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첫 연기.
“경찰이 되려면 총도 잘 쏴야 하잖아요.”
정우가 방탄조끼를 입으면서 답했다.
“총은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잘 쏴도 돼.”
“저는 시험을 잘 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경찰의 역할을 하고 싶은 거지.”
“……”
그의 고집은 여전했다.
아마 계속 저렇게 생각한다면 영원히 경찰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저는 그냥 경찰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
“프로파일러가 될 거예요.”
그새 목표의 색깔이 조금 바뀐 모양.
“형부터 쏴요.”
우리가 있는 곳은 서울의 한 실탄 사격장.
사로에 나란히 선 우리 뒤로 안전요원들이 맨투맨으로 붙어 있다.
나는 방탄조끼와 귀마개, 보호고글까지 착용한 뒤 총을 들었다.
“약실 한 칸을 비워두고 총알 5발을 장전해.”
나는 정우를 위해 설명을 하며 장전했다.
“공탄은 열두시로 두고 장전.”
찰칵-
“정면을 보고 똑바로 서서 다리를 어깨너비 정도로 벌려. 그리곤 몸 중심을 약간 앞으로 실은 뒤에 총이 안 흔들리게 파지하고 앞으로 쭉 뻗어.”
나는 집중해서 앞을 주시했다.
“가늠쇠와 가늠자를 중앙에 맞추고 정조준 해. 그렇게 조준선이 정열 됐으면 조준선을 표적에 놓고 천천히 호흡해.”
스읍- 후-
스읍- 후-
“조준선의 흔들림이 최소화되었을 때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뒤 호흡을 3분의 1정도만 내뱉고 멈춰.”
스읍- 후- 흡.
“그리고 방아쇠를 천천히 당겨. 격발 직전까지 방아쇠 움직임을 느끼면서. 그리고 격발 직전엔 당긴다는 느낌마저 없애야 해. 이렇게.”
탕-!
“무의식 격발을 하는 거지. 그래야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고 정렬한 조준선대로 명중시킬 수 있어.”
“……”
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정우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첫발은 클리크 확인용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이 총은 내 기준으로 우상탄이 나도록 클리크가 맞춰져 있어. 그럼 인위적으로 방향을 조절한 뒤 이전 격발 방식 그대로.”
탕-!
“격발하면 원하는 곳에 맞출 수 있지.”
표적의 우측 복부를 맞췄던 첫발과는 다르게 두 번째 탄은 좌측 허벅지를 맞혔다.
“방향을 잡았으면 조금 속도를 높여서.”
탕-!
…
탕-!
…
탕-!
“이렇게 명중된 탄이 한 곳으로 몰릴수록 잘 한 사격이라고 할 수 있어.”
표적을 보니 좌측 허벅지 한 곳에 구멍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그렇게 설명을 끝내고 뒤돌아보니.
“저는 그 자세로 안 쏘고.”
정우가 심드렁한 표정 그대로 자기 사로로 들어갔다.
“위버식으로 쏠게요. 수술한 어깨에 충격 갈 수도 있으니까.”
“!?”
그리고는 총알을 장전 후 비스듬히 서서 총을 파지하고 앞을 조준했다.
“호흡 격발 다 따지고 쏘려면, 쏘기 전에 칼을 맞을 거예요.”
“……”
“그런 일련의 과정들은 하나의 타이밍으로 마무리 짓고.”
탕-!
“곧장 격발해야죠.”
놀랍게도 그는 정확한 위버식 자세로 격발했다.
“그래야 적이 다수일 때도 다치지 않고.”
탕-! 탕-! 탕-! 탕-!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요.”
발사된 탄환은 정확히 표적을 관통했다.
구멍 5개가 마치 하나의 구멍처럼 촘촘히 모여 있었다.
그런데 명중된 곳이.
“그건 제압이 아니라 사살이야.”
“칼이 날아 들어오는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허벅지를 딱 조준하고 쏠 수 있겠어요?”
허벅지가 아닌 머리였다.
