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얼음호수.
“사건 정했어? 이 많은 걸 벌써 다 훑어본 거야?”
경수가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사실 목록을 다 훑어보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우린 이 사건을 맡아야만 한다.
“무슨 사건인데?”
치헌이 옆으로 와서 서류에 적힌 사건명을 보더니.
“배명호 사건!?”
인상을 찌푸리며 날 쳐다봤다.
“야 이건 안 돼.”
“…?”
“넌 하필 제일 어려운 사건을 맡자고 하냐. 이거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미제사건이잖아.”
‘배명호’소리를 듣고는 경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헉. 이거 형사 수백 명이 십년 넘게 매달려서도 해결 못했던 연쇄살인사건이야. 겨우 배명호 하나 잡고 나머지는 미제편철 되어버린 사건이라고.”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된다.
일명 ‘배명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 노원구 상광동 일대에서 8차례에 걸쳐 일어난 강간 및 연쇄살인사건으로, 5차 사건을 제외하고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채로 공소시효가 만료된 영구미제사건이다.
당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투입된 수사 인력이 천명 이상, 조사대상이 2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결국 5차사건 범인인 배명호를 제외한 다른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런 사건을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조사하자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경수가 계속 말했다.
“이 사건 맡으면 우리 완전히 말리는 거야. 자칫 아무 진척도 없이 수개월을 그냥 날려버리는 수도 있어. 그럼 그게 바로 대장이 말한 그 ‘윗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이라고.”
“……”
“웬만하면 다른 사건 맡자. 그래야 시간도 벌고 한시호 사건 따로 인지도 할 수 있…”
“아뇨.”
내가 그의 말을 잘랐다.
“이 사건이어야만 합니다.”
“……”
경수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 왜 꼭 그 사건이어야만 하는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여길 보세요.”
“…?”
내가 배명호 사건 서류 중 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자 치헌과 경수가 내용을 살피더니.
“…!”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치헌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 오케이. 이걸로 하자.”
*
잠시 후, 관용차 안.
“어디라고요?”
운전대를 잡은 경수가 네비게이션에 손을 가져가며 치헌에게 물었다.
“경북북부교도소. 옛날에 청송교도소로 불리던 곳이야.”
경북북부교도소.
1980년대 삼청교육대 미순화자들을 수감하기 위해 만든 청송 제 1, 2, 3 보호감호소로 시작해 현재 교도소로 변경된 곳.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악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이름을 떨쳤다.
“와 엄청 머네요.”
“세 시간 넘게 걸릴 거다. 중간에 피곤하면 운전 교대하면서 가고.”
“배명호, 역시 최악의 범죄자답게 청송으로 갔군요.”
“그래. 당시 과학수사기법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 기술 같았으면 5차 범행까지는 전부 다 범인 배명호로 밝혀졌을 거야. 사형 받아야 될 새끼가 30년형 받고 곧 출소한다니.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울어.”
8차례에 걸친 강간 및 살인사건.
당시 이 사건은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4차 범행까지는 범인의 행방을 전혀 모르다가, 5차 범행 때 현장에서 발견한 범인의 범행 도구인 칼과 망치, 혈액과 머리카락 등을 근거로 피의자 배명호를 검거했다.
5차 범행까지 범행 장소가 근접하고 수법이 일치했던 만큼 경찰은 배명호에게 1~4차 범행에 대한 자백도 끌어내고자 했으나 배명호는 끝끝내 부인하였고, 수사 한 달 만에 5차 범행만 자기가 한 것이라며 혐의를 인정했다.
1~4차 범행은 다른 증거가 없어 배명호에게 혐의를 씌우지 못했고, 배명호가 검거된 이후 6, 7, 8차 모방 범행이 일어나기까지 했으나, 사람들은 모두 이 여덟 차례 강간 및 살인 사건을 배명호 연쇄살인사건이라 뭉뚱그려 불렀다.
그만큼 이 당시 ‘배명호 검거’ 임팩트가 컸으며, 사람들 모두 1~4차 사건도 배명호가 저지른 범행이라 확신했다.
“윗대가리들은 뭐 하러 이런 놈 인권 위해준답시고 과거사를 다시 조사하라는 거야? 내가 피해자 유족이었으면 피눈물이 날 일이야 이거.”
“요즘 하도 인권인권 해대니 부서까지 따로 만들어서 쇼를 하는 거죠. 하, 이 범죄자 새끼들은 사람이 아닌데 왜 인권을 챙겨줘야 하는지…”
치률이 우리에게 준 [과거사 진상규명 – 형사사건 목록]에는 미제사건, 혹은 피고인이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재심까지 신청한 사건 등의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배명호는 최초 혐의를 부인하다 5차 범행에 대한 혐의를 인정했으나, 1심 재판 후 진술을 번복. 항소, 상고를 거쳐 재심까지 신청을 했다.
