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비슷한 사람.
[“국민 여러분.”]
카메라카 치헌을 비췄다.
[“임병규 사건은 현재 ‘수사단계’입니다. 재판이 끝난 것도, 검사가 기소한 것도, 심지어 경찰이 송치를 한 것도 아닌 상태. 다시 말해 이 사건에 관련된 그 누구도 아직까지는 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오로지 혐의를 의심만 할 수 있을 뿐이죠.”]
그가 단단히 굳은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수사단계에서 범죄혐의를 의심하려면 합리적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건과 동떨어진 통계를 가지고 와서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모 대학 범죄수사학 교수처럼 ‘의견’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의 음성에 점점 분노가 깃들었다.
[“저희가 안동현 목사에 대해 제시한 증거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충분히 수사해 볼 필요가 있죠. 하지만 탁경위에 대해선 수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제시된 물질적 증거들의 수가 매우 적었을 뿐더러, 그마저도 다 거짓 또는 오해로 판명이 났기 때문입니다.”]
YBC에선 화면을 반으로 쪼개, 한쪽에서 계속해서 슬로우모션 영상을 재생했다.
[“따라서 탁경위에게 내려진 징계처분 또한 철회되어야 합니다.”]
칼이 들어가는 순간엔 일부러 더 느리게 재생해 정태의 손이 닿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루 12시간 30분. 야근을 합친 저희 광수대 1팀 일일 평균 근무시간입니다. 저희 팀은 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수사에 쏟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탁정태 경위가 있죠.”]
이어 정태의 활약상 기사들이 쭉 나왔다.
처음은 베란다 밖에 매달린 자살기도자를 구한 것.
[“탁경위는 지금의 여론이 말하는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예전에 국민 여러분이 알던 멋진 모습이 진짜 탁경위의 모습입니다.”]
다음은 강도범 허벅지에 총을 쐈을 때 기사.
[“이 강도범은 총을 맞기 전, 칼을 들고 여기 옆에 있는 고경수 경위의 머리를 내리 찍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 0.5초 찰나의 순간에 탁경위가 총을 발사해 고경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죠. 총을 쏜 후에도 곧장 119를 호출하고 지혈을 하는 등 구호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함부로 그를 해하고자 쏜 게 아니란 말이죠.”]
이어 조선족 검거 기사와 ‘더 퀸’ 유흥주점 기사.
[“이때 검거된 조선족들과 조폭들은 날이 시퍼런 사시미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항해 저희는 그들을 업어치고 꺾는 등의 제압을 했을 뿐입니다. 칼에 대항해 이정도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다면, 저희 경찰은 어떻게 피의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요?”]
치헌이 자신의 폭주를 ‘제압’이라고 축소하긴 했지만, 충분히 타당한 설명이었다.
칼을 든 자에게 맨손으로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제압은 불가능했다.
다음은 경수가 상해죄로 피소당한 재판 관련 기사.
[“이때도 소주병을 들고 제 머리를 내리 찍으려는 피의자를 고경위가 걷어 차 제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탁경위는 만약 상황이 더 위급해졌다면 경직법상 총기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는 설명을 했을 뿐입니다. 난폭한 피의자가 선량한 국민을 상대로 더 큰 피해를 야기하기 전에 합당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는 경고를 했던 것뿐이라는 겁니다.”]
이어 자료사진이 사라지고.
[“탁정태 경위는 제가 여태까지 경찰생활하면서 본 그 어떤 경찰보다 정의롭고 성실한 경찰입니다. 그런 탁경위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징계를 받아 수사를 못하고 있어요.”]
화면이 치헌으로 꽉 찼다.
[“오늘 안동현 목사를 체포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겁니다. 국민 여러분은 오해를 푸시고 이전과 같이 저희 광수대를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더불어.”]
치헌이 잠시 틈을 두고 어조를 바꿔.
[“경찰청장님.”]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덧붙였다.
[“탁정태 경위 징계 철회해주십시오. 안동현 목사 수사에 탁정태 경위가 꼭 필요합니다.”]
#
다음 날. 서울청 광수대 사무실.
“오, 팀장님.”
현민이 모니터를 보며 치헌을 불렀다.
“탁주임님 징계 해제 공문 떴어요!”
“어, 알고 있어.”
“탁경위 님께도 알려야하지 않을까요?”
“정태도 알고 있어. 지금 조사실 들어가 있잖아.”
“헉, 정말요? 언제 들어갔지?”
“정태 쟤 오전부터 송가락 경정 따라서 일신교회 감식현장 갔다 왔어. 그 공문 뜨자마자 사무실 들어와서 바로 조사실로 들어갔고. 수사의지가 끓어 넘치나봐.”
*
“수급비 갈취하신 건 인정하시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신문을 시작했다.
앞에 수갑을 차고 앉아 있는 동현.
그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갈취라뇨. 말씀이 심하시네요.”
“그럼 신자들 통장은 왜 빼앗아 가신 거죠?”
“빼앗은 게 아니라 제출받은 겁니다.”
“신자들 말은 그렇지 않던데요.”
“신자들은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했던 것도 금세 잊어먹고, 마음에 없는 말을 반복하기도 하죠. 진술뿐인 그들의 말을 증거로 삼겠다는 겁니까?”
