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방법이 다 있습니다.
“사…”
내 질문에 명호의 눈 밑이 조금씩 꿈틀거리더니.
“사, 살려주세여, 형사님. 자… 잘못했어여…”
“… 네?”
이내 표정이 확 일그러지며 눈물을 쏟았다.
그것도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이… 이제 와서 또 왜 그러시는 거예여. 제… 제가 다 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여…”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울었다.
나와 치헌, 경수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뭘 잘못했다는 걸까?
“거… 거짓말이잖아여. 혀, 형사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리 어, 없잖아여.”
“네?”
“지… 지금껏 사, 삼십년 동안 저 범인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여…”
“……”
“제발 그… 그냥 가세여. 나, 남은 형기 서… 성실히 복무할게여.”
그는 잔뜩 겁을 먹은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맨 처음 표정과는 전혀 다른 얼굴.
“거짓말이 아닙니다.”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당시 수사에 오류가 너무 많아요.”
“…!”
“엉터리 수사로 기소의견 송치를 했다는 겁니다.”
“……”
그가 여전히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 드리죠.”
내가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넘기며 말했다.
“먼저 피해자 살해 전 강간에 대한 진술.”
“……”
“배명호 씨는 약 한 달 동안 범행을 부인하다가 결국 5차 범행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했는데,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에 했던 강간 범행에 대해 ‘피해자 속옷을 무릎까지 내린 뒤 강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 사진을 보면.”
내가 당시 현장 사진을 내밀었다.
20대 여성 피해자의 사체.
흑백이긴 했지만 여러 장이 찍혀 있어 꽤 생생한 현장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속옷이 뒤집힌 채 입혀져 있습니다. 강간 후 옷을 다시 입히는 것. 이것은 1~4차 범죄 피해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나오는 모습으로, 당시 범인의 범행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뒤집힌 채로 입힌 건 속옷을 완전히 벗겼다가 다시 입히지 않고는 불가능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속옷을 무릎까지만 내렸다.’는 배명호 씨 진술과 피해자의 상태가 들어맞지 않죠.”
이어서 현장에서 발견된 망치와 칼 사진.
“다음은 범행도구.”
“……”
“5차 범죄 피해자의 사인은 ‘두정부함몰분쇄골절’, 다시 말해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사망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망치가 범행도구가 되겠죠.”
명호가 아무 말도 않은 채 가만히 사진을 바라봤다.
“특이한 건 1~8차사건 중 둔기로 인한 사망은 5차 사건이 처음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사건들은 모두 칼로 살해를 했죠.”
“……”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살해하는 것. 이건 대표적인 ‘분노범죄’입니다. 강한 분노의 표출이자 칼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이죠. 보통 피해자에게 어떤 원한이 있을 때 범인이 둔기로 머리를 가격하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살해 동기를 물었을 때 배명호 씨는.”
이어 진술서 사진.
“‘나중에 신고할 것이 두려워 죽였다.’고 답했습니다. 별다른 분노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왜 망치로 피해자를 때려 죽였을까요? 칼을 버젓이 놔두고 말입니다.”
“……”
“게다가 범인은 망치와 칼을 범행 장소에 버리고 현장을 이탈했습니다. 왜 5차사건만 범행도구를 덩그러니 현장에 놔두고 갔을까요? 누가 쫓아오는 급박한 상황도 아니었는데요.”
“……”
“마치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고 한 행동 같지 않나요?”
“…!”
“이보다 더 이상한 건.”
다음은 수사서류 및 국과수 검증 관련 서류들.
“현장에서 발견한 지문, 혈액, 정액 등의 물질적 증거들입니다.”
“……”
“분명 당시 담당형사는 1차 사건브리핑 당시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하지는 않았죠. 지문은 범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왜 제출하지 않았을까요?”
범인의 지문을 채취했다면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출하지 않았다는 건.
“지문이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겠죠.”
“…!”
“다른 사람의 지문이 발견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진범일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지문이요.”
내 말에 명호는 물론 치헌, 경수, 심지어 뒤에 서 있던 기동까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 당시 우리나라 혈액 검사 시스템이 아주 열악해 그 오차범위가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증거수집 3일 만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액의 혈액형과 배명호의 혈액형 모두 O형’이라며 검사 결과를 발표했고, 법원은 혈액형 일치 여부를 유죄 판결의 중요한 증거자료 중 하나로 판단했습니다. 혈액형이 실제 일치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거니와, 만약 일치한다 해도 단순히 혈액형이 일치하는 것만으로 범인을 특정하는 것은 상당히 불합리한 판결이죠.”
지금 생각하면 매우 이상한 판결이다.
하지만 사건 당시엔 우리나라 수사기법이 어느 정도로 발달했는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도 않았던 데다 정부가 수사, 언론 등을 모두 통제하고 있던 시기라 객관성이 떨어지는 발표나 보도가 더러 있던 시기였다.
그에 더해 사건에 대한 관심은 배명호가 검거되면서 절정을 찍은 뒤 빠른 속도로 식기 시작했고, 이듬해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올림픽으로 쏠렸다.
이후 이 배명호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본 수사기관이나 언론기관은 전혀 없었다.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으로 규정지어지기만 했을 뿐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은 다시 현장사진과 진술서.
“이상하게도 이 현장 사진들은 사체를 발견한지 15일이 지나서야 공개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만 알린 뒤, 현장 사진은 뒤늦게 공개했다.
“게다가 최초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살해했다.’던 경찰은 망치와 함께 칼이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둔기로 머리를 때리고 칼로 피해자를 찔러 살해했다.’며 수사 내용을 번복했죠. 하지만 유가족들의 심적 피해우려를 이유로 사체의 칼자국 같은 정밀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경찰들의 말만으로 사인이 번복된 겁니다.”
