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내가 몰랐던 탁정태.
“……”
내 말에 잠시 입을 닫고 날 노려보던 시호는.
“히히히…”
다시 몸을 떨며 괴이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상어 이빨이 무섭지 않아? 앙 물어서 널 갈기갈기 찢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헤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유치장 입감했다가 내일 영장실질심사 마치고 다시 조사하도록 하죠.”
*
시호를 유치장에 인계하고 나니 시간은 밤 11시.
우리는 늦은 퇴근을 했다.
“와 난 아직도 한시호 잡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치헌이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나오며 말했다.
“정태 네 말대로 경기북부청 도움 아니었으면 못 잡았을 거야. 넌 어느새 또 그런 어마어마한 인맥을 만들어놨냐.”
어제 삼겹살집에서 내 정신질환 얘기를 터놓으면서 본청 감찰에서 있었던 일과 유관우 경기북부청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나는 유청장을 도와 버팔로 뒤에 숨겨진 여러 장막들을 파헤칠 예정이며,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관우의 도움을 받아 광수대에 온 것이라고는 말도 했다.
“하여튼 정태 네가 황금알이긴 황금알이야. 하도 번쩍번쩍 거리니 여기저기서 너 품으려고 달려들 수밖에.”
내가 번쩍거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항상 조심해.”
치헌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태 너 지금 이정재랑 유관우를 모두 품은 상황이야. 찌들어 있는 기존 세력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큰 카드 두 장을 동시에 쥐고 있는 거라고. 이건 엄청 든든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상황이야. 그만큼 큰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이해되었다.
판이 커질수록 분명 위험부담도 커진다.
“뭐 현재는 네가 말한 그 어둠의 세력이 벌려놓은 사건이 많아서 너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진 않을 거야.”
며칠 전 경기북부청 정환태 경감도 같은 말을 했다.
여기서 더 일을 벌리면 오히려 너무 집중을 받아 그쪽 세력에 손해가 되는 일이니 그렇게까지 하진 않을 거라고.
“하지만 네가 지금 한시호라는 거물을 잡아놓은 만큼 공작이 조금씩 들어오긴 할 거야. 잘 대비해야 해. 물론 우리가 도와줄 거고.”
옆에서 경수가 ‘그럼 그럼.’하면서 씨익 웃었다.
“네, 잘 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건물을 나왔는데.
“어? 제수 씨?”
“안녕하세요.”
뜬금없이 정문에 은빈이 서 있었다.
치헌과 경수가 반갑게 인사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팀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태 보러 온 거예요?”
“네. 아직 오늘 지나려면 아직 한 시간 남았으니까…”
은빈이 고개를 쭉 빼더니 뒤에 있는 날 보고 말했다.
“정태 씨 생일 같이 보내려고요.”
*
잠시 후.
“바로 숙소로 와서 기분 상한 거 아니죠?”
“전혀요.”
치헌과 경수를 보내고 우리는 서울 시내의 한 호텔 방으로 들어왔다.
“원래 데이트 코스를 다 짜놨었는데 정태 씨가 갑자기 가버리는 바람에 하나도 못했어요.”
그녀의 표정에 잠깐 아쉬움이 스쳤다.
“밥 먹었어요?”
“못 먹었습니다.”
“그럴 줄 알고.”
하지만 아쉬운 표정도 잠시.
그녀가 생긋 웃으며 보온용기를 꺼냈다.
용기를 열어 보니.
“짜잔- 아까 스테이크 하나도 못 먹고 갔잖아요. 포장해서 집에 가서 용기에 담아 왔어요. 잘 했죠?”
“잘했습니다.”
“그리고 고기엔 술이 빠지면 섭섭하죠.”
그녀가 요 앞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꺼냈다.
“고기 저도 같이 먹어도 되죠?”
“안 됩니다. 둘이 먹긴 적습니다.”
“… 저도 출출한데.”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같이 먹죠. 나눠 먹고 서로 조금씩 배를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헷, 좋아요. 어서 먹어요.”
그녀가 입에 고기를 하나 넣고는 말했다.
“그런데 오늘 급한 일 있었어요? 아까 엄청 빨리 뛰어나갔잖아요.”
“네, 급한 일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었는데요?”
“검사 기소 전이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에이. 뉴스에선 기소 전에 다 알려주던데. 나한테만 알려주면 안 돼요? 나 절대 말 안 할게요.”
“그건 언론사에서 법을 위반해 함부로 공표한 것이지 잘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처럼 법을 위반할 수 없습니다.”
“……”
“그보다.”
나는 아까 저녁에 은빈을 만났을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다.
“나중에 보여주겠다던 제 선물 보여주시죠.”
“아, 선물요? 네 줄게요. 일단 그 전에.”
그녀가 가방에서 조그만 스티로폼 상자를 꺼냈다.