“통장에서 인출한 내역 및 CCTV 영상도 있습니다.”
“그건 교회 간부가 한 일이지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기섭의 말에 따르면 체포당시만 해도 동현은 상당히 불안해했었는데, 차에 태워 연행하던 중 무언가 입으로 중얼중얼 거리더니 그 뒤부턴 차분해졌다고 했다.
지금 그는 한 치의 떨림 없이 답변을 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일관된 진술을 하면 충분히 혐의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럼 저도 계속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겠습니다.”
그는 단순히 차분해진 게 아니라 무심했다.
그에게서 혐의를 벗고자하는 간절함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반박만 할 뿐이었다.
“분명 임병규 씨는 일신교회 신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교회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교회의 다른 사람이 운전을 해 태워 온 것 같네요.”
“이 운전자도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던데요?”
“……”
내가 창밖으로 운전자 손이 나와 있는 사진을 내밀자 그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오전에 교회 내부를 감식해보니 강단 구석에 마련된 장소에서 핏자국이 확인되었습니다.”
“……”
“이미 깨끗이 지운 상태라 육안으론 찾아낼 수 없었지만 감식장비를 활용해 찾아냈죠. 그런데 그 핏자국을 보니.”
이어 교회 내부 감식사진을 꺼냈다.
벽면과 바닥에 특수 용액을 발라 검출해낸 핏자국.
“작은 핏방울들이 모든 방향에 산발적으로 튀어 있더군요. 이건 단순히 대치하고 있던 상대를 칼로 찌르거나 베어서 나오는 핏자국이 아니에요. 이건 마치…”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사람을 눕혀놓고 날카로운 것으로 피부를 썰어내면서 튄 핏자국 같은데.”
“……”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내가 묻자 그가 가만히 눈을 껌뻑거리다가.
“소설을 많이 보셨나보네요.”
덤덤히 답했다.
“하지만 너무 현실성 없는 소설입니다. 사람을 썰다뇨. 그것도 신성한 교회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일반 교회가 아니라 사이비 교회죠. 성범죄와 동물학대를 일삼는 목사를 둔.”
“……”
“이게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조각을 꺼냈다.
“그 핏자국이 있던 나무 바닥의 조각입니다. 운 좋게 며칠 전 입수해 국과수로 보냈었죠. 오늘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안에서도 역시 피가 검출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 사람의 피가 아니라.”
내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여러 사람의 피가 검출되었습니다.”
“……”
“피의 주인들은 모두 관할 구청에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부모 없이 보육시설을 옮겨 다니며 자란 사람들이었죠. 그들의 행적을 찾아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보육기관이 바로 일신교회였다는 거예요.”
“……”
“지금은 그들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어요. 이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왜 교회 구석에서 이렇게나 많은 장애인들의 피가 검출된 겁니까?”
내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최초 현장사진을 제보한 익명의 제보자.”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쏘아댔다.
“안동현 씨도 아는 사람이죠?”
“……”
“임병규 씨가 저를 만나기 직전, 병규 씨 휴대폰으로 발신자번호표시 제한 전화가 두 통 왔었어요. 아마 제보자의 전화겠죠. 제보자가 저를 미행했고, 임병규 씨에게 전화해 제 위치를 알려준 겁니다.”
“……”
“임병규 씨는 죽기 직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자신은 하나님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그래서 현세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게 안동현 씨 아닙니까?”
“……”
“제가 일신교회를 계속 압박하자 저를 제거하려는 마음을 품고 살인을 지시하신 것 아니에요?”
“……”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덧붙였다.
“제가 백양을 압박하는 게 거슬렸겠죠.”
“……”
백양을 언급해도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홍설희와 함께 한시호의 집에 간 이유는 뭡니까? 백양과 한시호의 죽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
“한시호가 말한 ‘수많은 살인’은 진짜 일어난 겁니까? 그 살인에 안동현 씨가 관여하고 있는 거예요?”
한시호와 홍설희까지 언급하며 빈틈없이 쏘아붙이자 동현의 얼굴에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계속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동현이 마침내.
피식-
옅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완전히 수사에 미쳐계시는군요.”
“…?”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이 왜 이렇게 수사에 메여 사는지.”
그의 눈빛이 살짝 날카롭게 변하더니.
“당신은 수사를 하고 있는 게 아냐. 수사에 잡아먹힌 거지.”
말투도 바뀌었다.
“솔직히 말해. 범죄 혐의 따위 찾자고 수사하는 게 아니잖아. 당신 좋자고 하는 거지.”
“…!?”
“수사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하는 거잖아. 수사가 주는 쾌락에 중독돼서 못 헤어 나오고 있는 거잖아.”
“…!”
“당신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어.”
비슷한 사람?
“이 조사를 떠나서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가 또 다시 말투를 바꿨다.
분명 그는 옅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선 악의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모든 공포와 잔인함을 품고 있는 웃음.
“만약에 당신이 그 미칠 듯한 쾌락을 느끼는 대상이 수사가 아니라…”
그가 점점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살인이었다면.”
“!!”
“범죄 혐의를 밝히는 데서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미칠 듯한 흥분을 느낀다면. 당신…”
내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고는 눈을 번뜩 뜨며 덧붙였다.
“살인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