하지만 1심 때 내려진 30년 징역형의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다.
“근데 뭐 꼭 배명호 피해복원을 목표로 수사할 필요는 없어. 역으로 이전 사건들에서 배명호의 흔적을 찾아내 1~4차 사건까지 혐의를 도로 씌워버릴 수도 있다고.”
“오, 그런 식으로 수사해도 되겠네요.”
“그래. 혹시 아냐. 당시 형사들이 못한 일을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
그렇게 말하며 치헌이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그에 별 반응 없이 계속 서류를 훑어봤다.
그런 나를 보고 치헌이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아까부터.”
“병력이 있어요.”
“병력?”
“배명호는 검거당시부터 말이 어눌하고 논리적인 대화를 잘 하지 못했는데, 재판 이후 증상이 더 심해져 92년에는 공주에 있는 정신치료감호소로 이감되기도 했어요.”
“사람 그만큼 찔러 죽인 놈이 정상 정신일리 없지.”
“지금도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면 진술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어요.”
“제정신인들 제대로 진술하겠냐.”
“그래도 제정신으로 진술하는 게 낫습니다. 최대한 오염되지 않은 진술을 들어야만 하니까요.”
“……”
내 단호한 대답에.
“그렇긴 하지. 그놈 진술 때문에 우리가 이 먼 길을 가는 거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돌아봤다.
우리가 배명호에게 들을 진술은 비단 과거 살인사건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한시호에 대한 새로운 단서.
그에 대해서도 배명호에게 들을 이야기가 있다.
내가 지금 훑어보고 있는 건 배명호 사건에 대한 요약자료다.
기섭과 현민은 맡고 있는 사건 마무리가 끝나는 대로 배명호 사건에 대한 모든 수사 자료를 받으러 본청에 가주기로 했다.
우리가 들을 배명호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 자료를 분석하면 과거 살인사건에 대한 실상은 물론 한시호에 대한 베일까지 벗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 한 사건을 맡아보기도 하고. 참 정태 만난 이후로 수사가 어디로 튈지 예상이 안 된다 예상이.”
즐거움은 예상치 못한 데서 온다.
그렇게 우리는 즐거운 수사를 위해.
부아앙-
한참을 차를 달렸다.
*
3시간 30분 뒤, 경북북부 제2교도소.
“안녕하십니까.”
“아 예. 안녕하십니꺼. 먼 길 오느라 욕봤심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주차장에서 미리 연락해놓았던 교도관을 만났다.
머리가 희끗희끗 센 중년 남자. 명찰을 보니 이름은 오기동.
이곳에 꽤나 오래 근무를 한 사람 같았다.
“티비에서 보던 분들을 실제로 뵈니까 신기하네예.”
“아닙니다. 저희도 그냥 일반 직원들이랑 다를 바 없는 형산데요 뭘. 여기 신분증요.”
기동이 우리 신분증을 대충 확인한 후 다시 돌려주고는 앞장 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서글서글 웃으며 치헌에게 말을 걸었다.
“배명호 야를 이제와가 만다꼬 수사를 한다꼬 이까지 왔십니꺼?”
“저희한테 사건 배당이 됐거든요.”
“배당이예? 20년이 지난 이 사건을 갑자기예?”
“그럴 일이 좀 있었습니다.”
기동이 머리를 긁적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와보이 완저히 산골짜기지예? 그래가 여 교도소는 거진 다 우리 청송이나 근처 경상도 사람들이 근무합니더. 타지서 교도관 시험 합격해가 온 아들은 여 근처에 집 얻어가 그래 출퇴근 하고예.”
실제 이 교도소는 외부와 통행이 매우 어려운 산골짜기에 위치해있었다.
주변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굳이 교도소 담벼락이 아니더라도 지형 자체에서 교도소 느낌이 났다.
오직 교도소를 짓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 같은 느낌.
“우리 교도소가 하도 개 쓰레기 쉐끼들 오는 걸로 유명해가 주변에 발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십니더. 찾는 사람도 없고예.”
“……”
“그래가 2010년도 넘어가면서 교도소 이름을 경북북부교도소로 안 바꿨습니꺼. 하도 청송교도소 청송교도소 캐사이 사람들이 청송에 안 좋은 감정 생긴다꼬 청송군민들이 항의를 했거든예. 그래가 요새는 그래도 쪼매 나아졌…”
“저기.”
쓸데없는 얘기는 이만하면 됐다.
“배명호 씨 요즘 상태는 어떻습니까? 과거 정신병력이 있어 공주 치료감호소에도 갔다 온 경력이 있던데요.”
“……”
내가 갑자기 말을 잘라 놀랐는지 기동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하하… 탁경위님은 티비 보던 거하고 이미지가 똑같으시네예.”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명호 야는 맨 처음 교도소 들어올 때부터 좀 이상했십니더. 정신이 오락가락했거든예.”
