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비정식 프로파일러.
그날 오후부터 본격적인 ‘주변인들’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경수가 여자 세 명을 조사실에 나란히 앉혔다.
그들은 하나같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이들은 광천탕 배수구에서 발견한 머리카락의 주인들.
DNA확인 결과 총 5명의 여성을 특정할 수 있었다.
일단 그중 이 세 명만 따로 먼저 출석시켰다.
왜냐하면 이들은.
“제 생각에 여러분들은 기소되는 것보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게 더 걱정일 것 같은데.”
연예인이었으니까.
경수는 그들의 신분을 이용(?)해 수사하면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다.
그녀들은 더욱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분명 기사는 날 겁니다. 연예인 마약범은 기자들이 목숨 걸고 달려들어 취재하거든요.”
“……”
“하지만 보도될 범죄사실에 변화는 조금 줄 수 있죠.”
“…?”
“수사에 협조만 잘해주신다면 굳이 ‘사우나에서 남성들과 나체로 집단 마약 섹스를 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
“기자들에겐 집에서 했다고 하든 다른 곳에서 했다고 하든 그건 여러분들 마음대로 진술하세요. 어차피 다양한 곳에서 마약을 했을 테니까.”
“……”
“자, 그럼 다들…”
경수가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덧붙였다.
“협조 잘 해주실 거죠?”
#
경수가 사우나 건 수사를 하는 동안 치헌은 명호와 함께 병원에 방문했다.
명호가 안내하는 병실로 따라가니.
“안녕?”
“안녕하세요.”
형택이 있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그땐 죄송했습니다.”
그는 응급입원 할 때와는 달리 완전히 차분해져 있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번 임병규 사건 관련해서 알고 있는 게 있다면서?”
치헌이 묻자.
“네, 사실은…”
형택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 시각 서울청 경무계.
나는 계속 빈 사무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동료들이 힘을 북돋워주고 나니 다시 수사 생각이 들끓었다.
물론 그들이 실체적 진실을 찾아주는 데 힘을 써주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수사도 잘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 수사는 내 혐의를 벗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안동현을 비롯한 사우나 건 관계자들, 그리고 홍설희.
그들의 혐의를 밝히고 합당한 벌을 내려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시호와 통화했던 내용들, 테트로도톡신의 출처, 그리고…
끼익-
한창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돌아보니.
“형.”
“…!?”
정우가 왔다.
“네가 여기 왜 왔어?”
“할 말이 있어서요.”
그는 문을 닫은 뒤 뚜벅뚜벅 걸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할 말?”
“저 일신교회에 갔었어요.”
“…!?”
“정신 병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신자로 받아주더라고요.”
나는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또 연기를 했구나.”
“물론이죠. 속으론 그런 마음 전혀 없어요. 저는 신 따윈 믿지 않으니까.”
“왜 그런 짓을 했어? 거긴 사이비 목사가 있는 교회야. 게다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고 곧 수사도 들어갈지 모르는 곳이라 자칫하면 너도 피해를…”
“형 때문에 갔어요.”
… 응?
나 때문에 갔다고?
“형이 그 목사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요.”
“……”
“그래서 형을 도와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교회에 잠입하기로 결정했죠. 경찰청장이 그 교회 직접수사를 금지했다면서요? 그러니 이 잠입수사는 저밖에 할 수 없는 거예요. 비정식 프로파일러인 저밖에요.”
비정식 프로파일러.
그새 수식어가 더 거창해졌다.
“일신교회에 처음 들어간 신자들은 목사에게 돈을 내야 해요. 믿음의 증명이라는 명목으로요. 신자의 나이와 직업에 따라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내기도 해요.”
착취.
저건 믿음의 증명이 아니라 착취다.
“저도 30만 원을 냈어요. 그동안 용돈 모아놓은 것을 수사비라 생각하고 냈죠.”
“……”
“그 뒤에도 주기적으로 돈을 내야 해요. 강제로요. 이 교회 신자들은 장애인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각종 복지비용과 수급비를 받아 이를 충당해요. 어떤 신자는 아예 수급비통장을 교회 관계자에게 줘버린 사람도 있어요. 어쩌면 스스로 준 게 아니라 뺏겼는지도 모르죠.”
