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쓸모.
“여기 있는 여자의 이름은 홍설희.”
관우가 조직도 내 유일한 여자를 가리켰다.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연예인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
“일명 홍마담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유흥의 정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아이돌, 심지어 현직 배우까지도 성매매 대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자죠.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유흥을 즐기고 싶을 땐 다 홍마담을 찾습니다. 이 사람이 백양 3기 첫 번째 멤버. 그리고 다음은.”
관우가 다음으로 가리킨 사람들은 이미 백양 2기에서 언급이 된 이들이었다.
“야당원내대표 이호중 의원과 서인혁 법무부차관입니다. 최근 국내 범죄조직 및 조선족 범죄조직이 다시 동남아에서 국내로 대규모 마약 밀수입을 하고 있는데, 이의원과 서차관이 뒤를 봐주면서 이익을 챙기는 듯한 정황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룸살롱에서 이들과 친분을 쌓은 홍설희가 이에 가담하고 있고요. 이렇게 국내로 들여온 마약은 클럽 등지에서 일반인에게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데요. 그 최대 유통지 중 하나가 바로.”
그가 날 돌아보고 말했다.
“버팔로 클럽입니다.”
“……”
“마약 브로커 수십 명, 전달책 수백 명이 매일 버팔로 클럽을 다니며 마약을 유통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관우가 다음 사람을 가리켰다.
“버팔로 클럽 사장인 양대석도 백양 3기 멤버들과 업을 같이 하게 되죠.”
양대석도 박지석 사건 수사 당시 스쳐봤던 이름이다.
“지난 백양 2기 때 보였던 경기도 땅투기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몇 달 새에 누군가 몇 개의 법인 명의로 어마어마한 양의 땅을 사들이고 있는데, 과거 이의원과 서차관이 했던 땅투기 방법과 매우 유사해 그들이 아닌지 확인 중에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맞다면 2기 때 실패했던 마약사업과 땅투기 사업을 3기 멤버들이 다시 일으키려 하는 것이겠죠.”
관우가 이번엔 사진 한 장을 내보였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건물.
“홍설희가 운영하는 강남의 룸살롱입니다. 백양 멤버들에게 술과 여자, 환각파티를 제공하죠. 홍설희는 오래전부터 마약 브로커들과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언제든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마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의원과 서차관은 대규모 마약 밀수의 뒤를 봐주고, 양대석은 이를 원활히 유통해 사업을 확장시켜주며, 홍설희는 이들의 사업에 발을 담그는 대신 대한민국 최고의 유흥을 제공해주는, 자기들 딴엔 ‘양의 관계’가 성립된 겁니다.”
이 어두운 음지에서 양의 관계가 성립되다니.
“1기, 2기도 마찬가지지만 3기도 이들 외에 멤버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인물로는 ZBC 한시호 기자와 경찰청 공수훈 차장 등이 있습니다.”
“……”
“다음으로 여태 해온 수사과정에 대해 설명 드리죠.”
그가 수사서류를 척척 넘기며 말을 이었다.
“저는 경찰간부후보생 교육을 마친 뒤 84년 경위로 임용하여, 순환근무 후 86년에 곧바로 본청 특수수사과로 들어갑니다.”
그가 간후보 출신이라는 얘기는 주변 직원들에게 몇 번 들었다.
교육성적 1위로 졸업을 했다고.
“그리고 1987년, 제가 속한 특수수사과 형사계 6팀이 백양 전담팀이 됩니다. 백양을 인지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이죠.”
관우가 백양 전담 수사 팀 형사였다니.
“당시 백양 1기 멤버들 사이에는 규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환각파티를 할 때는 꼭 목욕탕에서 하는 거죠. 서로 도청에 대한 의혹을 벗고 즐기자는 의미에서 이응삼 주도로 시작한 것입니다. 나체 상태가 되어 탕에 들어가면 전자기기가 다 소용이 없어지니까요.”
환각파티.
그래서 명호가 본 탕 안에 남녀가 섞여 있던 것이었다.
