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북극곰과 청새치.
다음 날 아침.
“하, 완전히 난리가 났구만.”
사무실에 모여 앉은 우리 팀은 하나 같이 티비 뉴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울청장이 어째어째 막고 있던 기사가 한 번에 터져나와버렸네.”
어느 채널을 돌려도 같은 뉴스가 나왔다.
[“서울청 소속 한 경찰관이 하남의 야산 저수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저수지 북편 도로에서 피해자가 차에 치인 뒤 저수지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피해자의 차량에선 제 3자의 DNA가 검출되어 또 다른 인물이 피해자 사망에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시사되었습니다. 자살이 아닌 타살임이 확실시 되며 경찰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오수의 DNA 얘기까지.
벌써 수사내용의 많은 부분이 유출된 것 같았다.
[한 방송국 유명 언론인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죄명은 타인을 감금하도록 지시하는 감금교사로 밝혀졌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아직 확인 중에 있습니다. 잠시 후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굉장히 중대한 사안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호의 검거 소식도 벌써 퍼졌다.
도대체 누가 이런 얘기들을 외부로 발설하는 걸까?
내가 머릿속으로 시호의 검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추려보고 있는데.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치헌의 책상 전화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고 몇 차례 대답을 하고 끊은 뒤.
“정태, 경수.”
우리를 보며 말했다.
“대장이 너희랑 같이 자기 방으로 오라는데?”
*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광수대장 치률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언성을 높였다.
“지난번엔 보고도 없이 뉴스 인터뷰를 해서 온 서울청을 시끄럽게 하더니. 이번엔 타기관 건물에 함부로 쳐들어 가!?”
“……”
“그거 건조물 침입이야 건조물 침입! 형사처벌 사안이라고!”
“무단으로 침입한 게 아닙니다. 내부 직원 안내를 받아 정문을 통해 들어간…”
“탁경위, 지금 나랑 말장난 하나!? 조직 상부 모르게 타기관에 큰 피해를 줬으면 결과적으로 침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그것도 일반 회사도 아니고 방송국을…”
목소리를 점점 높이던 그가 한숨을 푹 내쉰 뒤 겨우 진정하고는 치헌을 돌아봤다.
“장팀장. 어떻게 나한테 보고 한 마디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어?”
“이미 송치된 박지석 사건과 강은영 사건, 그리고 이번 오수 사건과 이형준 형사 사망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수사였습니다. 그래서 따로 보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1팀에서 체포한 사람이 누군 줄 아나? 한시호야 한시호. ZBC 안에서 기자들의 수장으로 불리는 한시호. 그런 거물을 체포할 계획이 있었으면 상부에 보고부터 했어야지! 경찰생활 하루 이틀 하나!?”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치헌.
왜 그는 가만히 있는 걸까.
“보고 드렸으면.”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뭐?”
“보고했다면 체포하는 시간만 늦춰졌을 겁니다. 정보가 새어나가 한시호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을 수도 있고요. 저희가 이미 배당 및 인지해서 수사하고 있는 사안을 따로 보고 드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체포를 할 만한 사안인지 검토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그건 체포자와 사건 담당 팀이 검토하는 겁니다. 여태 했던 체포들에 대해선 별다른 보고가 없었어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왜 유독 이 사건에 대해서만…”
“아, 거참!”
치률이 다시 큰 소리를 냈다.
“아니 탁경위! 딱 깨놓고 말해서 체포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한시호를 무슨 조선족 잡듯 막무가내로 체포하면 어떡하잔 말이야!?”
“……”
“그럼 앞으로 우리 서울청장님은 방송국장들 무슨 낯으로 보란 말이야? 지금 자네의 체포 하나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모르고 이러는 건가!?”
그의 말을 듣고 그 말이 떠올랐다.
“방금 대장님이 하신 말씀.”
남들이 다 하지 말라고 했던 그 말.
나도 하고 싶지 않았던 그 말.
“전부 다 틀렸습니다.”
“… 뭐?”
“하나도 옳은 말이 없어요.”
