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라일락.
경수가 놀라 커진 눈을 하고 말했다.
“남탕에서 여자 머리카락이 이렇게 많이…”
“업주가 배수구까지 매일 청소하지는 않아요.”
내가 치헌과 경수를 둘러보며 덧붙였다.
“적어도 이 긴 머리카락 주인들은 전부 환각파티 참가자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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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서울청 광수대 회의실.
송가락 경정이 스크린 앞에 서서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잘 아시겠지만 감식을 통한 신원확인은 사전에 DNA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일치여부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팀 인원들은 책상에 앉아 그의 설명을 들었다.
감식 관련 자료들이라 가락이 광수대 사무실에 와서 브리핑을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주변 병원 등에서 자료를 받아 일치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죠. 광수대 1팀에서 수거해 온 머리카락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었기 때문에 영장은 금방 나올 겁니다. 이후 병원 자료와 대조해 피의자를 특정할 거고요.”
어제 우리가 사우나에서 수거한 머리카락은 곧장 국과수로 옮겨졌다.
마약 검사를 한 결과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이로써 머리카락 주인의 마약 혐의가 확인되었고, 수사할 명목이 생겼다.
아직까지는 한시호 살해 건과 이 머리카락 사이의 뚜렷한 연계점을 찾지 못했기에 이 사건은 포천서가 아닌 우리 서울청에서 별건으로 인지해 수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담배꽁초.”
화면이 바뀌고 내가 수거했던 담배꽁초가 나왔다.
“여기에 묻어 있던 타액을 검사한 결과 그 주인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목사 차림의 남자.
“바로 안동현 목사입니다. 개명 전 이름은 안중찬이죠. 과거 사이비 교회 교주로 이슈가 됐었던 그 인물입니다. 5년 전 성범죄 관련 전과가 있더군요. 그래서 본청에 DNA자료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동현의 DNA정보가 있어 그의 신원을 바로 특정할 수 있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이비 교주.
신성한 교회의 수장으로 있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 확실했다.
“이외에도 김형택 학생 의복에 있던 동물의 털은 창진서 관내에서 발생한 고양이 살해 건의 고양이털과 같은 것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형택군 방 서랍에서 발견된 칼에서도 고양이 피가 검출되었고요.”
형택의 부모 동의를 받아 그의 옷과 서랍 속 칼을 임의압수한 뒤 감식을 요청했었다.
그 결과도 내 예상대로 나왔다.
“한시호 집에서 채취한 궁상문의 주인도 홍설희로 밝혀졌습니다.”
궁상문 또한 설희의 것이 맞았다.
“아, 사실 제가 경찰조직에 들어온 이후로.”
설명을 마친 가락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한 개의 팀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양의 감식 및 검증을 요청한 건 처음 봅니다. 한시호 사건의 테트로도톡신부터 사우나 머리카락까지. 저도 정신없이 일을 했습니다.”
현장 증거는 감식을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학수사과에서 증거 자료를 받아 검토 후 관련 서류를 만들어 국과수로 전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우리 팀 때문에 가락도 일에 치였던 모양.
“이 많은 양의 증거를 이토록 단기간에 발견해내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경이에 찬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예측했던 내용이 다 일치했다는 거예요. 보통은 증거로부터 수사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광수대 1팀에겐 증거는 그저 이미 하고 있는 수사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밖에 쓰이지 않았어요. 다른 형사들보다 열 발, 스무 발은 더 앞선 수준의 수사를 하고 있다는 거죠.”
증거는 그저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수사를 표현하는 정확한 문장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일까요. 저도 막 의욕이 솟더군요. 그래서 광수대 1팀 사건들은 밑에 직원들한테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다 검토했습니다.”
가락의 계급은 경정.
사실 그의 위치에선 이렇게 실무에 나서서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직접 일을 처리했다.
최면수사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광수대 1팀 활약에 같은 직원으로서 항상 엄청난 자극을 느낍니다.”
그의 눈이 조금 커지며 무언가 상승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전국구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가 자극을 느꼈다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이후에도 광수대 1팀 사건은 계속 제가 직접 맡아 처리할 생각입니다. 머리카락 DNA 대조결과 나오는 대로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긴 설명 들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가락은 꾸벅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
그날 오후.
