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위험한 거짓.
그의 온몸은 점점 더 심하게 떨렸다.
“이제 곧 지원 경찰관들이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씨이… 씨이…”
“계속 칼을 들고 항거할 시 권총을 발사해 제압할 수도 있어요.”
“후우- 후우-”
“칼 내려놓으시고 순순히 조사받으러 가시죠. 괜히 칼을 들고 있다가 총 맞고 조사받지 마시고요.”
“후우- 후우-”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
그 눈엔 두려움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제 그는 체포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점점 인정하는 듯했다.
웨애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정말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1분 안에 경찰들이 이곳에 달려올 것이다.
나는 그가 이성을 잃고 달려들진 않을지 유심히 살피며 계속 방어태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우…”
그의 몸 떨림이 점점 진정되더니.
“……”
이제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눈 초점도 명확해져 날 똑바로 쳐다봤다.
거짓말처럼 그의 불안한 정신에 차가운 이성이 깃들었다.
그가 허공의 어딘가를 쳐다보더니.
“저는 결국 말씀을…”
방금 전과 달리 차분해진 목소리로 입을 뗐다.
“행하지 못했습니다.”
“…?”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는 더 이상 현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겠지요.”
“…!”
“그럼 저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형택이 말했던 것과 같은 문장과 분위기.
“하나님 아버지.”
이제 이 자의 정체를 파악했다.
안동현 목사가 시킨 것이다.
머릿속에 수사할 내용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동현은 나를 제거하려 했지만, 이 사건은 그 스스로 무덤을 판 계기가 될 것이다.
…
하지만.
“부디.”
나는 칼을 든 남자의 다음 행동까지 예측하진 못했다.
그는 칼날 방향을 바꿔 자신을 겨눴다.
그리고는.
“이 불쌍한 영혼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소서.”
“안 돼!!”
그대로 자신의 목 방향으로 칼을 찔러 넣었다.
내가 꽃을 던지고 쫓아가 그의 팔을 잡았지만.
푸슉-
“!!!”
간발의 차이로 칼이 먼저 들어갔다.
목을 타고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그는 다리에 힘을 잃고.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눈앞에서 사람이 자신의 목에 칼을 찔러 넣어 자살한 상황.
이 충격적인 상황에 정말 신기하게도, 아니 잔인하게도.
‘CCTV와 목격자가 없어. 그런데 내가 그의 팔을 잡은 흔적이 있으니…’
내 뇌는 본능적으로 수사에 관해 생각했다.
제 3자의 눈으로 현장 상황을 판단하고 법리를 적용해보았다.
의지로 그렇게 생각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뇌는 제멋대로 자연히 그렇게 움직였다.
수사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나서야 ‘사람’ 생각이 났다.
긴 칼날이 목 뒤를 뚫고 나와 쓰러져 있는 남자.
상처가 벌어졌는지 피가 계속 더 많이 흘러 나왔다.
사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나는 어떻게 이 사람을 구호해야 할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나는 그의 상의로 출혈부위를 막았다.
‘교회 신자들은 피의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이기도 하니까, 좀 살살 하자.’
형택에게 부드럽게 추궁하라던 치헌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이 남자는 피의자에 가까울까 피해자에 가까울까.
어느 쪽이든, 왜 나는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설마… 나 때문에 그가 죽은 건가?
다다다다다-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때.
파출소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놀라서 입을 틀어막는 소리, 곧장 119에 지원요청을 하고 상황실에 보고하는 소리, 내게 사건 경위를 묻는 소리들이 마구 뒤엉켰다.
내 머릿속엔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단 한 가지만 골라 입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멍한 눈으로 현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한 곳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정태 씨…”
바닥에 던져진 라일락 꽃 앞에 은빈이 서 있었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그녀.
그녀를 보며 나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모든 곁가지를 걷어내고 머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만을 남겼다.
마침내 생각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나는…
“정태 씨… 괜찮아요…?”
나는 살인범이 될지도 모른다.
#
오늘도 티비에선 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탁정태 경위가 임병규 씨 사망 직전에 팔을 아주 강하게 잡은 흔적이 있다고 하던데, 이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뉴스 앵커가 묻자.
[“이땐 임병규 씨가 칼로 탁경위를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팔을 세게 잡은 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겠죠.”]
범죄수사학 교수라는 사람이 나와서 답변했다.
[“그럼 그 제압과 임병규 씨의 사망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나요?”]
[“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탁정태 경위는 임병규 씨 스스로 칼을 목에 찔러 넣은 자살이라고 주장한다더군요.”]
[“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에요. 경찰과 맞서고 있던 피의자가 스스로 칼을 목에 찔러 넣어 자살을 했다? 사실 어린 아이가 들어도 비웃을 소리입니다. 아주 황당한 변명이죠. 추적 후 검거되었던 범죄피의자 통계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쉽게 끊지 않아요. 오히려 긴박할수록 살아남을 궁리를 하죠.”]
[“그럼 교수님은 탁정태 경위의 제압 때문에 임병규 씨가 사망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네,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제압 과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임병규 씨가 사망한 거죠. 물론 저도 과실로 사망케 했다고 믿고 싶지만, 익명의 제보자가 제보한 이 사진을 보시면.”]
