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작은 피라미.
입을 꾹 다문 채 대답을 않는 시호.
처음엔 당황해서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몸을 축 늘어뜨렸다.
이젠 대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하겠다는 듯.
“진술 할 생각이 없으신 것 같네요.”
하지만.
“그럼 제가 얘기 해볼까요?”
“!?”
그가 말하지 않으면 내가 하면 된다.
나는 CCTV를 그냥 분석만 한 게 아니다.
그 자료를 기반으로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상황들을 가정해 시각화하고, 가장 확률이 높은 장면들을 추려나갔다.
증거가 하나씩 나올수록 범인의 행동이 선명해졌고,
시호의 사무실과 실물까지 확인한 지금은.
“손톱을 굉장히 짧게 깎으셨군요.”
시호의 그간 행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양쪽 끝에 피가 맺힐 정도로요.”
“……”
“아까 사무실을 보니 가구와 서류철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각 잡혀 있었어요.”
“……”
“게다가 사무실 벽을 뒤덮은 온갖 서류들.”
ZBC 건물 시호의 방 벽면은 각종 기사와 그를 뒷받침하는 논문, 메모와 예상보도들로 빽빽이 뒤덮여 있었다.
기사로 쓸 내용들의 사실관계를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듯.
“다 편집증 때문이겠죠.”
“…!”
“완벽을 추구하는 편집증.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져야 해요. 때문에 남한테 일을 잘 못 맡기죠. 자기 성에 안 차니까요.”
“……”
“그래서 이형준 형사 실종 이후 혹시 모를 경찰수사를 피하기 위해 휴가를 내놓았으면서도,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는 야간에 회사에 나와 업무를 계속 한 거예요. 자기 업무를 남한테 맡길 수 없으니까.”
“!!”
시호를 연행해 지방청으로 오는 길에 최기자에게 전화로 들었다.
휴가를 내놓았던 시호가 그동안 밤에 격일로 계속 출근을 했었다고.
그리고 오늘은 어제에 이어 연달아 야간 출근을 한 것이라고.
“그런 한기자님이 오수에게 무언가를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일을 맡겼다는 거죠.”
시호가 달달달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지독한 편집증을 가진 한기자님이 도대체 무엇을 부탁했을까요? 그것도 장기적출을 일삼는 조선족 조직원에게 말입니다.”
“……”
“아마 그것은 ‘범죄’일 겁니다. 한기자님은 너무나 고귀해서 그런 불순한 짓은 할 수 없는 분이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의 손을 빌린 거예요.”
당황한 지금도 절대 굽히지 않는 어깨, 바짝 든 턱. 건방진 표정과 고깝다는 듯한 잦은 찡그림.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다.
나는 대단하고 당신은 천하다.
‘어딜 감히’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유형.
“과한 자존감과 지독한 편집증. 한기자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두 단어입니다.”
그의 찡그림이 더 잦아졌다.
“처음부터 범죄를 직접 지시하진 않았을 겁니다.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제대로 일처리를 못하자 참다못해 자신이 직접 나선 거겠죠. 한기자님이 조금씩 의혹을 받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아마…”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박지석 씨가 버팔로 관련 추가 폭로를 할 때부터 직접 행동에 나서신 것 같은데요.”
“!!”
“아니면 그 전일 수도 있고요. 경찰청 본청 내 공수훈 차장, 이철성 계장과 친하신 것 같던데. 혹시 저를 이용해 유관우 경기북부청장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던 이철성 계장의 공작도 이미 알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
“그 공작이 실패로 돌아가자 공차장과 이계장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고요.”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어쩌면 그때부터 본인이 직접 현장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의 표정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튼 한기자님은 박지석 살해 사건과 강은영 납치 사건에 직접 관여를 합니다. 여기 CCTV영상 캡처본을 보면.”
내가 왼쪽 위부터 차례대로 검정 SUV와 데쓰벤이 나온 사진을 가리켰다.
“박지석이 납치될 당시 범행 장소가 보이는 곳에 차를 대놓고 범행을 지켜봅니다. 잘 이행되고 있는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 했던 거죠. 이때도 계속 오수의 대포폰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을 겁니다.”
이어서 펜타곤 사진.
“강은영 씨가 납치될 당시에도 이렇게 데쓰벤 맞은편 도로에서 범행을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오수가 아닌 경찰이 튀어나와 데쓰벤 문을 열자 부리나케 차를 몰아 도망가죠.”
“……”
“심지어 박지석 납치 전에는 이렇게.”
다음은 차를 나란히 대놓고 내려 이야기하는 오수와 시호의 모습.
“서로 만나 이야기도 합니다. 아마 범행에 대한 얘기를 했겠죠.”
“……”
“이러한 증거들로 봤을 때 한기자님은 박지석, 강은영 사건을 최소 방조, 이를 넘어 교사를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박지석, 강은영은 모두 버팔로 클럽 관련 인물들. 버팔로 배후 의혹을 받고 있는 한기자님이 이토록 이들의 제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의혹은 진실인 것 같네요.”
시호는 이제 입술까지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오수의 대포폰 문자 사진을 다시 가리켰다.
“이 ‘처리해’라는 말은 박지석이나 강은영을 지목해 한 말이 아닙니다. 이 문자 발송 당시 박지석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강은영이 펜타곤으로 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이었으니까요.”
“……”
“박지석 사건과 강은영 사건 사이, 이 문자가 발송된 지 한 시간 뒤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이어 형준의 사체 사진.
“이형준 형사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입니다.”
점점 세게 떨리는 시호의 입술.
