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탁정태 효과.
언론계의 거물인 한시호.
대체 누가 그를 강제로 이리 보낸 걸까.
또 시호가 말했던 ‘백양이 저지른 또 다른 살인’은 진짜 일어난 일일까.
“후, 정태야 일단 과수팀부터 부르자.”
“……”
나는 별장 안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
다음 날, 서울청 과학수사과.
“영향력 있는 피해자라 그런지 부검이 바로바로 되네요.”
명호의 최면수사를 맡았었던 송가락 경정이 팩스 온 서류를 들고 내게 말했다.
한시호 건은 발생지가 포천이니 사건은 포천서에서 맡기로 했다.
“타청에서 이렇게 협조 잘 해주는 것도 신기하군요.”
포천서는 경기북부청 관할 경찰서다.
우리 광수대는 포천서와 서로 지원하며 한시호 사건을 수사하기로 했다.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인지하긴 했지만, 관할이 넘어간 이상 타청에서 이렇게 수사를 공조하고 관련 서류를 선뜻 보내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가락은 관우와 나 사이 관계를 모르니 더 신기할 터.
“어쨌든 부검 결과를 보면.”
가락이 꺼구정한 자세로 서류를 살폈다.
“탁경위 님이 짚으신 게 정확히 맞습니다. 왼팔에 난 주사자국. 이리로 들어간 물질 때문에 한시호가 사망한 거예요.”
“그 물질이 뭡니까?”
“테트로도톡신입니다.”
그가 날 보며 말을 이었다.
“신경과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맹독성 신경독입니다. 0.3ml만 있어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죠. 일반인들에겐 ‘복어독’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복어독을 주사기에 넣어 인체에 주입했다라.
“이 복어독이 사람 몸에 들어가게 되면 숨을 쉬지 못하고 신경과 모든 근육이 마비되면서 죽어요. 부검 정밀결과를 보면 사체 기관지에 거품이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어요. 이는 보통 호흡곤란을 겪으며 사망한 사체에서 발견되는데, 한시호는 물에 빠져 죽은 것도, 목이 조여 죽은 것도 아닌데 거품이 발견되었죠. 아니나 다를까 피검사를 해봤더니 테트로도톡신이 검출된 거예요.”
“테트로도톡신, 그 복어독을 일반인이 추출할 수 있나요?”
“아뇨, 불가능합니다. 쉽게 말해 복어독이란 거지, 복어독에서 테트로도톡신만 따로 추출하기 위해선 엄청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요. 가열과 여과, 흡착과 혼합을 거쳐 탈착까지 하는 과정을 2~3회 거쳐 감압농축 및 결정화까지 해야 하죠. 일반인은 할 수 없습니다.”
얼핏 들어도 매우 복잡했다.
저런 과정은 비전문가가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그럼 테트로도톡신을 그들이 어디서 구해 한시호에게 주입했다는 말입니까?”
“어둠의 경로로 구했겠죠.”
“어둠의 경로요?”
내가 되묻자 가락이 잠시 틈을 두고 답했다.
“약품회사 직원들 중에 테트로도톡신을 뒤로 빼돌리는 놈들이 가끔 있습니다. 가격이 1ml에 천만 원 정도이니 직원들도 혹할 만하죠.”
추출이 어렵고 독성이 센 만큼 가격도 비쌌다.
“그래도 함부로 그런 짓을 하진 않을 텐데요. 규정을 어기고 약품을 빼돌리다 되레 구매자에게 협박을 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름 믿을만한 어둠의 세력에게 판매하죠.”
“믿을만한 세력이라면…”
“북성파 놈들입니다.”
“…!”
“몇 해 전 대구에서 근무할 때도 가정집에서 지인에게 테트로도톡신을 음료에 타 먹인 뒤 화재로 위장하려다 들통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테트로도톡신 출처를 추적해보니 북성파 놈들이 약품회사 직원에게 산 것이더군요.”
북성파는 국내 최대 폭력조직으로 경상도에서 활동을 시작해 현재는 서울은 물론 전국에 세력을 떨치고 있는 범죄조직이다.
“뭐 물론 중국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테트로도톡신을 몰래 들여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시호를 작업한 건 탁경위 님이 일전에 수사하신 조선족 애들일 수도…”
“아뇨.”