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떴다.
누군가가 멀리서 확대해 찍은 당시 현장사진이었다.
병규의 목에는 이미 칼이 들어가 있었고, 나는 병규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사진 속 탁정태 경위의 몸은 한껏 앞으로 쏠려 있습니다. 뒤꿈치까지 들려 있죠. 체중을 앞으로 싣고 있다는 소립니다. 임병규 씨의 목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팔을 강하게 잡고 고의로 칼을 밀어 넣었다고 봐야죠.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자 순간 분노가 치밀었고 그것을 조절하지 못한 거죠.”]
달려가 그를 막으려 했던 게, 사진으로 보니 되레 찔러 넣은 것처럼 연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탁정태 경위를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로 알고 있었는데, 왜 그때만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을까요?”]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탁정태 경위는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적인 성향이 다분하다고 봐야죠.”]
[“폭력적인 성향이요?”]
[“네. 다음 자료를 보시면.”]
화면에 과거 신문기사가 나왔다.
매천파출소 시절 내가 강도 용의자에게 총을 쐈을 때, 그 용의자를 취재해 쓴 기사였다.
[“탁경위는 이때 당시 현장에 무려 15명의 경찰관이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용의자의 허벅지에 대뜸 38권총을 발사했습니다. 충분히 다른 검거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총을 쏴버린 거죠. 하지만 이때 탁경위를 옹호하는 여론, 그리고 그의 화려한 말빨에 힘입어 그는 별다른 징계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실을 조금씩 과장하고 왜곡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끔.
다음 사진은 몇 장의 진단서.
[“이뿐만 아니라 탁경위는 다른 사건에서도 피의자에게 직접적인 폭행을 꽤 많이 행사했습니다. 과거 조선족 피의자를 검거할 때, 최근 더 퀸이라는 유흥주점에서 조직폭력배들을 검거할 때 등 아주 많은 검거현장에서 피의자를 업어치고 꺾고 졸라 병원신세를 지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피의자를 검거할 때 어느 정도의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직접적 폭력은 절대 행사해선 안 됩니다. 허나 탁경위는 폭력이 습관이 됐는지 계속해서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다음 자료는 아주 충격적인데요.”]
다음은 법원에서 작성한 서류.
[“탁경위는 자신의 팀 동료인 고경수 경위가 상해죄로 피소되었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여 ‘고등학생인 피의자에게 총을 쏠 수도 있었는데 참 아쉽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고소인이자 피의자였던 그 학생은 안 그래도 좌측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겁니다. 고등학생 밖에 안 된 사람에게 무려 총을 쏘고 싶다고 했어요, 총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방청하고 있는 신성한 법정에서 당당하게 말입니다.”]
교수가 흥분을 했는지 목소리를 높였고, 그것을 듣고 있던 앵커는 충격을 먹은 것처럼 잠시 멘트를 멈췄다.
그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 묻는다면 사실에 가깝긴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진짜 사실이 아니었다.
의도가 다분한 스토리에 첨가된 사실은 단순한 거짓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거짓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흉악한 피의자라도 직접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겠죠. 게다가 이번엔 살인이라니…”]
띡-
앵커의 암담한 멘트를 다 보지 않고 나는 채널을 돌렸다.
다음 채널에선.
[“탁정태 경위가 얼마 전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저희 교회의 교리를 의심했습니다…”]
안동현이 목사로 있는 일신교회 신자라는 사람이 나와서 울먹거리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신자의 개인적 범행을 우리 교회의 탓으로 돌리려 했어요. 사실 저희 교회는 신체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을 돕는 보육·봉사 성향이 강한 교회입니다. 신자들을 보세요. 이 신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겠습니까?”]
카메라가 교회 신자들을 비췄다.
다들 어딘가 불편한 모습.
그들에게서 ‘악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탁경위는 이번 사건에서 사망한 임병규 씨 또한 저희 교회 소속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무런 근거 없는 소리입니다. 그 분은 저희 교회 신자가 아닙니다. 괜한 헛소리로 이상한 프레임을 씌워 변명을 하려는 거예요. 제발 더 이상 저희 교회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의 표정과 뒤에 있는 신자들 모습이 함께 잡히며 측은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신성한 교회와 불쌍한 아이들을 괴롭혀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탁정태 경위를 꼭 엄벌에 처해주세요. 그 사람은 정의로운 경찰관이 아닙니다. 실적에 미친 사람일 뿐이에요.”]
그렇게 뉴스를 보고 있는데.
슥-
띡-
뒤에서 손이 들어와 리모컨을 잡더니 티비 전원을 꺼버렸다.
“간만에 뵙네요. 몇 달 만이죠?”
그가 내 앞으로 와 안경을 올리며 나를 슥 훑었다.
“본청 감찰에 손님으로 오니까 기분이 묘하시죠?”
“……”
“자, 뉴스 그만 보시고.”
나는 오랜만에.
“조사실로 들어오세요. 바로 조사 시작할 테니까.”
이철성 계장을 마주했다.
나 스스로에 대한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