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살아있을 때 최대한 많이.
내가 놀라서 명호에게 다시 물었다.
“경찰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고요?”
“네. 저를 보더니 까… 깜짝 놀라면서 무전기 다시 옷장에 집어넣었어여.”
백양에… 경찰이 있었다고?
“타… 탕 안에 있던 남자들이랑 여자들 나쁜 사람들인가봐여. 경찰이 조사를 나온 걸 보면…”
나는 백양을 인지한 후 역대 모든 경찰 수사 자료들을 다 찾아봤다.
허나 그 어디에도 백양을 조사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명호의 말대로라면 무전기를 든 그는 분명 경찰이 맞다.
게다가 명호를 보고 놀라 무전기를 감췄다면.
이건 분명…
‘…!’
생각이 정리된 순간.
머릿속 엎어졌던 퍼즐들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캠핑장.
“고기를 기가 막히게 구워드릴 테니까 맛있게 드시기만 하세요.”
경수가 그릴 앞에 딱 서서 맛있게 고기를 구웠다.
민경은 옆에서 그를 보조했다.
나는 야채를 깨끗이 씻어 오고, 은빈은 김치를 꺼내 먹기 좋게 썰었다.
“아이고, 나도 뭔가를 좀 도와야…”
“에헤이, 사모님.”
치헌의 아내인 이수연이 일어서려 하자 경수가 황급히 그녀를 막았다.
“집에서 애 키우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을 텐데 오늘은 푹 쉬세요. 애 없는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오호호호. 경수 씨는 얼굴도 잘생긴 분이 말도 어쩜 저렇게 예쁘게 해.”
수연이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녀에게 붙이는 호칭은 형수님에서 사모님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치헌이 말하길 내가 민경에게도 형수라고 불러야 하는데 자기 아내가 같은 형수로 불릴 수는 없다고 했다.
어른들은 이런 서열을 명확히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좋겠어.”
수연이 나와 경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치헌에게 말했다.
“이렇게 배우 같은 후배들이 같은 팀이라서.”
“아주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시는구만. 아예 나랑 같이 출근을 하지 그래?”
“그래도 돼?”
“얼씨구. 이 사람이 진짜 따라올 기세네?”
나는 긴 테이블에 수저를 놓으며 그들이 하는 대화를 가만히 지켜봤다.
치헌과 수연은 서로를 대함에 있어 여유가 느껴졌다.
확 불타오르지도, 그렇다고 끊어지지도 않는.
심심하면서도 끈끈한 무언가가 그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은빈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것과는 다른 것.
나와 은빈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자자, 고기가 기가 막히게 익었으니 한 번 드셔보세요.”
“와-!”
경수가 고기를 하나도 태우지 않고 예쁘게 플레이팅까지 해서 테이블에 놓았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어댔다.
사진을 다 찍은 뒤에는.
“자, 오빠 아-”
“아-”
민경이 쌈을 싸서 경수를 먹여줬고.
“정태 씨 아-”
“아-”
은빈도 내게 쌈을 싸줬다.
“……”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치헌과 수연이.
“에휴.”
“부럽다 부러워.”
각자 들고 있던 쌈을 각자 입에 우겨넣었다.
경수가 잘 구워서 그런지 확실히 쌈이 맛있었다.
아, 은빈이 싸줘서 맛있는 건가?
그렇게 몇 번 더 쌈을 싸 먹고 맥주까지 한 캔씩 비운 후.
“두 커플 다 애정이 넘치네 넘쳐. 보기 좋아요.”
얼굴이 발개진 수연이 우리 두 커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우리 남편도 그 나이 땐 애정이 넘쳤는데.”
“지금은 안 넘칩니까?”
경수가 묻자.
“넘치기는커녕 이젠 타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아요. 심지가 다 타들어간 양초같달까.”
“헉. 정태한테 들었던 거랑 다르네요. 정태가 팀장님 엄청 가정적이라던데.”
“딸애한텐 잘해요. 뭐 나한테도 잘 하긴 하지만, 남녀 사이의 애정? 그런 건 다 식었지. 나이 들면 다 그렇게 되나봐.”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맥주 캔을 들고 덧붙였다.
“안 한지도 1년이 넘었으니까.”
“!!”
그 말을 듣고 경수와 민경, 은빈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뭘 안 했다는 걸까.
“아이 참 팀장님!”
경수가 허리에 손을 얹고 치헌을 타이르듯 말했다.
“밖에서 애들 패고 책상 부시고 하지 말고 집에서 힘 좀 쓰세요 집에서.”
“야야. 그런 거 아냐. 와이프가 착각한 거야.”
“1년이면 범죄수준이에요. 행위를 안 해도 범죄가 되는 거 아시죠? 부작위에 의한 범죄!”
“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경수의 말에는 다들 키득키득 웃었다.
뭘 안했고, 무슨 힘을 쓰라는 걸까.
나 빼고 이들 사이에 통용되는 음어가 있는 건가?
내가 멀뚱멀뚱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은빈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관계를 1년 넘게 안 하셨대요.”
“!!”
깜짝 놀란 나는.
“팀장님.”
곧장 치헌에게 말했다.
“그 좋은 걸 왜 안 하시는 겁니까?”
“어… 어?”
“연구결과에 따르면 건강한 성관계는 정신적 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그래. 알겠어… 내가 알아서 할게.”
“면역력을 높여주고 근육의 긴장도 풀어주며 독감, 전립선 질환 등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명도 늘려주고요.”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혹시 기능에 문제가 있으신 겁니까? 그럼 말씀하십시오. 제가 금주희 과장 통해 비뇨기과 의사를 한 번 알아보겠…”
“야 인마 그만해!”
치헌이 큰소리를 냈다.
