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나 저거 봤어여.
“……”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멈췄다.
기자의 질문도, 사회자의 진행도 멈췄다.
강당 내 모든 사람들이 가만히 명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기자 중 몇 명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나는 그 전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관해 생각했다.
은빈과 치헌, 경수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가슴이 아려왔다.
그들이 없는 세상은 이제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닌데도 내가 고통스러웠다.
일상에선 ‘소중함’이란 감정이 이렇게까지 깊게 와 닿지 않았는데.
왜 나는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낄까.
“자, 이로써 모든 기자님들의 질문이 끝났으므로…”
명호의 울음이 잦아들자 사회자가 눈치를 보며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상 기자회견을 마치도록 하겠…”
“저… 저기.”
그때.
명호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 그렇습니까? 편하게 하십시오.”
명호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걸까.
“사… 사실.”
그가 눈물을 다 닦은 후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최근에 몸이 많이 아, 안 좋았어여. 옛날 기억들도 자꾸 까먹고 서… 성격도 이상해지고.”
주희에게 들어보니 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부분기억상실뿐만 아니라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으며 조현병과 망상장애 증상도 있었다고.
“아마 그대로 계… 계속 있었으면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을 거예여. 나중엔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수, 숨만 쉬고 있었겠져.”
“……”
“워… 원래대로라면 저는 형기 30년이 채워지는 2년 뒤에 출소를 할 예정이었어여. 하지만 저는 추… 출소가 두려웠어여.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채 모든 사람들이 날 미워하는 그 사회에 던져진다는 게 너무너무 두려웠어여. 그래서 차라리…”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출소하기 전에 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고.”
기자들 사이에서 작게 탄성이 일었다.
“그런데 죽는 것도 쉽게 모, 못하겠더라고여. 사회에 나가는 것만큼 죽는 것도 두려웠으니까.”
“……”
“그래서 제 남은 복역 생활은 어… 어떤 두려움을 선택할지, 이 고민의 연속이었어여.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지만 저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했어여…”
모든 이들이 나를 미워하는 사회 속에서의 삶.
그리고 자살.
나였으면 그중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와중에.”
그가 나와 치헌, 경수가 있는 쪽을 돌아봤다.
“이분들이 와주신 거예여.”
“……”
“구세주처럼.”
어두웠던 그의 얼굴에 조금씩 빛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이분들은 저를 죽음에서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줬어여. 30년 동안 다… 단단히 굳어 있던, 저를 향한 그 미움의 눈빛들. 그걸 어, 없애줬어여…”
그의 눈이 점점 초롱초롱해졌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점점 화사하게 웃기 시작했다.
정말 기쁜 사람처럼.
“지… 지금이라도 이런 행복한 세상을 살게 해준 것. 다 이 분들 덕분이에여.”
그는 다리를 절면서도, 말을 더듬으면서도 행복하다고 했다.
부당한 판결로 모든 청춘을 감옥에서 다 썩히고서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게 어려운 개념이었던 행복.
그 정의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엎어지고 뒤집어졌다.
스윽-
명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탁정태 경위님.”
똑바로 서서 날 불렀다가.
“고경수 경위님.”
경수를 부르고는 다시.
“장치헌 경감님.”
치헌까지 불렀다.
웬일인지 그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저를 죽음에서 행복으로 이끌어 내주셔서.”
그는 배꼽에 두 손을 모으더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허리를 굽히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 큰 외침에서 그간 명호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강한 기운이 느껴져 뭔가 모를 소름이 끼쳤다.
스윽- 스윽- 스윽-
그의 인사에 나와 치헌, 경수는 마치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꾸벅-
셋 다 명호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인사하고 있는 동안.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그 시각. 서울 어딘가에 위치한 공터.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구만.”
공터에 아무렇게나 지어져 있는 폐건물엔 아무 인테리어도 되어 있지 않았다.
외벽마저도 군데군데 흠이 가고 허물어져 있어 겨우 그 형태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건물 내에 덩그러니 놓인 세 개의 의자.
