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선의의 거짓말.
다음 날, 광역수사대장실.
“어, 들어오게.”
치률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어제 고생 많았지?”
그가 이전과는 다르게 따뜻한 말투로 물었다.
“배명호 사건에 이어서 어제 금수대 합동사건까지. 하, 탁경위가 워낙 수사능력이 탁월하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구만.”
“배명호 사건이 아니라 상광동 살인사건입니다.”
“아… 그래. 상광동 살인사건이지 참…”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어제는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나?”
“거구의 조폭들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
입을 쩍 벌리는 그.
“다… 다친 곳은 없나?”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오히려 달려든 쪽이 다쳤죠.”
“…?”
“장팀장님이 고생을 좀 하셨습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다행이구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절 부르셨죠?”
“아, 알려줄 게 있어서 불렀네.”
알려줄 것?
“이때까진 늘 탁경위를 불러서 안 좋은 소리를 했지만…”
한시호 수사에서 우리 팀을 떼어낼 때.
배명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수사브리핑을 열겠다고 했을 때.
그와의 대화 분위기는 항상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을 들고 왔네.”
“좋은 소식이요?”
내가 되묻자 그가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특진 소식일세.”
“!?”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특진 명단에서 탁경위 자네가 거론되는 것은.”
특진이라.
기본적으로 매년 실적이 우수한 직원을 특진시키니 내가 특진명단에 거론된다는 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던 일이라 조금 뜬금없긴 했다.
“솔직히 조직 윗선에선 자네의 활약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거야. 원래 인기와 질투는 함께 붙어서 오는 거니까.”
“……”
“하지만 이제는 위에서도 자네에게 어떤 포상을 내리지 않고는 안 되는 지경까지 온 거지.”
“…?”
“여론이 끓고 있네.”
치률이 캡처본을 프린트 한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
내 사건 관련 인터넷 기사 댓글들이었다.
[이 시대 진정한 경찰은 탁정태다.]
[우리 정태 오빠 승진시켜주세요옷!!]
[수많은 견찰 사이에 경찰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탁정태.]
[골 빈 청장 서장들 다 내리고 탁정태를 고속 승진시켜라!!]
[살인범 잡은 것만 몇 번인데, 아직 경위인 게 말이 되냐?]
그런 댓글들이 수백, 아니 수천 개가 달려 있었다.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친분도 없는 나를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다니.
하지만.
“그동안 중대사건들을 연달아 맡느라 몸과 마음 다 고생했을 텐데, 조직에서 특진 정도의 보상은 해줘야 하지 않겠나.”
“고생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요.”
나는 특진을 하려고 수사를 열심히 한 게 아니다.
“오히려 기뻤습니다. 커다란 사건들이 제게 밀려와줘서요.”
“…?”
“수사를 할 때마다 매번 미칠 듯한 흥분과 쾌감을 느꼈습니다. 눈이 돌아가 정신을 잃을 뻔한 적도 있죠.”
그저 내 몸이 원해서 한 것이다.
즐겁고 짜릿해서 한 것이다.
쏟아지는 업무에 눈이 충혈 되고 코피가 나면서도 수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수사에 집중할 때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
그 도파민의 중독에서 나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남들은 수사하다가 미쳐버리겠다고 하는데, 나는 수사를 안 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중대한 업무가 제게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었다.
‘중대한 업무’라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흥분 때문에 가슴이 세게 뛰었다.
치률은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조직이 저한테 주는 보상은 중대사건이 쏟아지는 광수대에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수사다.
“특진은 저희 팀원들에게 주시죠.”
특진은 원하는 사람이 받아야 한다.
수사는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니, 치헌을 포함한 우리 팀원들 중에 특진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하는 게 맞다.
“저는 특진 필요 없습니다.”
“아,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치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하는 특진 소식은 탁경위 자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닐세.”
“…?”
“어쩌면 자네 팀 전원이 승진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
“지금 서울청 광수대 1팀의 실적은 전국에서 독보적으로 가장 뛰어난 수준이니까. 2등과 3등 실적을 합쳐도 자네 팀의 성적을 못 따라 갈 걸세. 광수대 1팀 5명이 미친 실적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지.”
“……”
“매년 가장 실적이 우수한 직원을 승진시키기 위해 각 계급별로 티오가 내려오는데, 계급별 가장 우수한 직원들이 광수대 1팀에 모여 있으니, 자네 팀 전원이 특진을 하는 건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거야.”
놀라웠다.
팀 전원 특진은 경찰 역사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치률의 말대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탁경위 자네는 필히 먼저 특진이 되어야 해. 항상 자네가 사건해결의 중심이었으니까.”
“……”
“팀원들이 자네 덕에 특진을 할 수는 있지만, 자네를 제쳐두고 팀원들만 특진을 할 수는 없네. 조직에서 특진을 내릴 땐 임팩트와 타당성이 필요하거든. 탁정태 빠진 특진이라고 하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그럼 용납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렇게 되면 전부 다 특진을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가 있지.”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특진을 못하는 것.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특진이 내려오면 기분 좋게 받아.”
“… 알겠습니다.”
“지금 분위기 상으론 별다른 일 없으면 올해 상반기 안으로 특진이 될 거야. 탁경위 자네는 거의 확정, 장팀장과 고경위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도 같이 특진을 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
그리고는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동안 싫은 소리만 해서 미안했네.”
“……”
“오늘은 좋은 소식을 전하게 돼서 나도 기뻐.”
그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내 입장도 이해해주게. 나중에 이 자리에 와 보면 알겠지만 나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하거든. 윗사람 얘기를 전해주는 전달자말이야.”
