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쾌락은 넘친 물을 따라 흘러.
과수반 직원이 플라스틱 판을 밟으며 내게 다가왔다.
“왜 그러시죠?”
“이 지문 채취해주세요.”
“지문요?”
“네. 이 궁상문 채취해주세요.”
“!?”
궁상문이란 말에 직원이 깜짝 놀라며 서랍장을 살폈다.
“진짜 궁상문이네요.”
그가 지문을 확인한 뒤,
서랍장을 열어보니 열리긴 열렸다
하지만 안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 지문 주인 인적사항 확보해서 포천서랑 저희 서울청 광수대로 팩스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지문 채취를 맡긴 뒤 현장을 나왔다.
“궁상문이라고?”
밖으로 나오니 내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지 경수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거 진짜 얼마 없는 지문이잖아.”
“3%입니다. 전 국민의 3%요.”
지문은 그 모양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지문의 구불구불한 선이 모여 삼각형 모양을 이룬 것을 삼각도라고 하는데,
이 삼각도가 없는 것이 궁상문.
삼각도가 한 개 있는 것이 제상문.
삼각도가 두 개 이상인 것이 와상문이다.
전 국민의 95%이상 지문이 제상문이며, 궁상문과 와상문, 기타 지문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한시호 지문 중에는 궁상문 없었잖아. 일단 다른 사람 지문이네. 그 지문 주인은 특정하기 쉽겠다.”
“이미 특정 끝났습니다.”
“… 응?”
“그 지문 위에 덧대어진 지문이 없는 걸로 봐서 가장 최근에 찍힌 지문이에요. 게다가 한시호가 잠가놓은 비밀서랍을 열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이 한시호의 제 2휴대폰을 가져갔을 거예요.”
“…!!”
내 말에 치헌과 경수는 물론 포천서 형사들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럼… 특정했다는 그 사람은 누군데? 어떻게 특정한 거야?”
“마디 크기 가로 1.5cm 세로 3cm의 엄지 궁상문이에요. 여자 지문이죠. 최근에 똑같은 지문을 더 퀸 유흥주점 카운터에 있던 전화기에서 발견했었어요.”
“!!”
“지문 주인…”
내가 말을 잠시 흐렸다 다시 이었다.
“홍설희에요. 홍설희가 이 집에 들러 휴대폰을 빼 간 겁니다.”
*
잠시 후, 광수대 사무실.
나와 치헌, 경수는 포천서 형사팀과 감식반에게 현장을 맡긴 후 시호의 아파트 CCTV를 확보해 사무실로 복귀했다.
홍설희가 왔다 간 장면을 찾아내기 위해서.
나는 총 6개의 서로 다른 CCTV 화면을 띄워놓고 4배속으로 속도를 맞춰놓은 후 빠르게 눈을 굴리며 영상을 확인했다.
“그런데.”
치헌도 자신의 컴퓨터로 영상 하나를 확인하며 내게 말했다.
“여기서 홍설희 움직임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범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순 없잖아. 그 서랍장에 휴대폰이 있었다는 물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치헌의 말대로 설희가 시호의 집에 다녀갔다고 해서 그녀에게 어떤 혐의를 씌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랍장 안에 제 2의 휴대폰이 있었을 것이라는 건 내 추측일 뿐 증거가 없고, 혹 주거침입죄로 의율하려 하더라도 이미 사망한 한시호가 평소 설희를 자기 집에 출입하도록 허락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홍설희가 다녀갔는지 파악을 해야 합니다.”
설희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게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지문이 최근에 찍힌 걸로 봐서 홍설희는 한시호 사망 직후인 어제부터 저희가 한시호의 집에 수색을 나간 오늘 시점 사이에 그 집을 방문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한시호의 사망 관련 증거인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에 홍설희가 그의 집을 다녀간 겁니다. 비록 이는 추론이자 정황증거에 불과하지만, 의미 있는 정황증거들이 여러 개 모이면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죠.”
오히려 그 어떤 사건 수사보다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시호는 백양 멤버입니다. 백양 멤버가 죽은 사건이에요.”
나는 계속 빠르게 눈을 굴리며 영상을 훑었다.
“어쩌면 이번 수사를 통해.”
마침내 의미 있는 움직임이 파악됐고.
“거대한 장막의 초입에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몰라요.”
탁-
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스페이스 바를 눌러 영상을 멈췄다.
“여길 보시죠.”
