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주변인들.
다음 날.
“아휴, 탁경위 님-!”
서울청 감찰소속 류준희 경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날 붙잡았다.
“집으로 돌아가시라니까요. 징계 처분은 이미 내려진 거라고요.”
“위원회도 열지 않고 징계를 내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위원회는 무슨 위원회입니까. 감찰조사 다 이루어졌고 청장이 직접 결정 및 지시한 사항이에요. 조직 수장이 긴급지시하면 위원회 절차는 자동 생략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싫습니다.”
나는 그가 말리는 데도 광수대 사무실 쪽으로 계속 걸었다.
“탁경위 니임- 제발! 지금 언론사에서 탁경위 님 출근한 거 알면 난리 납니다. 형식상 징계만 내려놓고 실제로는 출근시켰다고 난리칠 게 뻔해요!”
“그럼 출근이 아니라 방문으로 치죠. 광수대에 손님으로 방문하는 것도 안 됩니까?”
“방문을 매일 하실 거잖아요?”
“물론입니다.”
“그럼 당연히 안 되죠! 그건 출근이나 다름없잖아요!”
“감찰에서 방문까지 막을 권한은 없습니다. 비키세요.”
“아, 안 된다니까요!”
준희가 내 어깨를 단단히 잡고 버럭 화를 냈다.
“자꾸 이러시면 저를 비롯한 우리 서울청 직원들 목 다 날아가요. 탁경위 님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 때문에 동료 직원들 처자식 다 굶겨죽일 겁니까!?”
“……”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섰다.
“뭐 솔직히 저도 아직 임병규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탁경위 님이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믿고 싶지도 않고요.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어찌됐든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동료 직원들 봐서라도요.”
“……”
“후, 일단은.”
그가 허리에 손을 얹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경무계 사무실로 가 계시는 걸로 하시죠. 어차피 징계 내려졌으니 탁경위 님은 복귀 이후 대기발령 처리될 거고, 대기발령 중인 직원은 경무계 소속이 되니까요. 앞으로도 방문을 하려거든 경무계로 하세요. 광수대 사무실은 안 됩니다.”
차가운 말투.
하지만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배려를 한 것이다.
나도 더 이상 내 주장만 내세울 수 없었다.
내 신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당해선 안 된다.
나는 조용히 돌아서서 그와 함께 경무계 사무실로 향했다.
준희는 경무계 직원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돌아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경무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 뒤편 빈 방으로 갔다.
쌓아둔 비품 옆에 작은 책상과 의자만 있는 방.
말만 사무실이지 사실상 나를 가두어놓는 것과 다름없었다.
= “일단 최대한 막아보고는 있습니다.”
그곳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관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하지만 워낙 이슈가 되다보니 방송국들이 점점 돌아서고 있어요. ZBC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자극적인 기사를 내더니, 이젠 YBC를 제외한 모든 방송국에서 탁경위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맨 처음 임병규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곳은 ZBC였다.
그 뒤에 하루 이틀 정도는 생각보다 잠잠한가싶더니 어느샌가부터 너도나도 내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 “제가 심어놓은 사람도 탁경위님께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사람은 칼을 맞은 뒤 도주하는 임병규를 탁경위님이 따라간 것을 봤을 뿐이니까요.”
관우가 심어놓았던 ‘귀’는 민간업체에서 경호업무를 하는 자였다.
병규가 나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접근했으며, 장애인인 것 같아 경계를 좀 풀었는데 갑자기 칼을 꺼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현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하필 이땐 정우에게 받은 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상을 자기 컴퓨터로 옮긴다고 기섭이 가져간 상태였다.
나에게 유리한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
= “사실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것을 수습하는 데 있어선 경찰의 힘이 상당히 약합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예방을 잘 했어야 했는데, 제가 미흡했어요.”
경찰 관련해서 어떤 큰 이슈가 터지고 나면 언론이 맹공을 퍼붓는다.
곧 커다란 비난의 여론이 형성되고 경찰은 다른 기관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뭇매를 맞게 된다.
때때로 여론은 경찰 내부 규정과 법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기소도 되기 전에 내가 정직처분을 받은 것이다.
= “최대한 방법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관우와 통화가 끝난 뒤엔 곧바로 정재 전화가 걸려왔다.
=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는 걸로 했습니다. 여기 분위기는 여론과 좀 다릅니다. 아직 뚜렷한 혐의가 없는데 탁경위 님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다는 거예요. 당연히 구속영장 청구할 사유가 되지도 않고요.”
그나마 검찰은 이성을 좀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런데 희한하게 서인혁 차관이 뒤에서 영장 청구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겁니다.”
백양이 작정하고 나를 묻으려 했던 모양.
= “뭐 편제상 검찰이 법무부차관 밑에 있다곤 하지만 실제로는 법무부에서 검찰을 함부로 지휘할 수 없기도 하고, 또 저희는 워낙 독립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그런 압력이 안 먹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탁경위님이 말씀하셨듯 서차관이 이 사건에 연관이 된 게 맞는 것 같네요.”
그가 목소리를 좀 더 깔았다.
= “일단 서차관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좀 수집해봐야겠습니다. 혐의가 확인되지 않아 수사는 할 수 없지만, 미리 정보를 모아놓아 나쁠 건 없으니까요. 여태 탁경위님 예측이 틀린 적이 없기도 하고요.”
검찰 내부에서 정보를 모아준다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하긴요. 당장 큰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
나는 생각에 잠겼다.