그 상자를 여니.
“짜잔-”
“…!”
동그란 케이크가 나왔다.
그냥 케이크가 아니라.
“이거 저입니까?”
“맞아요. 완전 똑같죠?”
내 모습이 그려진 케이크.
신기했다.
어떻게 저 위에 내 모습이 그려져 있는 걸까?
“이건 어디 브랜드입니까?”
“브랜드가 아니라 수제 케익이에요. 제가 사진 전송해서 요청하면 똑같이 그려줘요. 폰에 있는 사진 중에 제일 잘 나온 걸로 보내서 만들었어요.”
“정말 똑같습니다. 신기합니다.”
“어때요, 맘에 들어요?”
“네. 맘에 듭니다.”
분명 딱히 기뻐할 일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다.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해준 은빈이 더 예뻐 보였다.
그녀는 케익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뒤 총총 뛰어가 방안의 조명을 껐다.
그리고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축하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정태 씨-”
사랑이란 말에 순간 마음이 콩닥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후우우— 정태 씨 소원 빌고 초 불어요!”
“소원이요?”
“네, 원래 초 불기 전에 소원 비는 거예요. 얼른!”
그녀의 재촉에 나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초를 후 불어 껐다.
은빈은 박수를 친 뒤 다시 방에 불을 켰다.
“후, 그리고 선물은…”
그녀는 손에 든 선물을 곧장 주지 않고 우물쭈물 망설였다.
뭔가 부끄럽다는 듯.
선물을 주는데 부끄러울 이유가 있을까?
“생각 많이 하고 골랐는데 정태 씨가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한 번 열어봐요.”
그녀가 수줍게 종이가방을 내게 건넸다.
내용물을 꺼내 포장을 뜯어보니.
“…!”
그녀가 준 선물은.
“속옷… 입니까?”
“네. 어때요?”
쫙 달라붙어 몸을 그대로 감싸는 드로즈 형태의 속옷이었다.
게다가 옆면은 망사 재질로 되어 있어 속살이 비쳤다.
“저는 널널한 트렁크 속옷만 입는데요.”
“그런 거 같아서 이걸 사봤어요. 이게 더 섹시하니까.”
섹시하다라.
“그리고 그거…”
이어 은빈이 자기 가방에서도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커플 속옷이에요!”
“…!”
여성 브라와 팬티를 꺼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눈을 가렸다.
“푸핫. 왜 그래요? 연인 사이에?”
“너무 야합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속옷의 특징을 다 캐치했다.
그녀의 것은 내가 들고 있는 드로즈보다 훨씬 더 망사 부분이 많았다.
마치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드러내기 위해 입는 옷처럼.
“아니에요. 입으면 예쁠 거예요. 나 먼저 씻고 입고 나올게요.”
“……”
그렇게 말하고 은빈은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녀가 씻는 동안 드로즈 안으로 손을 넣어 망사 부분을 만져봤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 지문까지 훤히 다 보였다.
판례의 음란행위에 해당할 정도로 야한 이 속옷을 어떻게 입으란 말인가.
그때 갑자기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도저히 입에 넣을 수 없을 것 같은 쌈을 들고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며 협박하던 치헌의 모습.
이 속옷도 엄연히 은빈이 나를 위해 준비한 소중한 선물이자 성의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태 씨, 씻어요.”
어느새 은빈이 다 씻고 가운을 입은 채 나왔고, 나도 화장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다 씻은 후 선물 받은 드로즈를 입어보니.
‘음…’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몸을 감싸는 느낌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무엇보다.
‘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뭔가 색다른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몰랐던 탁정태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
내 엉덩이가 이렇게 업 되어 있었다니.
나는 뭔가 들뜬 마음으로 가운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 나란히 앉아서 같이 남은 맥주 다 마셔요.”
은빈은 침대 이불 안에 쏙 들어가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나도 내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았다.
“아까는 사실 좀 많이 당황했었어요.”
그녀가 조금 발개진 얼굴을 하고 입을 뗐다.
“날 두고 정태 씨가 갑자기 나가버리니까 뭐지? 이런 느낌. 좀 서운하기도 하더라고요. 정태 씨 생일이라고 여기 저기 다닐 곳 다 예약해놨었는데.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까.”
“……”
“나는 뒷전이고 일이 먼저인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어요. 나는 정태 씨한테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요.”
그런 게 아니다.
환태의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가게를 뛰쳐나가 ZBC 방송국으로 갔다.
일은 중요하고 은빈은 중요하지 않아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다.
“하지만 금세 다시 알아차렸어요.”
“…?”
“정태 씨는 그저 그 순간에 중요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걸.”
“……”
“전화를 받은 그 순간이 아니면 그 일을 성사시킬 수가 없는 거라서, 그래서 간 거잖아요.”