“오락가락 한다고요?”
“예. 복역 초기에는 정신은 두 개인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더.”
정신이 두 개라.
“이중인격처럼요?”
“예예, 이중인격. 완전히 이중인격이었습니더. 처음 한 달은 1차에서 5차 범행까지 자기가 사람을 다 죽인 게 맞다고 막 웃으면서 소리 지르고 카디만, 그 다음 한 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삭 누그러져가 자기는 잘못 없다고 억울하다고 훌쩍훌쩍 울고 막 이지랄 했습니더. 그카다가 공주 가가 몇 년 치료받고 다시 왔지예.”
“치료받고 와서는 상태가 어땠습니까?”
“말을 잘 안 합니더.”
“… 네?”
“입을 꾹 닫고 말을 잘 안 합니더. 가끔 짧은 말만 툭툭 던질 뿐이고 대화나 장난 같은 건 일체 안 합니더. 마음에 다른 병이 생깄는지 주디를 잘 안 열더라고예.”
“……”
“일단 직접 만나가 얘기 한 번 해보시지예.”
우리는 어느새 면회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
청색 수형복을 입은 남자가 우리를 쳐다봤다.
사진보다 많이 늙긴 했지만, 서류에서 봤던 배명호가 맞았다.
작은 체구.
그을린 피부에 쭉 찢어진 작은 눈. 작은 코.
돌출된 입과 작고 동그란 귀.
처음 본 그의 외형은 ‘쥐’같았다.
쥐가 가만히 우리를 쳐다봤다.
치헌이 그의 앞에 마주 앉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배명호 씨. 우리는 서울청 광수대에서 나온 경찰들입니다.”
“……”
“재판 받으신 사건 관련해서 뭐 좀 물어보려고 왔는데 진술 가능하시겠어요?”
“……”
그가 대답을 않고 가만히 있자 경수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 멀리서 한참 운전해서 왔는데 얘기 잠깐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
“어려운 질문 안 할게요. 길게 말하기 싫으시면 예, 아니오로 말하셔도 괜찮아요. 질문해도 될까요?”
“……”
그는 일체의 표정변화도 없이 가만히 우리를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꽝꽝 얼은 얼음 같았다.
겨울 밖에 없는 나라의 호수.
저 깊은 곳까지 다 얼어버려 절대 녹지 않는 얼음호수처럼 굳어 있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자.
“얘들아 잠깐만.”
치헌이 우리를 잠시 뒤로 불러 모아 조용히 얘기했다.
“내가 아까 으쌰으쌰 하자는 의미에서 1~4차 사건들까지 혐의를 밝혀내니 뭐니 했지만 사실 그러기는 굉장히 어려워. 벌써 20년이 지난 사건인데 무슨 단서와 증거를 찾아서 혐의를 입증하겠어.”
“……”
“그러니 저놈 진술 안 하려고 하면 괜히 옛날 사건 캐묻지 말고, 아까 정태가 말했던 한시호 추가 단서나 어떻게 잘 확보해서 마무리하자. 어차피 그게 우리 주된 목적이니까.”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다시 배명호 앞으로 갔다.
“자, 배명호 씨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무슨 사건을 캐묻자고 온 게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러 온 겁니다.”
“…?”
내가 치헌의 말을 가로채자 그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경수도 같은 표정.
나는 그에 아랑곳 않고 계속 말했다.
“여태 경찰과 언론, 심지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배명호 씨를 배명호 살인사건 및 1~4차 강간,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엄청난 비난을 했을 겁니다. 그 엄청난 스트레스에 안 그래도 온전치 않았던 명호 씨 정신에 더 이상이 생긴 거고요.”
사건을 맡은 이상 나는 이것을 아무렇게 넘길 생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수사를 할 것이다.
그 사건 대상이 내가 찾고자하는 실체적진실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차에서 계속 수사서류를 반복해서 훑어봤던 것.
그것은 내 안에서 충돌하는 생각들을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배명호 사건, 분명 엄청난 수의 경찰이 동원되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수사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전국민이 틀렸고 배명호 씨가 옳았다는 것을요.”
“…?”
“5차 살인사건. 배명호 씨가 한 거 아니잖아요.”
“…!!”
그 수사는 잘못되었다.
수차례 다시 봤지만 결론은 같았다.
경찰이 틀렸고 배명호가 맞았다.
“그리고 사건 전 남부주류라는 곳에서 일하면서 ‘백양’에 술을 배달했다고 진술하셨던데.”
“……”
“제대로 수사해드릴 테니 사건의 진실을 다 말해주십시오.”
내 의지를 담은 질문에.
“어쩌다 5차 사건의 누명을 쓰게 된 겁니까? 그리고 배명호 씨가 술을 배달한 ‘백양’이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
얼음호수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방법이 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