그곳에 말끔한 차림의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영웅 놀이를 제대로 하고 있네, 이 병신 같은 놈들.”
그중 나이든 남자가 체통에 맞지 않게 휴대폰 뉴스 기사를 보며 욕을 해댔다.
“뭐, 배명호 무죄 판결이 우리한테까지 해를 끼칠 확률은 적지만.”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자꾸 이런 일이 생기면 안 좋아.”
“……”
“애초에 그 오수인가 뭔가 하는 짱깨 놈한테 일처리를 제대로 시켰어야지. 지금 괜히 일이 커졌잖아.”
“……”
“안 그러냐 시호야.”
“마, 맞습니다. 의원님.”
남자 앞에 앉아 있는 이는 한시호 기자.
좀처럼 허리를 숙이는 법이 없는 그가 지금은 시선을 땅으로 쳐 박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시호야.”
이번엔 옆에 있는 남자가 그를 불렀다.
“예, 차관님.”
“니 손을 와이래 떠노?”
“아, 그게…”
“약 줄이고 치료 좀 받으라 캤디, 말 안 듣고 계속 약만 했는갑제?”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시호야.”
벌벌 떠는 시호와 달리 그는 말투가 느긋했다.
“약을 과하게 하면 마음이 제어가 안 돼. 그라믄 박지석이 글마처럼 실수하는 기야.”
“……”
“뭐 홍마담 실수로 딴따라 새끼 한 번 불러들인 건 우리 실수긴 하지만. 우리는 또 실수로부터 배우는 게 있다 아이가.”
그가 시호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불안한 가지는 바로 쳐내뿐데이.”
“…!”
“그기 나무 건강에 좋다는 건 니도 안다 아이가.”
“… 마, 맞습니다.”
“핵심 멤버인 니랑 박지석 같은 새끼를 비교해가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뭐 우짜겠노. 상황이 안 되면 읍참마속 해야지. 안 그렇나?”
읍참마속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그가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자꾸 손 떨면서 출근하고 그카지 말고, 연차내고 어디 조용한데 가가 한 한두 달 약물치료 하고 오는 게 어떻겠노? 방송국장한테는 내가 알아듣도록 말해놓을 테니까.”
“……”
그가 마치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물었지만.
“… 알겠습니다.”
답은 정해져있었다.
#
이틀 뒤.
“이야, 이거 캠핑은 오랜만인데.”
치헌이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사무실에서 나왔다.
“저도요. 너무 가고 싶었는데, 우리 램프의 요정 탁지니 경위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시네요.”
경수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장난을 쳐댔다.
나와 치헌, 경수는 함께 캠핑을 가기 위해 조기퇴근을 하고 나오는 길이다.
명호의 무죄판결 뒤 이틀 동안 어찌나 바빴던지.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쳐내는 것만 해도 다들 혼이 빠졌다.
그렇게 바쁜 업무에 시달리던 이틀 전 저녁.
‘하, 지친다. 어디 조용한 캠핑장 같은데 가서 고기나 구워먹고 싶네.’
치헌이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말하자.
‘저도요. 캠핑장 가서 불피워놓고 맥주한잔 때리고 싶네요. 민경이도 얼마 전부터 캠핑장 가고 싶다고 그러던데.’
경수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 대화를 듣고 나는 그들에게 휴일 스케줄을 물어본 후, 바로 캠핑장을 예약했다.
명호의 기자회견 후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지금’ 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었기 때문이다.
기섭과 현민은 이번엔 인원이 많으니 다음에 가겠다며, 자신들이 잔업을 처리할 테니 조기퇴근을 하라고 했다.
광수대장 치률은 흔쾌히 우리 셋의 조기퇴근을 허락해줬다.
팀 휴일은 내일 하루뿐이라 오늘 출발해 1박만 하고 돌아와야 한다.
“나 집에 가서 와이프 태워서 출발할게. 애는 오늘 장인 댁에 하루 맡기기로 했어.”
“나도 민경이 태워서 출발할게.”
게다가 이번 캠핑은 우리 셋만 가는 게 아니라 각자 일행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저도 은빈 씨 태워서 갈게요. 병원에도 들러야 해서 조금 늦게 도착할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한 후 각자 흩어졌다.