그 안에서 성매매와 마약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1기 때만 해도 백양 멤버를 이렇게 명확히 구분지어 놓지 않았습니다. 군 장성 중 누군가가 자신의 지인에게 환각파티 맛을 보여주고 싶으면 멤버들의 허락을 구한 뒤 데리고 와 같이 놀곤 했죠. 저희 팀에서 수개월 간 작업한 끝에 이응삼 쪽 브로커를 통해 환각파티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비리경찰을 가장해 파티에 들어가 함정수사를 하는 거죠. 이를 위해 투입조의 소속까지 수개월 전에 변경해놓았었죠.”
“그렇다면 그 투입조라는 분이…”
“맞습니다. 중범과장이었던 부영식 선배님. 그 분이 탕 안까지 들어갔던 투입조였습니다. 마침 그날 배명호 씨를 맞닥뜨린 거고요.”
“…!”
중범과장이면 총경. 무려 총경이 참여한 작전이었다니.
관우는 그 사람이 배명호라는 건 자기도 이제 알게 되었다고 덧붙인 뒤 계속 말했다.
“파티에 초대까지 받은 이상 신체나 소지품을 검사하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과장이 무전기를 탈의실까지 들고 들어갈 수 있었죠. 당시엔 휴대폰 같은 게 없어 무전기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탕에는 들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 무전기를 옷장에 두었죠. 그렇게 파티가 시작되고 탕 안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부과장이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탈의실로 나와 밖에 대기하고 있는 저희 팀에 무전을 하려던 그때, 자기를 지켜보고 있던 배명호 씨를 목격한 겁니다.”
나는 머릿속으로 당시 상황을 그렸다.
“부과장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옷장을 닫고 다시 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보고 있던 그 낯선 이의 정체가 뭔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난 건 아닌지 등에 대해서요. 그때 부과장이 할 수 있었던 건 가만히 탕 안에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요. 밖에 있던 저희 팀 인원들은 ‘무전이 없으면 패스’가 작전이었기에 가만히 계속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부과장은 아무 탈 없이 사우나에서 나왔고 현장을 덮치는 작전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희에게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이응삼이 죽으면서 백양 1기는 해체되었습니다.”
명호는 이 사건에 묘하게 얽혀 들어가 있었다.
백양의 성매매 및 마약 현장을 직접 본 최초의 외부 목격자임과 동시에, 본의 아니게 함정수사를 망친 훼방꾼.
“당시 부과장이 파티에 참가한 멤버가 누군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긴 했지만, 물질적 증거가 없어 이들의 혐의를 입증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탕 안에는 밖으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도 있었다고 합니다. 파티를 벌일 때 건물 자체를 폐쇄함과 동시에 탈출로까지 구비해두어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유흥을 즐겼던 것이죠. 저희가 현장을 덮쳤어도 아마 이들을 검거할 확률은 적었을 겁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됨과 동시에 이들은 이 목욕탕을 철거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백양 1기 수사 때 건진 거라곤 이 조직도와 ‘입증하지 못한 범죄사실’뿐인 것이다.
“이후 몇 달 동안 수사를 더 하긴 했지만 실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나고 백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2기가 등장한 겁니다.”
관우의 표정과 목소리가 묘하게 변했다.
뭔가 모르게 분노가 깃든 것 같은 느낌.
“중범에선 이번엔 꼭 백양 멤버들을 검거하기 위해 대대적인 작전을 계획합니다. 수사 인력도 대폭 늘렸고요. 하지만 너무 힘을 들인 탓일까요.”
“…?”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작전이 탄로 나고 결국 또 다시 백양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
“수사를 망친 덴 제 판단 미스도 한 몫을 했습니다. 당시 백양 전담 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거든요.”
백양 1기 수사 땐 막내였던 그가 2기 땐 팀장까지 올라간 것이다.
“어떤 작전이었죠? 또 청장님의 판단미스라는 건 어떤 겁니까?”
내가 물었으나.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대답을 피했다.
“백양 2기 검거작전 실패 이후로 중범에선 백양 사건에 대해 ‘수사 해제 금지령’을 내립니다. 검거 시까지 무기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죠. 작전 당시 정보 누출이 문제가 되었기에, 이때부턴 다시 소수정예로 백양 수사에 들어갑니다. 그 전담 팀이 당시 중범 6팀이었던 저희 팀이었고요. 추가 수사 인력을 동원할 땐 반드시 과장 결재를 받아야 했고 사건 담당자 변경도 무기한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저희 6팀은 부서 이동을 하고나서도 계속 백양 사건을 전담하게 된 것이죠.”