“하 드디어 제 시간에 퇴근해보네.”
경수가 기지개를 쭉 켜며 사무실을 나왔다.
“제 시간이 아니라 30분 조기퇴근입니다.”
“야. 여태 야근한 거 합치면 30시간도 넘을 텐데 고작 30분이 무슨 조기퇴근이야.”
“수사에 필요해서 한 야근입니다. 수당도 나오고요.”
“아 쫌…”
경수가 답답한지 말을 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 오늘은 서류 빨리 마무리했으니 기분 좋게 좀 일찍 퇴근하고.”
치헌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일 머리카락 대조결과 나오면 또 힘내서 일해보자.”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가 나를 돌아봤다.
“홍설희랑 안동현은 신원 특정되긴 했지만 아직 범죄혐의까진 없는 거 알지? 내일 그 둘에 대한 다른 정황증거를 모으는 작업도 해야 할 거야. 일단 안동현이는 출석 요구해서 광수대로 소환해보자.”
“알겠습니다.”
“오늘 다들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지방청 정문을 나온 뒤.
‘하-’
나는 며칠 만에 수사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동안 너무 수사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수사 외에 다른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머리를 비우고 나니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은빈 씨.’
은빈이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바로 연락을 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어서 오세요.”
지방청 바로 옆에 있는 꽃집에 들어갔다.
생전 처음 들어가 보는 곳.
그곳에서 나는 평소 관심에도 없던 꽃들을 둘러봤다.
‘가끔은 허황된 것도 부탁해요.’
캠핑을 갔을 때 은빈이 그랬다.
허황된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곧장 가장 허황된 것에 대해 생각했고,
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막상 꽃을 보니 무엇을 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일단 바로 앞에 있는 노란 꽃을 꺼내 점원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꽃입니까?”
“국화에요. 선물하시게요?”
“네.”
“노란 국화는 선물할 때 좀 조심하셔야 하는데…”
“왜죠?”
“꽃말이 이별이거든요.”
“!”
나는 곧바로 국화를 내려놓았다.
“여자 친구한테 선물하시는 거면 이쪽 꽃들을 한 번 보세요.”
나는 점원이 추천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상대 분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을 고르시면 될 것 같아요.”
상대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꽃이라.
나는 곧장 눈앞에 은빈을 그렸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
그 모습은 나에게 노트와 만년필을 받고 활짝 웃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떠올렸다.
마음이 간질간질하던, 애틋한 그 감정을.
활짝 펼쳐진 은빈의 미소와 내 감정을 섞어 물감을 만들고 내가 원하는 꽃을 그렸다.
그녀를 위한 꽃이 눈앞에 선히 그려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꽃들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내게 더 이상 꽃은 허황되거나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 기분을 정화시키고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도구이자 표현이었다.
나는 마침내 머릿속에 그린 꽃과 똑같이 생긴 꽃을.
“이 꽃은 뭡니까?”
골라 들었다.
“라일락이에요. 꽃말은 첫사랑, 애틋한 감정이고요.”
예쁘게 피어난 여러 송이의 보라색 꽃.
꽃말도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꽃향기를 한 번 맡은 뒤.
“이걸로 주세요.”
예쁘게 포장해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지하철을 타고 은빈의 집으로 향했다.
미리 전화는 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나타나야 더 즐거워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녀는 지금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을 것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날 힐끔힐끔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얼굴을 알아본 모양.
꽃까지 들고 있으니 더 시선을 끌었다.
[이번 역은 ···]
그렇게 내가 하차할 역에 다 와가던 그때.
“저… 저기.”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탁정태 형사님 맞죠…?”
“네.”
“이거, 제가 그린 거예요.”
그녀가 크로키 북을 꺼내더니.
“이건 창진경찰서 수사브리핑 때.”
한 장씩 넘기며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줬다.
“이건 조선족 범죄에 대해 말할 때. 이건 다른 기사에 등록된 사진이고요, 이건 경찰대 졸업사진…”
“……”
“마지막으로 이건 배명호… 아니 상광동 살인사건 때 기자회견 하시는 모습이에요.”