나는 미리 렌트해놓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기 전에.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 우리 탁정태 경위님 오셨군요.”
내 생일날 치헌, 경수와 왔던 삼겹살집에 들렀다.
“여기, 말씀하셨던 삼겹살이요. 구운 거 한 팩, 생삼겹 선물세트 한 팩.”
“감사합니다.”
전화 주문해놓았던 삼겹살을 받은 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선.
“선생님.”
“어머.”
먼저 금주희 과장 방으로 들어갔다.
“또 어쩐 일이니? 연락도 없이.”
“여기.”
내가 삼겹살 선물세트를 내밀었다.
“에? 이게 뭐야?”
“저희 팀장님이 이런 거 잘 하라고 했습니다. 좀 늦었지만…”
내가 꾸벅 목례를 하며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내 새해 인사에 주희는 꽤나 당황한 듯했다.
치헌이 세배할 필요 없이 간단한 인사만 하면 된다고 했었는데.
역시 세배를 해야 했었나.
“뭐야 그 멘트? 정태 너 안 같애!”
“……”
“아이고, 그냥 오면 되지 선물까지 사왔어?”
“저번에 삼겹살 먹방 동영상 보고 계셨잖아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아…”
지난 상담 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희는 보던 삼겹살 먹방 영상을 황급히 끄고 내 상담에 들어갔다.
주희 또한 내게 고마운, 또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주희가 좋아하는 것을 한번쯤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정말 고마워 정태야.”
그녀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
뭔가 모르게 마음이 뿌듯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인사를 못했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네.”
나는 짧게 대답하고.
“응? 또 바로 가니?”
“네. 오늘 약속이 있거든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
주희의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 곳은.
“배명호 씨.”
명호의 병실이었다.
“타… 탁경위님!”
그가 눈을 크게 뜨고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여기.”
나는 그에게 구운 삼겹살 팩을 내밀었다.
“삼겹살 먹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우와…”
그의 눈이 더 휘둥그레지더니 더 큰 미소를 지었다.
기자회견 중 무엇이 가장 먹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지글지글 삼겹살.’이라고 답했다.
주희 선물을 사며 1인분 양의 구운 삼겹살을 같이 샀는데, 잘 한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삼겹살을 상위에 올리자마 팩을 뜯더니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드… 드세요.”
내게 권했다.
“1인분이라 둘이 먹긴 적습니다. 저는 곧 고기를 먹으러 가니 배명호 씨 드세요.”
내가 거절하자 그가 자기 입에 고기를 넣었다.
그리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천천히 씹었다.
마치 처음 먹는 음식을 맛보는 사람처럼.
그리고 잠시 후.
“마… 맛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더니 빠른 속도로 삼겹살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가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는 아까부터.
‘…?’
티비에 눈이 고정되어 있었다.
뭘 보고 있나 보니.
‘경찰역사 50년?’
경찰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경찰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이… 이거 탁경위님 때문에 방송되는 거래여…”
“…?”
“저 무죄 받고 사… 사람들이 이런데 관심이 많아져서 방송사에서 틀어준 거래여… 의,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여…”
상광동 살인사건 진상이 밝혀진 후 과거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모양.
그래서 방송사에선 곧장 예전에 찍어둔 다큐멘터리를 재방송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집중해서 시청하던 중 갑자기.
“어…? 나 저거 봤어여.”
손으로 티비를 가리켰다.
화면엔 80년대에 쓰던 경찰 무전기가 나오고 있었다.
“87년 당시 조사받으실 때 보셨습니까?”
나는 당연히 87년 당시에 본 줄 알았는데.
“아, 아녀. 그때 말고… 최면 할 때 봤어여.”
“!?”
그 다음에 명호가 내뱉은 말은.
“백양.”
“!?”
다시금 내 머릿속의 많은 퍼즐들을 어지럽히는 말이었다.
“그 목욕탕에서 부…분명히 어떤 남자가 저거 들고 있었어여.”
살아있을 때 최대한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