관우와 정재가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일단 내가 수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은 법원에서 판사가 하겠지만, 결국 모든 수사는 경찰로부터 시작된다.
첫 단추 꿰는 일을 잘 하지 못하면 뒤엔 다 헛일이 되는 것이다.
내 손발이 묶인 이상 관우와 정재는 예전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근무시간에 이 텅 빈 방에 가만히 앉아 있어보니 이제야 시호가 한 말이 실감이 났다.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캄캄했다.
또 사나웠다.
자기편 고래도 찢어발길 만큼.
작은 피라미는 앞으로 쭉쭉 뻗어나갈 자신이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에 몸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느끼지 못했던 바다의 압력이 피라미를 점점 밑으로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봤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너무 멀리, 너무 깊이 와버렸다.
앞으로 나아갈 정신의 10분의 1만 할애해 나를 돌아봤더라면.
내 신체와 신분상 안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앞의 목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였다.
온전한 ‘나’가 있어야 목표도 추구할 수 있고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여태 나의 온전함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피라미는 점점 밑으로 가라앉았다.
고작 세 달간 몸이 묶여 있을 뿐이지만, 세 달이면 바다가 피라미를 집어삼키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계속 더 가라앉아 단 한 줄기 빛도 없는 심해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머릿속 바다가 시각화되었다.
피라미는 몸부림도 치지 않고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시각화가 더 뚜렷하게 될수록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정신이 몸을 지배했다.
그렇게 나는 스르륵 눈을 감고.
더 깊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더 깊게, 깊게 가라앉아 얼음장 같이 차가운 심해의 온도까지 피부에 와 닿으려던 그때.
끼익-
“어허이. 탁경위!”
심해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누가 이렇게 힘없이 있으래? 안 어울리게.”
청새치가 날 찾아왔다.
그 뒤로는.
“야, 어깨 안 필래? 축 쳐져 있는다고 일이 해결되냐? 정태 이놈 남 위기는 잘 극복해주면서 자기 위기엔 아주 취약하네.”
거대한 북극곰까지 왔다.
“광수대 1팀에 너만 있는 거 아냐. 다른 팀원들도 있다고. 우리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수사 존나게 하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사건은… 다른 팀으로 넘어간 것 아닌가요?”
“사건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인지하면 우리가 다시 수사할 수 있잖아. 벌써 나름 성과까지 있다고.”
성과?
완벽히 조작된 사건 속에서 무슨 성과를 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은.”
과학수사 전문 꺽다리 오징어가 들어왔다.
“장팀장님이랑 고경위님이 발견하신 임병규 씨 의복의 특이점. 옷 소매부분 바깥쪽이 뜯어져있어요. 이건 임병규 씨 쪽으로 밀어서 발생할 수 없는 손괴입니다. 오히려 칼이 들어가지 못하게 잡아당겼다고 봐야죠. 소매부분 국과수 보내놨으니 거기서 탁경위님 DNA만 확보되면 혐의를 벗어날 강력한 증거를 하나 갖는 거예요.”
내가 가라앉는 새에 이들이 벌써 꽤 많은 수사를 해놓은 듯했다.
“게다가 목욕탕 마약건 주범과 임병규 사건 주범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추측하고 계신다면서요?”
“……”
“그때 수거해주신 머리카락, 병원 자료와 대조해서 관련된 여성들 신원 확인했습니다.”
“…!”
“여성들 청으로 출석시켜 신문은 고경위님이 하시고 최면수사는 제가 할까 하는데.”
“!”
“단일 기간 국내 최다 최면수사 기록을 한 번 세워보려고요. 그러면 주범에 관련된 의미 있는 진술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할 겁니다.”
오징어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목을 빙빙 돌려댔고, 청새치는 여자 신문에 자신이 있다는 듯 턱을 한껏 세워보였다.
“저… 저기…”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물고기까지 등장했는데.
“타… 탁경위님.”
“배명호 씨!?”
그는 정신과 다리를 다친 물고기였다.
“저… 저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왔어여.”
“…?”
“전에 입원 시키신 기, 김형택 학생여. 제가 말도 많이 부, 붙여주고 해서 상태가 좋아졌거든여. 그런데 걔… 걔가 이번 사건에 대해 좀 의미심장한 진술을 해서…”
“!!”
형택이 무슨 의미심장한 진술을 했다는 걸까?
일신교에 관련된 걸까?
“아, 탁경위님 저도 왔는데.”
이어 소식을 전하는 물고기까지 등장했다.
“저희 YBC에 결정적인 제보가 하나 들어와서요. 어쩌면 여론을 다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에 이어서.
“이기 뭔 일이고!?”
나이 많은 바다거북까지 왔다.
“이거 수갑만 안 채았지 실질적인 체포·구속 아이가!?”
“……”
“누가 증태 니 여 가다놨노? 경무계장 누고!? 감찰과장 누고!? 이 새끼들이 말이야.”
“……”
“우리 창진서 자원 다 풀어가 수사 함 제대로 해뿌까! 마 다 디비봐야 전부 정신을 차릴라 카나!”
텅 비어있던 방이 순식간에 가득 들어찼다.
청새치와 북극곰, 오징어와 바다거북, 다친 물고기와 소식을 전하는 물고기가 당당하게 서서 날 쳐다봤다.
그중 북극곰이 앞으로 나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항상 언론에서 탁정태와 주변인들, 탁정태와 주변인들 했었는데.”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던 새에.
“주변인들의 반란을 한 번 보여주자고요.”
피라미의 동료가 이렇게나 많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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