[This stop is…]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왜 시간을 들여 내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내게 보여주는 걸까.
“팬이에요.”
“…?”
“형사님 보고 꿈을 가졌어요. 저 경찰이 될 거예요!”
“그러려면 그림그릴 시간에 공부나 하시죠. 괜히 제 기사 보면서 시간낭비하지 마시고요.”
치익-
문이 열렸고 나는 곧장 지하철에서 나와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주 작게 ‘머… 멋있어.’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 별 반응 없이 점점 더 빨리 걸었다.
지상으로 나온 뒤.
내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발걸음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심장이 뛰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아직 은빈을 만난 것도 아닌데, 곧 그녀를 만날 거란 생각에 즐거워졌다.
그녀에게 ‘5분 뒤 집 앞으로 나와요.’하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조금씩 더 빨리 걸어 이제는 거의 날듯이 움직였다.
그렇게 은빈에게 날아가고 있는데.
투닥투닥-
“으읍…”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꽤 멀어 다른 사람이면 듣지 못했을 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
한 30m 뒤쯤에서 남자 두 명이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명은 바닥에 누워 있고 다른 한 명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상황.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싸움을 말리기 위해 그리로 다가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
누워 있는 남자의 배에 칼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타… 탁경위님!”
나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이… 이씨…”
다다다다다-
올라타 있던 남자는 칼을 빼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는.
다다다다다-
곧장 그를 추격했다.
“여기 사람이 배에 칼을 맞았어요! 빨리 119 신고해주세요!”
추적 도중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구호를 요청한 뒤 나는 계속 남자를 따라 뛰었다.
일단 칼을 맞은 남자, 저 남자는 지하철에서 만났던 내 팬 따위가 아니다.
단정한 옷차림에 날카로운 눈. 게다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나를 알아본 것.
이 모든 상황으로 비추어볼 때 그는.
‘경기북부청’
관우가 심어놓은 ‘귀’일 것이다.
사생활에 거슬리는 것 없이 조용히 활동하겠다던 귀가 도망치고 있는 저 남자와 실랑이를 했다.
게다가 칼까지 맞았다.
그렇다면 저 남자의 원래 목표물은…
다다다다다-
나는 전속력으로 그를 쫒아가.
“가… 가까이 오지 마!”
막다른 길 앞에서 그와 마주섰다.
그가 벽을 등지고 돌아서 나에게 칼을 겨눴다.
“저를 살해하려 한 겁니까?”
내가 방어태세를 하고 묻자.
“이씨… 씨…”
그가 욕과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씩씩거렸다.
처음에는 숨이 차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씨… 씨… 가… 가까이 오지 마!”
아니었다.
그의 목은 좌우로 심하게 떨렸고 눈에 초점도 없었다.
빠르게 허공의 무언가를 봤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는 행위를 반복했다.
과거 정신병원 강도사건 때 만났던 환자들을 보는 듯했다.
건장한 체격의 20대 남자. 멀쩡한 겉과 달리 정신은 병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일단 휴대폰을 들고.
= “서울청 광수대 탁정태 경위입니다. 칼을 든 살인 용의자가 제 앞에 있습니다. 위치 조회해서 이쪽으로 순찰차 좀 보내주십시오. 관할은 창선파출소 관할일 겁니다.”
112에 신고했다.
내 신고 내용을 들은 남자가 더 심하게 목을 떨어댔다.
“칼 내려놓으세요.”
통화가 끝난 뒤 나는 남자에게 경고했다.
“이미 당신은 사람의 배에 칼을 찔러 넣는 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여기서 또 범죄행위를 하면 심신미약상태를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10년 이상의 징역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만하시고 칼 내려놓으세요.”
삐- 뽀- 삐- 뽀-
다행히 구급차가 도착한 듯했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남자는 더 불안해진 듯 입술을 마구 씹었다.
“왜 저를 살해하려 한 겁니까?”
“이씨… 씨…”
“누가 시킨 겁니까?”
“씨…”
“시킨 거군요.”
웨애애애앵-
이어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한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