“정황상 한기자님이 오수에게 ‘이형준 형사 제거’를 지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형사도 질서계 근무 시절 버팔로를 집중적으로 파던 직원이었으니까요.”
“……”
“하지만 이형준 형사는 경찰이었습니다. 괜히 제거했다간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인물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자님은 기어이 오수에게 이형사 제거를 지시했습니다. 한기자님은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현직 경찰을 제거하려 했을까요?”
“……”
“그건 이형사가 한기자님을 ‘직접적으로’ 파기 시작한 최초의 경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
나는 가방에서 별도의 사진을 한 장 꺼냈다.
형준이 근무하며 사용하던 메모장.
“이형사의 메모장을 보면 단속한 유흥업소, 그리고 그 사장들의 이름을 적은 빈도 수 만큼 버팔로, 그리고 한시호 기자님의 이름이 메모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그 메모의 끝, 그러니까 이형사가 오수를 만날 즈음이 돼서는 ‘백양’이라는 단어도 자주 눈에 띕니다.”
“!!”
내 말에 시호의 표정이 처음으로 급격히 일그러졌다.
“백양이 뭡니까?”
“……”
“사람 이름입니까? 아니면 어떤 모임을 지칭하는 이름입니까?”
이어 건방지고 심드렁한 자세는 온데간데없이 어깨를 벌벌 떨어댔다.
뭔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다.
가면으로 감출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두려움이.
“그리고 혹시.”
내가 화이트보드와 사진을 모두 내려놓고 물었다.
“오수 가족의 행방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
“중국 흑사회인 뱀파와 연계된 한국 세력에 알고 계십니까? 혹시 한기자님도 그 세력에 속해있는 것 아닙니까?”
시호는 점점 이상행동을 보였다.
꼰 다리를 풀고 스스로 양 어깨를 감싸더니.
“후우우우… 으드드드드…”
엄동설한의 추위에 떨 듯 온몸을 떨어댔다.
“으드드드드…”
입으론 입김을 후후 불어냈고, 나중엔 의자 위에 무릎까지 접어 올려 온몸을 공처럼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떤 뒤엔.
“크흐흐…”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즐거운 웃음이 아니라.
“이히히힉 히힉.”
괴상하고 기이한 웃음.
부정적 느낌을 가득 담아 웃어댔다.
그리고는.
“개울에 작은 피라미 새끼 한 마리를 그냥 살려뒀더니.”
멸시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내게 말했다.
“이젠 바다까지 집어 삼키려 드시네?”
“…?”
“그러다 고래랑 상어한테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수가 있어. 헤엄치지 못할 바다는 쳐다만 봐야지 쳐다만. 안 그래? 헤헤헤.”
그는 말하는 중간에도 불규칙적으로 몸을 튕겨대며 히죽히죽 웃었다.
“바다로 나아간 동료의 죽음에서 깨달아야 할 건, 바다의 암흑에 대한 새로운 단서 따위가 아니야. 나도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그 두려움을 깨달아야지 이 멍청한 짜바리야.”
“……”
“하, 바다를 비유한 논평이나 하나 쓸걸 그랬어.”
이어 목과 팔을 벅벅 긁어댔다.
긁은 곳은 금세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피가 베여 나왔다.
“그 문자 메시지랑 CCTV 영상들이 뭐? 어쨌는데? 그게 내가 범죄를 교사했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딴 건 직접 증거가 안 되잖아!”
“……”
“게다가 문자를 보낸 것, 그리고 오수라는 사람을 만난 것도 다 기억이 안 나. 흑사회? 백양? 난 전혀 모르는 일이야. 내가 이렇게 나오면 넌 어떡할 건데? 흐흐흐.”
물론 지금까지 나온 증거만으론 기소를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좋은 변호사 하나 붙여서 무죄를 입증한 뒤에 부당한 체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거야. 나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나면 명예훼손까지 걸어버릴 거고. 박봉 짜바리 월급 다 털어줄게. 넌 좆됐어 이 새끼야.”
하지만.
“월급이 털릴 일은 없을 겁니다.”
“… 뭐?”
“소송을 걸어도 제가 이길 테니까요.”
“이 미친…”
“게다가 이 사건 수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증거는 수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집된다.
증거 수집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다.
“사건 관련 증거를 꽁꽁 감춰 놓으셔도 제가 다 찾아드리겠습니다. 여태 그래왔고, 이 사건도 반드시 혐의를 밝혀낼 겁니다.”
내가 당당히 말하자.
“후우우…. 으드드드…”
시호가 다시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꽈악-
스윽-
팔을 잡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과한 자존감과 지독한 편집증을 이겨내는 건 정신력이 아니었군요.”
팔에 주사자국이 보였다.
“마약으로 버티고 있었던 거예요. 그 무거운 스트레스를. 그래서 이렇게 몸을 떨고 불안해하는 마약 중독 증세를 보이는 거고요.”
“이이이…. 씨, 씨… 씨이바알…. 으드드…”
“당신이 곱게 풀려날 일은 없을 겁니다. 마약범죄까지 꽁꽁 묶어 처벌을 해드릴게요.”
“으으으….”
내 말에 그가 이를 갈며 몸을 빳빳이 굳히더니.
“너…”
겨우 떠는 몸을 멈추고 나를 노려보며 한 마디씩 천천히 내뱉었다.
“그렇게 깝치다간 제 2의 이형준이 될 거야… 적당히 해 이 병신아…”
“아뇨, 이 사건이 끝나고 나면 제가 제 2의 이형준 형사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당신이 버팔로 배후세력 와해의 첫 단추가 될 겁니다.”
내가 몰랐던 탁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