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검은 돈.
“물론 이전 수사내용들은 정황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직도의 인물들을 범인으로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사 시 아주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죠.”
내가 조직도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청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저는 제 색깔대로 계속 수사를 이어갈 겁니다. 거기에 청장님의 색깔을 입혀서 더 효율적인 수사를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오히려 내가 분위기를 주도하자 관우가 조금 놀란 듯 말을 멎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한 발짝씩 서서히 백양에 다가가보죠.”
“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그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본청중대범죄수사과와 우리 경기북부청의 본격적인 지원이 조금씩 시작될 겁니다.”
“…?”
“일단 최우선으로 신경 써야 할 건 탁경위 님과 주변 분들의 신변안전입니다. 탁경위 님이 수사는 잘 해주고 계시지만 그 속도와 실적이 너무 뛰어나고 언론에도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파급력이 상당합니다. 상대 세력에게 가장 눈엣가시가 되는 사람은 바로 탁경위님이죠. 그러니 혹시 모를 신변 위해에 대비를 해둬야 합니다.”
신변 위해에 대한 대비라.
“어떻게 말입니까?”
“사람을 붙일 겁니다.”
“사람이요?”
“사찰이라 생각하지 말고 경비라고 생각하십시오. 사생활이나 업무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겁니다. 상황 발생 시 바로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귀만 갖추어 놓는 겁니다.”
나는 전혀 내 신변 위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어제 은빈에 이어 오늘 관우까지 내 안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관우는 내 주변 인물들의 안전까지.
생각해보면 내 신변이 가장 중요하긴 하다.
수사를 할 몸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사람을 붙여 귀를 갖추어 놓는 것.
현 시점에서 꼭 필요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관우가 다 준비해놓고 있었다.
“물론 탁경위 님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직접적 위협이 가해질 확률은 매우 적습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분들에게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건 수사 중인 상대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크게 만들면 만들수록 자신들의 비밀스런 부분이 더 드러나는 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위협을 가하기보단 오히려 숨으려 할 겁니다.”
“……”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놓는 겁니다.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이외에도 다양한 전략들을 생각해놓고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함께 의논해 활용해보도록 하죠.”
그 말을 하는 관우의 뒤에서 푸른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과거의 실패를 얘기할 때는 보이지 않던 빛.
그 묘한 에너지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유관우가 아니다.
과거의 수많은 도전과 고난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단하고 거대한 현재의 유관우다.
바다의 거대 포식자들은 전부 다 적일 줄만 알았는데.
“한 번 잘 해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장 큰 고래 중 한 마리가 내 편이었다.
#
다음 날.
“안녕하십니까.”
출근하니 사람들은 이미 다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여, 교수님 오셨네.”
경수가 씨익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교수님이요?”
“그래, 철학과 교수님.”
“…?”
“인생은 유한하니 지금 당장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세요. 크흐- 어제 탁정태 교수님의 인생강의 자알- 들었습니다.”
“……”
“너 교수님 행세 하더니.”
경수가 내 겉옷 앞주머니에 끼워져 있던 펜을 꺼내 들었다.
“비싼 펜까지 구비하고 다니시네. 이거 어디 거야? 엄청 좋아 보이는데?”
“은빈 씨 동생이 생일선물로 준 겁니다. 그냥 펜이 아니라 녹음과 촬영기능이 탑재된 특수 펜이에요.”
“에?”
그가 눈을 크게 뜨며 펜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카메라 기능까지 있다고? 그럼 이거 완전히 수사 장비잖아?”
따지고 보면 펜이라기보다는 수사 장비라고 하는 게 맞았다.
“근데 이거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그가 계속 펜을 살피더니.
“에이, 배터리가 나갔네. 정태 너 이거 계속 켜놓은 상태로 다니고 있었어.”
“켜놓은 상태요?”
자세히 보니 정말 펜 스위치가 ‘ON’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래. 이거 일단 충전시키고, 안에 SD카드 빼서 쓸데없는 영상들 다 지워야겠는데?”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SD카드를 분리한 뒤 케이블을 연결해 펜 본체를 충전했다.
이어 SD카드를 컴퓨터에 연결해 처음부터 쭉 살펴보며 내게 물었다.
“다 지우면 되지?”
“잠시만요.”
저장된 영상 목록 중 특정시간이 내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줄 첫 번 째 영상 재생 한 번 해주십시오.”
“이거?”
경수가 영상을 켜니.
‘…!’
내가 생각하던 그날의 영상이 나왔다.
“뭐야, 여기 어디야? 뭔가 익숙한데?”
“ZBC 방송국 앞입니다.”
“…!”
내가 한시호를 검거하기 위해 ZBC 방송국 앞에 갔을 때의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그럼 한시호 검거장면까지 녹화되었을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조금 뒷 시간 걸 확인해보죠.”
지금 한시호 검거영상을 확보한다고 해서 실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인물의 영상들을 확보해놓으면 나쁠 건 없다.
게다가 그는 백양에 깊게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경수가 빨리 감기를 하며 뒷 영상을 확인해보니.
“에이 뭐야. 건물 들어가고 나선 녹화가 안 되어 있네. 펜이 앞주머니에 쓸리면서 켜졌다 꺼졌다 했나보네.”
뒤에는 영상이 없었다.
방송국 앞 장면만 있을 뿐.
“그거 스위치 버튼 안 쓸리게 잘 넣어야겠다.”
“……”
“그럼 이 영상들 다 필요 없지? 다 지운다.”
“잠시만요.”
“응?”
“아까 방송국 앞에서 찍힌 영상, 다시 한 번 보죠.”
내 요청으로 경수는 처음 켰던 영상을 다시 틀었다.
