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청현이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으려 했지만.
“……”
나는 캐치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아주 살짝 떨리던 그의 눈 밑을.
“… 그 사람 죽었잖슴까.”
“알고 계시는군요.”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슴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정보를 말씀해주십시오.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않다가.
“죽었다는 거 밖에 모름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덤덤히 답했다.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지난 박지석 수사 때 조사해봐서 안다.
이들은 한 번 입을 닫으면 절대 열지 않는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범죄조직원이 등장하는 모든 사건서류 및 판례를 둘러봐도.”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조직 상급자가 하급자를 위해 희생한 사례는 없습니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위해 각종 범죄를 일삼은 사례는 많아도요.”
“……”
“당신이 믿고 있는 조직의 윗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아끼지 않습니다.”
“……”
“오히려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죠. 당신이 오수를 죽인 것처럼.”
“…!”
그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또한 당신이 믿고 있는 조직은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범죄조직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모래성 같은 집단입니다.”
“……”
“구치소에 신문은 들어오죠?”
“……”
“신문 잘 보고 계세요. 앞으로 신문 1면에 대한민국 각종 악의 세력들이 무너지는 장면이 자주 나올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마디 덧붙이고는.
“신문 보면서 생각 바뀌면 교도관 통해서 서울청 광수대로 연락주세요. 당신과 당신 가족의 안전을 맡길 곳이 범죄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경찰이란 생각이 들 때 말입니다.”
면회실을 나왔다.
*
며칠 뒤, 서울지방경찰청 대강당.
“기자회견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YBC 수사브리핑 당시 요청했던 기자회견이 열렸다.
강당 무대 위에는 나와 치헌, 경수와 명호가 나란히 앉아있고.
“기자님들은 제가 나중에 한 분씩 발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앞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과 카메라가 늘어서있다.
그 옆에선 대포 같은 사진기를 든 언론사 직원들이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계속 사진을 찍어댔다.
“먼저.”
사회를 맡은 경무계 직원이 나를 돌아봤다.
“탁정태 경위님이 판결 요지부터 설명해주시죠.”
“담당 판사님이 말씀하셨던 판결 내용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아까 재판장에서 들었던 판결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배명호 씨의 자백 진술은 불법체포 및 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진 것일 확률이 상당하다.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및 증거의 오류로 이 사건 기소 및 유죄판결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카메라의 찰칵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반면 범인으로 지목된 원광남이 복역기간 동안 교도소 내에서 한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며, 머리카락 DNA 등 객관적인 증거와 부합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내 옆에 앉은 명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계속 눈을 꿈뻑꿈뻑거리고 있었다.
아마 이런 자리가 열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
“경찰의 가혹행위와 수사기관의 부당한 수사 및 제출된 증거의 오류를 법원이 재판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결국 잘못된 판결이 선고되었고, 그로 인해 28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배명호 씨에게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재판과정에서는 이례적으로 담당판사가 재심 신청인에게 사과를 하기 까지 했다.
그 말에 함께 앉아 있던 치헌과 경수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사건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배명호는 사형을 때려도 시원찮을 범죄자라며 과거사 진상규명에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었는데. 그게 미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치헌과 경수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잘못은 전 국민이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만든 당시 경찰과 검찰, 사법부에게 있다.
“1987년 상광동 살인사건 관련 재심을 신청한 배명호 씨에게.”
내가 잠시 틈을 두고.
“무죄를 선고한다.”
말을 마무리 짓자.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재심 재판부는 명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잘못된 기소와 판결이었다는 것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판결내린 것이다.
“그럼 이어서 1987년 상광동 살인사건 및 배명호 씨 무죄판결 관련 질문 받겠습니다.”
내가 판결 내용을 읊은 뒤.
기자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했다.
동정과 위로를 담은 애틋한 표정들.
이제 이 자리는 명호의 28년 한을 풀어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NBC 기자님부터 하시죠.”
“네, NBC 이문성 기잡니다. 질문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이번 수사에서 최면수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던데, 정말 최면에 걸린 게 맞습니까?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 게 아니고요?”
엇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 어… 그게… 그때는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 아니였어여…”
“사실만을 진술한 게 맞나요?”
“예… 저는 보이는 그대로…”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던 28년 전 그 상황이 최면 속에선 눈앞에 훤히 보이더라는 말입니까?”
“보였어여… 누렁이랑… 그 형사들…”
“그게 정말 과학적으로 가능하긴 한…”
쾅-!
그때 갑자기 책상을 세게 치는 소리가 들리며 질문이 중단됐다.
옆을 보니.
“거참.”
치헌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그 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이 전부 다 엎어져 난장판이 되었다.
“공익을 위해 사전에 수사내용 일부 공개했지 않습니까. 이문성 기자님은 그 방송 안 보셨습니까?”
“… 네?”
“우리나라 최고 법최면 수사관 중 한 명인 서울청 송가락 경정이 방송에 나와 수사내용 설명 다 했고, 최면수사 당시 영상 녹화본까지 공개했어요. 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학교수님들까지 방송 패널로 나와 최면수사의 과학성을 인정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치헌이 주먹을 꽉 쥐자 팔이 터질 듯 옷이 꽉 끼었다.