말 중간에 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조선족 범죄자들은 아닐 겁니다.”
“…?”
“방법이 달라요. 살인 계획이 거칠지 않고 정교하며 사체도 가져가지 않았어요. 조선족 범죄자였다면 분명 장기매매를 위해 사체를 살려 가져갔을 겁니다.”
“……”
“아마 북성파도 ‘그 세력’에 가담한 것 같네요.”
“그 세력요?”
가락이 되물었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아까부터 계속 유심히 보고 있던 서류를 손에 들었다.
시호의 사체를 닦아낸 뒤 앞뒤 모습을 촬영한 사진.
그 사진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이건 분명 명호가 최면수사 때 말했던…
“송수사관님.”
나는 마침내 사진에서 눈을 떼고 가락에게 넌지시 물었다.
“마약왕 이응삼 아시죠? 이응삼 부검 당시 사진 좀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
= “한시호가 그동안 거기 은둔해 있었군요.”
과학수사과를 나와 사무실로 오자마자 이정재 검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전화를 해도 연락도 안 되고 출석도 안 해서 수배를 걸어놨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사망했을 줄이야.”
지난 이형준 형사 사건 관련해서 한시호는 구속영장만 기각됐을 뿐이지 조사는 받았어야 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 정재가 수 회 출석요구를 했으나 불응하여 지명통보 수배까지 내렸었던 모양.
= “탁경위님 말씀대로 누가 한시호를 그리로 몰아넣고 죽인 거라면, 이 이형준 형사 사건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한시호가 청부살인 의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살해당한 거니까요.”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한시호의 입에서 모종의 세력에 대한 정보가 발설될까 우려되어 죽인 거 아닐까요. 한시호는 마약중독자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불안 요소가 있으니까요.
= “그 모종의 세력에 서인혁 법무부차관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 “예!?”
= “서인혁 법무부차관, 잘 아시나요?”
정재가 놀란 듯 잠시 말을 멎었다가 답했다.
=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검사 출신이고 저희 선배니까요.”
= “나중에 법무부차관을 수사하게 되면 이정재 검사님께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다시금 잠시 답을 않다가.
= “물론입니다.”
= “고맙습니다.”
= “다만.”
그가 잠시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 “혐의가 발견되었다는 전제 하에 얘깁니다. 제가 수사할 명목이 있어야 하니까요.”
= “알겠습니다.”
정재는 지인의 부탁으로 뒷조사나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확한 사람이다.
나 또한 그에게 막무가내 조사를 의뢰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수사 꺼리를 만들어 송치해야 한다.
= “혐의만 있으면 탁경위님이 부탁하지 않으셔도 제가 알아서 조사에 들어갈 겁니다.”
= “……”
= “저는 법 앞에서 연줄 따지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가 칼 같아서 더 마음이 놓였다.
이런 사람이면 믿고 함께 수사할 수 있다.
= “한시호 집 수색영장은 발부되었답니다. 포천서 직원 분들과 같이 한 번 가보시면 될 겁니다.”
= “네.”
= “한시호 살해 건도 수사결과 나오면 통보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 건 마무리를 지어야 해서요.”
= “알겠습니다. 연락드리죠.”
그렇게 통화가 끝난 뒤.
“이정재 검사야?”
치헌이 사건 서류를 훑으며 내게 물었다.
“네.”
“뭐래?”
“한시호 집 수색영장 발부됐답니다. 포천서 형사들이랑 같이 가보라네요.”
“오, 오케이.”
옆에서 경수가 사진 하나를 들이밀었다.
“정태야. 안중찬, 아니 현 안동현 목사. 왼쪽 새끼손가락이 잘려있네?”
“젊을 때 공장에서 일하다가 잘렸답니다. 그걸로 동정심을 호소해 몸과 마음이 불편한 신자들을 많이 끌어 모았었죠.”
“아… 자신의 장애를 신자 모집에 이용했구나.”
이번엔 맞은편에서 현민과 함께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기섭이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씀하셨던 택시회사 블랙박스랑 ZBC 인근 CCTV 보고 있는데, 영상 양이 너무 많아서 홍설희 모습 언제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희는 탁주임님처럼 삽시간에 찾을 능력이 없어서…”
“어어, 괜찮으니까 천천히 찾아. 찾기만 찾으면 돼. 하, 이거 급한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구만.”