지방청 총경은 그저 전달자에 불과한 거였나.
“다음에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구만. 이만 가보게.”
“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인사한 후 치률의 방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 사무실로 가려는데.
“탁경위님.”
금수대 최정규 1팀장과 마주쳤다.
그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저… 어제 작전 따라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네.”
짧은 내 대답에 그가 더 뻘쭘해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알아보니 조폭 놈들이 칼질을 했다던데… 고생은 다 하셔놓고 검거실적도 저희 주셔서 감사하고요.”
“고생은 장치헌 팀장님이 했습니다. 감사 인사는 팀장님한테 하시죠.”
“아, 네. 안 그래도 하고 오는 길입니다. 장팀장님이 세부 지휘는 다 탁경위님이 하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오는 방향을 보니 우리 사무실에 들렀다 온 모양.
“회의 때 저희 작전의 단점만 본다고 탁경위님께 싫은 소리를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제가 색안경을 끼고 광수대 분들을 대한 것 같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으셔서 제가 질투를 했나 봐요. 괜히 아니꼽게 보기도 하고…”
“……”
“회의 중 무례했던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여 목례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눈엔 독한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어느새 어두운 기운은 다 사라지고 선한 기운만 남았다.
부리부리하고 강한 인상이 이제는 오히려 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그와 똑같이 목례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가 내게 고마움을 표한 것보다, 치헌을 찾아가 고마움을 표했다는 게 더 기분이 좋았다.
수사를 내 멋대로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합동’이라는 목적이 잘 이뤄진 것 같았다.
“서류에 광수대 분들 이름 같이 넣어놓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대화를 마치고 내가 돌아서려는데.
“아, 저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감시 장소 배치도 계산을 다 하고 하신 겁니까?”
“…?”
“회의 때 그러셨잖아요. 실제 전달책인 MD를 선별하실 거라고. 그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정확하게 광수대 분들만 전달책 근처에 대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아서요.”
“……”
“나쁜 뜻으로 묻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럽니다. 일부러 저희 금수대 인원들을 다른 곳에 배치하고 광수대 분들을 전달책 근처에 배치한 겁니까?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예측하시고요?”
“……”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질문에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저 신기해서 묻는 것일 뿐.
하지만 왠지 나는 진실을 말하기 싫었다.
‘일부러 당신을 의미 없는 곳에 배치했다’는 말을 해서 괜히 그가 갖고 있는 감정, 특히 치헌에게 갖고 있는 고마운 감정을 깨기가 싫었다.
‘합동’의 의미를 깨기도 싫었고.
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선의의 거짓말.
연기를 연습할 때.
상대를 속여도 아무 법적 문제가 없는, 오히려 더 양질의 결과가 나오는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거리낌 없이 연기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우가 내게 조언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뻔뻔해져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어 내게 무척 어려운, 진실에 반하는 그 말들을 한 마디씩 꺼냈다.
‘뻔뻔하게. 최대한 뻔뻔하게…’를 속으로 되뇌이며.
하지만.
“그. 럴. 리. 가. 요.”
말은 내 마음과 전혀 다르게 튀어나왔다.
“제. 가. 신. 도. 아. 니. 고.”
뻔뻔하긴 커녕 세상에서 제일 뻣뻣한 말투.
“어. 떻. 게. 그. 런. 걸. 예. 상. 하. 겠. 습. 니. 까.”
“???”
그렇게 나는 어설픈 첫 연기를 마무리하고.
“그. 럼. 이. 만.”
로봇처럼 걸어 사무실로 돌아갔다.
*
잠시 후, 광수대 사무실.
[“감히… 형사 상대로 살인 협박을 해?”]
나는 팀원들과 함께 펜에 녹화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CCTV 없는 게 누구한테 이득인지 보여줄게.”]
자기 음성을 들은 치헌은.
“윽!”
표정을 팍 찡그렸다.
“내가 저런 대사를 했다고?”
“네.”
“미쳤었나봐. 엄청 오글거리네.”
“멋있었습니다.”
“우웩. 멋있기는 무슨.”
“움직임은 경이로웠고요.”
“야, 그만 놀려!”
그 후 영상에선 치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퍽퍽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그 소리만으로도 당시 상황이 시각화되어 다시금 짜릿함이 전해져왔다.
“아, 참 그리고.”
치헌이 모니터를 등지고 내게 말했다.
“아까 금수대 최정규 팀장 와서 그러는데, 백성용이가 입 꾹 닫고 진술거부권 행사하고 있다네. 혐의를 인정할 생각이 없나봐.”
“……”
“백성용 휴대폰도 포렌식 맡기긴 했는데, 틈날 때마다 새로 구해다 쓴 대포폰 같다면서, 의미 있는 자료들이 나오진 않을 것 같대.”
진술을 거부하는 것. 대포폰을 사용한 것.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수백억을 돈세탁하는 범죄자라면 으레 그러할 테니까.
“너 백성용이랑 백양 연계해서 수사하려 했던 거 아니냐? 근데 쟤 계속 입 다물고 있고, 폰도 대포폰이면 어쩌냐. 홍설희도 튀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이번 수사에선 백양이랑 연계되는 건 전혀 건진 게 없을 거 같은데.”
“건진 거 있습니다.”
“… 응?”
“꽤 특별한 자료 하나를 얻었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치헌.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더 퀸’에서의 상황을 상기했다.
현장에서 건진 특별한 자료.
그건 분명 나중에 유용한 수사단서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현장에서의 일들을 되짚어보고 있는데.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증태야!”
오랜만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