내 말에 치헌과 경수가 내 책상으로 모였다.
“헉. 진짜 홍설희잖아!?”
경수가 놀라며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영상에 나오는 여자는 분명 설희가 맞았다.
“지하주차장이네? 차타고 왔나?”
“아뇨, 홍설희는 운전면허가 없습니다.”
“엥? 그렇다면…”
“다른 사람 차를 타고 왔어요.”
내가 다시 영상을 재생하자 설희가 급한 걸음걸이로 검정색 세단에 탔다.
“진짜네. 조수석에 탔네? 그럼 운전석에 있는 놈은 누구지?”
“여기 영상을 계속 보시면.”
설희가 차에 올라탄 뒤.
툭-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피던 담배를 밖으로 던지고 창문을 올리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그 중간에 다시 한 번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화면을 확대하니.
“보이시죠?”
“헉.”
“운전자 왼쪽 새끼손가락이 없어요.”
창밖으로 잠깐 나온 왼손엔 새끼손가락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놈은…”
“안동현 목사입니다. 홍설희와 안동현이 같이 한시호의 집에 온 거예요.”
내가 치헌을 돌아보고 말을 이었다.
“한시호는 백양이 자신을 가지치기했다고 했습니다. 안동현 목사와 홍설희 모두 백양 멤버들이에요. 그들이 한시호가 죽은 직후에 이렇게 주인 없는 집에 무단으로 다녀갔습니다.”
“……”
“여기서 또 다른 정황증거가 하나라도 더 나온다면 이들을 수사할 명목이 생깁니다. 왜 한시호의 집에 다녀갔는지 이유를 물어야죠.”
그때.
“그 수사할 명목.”
맞은편에서 기섭이 일어나 내게 말했다.
“제가 찾았는지도 모르겠네요.”
“네?”
“홍설희 이동경로 파악됐는데요.”
그가 우리를 둘러보며 덧붙였다.
“탁경위님을 마주친 그날 밤, 홍설희가 사우나로 들어가는 장면이 확인되었습니다. 폐점시간 이후에요.”
*
한 시간 후, 일신교회 앞.
“목사님-! 안동현 목사니임-!”
경수가 큰 소리로 동현을 불러댔다.
“목사아니이임-!!”
“뭡니까?”
몇 차례 부르자 동현이 언짢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아, 들어오지 말라고 하셔서 밖에서 불렀습니다. 하하.”
“왜 또 온 겁니까? 할 말 없다고 했을 텐데요.”
“후 제가 목이 아파서, 왜 온 건지는 여기 탁정태 경위가 설명 드릴게요.”
경수가 비켜서고 내가 앞으로 나갔다.
“어제 저녁에 한시호 씨 집에 가셨죠?”
“… 뭐요?”
“검정색 세단을 끌고 말입니다.”
그가 잠시 주춤하더니.
“다짜고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여기.”
내가 영상을 캡처한 사진을 내보였다.
“새끼손가락이 없는 이 손. 안목사님 손 아닌가요?”
“……”
“이 세단도 교회 주차장에 세워진 저 차 같은데요.”
내가 손으로 주차장에 세워진 검정색 세단을 가리켰다.
그가 고개를 돌려 차를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 차는 교회 사람들 몇몇이 공용으로 이용하는 차입니다. 그리고 손가락 잘린 사람이 대한민국에 저뿐입니까? 어제부터 왜 이렇게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그럼 이것도 안목사님 것이 아니라는 말이네요?”
내가 비닐 팩에 든 담배꽁초를 내보였다.
“그 운전자가 버린 담배꽁초를 수거해 온 겁니다.”
“……”
“오늘 국과수에 보내 신원확인을 할 거예요.”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만약 이 담배를 핀 사람이 안목사님으로 확인이 되면 저희 광수대에 출석해주셔야 할 겁니다. 이날 왜 여기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거든요.”
“……”
“출석을 안 하고 버티다가 어떤 혐의가 발견되면 그땐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소환이 됩니다. 피의자가 되면 저희가 수사목적으로 이 교회에 강제 진입할 권한이 생깁니다. 자진 출석하지 않으시면 강제 진입해 체포해서라도 피의자를 구인해야 하죠.”
“……”
“분명히 저는 규정대로 출석 절차를 안내드렸습니다. 혹 출석을 하지 않으신다면.”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안목사님 체포는 물론 영장 들고 와서 교회 전체를 싹 다 압수 및 수색할 겁니다.”
