하나밖에 발견되지 않았어요. 바로.”
내가 사진 속 차를 가리켰다.
“이 검정색 SUV 차량입니다.”
흐릿한 사진.
시호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을 확대해 화질을 개선시키면.”
내가 따로 준비해놓은 사진을 한 장 더 내보였다.
“이렇게 차체와 차번호가 선명히 나오죠.”
“…!”
“알아보시겠죠? 무슨 차량인지? 차에 붙어 있는 스티커도 없어 일반차량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어제 내가 조회해서 알아낸 차량의 정체는.
“ZBC 방송국 차량입니다.”
“……”
“이 차량이 제가 분석한 영상 중 절반이 넘는 영상에 등장합니다. 데스벤과 이동경로도 똑같아요.”
“……”
“범죄 장소에 방송국 차량이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할까요? 이땐 범죄 실행 전이라 경찰에 사건접수가 되기도 전인데 말이죠.”
시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내 얘기를 들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ZBC 방송국 배차 내역을 살펴봤습니다.”
이 일은 아까 나를 방송국 건물로 인도해준 최기자가 맡아 해주었다.
내가 이 사건 관련 방송국 쪽으로 접근할 방법을 마련해달라고 정환태 경감에게 부탁했고, 환태는 방송국에도 자기 사람이 있다며 최기자에게 일을 맡겼다.
“살펴보니 이 CCTV영상에 나오는 모든 시간대에 ‘조지호’라는 기자가 이 검정색 SUV를 배차 냈더군요.”
“……”
“그런데 이상한 게, 이 조지호 기자는.”
내가 화이트보드의 다른 사진들을 가리켰다.
각종 기사 사진과 술자리 사진.
“해당차량을 배차 낸 시점에 항상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취재를 나가거나 사무실에서 기사를 업로드 했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술을 마시고 SNS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죠. 다시 말해…”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이름만 ‘조지호’로 배차 냈을 뿐, 그 차량은 실제 조지호 기자 팀이 운전한 게 아니었죠. 누군가가 본인 운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조지호 씨로 위장 배차를 낸 거예요.”
“……”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가 확대된 다음 사진을 내보였다.
“한시호 기자님이더라고요.”
차에서 잠시 내린 운전자의 모습.
장발에 동그란 안경.
심지어 지금 입고 있는 자켓도 영상 속 자켓이었다.
누가 봐도 시호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
“데쓰벤과 마치 한 패거리처럼 똑같은 이동경로를 지나다녔던 이 SUV의 운전자는 한시호 기자님이었던 거죠.”
“……”
“이어 저는 이 당시 데쓰벤에 타고 있었던 오수의 이동경로도 따로 역추적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구형 폴더폰을 들어보였다.
“오수가 쓰고 버린 대포폰을 발견했죠.”
“…!!”
“이 폰을 포렌식 해보니.”
이어서 포렌식 결과 서류를 보여줬다.
“범행 직전 한시호 기자님 번호로 ‘처리해.’라고 문자온 내역이 있더군요.”
“……”
“말씀해보십시오.”
내가 시호를 차갑게 쳐다보며 물었다.
“범죄 장소에서 대체 뭘 한 겁니까? 그리고 오수에게는 무엇을 처리하라고 지시한 겁니까?”
작은 피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