동현이 개명 전 안중찬 목사였던 시절, 그는 국내 최대 사이비 교회의 교주였다.
그때도 저런 방식으로 신자들을 착취했다.
정우의 말을 들으며 다시금 새롭게 수사할 내용들이 머리에 마구 떠올랐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에요.”
“…?”
“교회 열성 신자가 되면 강단 뒤쪽 방에서 그 신자들과 목사가 별도의 모임을 가져요. 교회를 나가다가 우연히 그 모임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삶은 고통이요, 죽은 뒤 영생이 행복이다. 천국으로 가고픈 신자는 언제든 나를 찾으라.’고 말하는 거예요. 마치 죽여서 천국에 데려다주겠다는 듯이.”
“!”
교회에서 영생에 관한 얘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말하며 천국을 원하는 자는 찾아오라니.
찾아가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어제, 교회 교리를 낭독하려고 강단에 올라갔다가 또 수상한 걸 발견했어요.”
“수상한 거?”
“강단 우측 뒤편 구석 아래에 널따란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유독 그쪽만 나무 바닥이랑 벽면 색깔이 달랐어요.”
“색깔이?”
“더 짙고 어두웠어요. 마치 적갈색 물감을 오래 머금은 것같이. 그리고 그 면을 깨끗이 닦아낸 듯 반짝반짝 거렸고요.”
“……”
“특히 더 수상한 건.”
그가 미세하게 어조를 바꾸며 말을 이었다.
“그 널따란 공간 옆에 있던 도구함이었어요.”
“도구함?”
“그 함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 안에 특이한 물건들이 있는 거예요.”
특이한 물건?
“과산화수소와 식육연화제, 암모니아와 베이킹소다.”
“…!”
“거기다 주방세제와 철수세미, 마른 수건도 있었어요.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정우가 말한 것들은 각각의 쓰임이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저것이 굳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만한 이유는.
저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별한 쓰임은…
“혈흔을 지울 때 쓰는 것들이잖아.”
“피를 지운 거예요.”
그와 내가 동시에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 눈을 맞추고 있다가.
“지금은 심증에 불과하지만.”
정우가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입을 뗐다.
“과학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도 있겠죠.”
그가 손에 든 조그마한 것은.
“그 적갈색 나무 바닥의 조각이에요.”
“!!”
“벌어진 틈을 긁어 조금 떼 왔어요.”
정우가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요즘 DNA 증폭기술이 있다면서요? 그럼 이 나무 조각이 뭘 머금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거죠?”
#
그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경무계 사무실을 나온 후에는.
“출근은… 당분간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지방청 옆 조용한 골목길에서 은빈을 잠시 만났다.
“감찰에서 경무계로 출근하는 것을 허락해줬습니다.”
“그렇구나… 기운이 없어 보여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거죠? 제가 도시락이라도 싸줄…”
“그보다.”
내가 그녀의 말을 끊고 물었다.
“오늘 왜 보자고 한 겁니까?”
“……”
“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걸 알면서 왜 굳이 얼굴을 보자고 했습니까?”
임병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뒤.
길을 다닐 때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온갖 의심과 비난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날 아래위로 훑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 중에는 나에게 대놓고 욕을 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 은빈을 직접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피해가 갈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녀는 굳이 나를 직접 보자고 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잠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은빈과 마주한 지금도 마스크를 끼고 주변을 세심히 살피고 있다.
“중요한 할 말이 있어도 전화나 문자로 했으면 됐는데, 왜 직접 보자고 한 거죠? 전달할 물건이 있나요?”
“아뇨.”
“그럼 왜 굳이…”
“보고 싶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날 그냥 그렇게 가버렸잖아요. 꽃만 남겨두고.”
“……”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정태 씨 앞엔 목에 칼이 꽂힌 사람이 쓰러져 있고, 경찰이 열 명이 넘게 뛰어왔어요.”
생각해보니 은빈도 많이 놀랐을 것 같았다.
