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표식.
“나한테만 대답을 강요하지 말고 당신이 대답해봐.”
“……”
“가장 처음 쾌락을 느꼈던 행위가 수사가 아닌 살인이었다면. 당신이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냐고.”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질문.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했다.
주희가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던 범죄.
그 중에서도 살인.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 미친 듯한 쾌락을 느낀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잠깐 어지러웠지만 금방 생각이 정리됐다.
답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대답하려던 찰나.
끼익-
“탁주임님.”
기섭이 조사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조사 멈추고 잠시 나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송가락 경정님이 찾으십니다.”
*
기섭에게 자리를 맡기고 제 3조사실로 가니 가락과 경수가 앉아있었다.
“일단 고경위 님부터 말씀하시죠.”
가락이 말하자.
“어 일단은 조사한 세 명 다 그 사우나에 간 사실은 인정했어. 마약을 한 것도 인정했고.”
경수가 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당사자들 얼굴을 보진 못했다네.”
“… 그게 무슨 말이죠?”
“가면을 쓰고 있었대.”
가면?
“거짓말 같진 않아. 최면수사 때도 세 명 다 가면 얘기를 했다고 하니까.”
옆에서 가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얼굴 가리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어. 완벽한 신뢰 및 은폐를 위해 장소도 목욕탕으로 정한 사람들인데, 여성들한테 얼굴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았겠지.”
명호의 최면수사 당시엔 가면은 없던 내용이었다.
그럼 백양 2기나 3기 때부터 새로 생긴 규칙인가?
“사우나에서 모두 나체로 파티를 즐긴대. 한쪽 편엔 긴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엔 각종 음식들과 술, 마약이 있대. 그런데 그 뒤는 진술을 잘 못하더라고. 약에 취한 뒤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면서.”
경수가 어깨를 으쓱하자.
“이에 대해서 최면수사로 풀어보려고 했는데요.”
가락이 말을 받았다.
“최면수사에서도 이상한 진술만 하더군요. ‘구름 위를 뛰어놀았다.’, ‘큰 트럭이 달려와서 피했다.’, ‘외계인과 인사를 했다.’는 등으로요. 약에 취해 기억이 완전히 왜곡된 듯했습니다.”
최면수사도 별 소용이 없었나.
“하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에요.”
“…?”
“최면수사를 한 인원 모두가 공통적으로 진술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파티 참여자 중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있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참여자 중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는 남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
“최면수사 종료 직후 안동현 목사가 나오는 뉴스 영상을 보여주니 다들 그 목소리가 맞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그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사우나에서 수거했던 머리카락 중 일신교회에서 수거한 안동현 목사의 머리카락과 DNA가 일치하는 머리카락을 찾아냈습니다.”
“!”
이어 경수가 사진 몇 장을 내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홍설희가 사우나를 방문했던 그날 안동현도 뒷길로 사우나에 들어갔었어. CCTV 영상이야.”
뒷길을 통해 사우나로 들어가는 동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이정도면 안동현이 환각 파티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충분한 것 같은데?”
이들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증거를 확보해주었다.
나는 사우나 안에서 파티를 즐기는 백양 멤버들의 모습을 다시금 상상했다.
정치, 사법, 언론, 종교부터,
유흥과 암흑세계까지.
각계분야의 큰손들이 모여 벌이는 은밀한 쾌락. 또 그들 사이에 있었을 어둠의 거래들.
“정태 네 말대로 정말 이제 우린…”
경수가 잠시 틈을 두고 덧붙였다.
“거대한 장막의 초입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어.”
#
그날 저녁, 종로경찰서 유치장.
“굳이 바쁘신 탁경위님 오실 필요 없이 저희끼리 해도 되는데…”
유치장 직원이 괜히 웃으며 내게 인사치레를 했다.
그리고는 유치장 입감 관련 서류를 검토했다.
나와 그 사이에는 동현이 무심한 표정을 하고 서 있다.
“네, 서류 확인 다 됐습니다. 저희가 짧게 교양하고 신체검사 후 바로 입감하면 될 것 같아요.”
내 뒤로 직원들 몇 명이 더 서 있었다.
그들은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구석에 설치된 티비엔 일신교회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컨테이너 내엔 총 55대의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일신교회 신자 8명이 근무시간을 정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운영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이 3일간 작성한 댓글 수는 천 개가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명 ‘좋아요’ 작업을 추가해 각 기사 최상단에 자신들이 작성한 댓글을 박제하는 등으로 국민을 현혹시켜…”]
치헌과 경수가 YBC에서 브리핑을 한 뒤 여론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를 비난하던 베스트 댓글들은 다 내려가고 다시 응원과 격려의 댓글들이 달렸다.
거리의 사람들 시선은 다시 따뜻해졌으며 ‘고생 많았죠?’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시민도 있었다.
처음 임병규 사건이 보도된 뒤.
경찰 조직 내부에도 나를 의심하는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이 반반으로 나뉘었었다던데.
아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들은 나를 의심했던 모양이다.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그들은 더더욱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신체검사 들어가겠습니다.”
동현에게 교양하던 직원이 그를 데리고 탈의실 쪽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잠시만요.”
“… 네?”
“신체검사, 제가 해도 될까요?”
“…??”