“형이 그랬잖아요.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상대를 사망케 하더라도 과잉방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된다고.”
“……”
“급박한 상황에서 피의자, 피해자, 경찰관 중 한 사람이 피치 못하게 해를 입어야 한다면, 당연히 피의자가 해를 입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중 잘못이 있는 사람은 피의자뿐이잖아요. 총 안 쏘고 가만히 있다가 경찰관이나 피해자가 다치게 할 순 없어요.”
“그래도 죽이는 건 지양해야 해. 최대한 허벅지를 맞추려는 훈련을…”
탕-! 탕-! 탕-! 탕-! 탕-!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정우의 사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표적지 머리에 또 큰 구멍이 생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그렇게 둘 다 사격을 마친 후.
“이전에 여기 와본 거지?”
사로에서 나와 내가 정우의 표적지를 보며 물었다.
표적지의 머리 부분이 아예 다 날아가 버렸다.
“이번이 다섯 번째예요.”
“다섯 번째 만에 이렇게 잘 쏜다고?”
“두 번째 때부터 이랬어요.”
“……”
“순간적으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면 돼요. 완전히 총과 하나가 되어서 총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느끼는 거죠. 그럼 내가 원하는 대로 총을 가지고 놀 수 있어요.”
그는 마치 수십 년간 총을 다뤄온 사람처럼 얘기했다.
뭔가 모르게 이질적인 느낌의 말투와 표정.
남들이 나와 대화할 때도 이런 기분을 느낄까?
“너 아까.”
내가 주제를 바꿨다.
“프로파일러가 될 거라고 했잖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최악의 범죄자들은 법만으로 잡을 수 없으니까요.”
“법만으로 잡을 수 없다니?”
“그들은 연기를 하거든요. 지독한 연기를.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혐의를 밝혀낼 수 있어요. 심리를 읽어야 하죠.”
심리를 읽는 것.
최근에야 그게 무슨 느낌인지 조금 알게 되었지만.
아직은 내게 낯선 영역이다.
나는 법만으로 상대의 혐의를 밝히는 게 익숙하고 편했다.
하지만 정우의 말대로 법만으로 범죄자를 잡을 수 없다면.
상대의 마음을 파고들어야만 혐의를 밝혀낼 수 있다면.
심리를 읽는데도 익숙해져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훈련법이 뭔지 아세요?”
“뭔데?”
“내가 연기를 해보는 거예요.”
“…?”
“내가 연기를 해보면서 연기하는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온전히 느끼는 거죠. 제가 저번에 말한 거랑 같은 맥락이에요. 범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거요.”
“……”
“경찰은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사에 엄청난 옵션들이 생겨요. 예를 들어 피의자나 참고인을 데려다 놓고 무언가를 해줄 것처럼, 또는 진술을 안 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상황을 꾸며대는 거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요. 때론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어떨 땐 격려하거나, 또 윽박지르기도 하고요.”
연기를 하는 것.
범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둘 다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조사뿐만 아니라 검거 현장에서도 연기는 유용해요. 연출된 움직임을 이용해 미끼를 풀어 범인을 검거할 수도 있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긴 했다.
물론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것들이지만.
아마 경수나 치헌은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형은 왠지 연기를 못할 거 같아요. 저는 잘 할 수 있는데.”
“……”
“이런 거 보면 형이랑 저랑 좀 다르죠.”
그렇게 말하며 정우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 그와 나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다.
“연기의 첫 번째 단계는 뻔뻔해지는 거예요.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지는 상태. 그래야 상대를 속일 수 있거든요.”
“……”
“그렇게 상대를 속여 본 사람이어야만 나를 속이려는 상대를 간파할 수 있는 거죠.”
나는 내가 뻔뻔해지는 모습을 머리에 그렸다.
붓이 움직이지 않았다.
“형이 다루는 범죄가 중대해질수록 이 연기가 필요해질 거예요. 확신해요.”
연기를 할 줄 안다면 수사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경수나 치헌과 있을 때 그런 시너지를 느꼈으니까.