“제수씨들 앞에서 이상한 사람 만들고 있어. 나 그렇게… 문제 있는 사람 아니라고!”
그리고는 다시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따라 그의 팔이 조금 가늘어 보였다.
“하, 근데 진짜 여기 너무 좋네요.”
경수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나무가 우거진 캠핑장. 풀냄새.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나도 이곳 분위기가 좋았다.
“야 그런데.”
경수가 내게 말했다.
“정태 넌 어떻게 갑자기 여기 올 생각을 한 거야?”
“다들 오고 싶어 하셨으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선뜻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잖아.”
“살아있을 때 해야 합니다. 죽고 나면 못하니까.”
“… 응?”
다들 벙진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소중한 사람들과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이건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권리입니다.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특별한 권리요.”
“……”
“배명호 씨는 이제 자신의 어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소한 일조차 하지 못합니다.”
날 보는 이들의 벙진 얼굴이 점점 먹먹한 표정으로 변해가더니.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있을 때 최대한 많이 바라보고, 대화하고, 함께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내 흐뭇한 미소로 바뀌었다.
“거참…”
치헌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먹먹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얘기구만.”
“……”
“내가 정태한테 수사기법 배우는 것도 모자라 이제 인생까지 배우네.”
“성생활도 배울 곳이 있으면 꼭 배우십시오.”
“야 이 새끼야, 잘 나가다가 무슨. 그걸 뭐 어디서 배우란 거야!”
다들 한 차례 웃음 짓고는.
“저도 정태 씨 말에 동감해요.”
은빈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사랑해도 죽으면 다 소용없는 게 되어버리잖아요.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솔직히 요즘 좀 걱정이 돼요.”
그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정태 씨가 뉴스에 너무 많이 나와요. 물론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멋지지만, 한편으론 두려워요. 맡고 있는 사건 규모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서.”
“……”
“사건 규모가 커질수록 위험도 커지는 거잖아요. 상상하기 싫지만 저도 모르게 한 번씩 위험한 장면이 머리에 그려져요. 정태 씨 신변에 위해가 가해지는 상황이요.”
“그건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실제로는 그럴 확률이 매우 적…”
“당장 정태 씨가 맡은 사건 중에도 경찰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녀가 앙칼진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걱정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
“정태 씨가 나 걱정하면서 안전한 퇴근길 경로를 그려줬던 것처럼, 나도 정태 씨 걱정된다구요. 하지만 난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렇게 말하니 그녀의 심정이 이해되긴 했다.
업무특성상 은빈보다 내가 신변에 위해가 가해질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은빈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은 틀렸다.
내가 그에 대해 반박을 하려는데.
“은빈 씨.”
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은빈 씨 마음 이해해요. 나도 우리 남편 형사 처음 할 때 딱 그 마음이었거든. 자기는 엄청 대단한 범죄자 잡았다고 막 자랑을 해대는데 난 그게 얼마나 싫던지. 얘기 들을 때마다 소름이 막 끼치더라니까. 내 남편 다쳤으면 어떡할 뻔했어,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에요.”
치헌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듯 멍한 눈으로 가만히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형사 와이프로 10년 넘게 살아보니까, 결국 병드는 건 남편이 아니라 나더라고.”
“…?”
“남편은 사실 한 번도 크게 다친 적이 없었어요. 작은 찰과상 정도나 입었지. 하지만 나는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간 것만 열 번이 넘어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해서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어버린 거죠.”
“……”
“살아보니 물리적 위협이 사람을 크게 해하는 일은 많이 없더라고. 오히려 걱정이 큰 병을 만드는 경우는 엄청 많지만.”
그녀가 은빈을 그윽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은빈 씨가 걱정하는 그 일들, 일어날 확률보다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높으니까.”
“……”
“물론 경찰 와이프들이 남들보다 자기 남편 걱정을 더 많이 하긴 하겠죠. 하지만 어쩌겠어. 내 남편이 경찰인 걸. 경찰남편이 국가와 국민에 어느 정도 희생정신과 사명감을 가지듯, 경찰 와이프도 그 정도 걱정은 감수하고 살아야 해요. 연인도 마찬가지고. 계속 걱정만 해버리면 한도 끝도 없다니까?”
그 말에 은빈의 표정이 스르르 풀어졌다.
“아, 그리고.”
수연이 몇 마디 덧붙였다.
“은빈 씨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신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훨씬 무서운 거라고. 정태 씨는 아마 은빈 씨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을 걸요? 그것만 해도 엄청난 도움을 주는 거지.”
그 말에 은빈이 빼꼼 나를 돌아봤고, 나는 ‘맞습니다.’하고 답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안 좋은 일보다 좋은 일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눈앞에 즐거운 게 있으면 그대로 즐기고.”
“맞는 말씀이에요. 제가 너무 걱정에만 싸여있었나 봐요.”
“그리고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같은 팀이니 좀 더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그 말에 치헌이 팔을 걷어 올려붙이더니 뽀빠이처럼 팔에 힘을 빡 줬다.
아까 성기능 얘기를 할 때 가늘어 보였던 팔이 두세 배는 커진 것 같았다.
이어 경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뒤꿈치를 들고 어깨를 바짝 세웠다.
키가 190은 되어 보였다.
그들의 장난스런 제스처에 은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수연은 ‘별말씀을’하고 답한 뒤.
“하, 오늘 가장 기분 좋은 사람은 내가 아닌가 싶네요.”
기분 좋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맥주 캔을 들었다.
“좋은 사람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서 너무너무 행복해요. 또 내가 언제 이런 분위기 좋은 캠핑장 와보겠어.”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 맥주 캔을 들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마지막 짠 할까요?”
“네.”
“오늘 함께 시간 보내서 너무너무.”
짠-
“즐거웠습니다.”
최후의 장막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