“이거 왜? 방송국 정문 앞 밖에 안 나오는…”
“여기.”
내가 그의 어깨 너머로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 정지시켰다.
“저 여자 좀 확대해보세요.”
“여자?”
저 반대편에서 방송국 앞까지 걸어온 여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 난 또 뭔가 했더니. 정태도 역시 남자는 남자야. 그새 예쁜 여자를 캐치했네.”
경수가 피식 웃으며 장면을 확대했다.
역시 내가 본 게 맞았다.
“왜 확대하라는 거야? 정태 네 스타일이냐? 너 이거 은빈 씨한테 내가 다 말한…”
“홍설희에요.”
“… 응?”
“백양 멤버인 홍설희입니다. 저 여자.”
“뭐!?”
경수가 눈을 크게 뜨고 확대한 설희의 얼굴을 훑었다.
어제 관우를 만나고난 후 팀원들에게 백양에 대한 설명을 했기에 경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분명 어제 조직도에서 봤던 그 홍설희가 맞다.
‘백양’, ‘홍설희’라는 말에 치헌과 기섭, 현민도 경수의 모니터로 달려들었다.
“헐, 얘가 여기 왜 있어?”
“지금부터 알아내야죠. 영상 다시 재생해보시죠.”
경수가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설희는 자연스럽게 방송국 쪽으로 걸어오다가 정문에 이르러 갑자기 놀란 듯 푸득거리며 멈춰 섰다.
그리고는 빙그르 돌아 다시 왔던 길을 빠르게 걸어갔다.
“뭐야, 정태 너 보고는 다시 돌아가는데?”
“한시호를 만나러 온 겁니다.”
“한시호를?”
“이 시간엔 방송국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홍설희는 당연히 방송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정문까지 걸어왔어요. 이미 한시호와 약속이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정태 널 발견하고 바로 도망간 거구나.”
“맞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추측할 수 있는 건 한시호의 휴대폰이 여러 개일 것이란 겁니다.”
“휴대폰이 여러 개라고?”
“저를 알아본 홍설희는 분명 한시호에게 연락을 취했을 겁니다. 하지만 한시호의 사무실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제가 오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알았다면 거기 있지도 않았겠죠. 홍설희가 연락은 했지만 한시호는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시호는 백양 멤버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휴대폰을 별도로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날은 그 폰을 집에 두고 온 거고요.”
기섭과 현민이 내 얘기를 들으며 와, 하고 혀를 내둘렀다.
“영상을 보시면 홍설희는 도망치듯 빨리 걸어 코너를 돌아 사라집니다. 저때부터 홍설희 이동경로를 추적해야 해요. 주변 CCTV 영상 다 확보해야 합니다.”
그녀가 이후 어디로 이동했는지, 그녀와 한시호의 구속영장 기각 사이에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등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더 깊게는 백양과 연관이 있는지 까지.
“저기 코너를 돌면 곧장 지하철역이 나옵니다. 지하철 내부 CCTV도 확보해서 홍설희가 지나간 장면이 있는지…”
“아니.”
보기 드물게 경수가 내 말을 끊었다.
“지하철은 확인할 필요 없어. 택시를 확인해야지.”
“…?”
“홍설희 착장을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베르메스야. 명품 컬렉션 수준이라고. 게다가 구두까지 신었는데 저 럭셔리 마담이 지하철을 타겠니? 코너만 딱 돌아서 몸 숨긴 뒤 곧장 택시 탔을 거야.”
그리고는 우리를 둘러보며 덧붙였다.
“저 콧대 높은 여자가 지하철 탈 확률? 0프로야. 확신해.”
경수가 자신감에 가득 차서 말했다.
그 포스에 우리는 저도 모르게.
끄덕-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에 있어서 경수의 진술은 물적 증거에 준하는 증명력을 가지니까.
“그럼 저 시간대 근처 도로를 이동한 택시 번호 최대한 많이 따서 이동 경로 확인하고 블랙박스 영상까지 입수해보죠.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지 않았으니 영상 아직 남아있을 겁니다. 아직 죄명이 확보된 게 없으니 최대한 말로 잘 구슬려 협조 받아야 합니다.”
“오케이. 그런 건 나한테 맡기라고.”
그렇게 다들 의지를 다지며 수사에 나서려고 하는데.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장치헌 팀장님?”
처음 보는 직원이 치헌에게 다가왔다.
“예?”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금융범죄수사대에 근무하는 차진철 경위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그런데 금수대에선 무슨 일로…?”
금융범죄수사대는 이름 그대로 대규모 사기 및 다단계 사건, 고위공직자 뇌물, 세금관련 사건 등 경제 금융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는 곳이다.
“합동수사를 좀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합동수사요?”
“예, 저희가 인지해서 수사하려는 사건이 있는데. 좀 큰 건이라 합동수사를 하면 어떨까 해서요.”
그가 정중히 부탁했지만.
“죄송합니다.”
치헌이 더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 저희가 좀 중대한 사건을 인지해서요. 이 사건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광수대 1팀에서도 분명 반길 거라고 해서 왔는데…”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치헌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진철이 말했다.
“제가 경기북부청 정보과 정환태 경감이랑 동기거든요.”
“…!?”
“사건 관련해서 뭘 좀 물어보려고 전화했는데 대뜸 광수대 1팀이랑 합동 수사를 하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끼어들었다.
“수사 대상이 되는 장소가 어딥니까? 수사 내용은 뭐고요.”
“수사 장소는…”
그가 잠시 틈을 두고 답했다.
“버팔로 클럽입니다. 클럽에 흘러 들어간 수백억 대 검은 돈을 추적할 거예요.”
안 통하면 안 통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