“……”
“바빠서 먼저 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관용차에 올라탔다.
*
“여기야.”
잠시 후 우리는 사우나 앞에 도착했다.
연식이 꽤 된 4층 상가 건물.
간판에 적힌 상호는 ‘광천탕.’
기섭에게 들었던 그 사우나가 맞다.
“곧 업주가 올 거야.”
오늘은 마침 사우나 휴무 날.
건물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기섭이 미리 업주에게 연락해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저 분인 것 같은데?”
가게 앞에 한 중년 여자가 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전화 받은 업주 분이신가요?”
경수가 묻자.
“네, 맞아요. 아이고 진짜 그 형사 분들이 오셨네! 뉴스에 나왔던!”
우리가 신기한 듯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답했다.
그리곤 이내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그런데 저희 사우나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사람들 때 미는 데서 무슨 범죄가 일어나지도 않을 텐데.”
“선생님이 이 건물 주인은 아니시죠?”
내가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네. 건물 주인은 따로 있어요.”
“건물 주인 이름이 뭐죠?”
“아 그건 찾아봐야 하는데. 전화를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고, 매번 사장님 사장님 이렇게만 불러서…”
“사우나 영업시간은 언제까지입니까?”
“저녁 9시까지예요.”
“영업시간 이후에 건물 주인이 사우나를 이용한 적이 있죠?”
“가끔 이용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이용하신 뒤에 깨끗이 치워놓고 가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죠. 뭐 혼자 이용하시는 데 크게 더러워질 것도 없고요.”
“혼자 이용한 게 아닐 겁니다.”
“… 네?”
“일단 문 열어보시죠.”
업주는 주춤하며 건물 입구를 열었다.
“사우나 안을 잠시만 둘러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녀에게 허락을 얻고는 계단을 따라 사우나 쪽으로 올라갔다.
탁-
나는 여탕으로 들어가려던 경수를 잡아 세웠다.
“여탕은 아닐 겁니다. 백양 멤버 대부분이 남자니 파티는 남탕에서 했을 거예요.”
“아하.”
그렇게 우리는 한 층을 더 올라가 남탕에 들어섰다.
바구니에 가득 쌓여 있는 수건들.
아직 탈의실은 청소가 되지 않은 듯했다.
이어 탕 쪽으로 들어가니.
“여긴 깔끔하네.”
탕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바닥엔 쓰레기도, 물기도 없었다.
탕에 물이 받아져 있는 것도, 사우나가 돌아가는 것도 아니어서 습기도 없이 쾌적했다.
“이야, 이런 데서 환각파티라니…”
나는 탕 안을 세심히 살펴보며 백양이 벌였을 파티를 시각화했다.
눈앞에 나체의 중년 남자와 젊은 여성들, 술과 일회용 주사기가 선히 그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뭘 어떻게 찾지? 상태 보니 청소는 매일 하는 것 같고, 또 홍설희가 그때 이후로 여기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잖아. 남은 흔적 같은 게 있을까?”
나체의 그들은 술과 약에 취해 히히덕거리며 서로 엉켜들었다.
온탕에서 냉탕으로, 냉탕에서 사우나로 옮겨가며 쾌락을 즐겼다.
사우나라는 이 낯선 장소가, 약과 여자라는 그 탐욕적인 조합이 그들에게 특별한 쾌락을 선사하는 듯했다.
“하, 이거 아직 혐의가 확인된 게 없으니 과수반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쾌락은 탕에서 넘친 물을 따라 흘러.
“일단 내부 사진이나 좀 찍어놔야겠다.”
목욕탕 구석에 조금씩 모여들었다.
모여든 쾌락은 덩어리를 만들었고, 나중엔.
‘!’
흔적이 되었다.
다다다다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곧장 탈의실로 뛰어가.
“뭐야 정태야 갑자기?”
옷걸이를 들고 왔다.
나는 그것을 길게 펼쳐 갈고리 모양을 만들었다.
이어서 샤워기 밑으로 가서는.
타닥-
이 탕 내에서 가장 큰 배수구 뚜껑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슉슉-
옷걸이를 배수로 깊숙이 넣어 몇 번 아래위로 흔든 뒤 꺼내니.
“현장엔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
“이제 이 흔적으로 혐의를 역추적하면 돼요.”
남탕 배수구에서 기다란 여자 머리카락 뭉치가 줄줄 걸려 나왔다.
라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