치헌과 나는 한시호 살해 건, 경수는 고양이 살해 건과 안동현 목사, 기섭과 현민은 홍설희 추적.
우리 팀은 지금 사건 세 개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세 가지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 연결점은 백양이겠지.
하지만 각 사건이 백양과 정확히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나씩 사건의 실체를 찾아내야 한다.
“일단 정태랑 경수 너희는 나랑 한시호 집 수색 갔다 오자.”
“알겠습니다.”
*
잠시 후, 한시호의 집 앞.
“수색영장 집행을 위해 문 강제개방 하겠습니다.”
포천서 형사가 닫힌 문 쪽으로 외쳤다.
안에 아무도 없는 걸 알지만 형식상 영장을 집행함을 알리는 것이다.
“열자.”
포천서 형사팀장이 지시하자 팀원이 도어락을 열고 공구를 만지작거리더니.
타닥-
문이 열렸다.
막 들어가려던 찰나.
“잠시만요.”
내가 그들을 막아섰다.
“과수반 분들 먼저 들어가고 형사 팀은 최소 인원만 들어가죠. 일단 감식이 중요하니까요.”
“……”
원래라면 방금 내가 한 말은 상당히 무례한 말이다.
이곳은 사건 피해자인 한시호의 집일 뿐 사건 관할은 포천서이며, 담당 형사는 앞에 있는 포천서 형사들이다.
그런데 서울청 소속으로 지원 나온 내가 지시를 하니 언짢을 수밖에.
예전 같았으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혹은 ‘사건 발생지도 아니고 피해자 집인데 무슨 감식을 그렇게 치밀하게 합니까?’하며 무시를 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포천서 형사팀장은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알겠습니다. 형사는 서울청 광수대 한 분, 저희경찰서 한 명 이렇게 둘만 들어가죠.”
공손한 태도로 내 말을 받아주었다.
경수의 말에 따르면 이건 ‘탁정태 효과’라고 했다.
직원들 사이에 워낙 나에 대한 소문이 많이 퍼져서 수사에 있어선 ‘탁정태의 말이 법’이라고.
그래서 내가 수사에 관해 무슨 말을 하면 웬만한 직원은 다 그 말에 따를 거라고.
“여기 덧신이랑 머리망, 마스크랑 장갑 끼시고요. 플라스틱 판 밟고 지나다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과수반 감식팀과 나, 포천서 팀장이 현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이곳 감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건 발생지인 별장에선 별다른 범인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휴대폰.
나와 통화했던 한시호의 휴대폰이 없었다.
아마 범인이 가져간 듯했다.
시호는 휴대폰을 여러 개 썼으니 이 집에 또 다른 휴대폰이 있을지 모른다.
‘음.’
집에 들어가니 가구에 먼지만 앉아있을 뿐 정리정돈이 굉장히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수많은 책들과 스크랩 파일들, 주방의 식기들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과수반 직원들은 일부러 불을 켜지 않은 채 특정 부위에만 빛을 비추며 흔적들을 찾아나갔다.
딸깍-
나도 미리 준비해 온 손전등으로 집 여기저기를 비추며 한시호가 자주 이용할 만한 곳을 유추했다.
‘일에 미친 편집증 환자. 그가 어둠의 세력과 내통하는 휴대폰을 숨겼을 만한 장소.’
장소를 찾아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생활 흔적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곳, 그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을 찾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저벅- 저벅-
나는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이어 그곳에 있는 책상을 살펴보니.
‘여기야.’
열쇠로 열고 잠글 수 있는 서랍이 보였다.
나는 서랍을 열기 전 손전등을 비춰 손잡이 주변 지문을 살폈다.
그러는 동안 밖에서 포천서 형사 팀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감식하는 데 최소 한 시간은 걸리겠지?”
“에이, 더 걸릴 걸? 이정도 집 크기면 두 시간은 하지 않겠어?”
보통이라면 이 집을 다 감식하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하지만.
‘!’
그건 ‘보통’ 직원들이 수사할 때 얘기다.
“여기요!”
내가 큰 소리로 과수반 직원을 불렀다.
쾌락은 넘친 물을 따라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