설명해주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꿰고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풀렸어요. 오늘 꼭 정태 씨 다시 보고 싶어서 직장 앞에 가서 기다린 거고요.”
“……”
“나 정태 씨한테 소중한 사람 맞죠?”
“맞습니다.”
“얼만큼요?”
“정말 소중합니다. 정말로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은빈의 눈을 보고 있으니 강릉에서 봤던 영화 이프온리가 생각났다.
연인을 단 하루밖에 보지 못하는 남주인공. 온 마음을 다해 연인과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그의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 애달픈 마음만큼 나도 은빈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정태 씨가 이프온리를 볼 때 그랬잖아요.”
은빈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 순간에 가장 즐거운 일을 할 거라고. 강릉에서 저한테 온전히 집중했던 것처럼, 아까 정태 씨는 수사에 대한 순수한 흥미와 즐거움에 이끌렸던 거예요. 제한된 시간과 장소, 범인 검거가 주는 짜릿함 같은 거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뛰쳐나가버린 거예요. 그게 그 순간 가장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
“하지만 지금은 나한테 집중해줄 거죠?”
“물론입니다.”
그녀가 내 가운 매듭을 풀었다.
“선물 마음에 들어요?”
“무척 마음에 듭니다.”
“잘 어울리네요. 섹시해요.”
나도 그녀의 가운을 벗겼다.
“어때요? 너무 야해요?”
“아뇨.”
아까 봤을 땐 분명 너무 야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일까.
“예쁩니다. 정말 예쁩니다.”
“헷…”
하나도 야하지 않았다.
예뻤다.
예쁨을 넘어 아름다웠다.
어떻게 그녀는 이 야한 속옷을 이렇게 아름답게 소화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 눈에 뭐가 씌인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정말 정태 씨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꽉 채웠네요. 수사랑 맛있는 음식, 나, 그리고 나랑 함께 하는 이 밤.”
정말 오늘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찼다.
그 하루 중에서도 지금이 가장 흥분되고 즐거웠다.
“오늘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저도 정말 좋습니다.”
“생일 축하해요 정태 씨. 진심으로.”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쪽-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강릉에서보다 더 뜨거운 춤의 향연으로 빠져들었다.
#
그 시각 서울 시내 어딘가에 위치한 목욕탕.
“어- 좋다.”
중년 남자 몇 명이 온탕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마감시간이 훨씬 넘은 시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탕 물은 충분히 데워져 있다.
자정이 넘으면 평범했던 목욕탕이 특별한 장소가 된다.
지금 이곳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온탕 옆으로 길게 테이블이 늘어서 있다.
그 위엔 갖가지 음식들과 비싼 술.
주사기와 정체불명의 액체.
확실히 대중 사우나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한시호는 안 왔어?”
남자 중 하나가 탕 밖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체포됐대요.”
여자다.
남탕 안의 여자.
그녀는 남자들과 달리 옷을 입고 있었다.
온몸에 명품을 휘감은 그녀.
저 옷과 악세사리들 값을 합치면 수억에 달할 것이다.
“뭐 체포!?”
“뉴스에 많이 나온 형사 있잖아요. 탁정태. 그 사람한테 체포당했대요.”
“언제?”
“아까 저녁에요. 나 기사 낼 게 좀 있어서 아까 ZBC 찾아갔다가 큰일 날 뻔 했다니까. 입구에 탁정태 그 사람 있길래 얼른 돌아서서 와버렸죠.”
“그 형사 놈이랑 마주쳤다는 얘기야?”
“마주칠 뻔했죠. 날 보진 못했을 거예요.”
“그럼 바로 한시호한테 연락해주지 그랬어.”
“했어요. 근데 그 사람 폰이 한두 개여야지. 나한테 알려준 연락처로는 안 받더라고요.”
“근데 쫄기는 왜 쫄아? 형사가 홍마담 얼굴 아는 것도 아닌데.”
“꺼리를 전혀 안 주는 거죠. 괜히 마주쳐서 얼굴 알아놓으면 좋을 거 없으니까.”
그렇게 대답하며 여자는 새침한 표정으로 화려하게 칠해진 손톱을 이리저리 살폈다.
“하…”
남자가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한시호 잡혔다니까 뭔가 찜찜한데.”
“찜찜할 게 뭐 있어요. 한시호가 말할 리도 없고, 말한다 해도 증거가 없는데.”
“음… 그렇긴 하지만…”
“의원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늘 하시던 대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로 오더니.
“돈 많-이 버시고, 여기서 재밌게 즐기시면 돼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여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놀이터니까.”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끼익-
목욕탕 입구 문이 열리더니.
또각- 또각- 또각-
늘씬한 여성들이 줄지어 걸어 들어왔다.
북극곰과 청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