문성은 입을 꾹 닫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옆에서 치헌과 같이 그를 쏘아보고 있던 경수도 입을 열었다.
“최면수사 내용은 어차피 무죄입증의 보조 자료로 제출한 것입니다. 그 자체로 결정적 증거가 될 수는 없어요. 다르게 말하면, 최면수사 말고도 배명호 씨의 무죄를 입증할 자료는 많다는 말입니다. 기자님이 그렇게 딴지 걸어도 결과는 변함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최면수사 자체에도 결함이 없고요.”
재심은 검사가 유죄를 입증하는 여타 재판과는 다르게 신청인이 무죄를 입증하는 내용으로 흘러가는 성격이 강하다.
경수의 말대로 최면수사 말고도 명호의 무죄를 입증할 자료는 많다.
담당 판사가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그렇게 잠시 정적 후.
“다음 질문자로 넘어가겠습니다.”
사회자가 진행을 재개하며 다른 기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기자가 자기 소속과 이름을 말한 후 질문했다.
“판결문 내용처럼 2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신 끝에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으셨습니다. 배명호 씨,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기… 기분이…”
명호가 쭈뼛거리며 입을 뗐다.
“너무 좋아여.”
수많은 카메라 때문에 눈은 이리저리 떨렸지만 입은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사… 사람들이 이렇게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잖아여.”
“……”
“나 이제 보, 보통사람 된 거 같아여.”
보통사람.
그의 바람은 큰 게 아니었다.
“벼… 병원 창밖으로 세상 구경하는 것도 좋아여. 차랑 사, 사람들이 막 돌아다니는 거. 또 높은 건물을 해가 비추는 것도 머… 멋있어여.”
모두에게 당연했던 것들이 그에겐 소망이었다.
“그래도”
또 다른 기자가 질문했다.
“긴 시간동안 옥고의 세월을 보낸 만큼 억울한 심정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이 나라와 경찰 및 사법 조직들이 밉진 않으셨습니까?”
“미… 밉죠.”
명호가 다시 더듬더듬 대답했다.
“나 되게 어… 어릴 때 형사한테 잡혀 들어왔어여. 지,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모… 몸도 안 좋아여. 그때 고문을 많이 당해서…”
87년 명호가 검거될 당시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고문을 받은 후 치료를 제때 받지 않아 아직까지 오른쪽 다리를 전다.
당연히 정신적 질환도 더 심해졌고.
이제 내년이면 나이가 오십.
무고했던, 꽤나 건강했던 이십대 청년은 이제 병든 중년이 되었다.
“하…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나라가 밉지 현재의 나라가 미운 게 아… 아니에여.”
“……”
“나, 날 나쁜 놈 만든 것도 이 나라지만, 날 구… 구원해준 것도 이 나라니까…”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지금의 나라는 아, 안 미워할래여. 다… 다들 고마워여.”
그 대답에 질문을 했던 기자가 먹먹한 표정을 하고 입을 닫았다.
아마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으리라.
상광동 사건을 조사하면서 과거 명호에게 고문을 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형기대 담당형사들도 만났었다.
그들은 ‘절차대로 수사를 진행했으며 고문을 한 기억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사실 이들이 이렇게 부인하면 고문을 가했다는 다른 명백한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
또 설령 찾는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
도덕적 책임만 물을 수 있을 뿐.
이러한 내용을 명호에게 전달하니, 기분은 좋지 않지만 그들이 혐의를 인정할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괜찮다고 했다.
과거의 억울함에 메여있기 보다 지금이라도 좋은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기자들의 질문이 쭉 이어진 후.
“혹시.”
마지막 기자가 질문을 했다.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
그 질문에 명호는 처음으로 미소를 거두고는.
“후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곤 이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모양이었다.
“과거로 가… 갈 수 있다면…”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우리 엄마… 엄마가 살아있던 때로 가고 싶어여.”
“……”
“어… 엄마가 마을 사람들한테 항상 그랬어여. 우리 명호, 공부는 모, 못해도 애는 착하다고. 정말 애는 착하다고… 엄마가 나 많이 사랑했어여… 매일매일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했어여…”
그가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랬던 엄마가 구치소에 나 면회 왔을 때… 펑펑 울면서 그랬어여. 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냐고… 어떻게 엄마 가슴에 이렇게 크, 큰 못을 박을 수 있냐고…”
“……”
“그게 마… 마지막 모습이었어여. 그러고 얼마 뒤에 엄마 쓰러져서 돌아가셨어여…”
“……”
“나 벼… 병신 만든 것 보다 우리 어, 엄마한테 나 나쁜 아들 만든 게 더 미워여… 엄마 저렇게 돌아가시게 만든 게 더 미워여…”
그의 말에 울음이 점점 많이 섞여 들어갔다.
강당 내 모든 사람이 숙연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 엄마한테 꼭 말하고 싶어여.”
“……”
“내… 내가… 내가…”
그가 참았던 울음을 완전히 터뜨렸다.
“내가 안 죽였어 엄마… 지, 진짜 내가 안 죽였어…”
나 저거 봤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