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체포는 혐의 있는 자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등을 고려하여 체포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것이지 사람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
“체포 요건에 맞아 들어가면 상대가 기자가 됐건 조선족이 됐건 체포를 해야죠. 그리고 체포 요건에 청장님이 방송국장님을 무슨 낯으로 볼지 같은 고려사항 따위는 없습니다. 체포하는 데 그런 사항을 왜 고려해야 합니까?”
“크흠…”
“틀린 말씀을 계속 하시겠다면 그걸 듣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소중한 업무 시간을 이런 데 뺐길 수는 없으니까요.”
치률은 내 말이 언짢다는 듯 인상을 잔뜩 구겼다.
“곧 한시호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끝나고 한시호는 구속될 겁니다. 그럼 저희는 곧장 수사를 재개해야 해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내려가 봐도 되겠습니까?”
“……”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내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기각될 걸세.”
치률이 진중한 어조로 입을 뗐다.
“… 네?”
“한시호 구속영장, 기각 될 거라고.”
“그럴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밝혀진 증거들만으로도 충분히 구속수사 할 만한 사유가 되기 때문에…”
“규정이나 사유 이런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그냥 기각이 될 거라고 기각이!”
“…?”
“이미 그렇게 정해졌을 거야.”
실질심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치률이 어떻게 결과를 미리 안단 말인가.
이미 그렇게 정해졌을 거라는 말은 또 뭔가.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경찰이 범인 검거 잘 하면 좋은 일인데 내가 왜 뭐라고 하겠나?”
“……”
“법에 들어맞는다고 해서 다 옳은 일이 아니네. 세상엔 법 말고도 맞춰야 할 톱니바퀴들이 많아. 개중엔 법보다 큰 톱니도 있고.”
법보다 큰 톱니.
그게 무슨 말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툭-
치률이 커다란 서류뭉치를 가지고 와 탁자에 툭 놓았다.
“기각 후엔 사건을 6팀으로 재배당할 거야.”
“…!?”
“이건 대장으로서 정당히 행사하는 권한이니까 토 달지 말고 들어. 그 사건은 6팀에 넘기고 1팀은 새 사건을 맡아. 이 중에 한 사건을 골라 집중적으로 파보는 걸로 해.”
그가 탁자 위 서류를 가리켰다.
서류 전면엔 [과거사 진상규명 – 형사사건 목록] 이라고 적혀 있었다.
“날 원망해도 어쩔 수 없네.”
치률이 조금은 누그러든 얼굴로 덧붙였다.
“위에서 시킨 일이야. 내가 항명해보고 자시고 할 수가 없는 일이란 거지.”
*
= “기각이 될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이정재 검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도 그는 치헌이 아닌 나에게 연락을 먼저 했다.
= “주변에서 영장 청구를 만류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한시호 쪽에도 세력이 개입하긴 한 모양입니다.”
정재의 말에 따르면 다른 검사들이 한시호에 대한 영장청구를 꺼려 자기가 수월하게 사건을 배당받을 수 있었으며, 배당을 받고 난 뒤에도 주변에서 계속 영장청구를 만류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청구를 했다고.
그도 아직 시호 쪽 세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듯했다.
= “다른 방법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영장청구는 그때 다시 해도 되니까요.”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들어간 뒤.
띠딕-
치헌은 곧장 티비 뉴스를 틀었고, 경수는 기섭과 현민에게 대장 방에서 들었던 말을 설명했다.
[오전에 있었던 모 방송국 기자 영장실질심사 결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습니다. 수사할 필요성은 있으나 주거지가 명백히 확인되고 성실한 출석 의사를 밝히는 등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기각 이유입니다.]
시호의 영장실질심사 관련 보도가 흘러나왔다.
판사가 말한 저 내용은 모두 말장난이다.
주거가 확인되고 출석의사를 밝힌다고 해서 어떻게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것인가.
앞으로 시호가 갖고 있는 수많은 증거자료들이 삭제될 것이다.
나는 귀로는 뉴스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치률에게 받은 사건목록을 살펴봤다.