이 부분이 가장 이상했다.
뜬금없이 범행도구를 ‘망치’에서 ‘망치와 칼’로 번복한 것.
“이 번복으로 인해 배명호 씨는 지난 1~4차 연쇄살인사건 혐의까지 의심받게 됩니다. ‘칼이 범행도구’라는 공통점이 생겼으니까요.”
배명호 사건은 처음에는 단독사건으로 조사를 했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브리핑 후 갑자기 이전 연쇄살인 사건과 동일범으로 지목되며 이슈화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주 뒤, 계속 혐의를 부인해오던 배명호 씨가 갑자기 5차 사건에 대한 혐의를 시인합니다.”
“……”
“이렇게 보니 뭔가 많이 이상하죠?”
나는 서류를 덮어 탁자에 놓은 뒤.
“정리하면.”
말한 내용들을 정리했다.
“피해자의 속옷 상태와 상반되는 피의자 진술. 피의자에게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분노범죄와 뜬금없이 범행도구를 현장에 두고 간 것에 대한 의문.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현장 지문. 혈액형을 중요증거로 채택한 법원의 성급한 판결. 담당형사의 범행 도구 번복.
이 모든 중요 수사내용들이 모두 허술하거나 잘못되었습니다. 이 불완전한 증거들로 기소의견 송치, 기소, 확정판결까지 한 경찰, 검찰, 법원의 판단 모두 이상하고요.”
내가 이렇게 설명하는 동안 어느새 명호는.
“따라서 지금껏 확인된 증거로만 판단하면 배명호 씨는 부당한 기소와 판결을 받은 겁니다. 최초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보아 범인이 아닐 확률이 커요.”
“흐흡…”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1차 공판 때 재판을 참관한 기자 중 한 명은 ‘검거당시 멀쩡하던 배명호가 재판장에 나올 때는 몸이 아주 안 좋아 보였다. 다리를 심하게 절어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걷지 못하는 정도였다.’는 기사를 내기도 합니다.”
경찰학교 재학시절 배명호 사건에 대해 잠깐 배운 적이 있다.
아주 일부 기자들이 이 사건에 대한 음모론을 펼치며 여론과 배치되는 몇 개 기사를 냈었다.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이상한 수사, 부당한 기소, 석연치 않은 판결. 분명 수사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다.”
“흑…”
“경찰은 배명호 씨를 5차 사건뿐만 아니라 1~4차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했습니다. 비록 5차사건 외엔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배명호 씨를 검거하면서 연쇄살인을 멈추려 한 거죠. 하지만 이후 버젓이 6, 7, 8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뒤에 일어난 사건들은 올림픽에 묻히며 이슈가 되지 못했죠. 언론에도 많이 노출되지 않았고요.”
“……”
“훗날 사람들은 6, 7, 8차 사건을 배명호 사건의 모방범죄라고 부릅니다. 1차부터 5차사건까지는 배명호가 저지른 게 맞고, 그 뒤 사건들은 다른 사람이 베껴서 저지른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볼 땐…”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배명호 씨가 혐의를 받고 있는 5차 사건이야 말로 모방범죄입니다.”
“…!”
“다른 일곱 차례 사건은 한 범죄자가 저지른 거고요.”
5차를 제외한 다른 사건들은 범행 수법이 명확히 일치한다.
구분을 짓는다면 5차 범죄를 제외한 나머지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
“제 결론은 5차 범죄는 연쇄살인사건과 별개의 사건이며, 수사과정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겁니다. 배명호 씨가 범인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거예요.”
“……”
“말씀해보세요. 사건 조사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 달이나 혐의를 부인하다 갑자기 왜 인정한 겁니까?”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끄윽끄윽 울음을 삼키는 명호.
그건 단순히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분과 한.
탄식과 노여움에 터져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를 보며 면회실 내에 있는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숨겨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제부터 나오는 명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건의 베일을 벗기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렇게…”
그가 헐떡이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나… 나를 범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대우해준 사람은 타… 탁경위 님이 처음입니다. 30년 만에…”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진술은.
“그때 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나도 기…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잠시 후, 서울로 돌아가는 관용차 안.
차 안에는 나와 치헌, 경수뿐만 아니라.
“……”
명호도 같이 있다.
우리는 명호를 서울청으로 인치해 조사하기 위해 절차를 거쳐 데리고 나왔다.
출석희망 의사를 서면으로 남기면 재소자를 외부 기관에 인치해 조사할 수 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명호를 바라보며 마지막에 기동이 해준 말을 상기했다.
‘배명호 공주 치료감호소 갔다 왔을 때, 그쪽 의사들이 카더라꼬예. 아가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 카면서. 과거 기억을 다 잊아뿐 것도 아이고 다 기억하는 것도 아이고, 부분부분만 기억한답니더.’
부분기억상실증.
명호는 수사기간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 억울한 감정이 있는 건 맞으나 그 감정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하, 기억을 못한다라… 이거 어떡하냐.”
치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명백히 새로운 증거가 나왔을 때는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재심을 신청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피해회복을 원하며 무죄주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자기가 무슨 일 때문에 억울해하는지도 모르는 재소자를 데려다 재심신청을 시킬 수는 없다.
“일단 조사를 위해서 당사자를 데려가긴 한다만. 이거 괜한 고생만 될 수도 있…”
“아뇨.”
하지만.
“방법이 다 있습니다.”
나는 이미 방안을 다 생각해놓았다.
꼭꼭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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