내가 그 정도로 놀랐으니 은빈은 오죽했을까.
“그 뒤엔 뉴스에 안 좋은 소리만 나오지, 정태 씨는 연락도 잘 안 되지.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하루 종일 정태 씨 걱정밖에 안 했다구요. 걱정하면 생각나고, 잘 있는지 보고 싶고…”
일이 터지고 난 뒤부턴 매일 너무 많은 생각에 쌓여 있느라 은빈에겐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뒤늦게 그녀에게 온 문자와 부재 중 전화를 한 번에 확인했다.
‘나는 정태 씨 편인 거 알죠? 언론이 거짓말 하고 있는 거 나 다 알아요.’, ‘밥은 먹고 다니는 거죠? 괜찮아요?’ 같은 응원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나도 정신 하나도 없어요. 너무 놀랐고 또 불안해서 누굴 위로해줄 상태가 아니라구요. 하지만 나보다 몇 배는 더 압박감에 시달릴 정태 씨 생각하면 내가 더 마음이 아파요. 나는 집에 가면 날 안아줄 가족이라도 있지만 정태 씨는…”
그녀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을 하면 막아줄 사람도 없고… 안 그럴 거 알면서도 별의 별 생각이 다든다구요.”
어느새 그녀의 눈에 옅게 눈물이 고였다.
저 눈물은 왜 생겼으며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 걸까.
“저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캠핑 갔을 때 장팀장님 사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걱정이 가장 큰 병이라고. 은빈 씨는 지금 불필요한 걱정에 싸여 있습니다. 그 걱정은 은빈 씨에게 해로운 감정만 가져다줍니다. 걱정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
“당분간 우리 만나지 맙시다.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그때 만나죠.”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언제.”
은빈이 날 붙잡듯 물었다.
“언제 해결되는데요? 정말 해결을 할 수 있긴 한 건가요?”
불안한 얼굴.
뉴스가 날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긴 한 모양이다.
은빈이 저렇게 걱정하는 걸 보면.
“아마 곧 해결될 겁니다.”
나는 짧게 대답한 뒤.
“상황을 완전히 뒤집을 거예요.”
돌아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
다음날, 일신교회.
= “크하하하.”
동현이 든 휴대폰 너머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일이 어떻게 이렇게 잘 풀릴 수가 있냔 말이야.”
= “그러게요. 운이 좋았습니다.”
= “작전 실패가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불러 오다니. 참 안목사가 복덩이야. 나도 그 교회 믿어야겠어. 크하하.”
=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이 하나 죽긴 했지만, 뒤탈이 없으니 안심해도 되겠어요.”
= “그래그래. 어찌 보면 임병규가 탁정태 살해하는 것보다 이게 낫지. 임병규가 살아있으면 우리 입장에선 위험분자 하나를 안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놈이 탁정태한테 누명을 씌우고 스스로 죽어버렸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어. 안목사 아주 잘했어. 정말정말 잘했어.”
= “감사합니다.”
= “나중에 식사 한번 하지. 내가 거하게 쏠 테니까 말이야.”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후.”
동현은 후련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티비 채널을 돌렸다.
사실 임병규 사건이 처음 막 일어났을 땐 백양 멤버들의 질타가 이어졌었다.
조용히 있으라고 했더니 왜 독단적으로 일을 저질렀냐고.
하지만 여론이 ‘탁정태의 살인’ 쪽으로 기울면서 백양에서의 대우도 완전히 달라졌다.
최고의 골칫덩이를 처리한 영웅이 된 것이다.
일이 동현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긴 했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좋아졌다.
이제 한동안은 별 걱정 없이 편안히 지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티비 채널을 계속 돌리고 있는데.
‘음?’
눈에 익은 인물이 지나갔다.
띡- 띡- 띡-
채널을 다시 돌려보니.
“··· 윤정수 기잡니다.”
“…!?”
멘트를 하는 기자 뒤로.
“오늘은 빅뉴스를 가지고 왔는데요.”
며칠 전 봤던 커다란 형사와 길쭉한 형사가 앉아있었다.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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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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