나는 정우를 가만히 쳐다보며 오늘 그를 만나서 느낀 감정들을 쭉 되짚어봤다.
총을 쏘고 싶다고 했을 때, 너무나 능숙히 총을 쏘는 모습을 봤을 때, 프로파일러가 되겠다며 연기의 중요성을 어필했을 때.
확실히 그를 만나면 새로운 감정들을 많이 느낀다.
“저는 꼭 훌륭한 프로파일러가 될 거예요. 그래서 경찰 수사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할 거예요.”
내가 계속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답했다.
“넌 이미 경찰 수사에 꽤나 큰 역할을 하고 있어.”
“… 네?”
“네가 준 펜에서 엄청 중요한 인물에 대한 단서를 확보했거든.”
“정말요?”
그의 눈이 커졌다.
“지난 펜타곤 클럽 때도 네 활약이 컸고.”
“헤…”
“네 사격실력 만큼 수사실력을 갖춘다면 넌 한국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될 거야.”
“진짜요!?”
두 손을 모으고 활짝 웃는 그.
나는 그 표정을 보며 오늘 느낀 감정들을 다시 곱씹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만 가자.”
사격장을 나왔다.
#
다음 날, 서울청 금융범죄수사대 회의실.
“여기 배치표 받으시고요.”
치헌이 금수대 직원들에게 배치표를 나눠줬다.
우리 광수대 1팀에 금수대 3개 팀이 모여 회의실이 꽉 찼다.
“무전기 이어폰은 다들 챙기셨죠?”
치헌이 묻자 다들 이어폰을 들어보였다.
“지금 끼워서 작동상태 괜찮은지 확인해보시고요. 말씀드린 별도 망으로 무전기 채널 변경해주세요.”
치헌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저께 기 싸움을 하던 정규도 마찬가지.
금수대에 경감 팀장들이 섞여 있는데도 치헌은 전혀 기죽는 기색이 없었다.
“무전기 확인하셨으면 다들 잠시 주목해주세요.”
그 말에 직원들의 고개가 치헌 쪽으로 홱홱 돌아갔다.
“자, 오늘 차량이 무려 9대가 움직입니다. 사제 차를 배차 내는 거긴 하지만 작전 자체가 매복이니 들키지 않게 잘 움직이셔야 합니다.”
흩어져 매복하자는 정규의 의견에 따라 차를 최대한 많이 배차 냈다.
움직이는 규모가 큰 만큼 보안에 철저해야 한다.
“또 인원이 많고 작전 지역이 넓으니 무전지시에도 잘 따라주셔야 합니다. 출동 전에 두 가지만 당부하겠습니다.”
치헌이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첫째는 지시하지 않은 행동, 보고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독행동을 하는 순간 지휘체계가 다 무너지니까요. 둘째는 각 배치장소에서 감시 대상이 나타나기 전까진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회의 때 탁경위가 말했듯 전달책들은 별도의 교육을 받을 정도로 경찰 감시에 매우 민감합니다. 괜히 튀는 행동을 해서 먼저 들켜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각 배치장소로 출발하죠.”
치헌의 말을 끝으로 인원들이 우르르 회의실에서 나왔다.
치헌이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며 내게 물었다.
“이거, 맞는 거지?”
그가 입을 양가로 쭉 늘어뜨리며 나를 흘겨봤다.
아까 직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전파할 때와는 다른 표정.
끄덕-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 수사만 잘 되면야 아무 문제없지만, 이건 뭐랄까. 정태 네가 제안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수사방식이라 말이야.”
“……”
“어쨌든 난 네 방식이 더 좋고 옳다고 믿으니까 의심 없이 그대로 갈 거야. 돌발 상황 생기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거고.”
어제 정우를 만나고 나서 ‘연기’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다.
내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분명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았다.
당장 이번 수사만 해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천천히 조금씩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튼 이번 수사도.”
그리고 이미.
“잘해보자!”
내 첫 연기는 시작되었다.
더 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