그는 잠시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 네, 그렇게 하세요. 무기나 마약 등 불법 소지품이 있는지 검사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동현을 내게 건네주었다.
사실 체포 시에 피의자의 신체수색을 다 하기 때문에 유치장 입감 시 신체수색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검사의로 갈아입으시죠.”
나는 동현에게 널널한 신체검사의를 건넨 뒤 커튼을 쳐주었다.
잠시 후 그가 환복을 하고 나왔고.
“신체검사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길쭉한 스캐너로 그의 몸을 쭉 훑었다.
그 뒤엔.
“손으로 다시 한 번 검사하겠습니다.”
손으로 그의 몸을 훑으며 다시 한 번 검사했다.
그냥 손으로 훑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슥-
옷을 들어 그의 몸 앞뒤를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굉장히 꼼꼼하게 하시는군요.”
“5년 전 성범죄를 저질렀을 땐 이렇게 안 했나보죠?”
“……”
그렇게 다 확인한 뒤.
“신체검사 끝났습니다.”
유치장 직원에게 말했다.
“잠시 안동현 씨와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잠깐이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입감 전 동현과 단 둘이 빈 방에 들어갔다.
“뭡니까? 야간 조사는 인권 침해인 거 몰라요?”
“아까 질문하신 거 답변 드리려고요.”
“…?”
“물어보셨잖아요. 살인에서 쾌락을 느꼈다면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냐고.”
그렇게 말하자 동현의 얼굴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즐거운 일이 살인이었다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겠죠. 그랬다면 처벌을 받았을 거고요.”
“……”
“하지만 저는 살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직 수사에 즐거움을 느꼈고, 그래서 이렇게 경찰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과거를 가정해 무언가를 장담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은 아무 실익이 없는 질문입니다. 현재의 저는 과거의 제가 아니며, 현재의 제 생각으론 과거의 제가 어떤 결정을 했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의 표정이 아주 조금씩 굳어갔다.
“안동현 씨의 질문이 유의미하게 바뀌려면 ‘만약 지금 현재 제가 살인에 즐거움을 느낀다면 과연 살인을 할 것인가.’하고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제 대답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즐겁다고 해도 살인을 하지 않겠다, 입니다.”
“……”
“저의 즐거움은 타인의 즐거움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행해져야 함을 지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사람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살인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
“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수사를 한다고 한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너무 큰 피해를 끼친다면 할 수 없겠죠. 그래서 이번 수사가 좀 늦었던 거고요.”
나는 동료들 처자식을 굶어죽일 거냐고 묻던 류준희 경위의 얼굴을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저를 막는 요소가 다 없어졌습니다.”
“…?”
“앞으로 제대로 수사를 해드리죠. 안동현 씨 표현을 빌리면 ‘미친 듯이’ 말입니다.”
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를 뒤로한 채.
“조사 때 봅시다.”
유치장을 나왔다.
*
잠시 후, 지방청 건물 앞.
내가 관용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탁경위님!”
“송가락 경정님?”
정문 앞에서 가락이 날 불렀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퇴근 안 하셨습니까?”
“아, 탁경위 님께 깜빡하고 전달 못한 게 있어서요.”
그가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뭐죠?”
“저번에 말씀하신 마약왕 이응삼 부검당시 사진입니다. 너무 오래된 자료이기도 하고 찾을 명목도 없어서 뒷 경로로 찾는다고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안에 든 사진을 꺼내보니 정말 나체 상태의 이응삼 사체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응삼 사진은 대체 왜 구해달라고 하신 건지…”
“맞네요.”
“… 네?”
나는 내 서류가방에서 다른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그건.
“이 한시호 사체 사진과 이응삼 사진을 같이 보십시오.”
한시호의 부검 당시 사진이었다.
나는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가락에게 보여주었다.
“음… 뭐가 맞단 말이죠?”
“배명호 씨가 최면수사 당시 말했던 1과 3, 나뭇가지라는 말 기억나십니까?”
“네, 기억납니다. 목욕탕 어딘가에 새겨져있었다고.”
“목욕탕에 새겨져 있었던 게 아니에요.”
“… 네?”
“백양 멤버들 몸에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건 숫자와 나뭇가지가 아니었어요.”
“…!?”
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엔 문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림인 것 같기도 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조금 헷갈리게 되어 있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문신은 분명히.
“1과 3은 B, 나뭇가지는 Y였어요.”
BY.
알파벳이었다.
“이 문신은 방금 유치장에 들어간 안동현의 어깨에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
“BY. 백양 멤버들은 자기들만의 표식을 몸에 새겨둔 거예요.”
안동현이 검거되면서 치헌이 가락에게 백양의 존재에 대해 설명했다.
때문에 가락도 이제 백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가락은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수사를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시죠?”
내가 당연히 알고 있지 않냐는 듯 묻자.
“혹시…”
그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1기부터 지금까지 백양 관련자들 사체 사진을 다 모으란 말씀은… 아니시겠죠?”
“바로 그 말입니다. 저 문신이 새겨진 사체를 찾아 그 사람의 생전 행적을 역추적 하는 것부터 수사를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
“저희 광수대 1팀 관련 사건은 직접 맡아주신다고 하셨죠?”
내가 그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덧붙였다.
“항상 도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 노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