“헐,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니…”
경수의 설명을 다 들은 기섭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 그냥 완전히 형사사건에서 손 놓으라는 거잖아요. 이건 지금 발생하는 사건들에서 형사를 가장 멀리 떨어뜨리는 방법인데…”
그의 말이 맞았다.
사건들을 살펴보니 최소 10년 전에 발생한 사건. 길게는 30년도 더 전의 사건도 있었다.
현재에서 물러나 과거에 집중하라는 지시.
우리 팀은 강제로 한시호 사건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것이다.
“저희 팀이 이렇게 활약을 해대는데 북돋아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사기를 꺾으려 하다니…”
사실상 사건을 강제로 떼어내 재배당한다는 것은 형사에게 징계에 가까운 일이다.
그동안의 실적이 다른 팀으로 넘어가버림은 물론 그간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니까.
아마 일반 형사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면 의욕을 잃고 며칠간 일을 못할 것이다.
“에휴,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며칠 푹 쉬시죠. 어차피 과거사 그거 수사해봐야 아무 의미 없…”
“아뇨.”
하지만 그건 ‘일반 형사들’일 때 얘기다.
“모든 수사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한시호 사건이 재배당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혐의나 증거를 찾으면 저희가 다시 수사를 할 수 있죠.”
나는 되레 의욕이 더 불타올랐다.
감추고 숨기려할수록 그것을 더더욱 파보고 싶었다.
“형사는 배당뿐만 아니라 인지사건도 합니다. 조직구조상 대장님이 배당해주시는 사건을 맡을 수밖에 없지만, 저희가 수사하길 원하는 사건은 직접 인지를 하면 됩니다. 이번 한시호 건도 배당사건 수사 중 인지한 건이었죠.”
나는 쉬려고 광수대를 온 게 아니다.
원하는 수사, 온몸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짜릿한 수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수사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이리저리 도망치고 있다.
“두 번이나 인지한다면 대장님도 다시 재배당을 시키긴 어렵겠죠.”
시호가 얘기했던 바다.
시호는 그 바다로 다시 달아났다.
상어와 고래 같은 거대 포식자들이 득실거리는 곳.
나는 작은 피라미에 불과하지만.
“한시호, 제가 반드시 검거할 겁니다. 샅샅이 파헤쳐서요.”
바다로 나아가는 게 전혀 두렵지 않다.
물론 두렵지 않다 하더라도 혼자 가는 것보단.
“그래. 정태 말대로 형사가 사건 하나 맡았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지.”
동료와 함께 가는 게 낫다.
치헌이 목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며 계속 말했다.
“기섭이 현민이 너희는 기존 사건들 마무리하는 데 힘써. 내가 정태 과거사 배당 건이랑 같이 한시호 인지하는데 집중할 테니까.”
그를 보니 거대한 북극곰이 생각났다.
바다로 갈 때 같이 가면 든든할 것 같았다.
저 정도 팔 두께면 웬만큼 큰 상어도 한방에 떨어져 나갈 것이다.
“뭐 한시호 사건 수사만 놓고 보면, 재배당 받은 지금이 우리한테 위기이긴 하지만.”
옆에 있던 경수도 입을 열었다.
“위기가 기회가 될 지도 모르잖아요? 전화위복 알죠? 저도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정태랑 팀장님한테 힘을 보탤게요. 원래 우리는 한 조였으니까.”
경수는 청새치.
길고 뾰족한 이 물고기도 같이 가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요리조리 공격을 피하며 급소를 콕콕 찔러대는 경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북극곰과 청새치.
이들과 함께라면 바다를 집어삼킬 꿈을 꿔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과거사 사건 목록을 살펴보고 있던 중.
‘…!’
의미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우리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첫 관문, 한시호에 대한 새로운 단서는 멀리 있지 않았다.
한시호에게서 우리를 떼어놓으려 내친 바로 그곳에.
“배당 받을 과거사 사건은 이걸로 하죠.”
우리가 찾던 단서가 있었다.
얼음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