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언젠가 들었던 말.
문이 열리고 자살기도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매천파출소 고경수 경사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우리 아들 어떻게 좀 해주세요, 빨리!”
그녀는 이미 울상이 되어 눈물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짧게 상황을 들어보니 중3 아들과 학교 성적문제로 말다툼을 하던 중, 갑자기 아들이 베란다 난간 밖으로 뛰어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다니기 싫으니 퇴학처리를 하라고, 가까이 오면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는 중이라고 했다.
경수는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거실로 들어갔다.
창가엔 유유히 난간에 매달려 있는 자살기도자가 있었다.
그는 경수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선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안녕? 경찰관 아저씨야.”
“……”
경수가 어색하게 인사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너 이름이 뭐야?”
“김범석이요.”
“아, 범석이구나. 범석아.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
“혹시 안 좋은 일 있었다면 경찰관 아저씨한테 말해볼…”
“가까이 오면 뛰어내릴 거예요.”
조금씩 다가가고 있던 경수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긴장은 오히려 경수가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읏차.”
경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자, 됐지? 아저씨 안 다가갈 테니까 얘기 좀 하자구.”
“……”
“엄마한테는 하기 힘든 말이 있잖아. 그런 말을 아저씨한테 해봐.”
그 말에 범석은 잠자코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는 저를 아들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로 생각하나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만족이 없거든요. 성적이 올라도 칭찬하질 않아요. 대신 떨어지면 엄청 화를 내죠.”
“오늘도 성적 때문에 엄마랑 싸웠어?”
“네, 성적이 떨어졌거든요.”
“얼마나?”
“반 2등에서 3등으로요.”
“헉.”
경수가 고개를 돌려 범석의 엄마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니가 너무 하셨네. 3등이면 완전 잘 했는데!”
허나 그녀는 걱정스런 얼굴로 경수와 아들을 번갈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경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범석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욕심이 과하셨던 것 같아. 그 정도면 엄청 잘 한 거야. 아저씨는 맨날 반에서 40등 50등 했는데?”
“거짓말 하지 마세요. 반 인원이 40명이 안 되는데.”
“나 때는 60명인 반도 있었어.”
“……”
경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40~50등 하던 내가 어떻게 경찰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엄청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거든. 근데 아마 그때도 너만큼 공부를 잘 하진 못했을 걸?”
“……”
“반에서 5등 안이라니. 진짜 부럽다 야. 오늘 왜 이렇게 부러운 사람이 많냐?”
그렇게 경수가 너스레를 떨자.
피식-
범석이 살짝 미소 지었다.
감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차가웠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그려지니 생기가 돌았다.
“범석이 너 오늘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이리 와 앉아서 나랑 얘기 좀 더 하지 않을래?”
경수는 이제 회유에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수작 좀 그만 떨어요, 경찰아저씨.”
그건 큰 착각이었다.
범석은 어느새 웃음을 거두고 경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굴 병신으로 아나.”
“……”
“아저씬 내 성적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고, 그냥 나 살리러 온 거잖아요. 나 죽으면 아저씨 곤란해지니까.”
“그런 거 아니…”
“엄마도 나 퇴학처리 안 할 거 알아요. 결국 엄마는 날 설득해서 다시 공부하게 하고, 다른 애들이랑 또 경쟁시킬 거라고요.”
뒤에서 범석의 엄마가 ‘그러지 않을게!’하며 소리쳤지만 범석은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 거짓말쟁이 어른들.”
“……”
“세상에 진정 날 위해주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
그 순간 범석의 손이 난간에서 떨어지더니.
“사라질래. 이 세상에서.”
“범석아! 안 돼!!”
그의 형체가 사라졌다.
경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으로 뛰어가 봤지만.
“범석아!!”
이미 늦었다.
범석의 몸은 이미 저 아래로 떨어져버린 듯했다.
어두워서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씨발!!”
경수는 난간에 이마를 찧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거의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한두 마디만 더 하면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그는 너스레를 떤 게 실수였나 생각하며 자책했다.
그렇게 난간을 다시 한 번 세게 내려치고 돌아서려는데.
“고부장님.”
난간 옆에서 경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난간 밖 외벽에서.
경수가 환청을 들었나 생각하면서 옆을 돌아보니.
“으억, 씨발! 정태 너 거기서 뭐하는 거야!”
“혼자 하려니 잘 안 되네요. 작은 방으로 와서 좀 도와주십시오.”
정태가 범석을 꼭 안은 채 작은방 창틀 외벽에 매달려 있었다.
*
“아, 진짜 너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야? 미쳤어!?”
경수는 창밖으로부터 범석을 넘겨받고, 나를 끌어당겨줄 때까지 계속 욕을 해댔다.
나는 그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고작 커튼에 의지해서 창밖으로 나가 있었던 거야? 떨어지면 어쩌려고!”
“안 떨어집니다. 창틀에 걸린 커튼 봉이 무게를 잘 지탱해주고 있으니 역학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구조에요.”
처음 이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물리적으로 범석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부터 모색했다.
그가 뛰어내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으니까.
범석이 매달려 있는 거실 창 바로 옆으로 작은 방 창이 보였고, 그곳엔 커튼이 달려 있었다.