“……”
“여태 수많은 첩보를 받았고 비밀리에 조사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증거는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어요. 실적 없는 수사가 수개월 동안 이어지니 팀원들도 지쳐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팀원들 각자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하는 등 사실상 백양 2기에 대한 수사도 흐지부지되었습니다. 도저히 수사에 탄력을 붙일 수가 없었죠. 백양 1기부터 기한으로만 다지면 28년, 수사 기간으로 따지면 이십 개월이 넘게 수사를 했지만 단 한 건의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저희가 알아낸 건 온통 정황뿐입니다.”
힘이 빠질 만 했다.
경찰 최고 수사기관에서 저 긴 기간 동안 저렇게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검거를 하지 못했다니.
“그런데 백양 3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작년부터.”
그가 자세를 바꿔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뜬금없이 신임 경찰대생 한 명이 의미 있는 수사들을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중범이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하지 못했던 걸 단 한 명의 경찰관이 엄청난 탁월함으로 조금씩 해결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바로 탁정태 경위, 당신이 말입니다.”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
처음 그의 차 안에서 만나 ‘탁경위님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했을 때 지었던 그 표정이다.
“박지석 사건을 시작으로 배후 조선족 범죄조직들을 하나하나 검거함은 물론 최근엔 백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시호까지 검거했었죠.”
“……”
“게다가 이번엔 배명호 씨 최면수사에서 백양에 대한 단서를 발견함으로써 사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박지석, 버팔로, 상광동 살인사건.
신기하게도 내가 맡은 사건들은 다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탁경위님은 늘 명확히 혐의를 짚어냈고 여죄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수사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의미 있는 증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발견되었죠. 이건 단순히 탁월하다, 유능하다 정도의 느낌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 화한 빛이 들었다.
“경이로웠습니다.”
경이로운 수사라.
혐의를 밝혀내고 여죄가 있으면 이어서 수사하는 것.
수사경찰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왜 그는 경이로움을 느끼는 걸까.
“탁경위 님께 하루빨리 다가가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의미 있는 증거들은 항상 제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증거들을 색출해내는 것. 그 기묘한 일을 탁정태 경위님이 이미 잘 해주시고 계신데, 제가 괜히 탁경위님의 색깔을 흐려 수사에 차질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과로만 봐도 알 수 있듯 백양 수사에 있어선 탁경위님의 색깔이 맞았고…”
그가 왠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중범의 30년 수사 색깔이 틀렸으니까요.”
“……”
“그래서 비교적 늦게 찾아가게 된 거고, 또 백양에 대해서도 이제야 말하게 된 겁니다.”
“음.”
나는 잠자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뗐다.
“이제 답답한 게 다 해소됐습니다. 백양이 뭔지 확실히 알았어요.”
내가 여태 수사하며 유일하게 그 실체를 전혀 밝혀내지 못했던 것.
그건 백양이었다.
“일단 청장님 말씀의 오류부터 정정하고 가죠.”
“… 예?”
“중대범죄수사과의 30년 수사 색깔은 틀린 게 아닙니다. 그 색깔 또한 아주 의미 있는 색깔이죠. 그간 수사과정이 없었다면 백양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백양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관우의 설명 덕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와 중대범죄수사과가 들인 30년 노력의 결과물 덕분이다.
“경찰은 과거의 실패에 메여 있어선 안 됩니다.”
그 억울한 삶을 살아온 명호도 과거에 메여 있지 않을 거라고 했다.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행복한 현재를 살겠다고 했다.
“청장님이 다져온 과거의 수사도 쓸모가 있고,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수사 역시 쓸모가 있습니다.”
백양의 정체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많은 붓과 악기들이 새로운 그림과 연주를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저희 둘이 만났으니 앞으로 할 일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그림과 연주를 뽑아내는 과정을 이미 끝냈다.
이제 그 그림과 연주를 실행에만 옮기면 된다.
“과거의 쓸모와 현재의 쓸모를 합쳐서.”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덧붙였다.
“같이 한 번 백양을 박살내보죠.”
검은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