커튼 봉을 내려 창틀에 건 뒤 창문을 닫아 커튼을 한 번 더 잡아주면 충분히 내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작은 방으로 갔다.
나는 커튼 끝을 팔에 단단히 감은 뒤 조심스레 창 외벽으로 나갔고, 역시나 커튼은 무게를 잘 견뎌주었다.
단, 소리 없이 천천히 접근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경수가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야 인마! 지금 역학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부장님 잠시만요. 그보다.”
나는 작은 방에 입성하자마자 범석을 찾았다.
어느새 구급대원들이 와서 범석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김범석 학생.”
“후… 후…”
범석은 많이 놀랐는지 거칠게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일단 학생은 매뉴얼대로 자살예방센터 직원에게 인계할 거예요. 거기서 상담 받고, 필요하면 병원에 입원하는 절차를 거칠 수도 있어요.”
“후… 네… 알겠어요.”
“그리고.”
의경제대 중대장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번엔 꼭 이 말을 해야만 했다.
“아까 학생이 세상에 진정 날 위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했죠? 그 말 틀렸어요.”
“… 네?”
“나는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학생을 구했어요. 그럼 적어도 나는 학생을 위해주는 사람 맞죠?”
아무 말을 못하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범석에게 나는 경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경찰관 이마 보세요. 학생이 떨어진 줄 알고 자책하며 난간에 머리를 찧어서 이렇게 벌겋게 되었어요. 학생을 살리지 않으면 경찰관 본인이 곤란해져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학생을 살리고자 했다고요. 그럼 이 경찰관도 학생을 위해주는 사람 맞죠?”
“……”
벌건 이마를 문지르는 경수를 보며 범석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 둘 보다 훨씬 더 학생을 위해주는 사람은 누굴까요?”
나는 방문 앞에 서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바로 학생 어머니예요.”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고 오열을 하고 있었다.
“아마 어머니가 범석 학생을 위하는 마음은 나와 이 경찰관 아저씨 두 사람의 마음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클 거예요.”
“흡…”
“진정 범석 학생을 위해주는 사람은 어머니라구요.”
그 말에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나는 학생이 말하는 거짓말쟁이 어른이 아니에요.”
“흑… 흡…”
“젖먹이동물의 모성애는 다른 류 생물의 모성애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얘기하는 거니까요.”
“…?”
“어머니는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학생을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
뭔가 이상한 논거와 함께 마무리된 멘트.
그와 동시에.
“범석아,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 엄마…”
두 모자가 껴안고 엉엉 울어댔다.
나와 경수, 현장의 구급대원들은 잠시 물러나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리고 몇 분 뒤.
“자살예방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자살예방센터 직원이 도착했다.
우리는 그에게 범석과 어머니를 인계한 뒤 순찰차로 철수했다.
*
“정태야.”
경수는 순찰차로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나를 나무랐다.
“너 왜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한 거야? 너 거기서 떨어지면 어떡할 뻔했어?”
“커튼 봉의 강직도와 커튼의 두께를 봤을 때 역학적으로 안전한…”
“아, 그놈의 역학 말하는 게 아니잖아!”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왜 나랑 상의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냐고.”
“저는 사법경찰관으로서 현장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야, 너 진짜 계급으로 꼽주는 거냐?”
순경, 경장, 경사는 사법경찰리.
경위는 사법경찰관이다.
통상 사법경찰관이 현장을 지휘 및 판단하고 사법경찰리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경수가 토라진 듯 쏘아붙이고는 말을 이었다.
“막말로 내가 그 커튼에 매달려 있었다고 생각해 봐. 너 가슴이 철렁하지 않았겠냐?”
“아뇨, 저는 잘 했다고 했을 겁니다. 멋진 작전이었다고…”
“아, 정말!”
경수가 진짜 화가 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왜 엄마가 자식 위하는 마음은 그렇게 잘 알면서, 동료가 동료 위하는 마음은 모르냐는 말이야.”
“……”
“너 거기 매달려 있는 거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놀랐다라.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경수의 말대로 내가 만약 창에서 떨어졌다면 죽었을 것이다.
군, 경, 소방 같은 조직은 특히나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성격이 강하니 경수의 말이 조금은 이해되는 듯했다.
“에휴, 아무튼 다음엔 그런 위험한 짓 하지마. 좀 이따 팀장님 아시면 아마 펄쩍 뛰실 거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동료가 놀랄 행동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묻자.”
순찰차를 출발시킨 경수가 다시 질문을 해왔다.
“저번엔 그렇게 법대로, 법대로 타령을 하더니. 이 법적 근거도 없는 자살 신고에 왜 그렇게 몸을 던진 거야?”
“……”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제야 나는 신고처리 내용을 돌이켜보며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생각했다.
…
하지만 나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 없었다.
범죄도 아닌 일에 나는 왜 몸을 던진 걸까?
이건 그냥…
“몸이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범석이 달랠 때 젖먹이동물에 대한 논문을 언급할 정도로 근거에 민감한 네가, 법적 근거도 없이 그냥 움직였다고?”
경수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지금 나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계속 저렇게 쏘아붙인다면 내가 할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
언젠가 경수에게 들었던 말.
“… 경찰이 법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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