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전면전.
“헉.”
경수와 다른 사람들이 조직도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렇게 상세한 정보를 어느새…”
처음엔 놀라기만 했던 이들이 나중엔 ‘집에선 좀 쉬라니까…’하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치헌은 교철에게 백양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고, 경수도 은빈에게 간략히 설명을 해주었다.
“일단 저희가 확실히 파악한 건.”
내가 조직도를 짚으며 말했다.
“한시호와 안동현이 백양 멤버였다는 것. 그리고 안동현이 사우나에서 환각파티를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내 말에 집중했다.
“또한 더 퀸의 홍설희, 버팔로의 양대석, 야당원내대표 이호중의원, 서인혁 법무부차관 등도 백양 멤버라고 추측하고 있죠.”
이들도 백양 멤버라 강력히 추측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다.
“이에 더해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북성파, 그리고 왕청현으로 대표되는 조선족 범죄조직 등이 백양에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더 퀸에서 검거된 백성용이 현장에서 ‘제 주변 분들이 탁경위 님을 껄끄러워하던데.’라고 진술한 것으로 보아 백양 내부에서도 저희 광수대 1팀에 대한 적개심이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임병규를 교사해 저를 살해하고자 했던 안동현의 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고요.”
처음엔 추측일 뿐이었지만, 정황들이 하나씩 모여 추측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희가 할 일은 관련된 자들을 계속해서 추적하는 겁니다. 홍설희는 안동현이 검거된 뒤 더 퀸에도 출근을 하지 않는 등 자취를 감췄습니다. 아마 백양 관련 추궁을 당할까봐 의도적으로 은신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홍설희의 거취도 파악을 해야 합니다. 또 백성용을 통해 양대석의 혐의도 확인해야 합니다. 백성용은 아직까지 진술을 부인하고 있긴 하지만, 재판이 본인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면 입을 열 확률이 높습니다. 이때 버팔로 클럽 내의 혐의를 입증 받아 수사를 하면서 양대석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내가 그린 조직도를 보면 뭔가 많이 파악해놓은 것 같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여기 더불어 제가 심어둔 카드들이 의미 있는 진술들을 해주면 수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겁니다.”
“심어둔… 카드들?”
“사회 곳곳에 수사에 도움 될 만한 요소들을 심어두었습니다.”
내가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보고 말했다.
“장팀장님과 고주임님은 각각 갖고 있는 수사자료 숙지하여 상황 발생 시마다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추어놓아야 합니다. 서장님도 미리 내용 알고 계시어 신속한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
“다들 긴장하시고 근무일 휴무일 구분 없이 늘 백양 수사에 힘 써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다들 한참 동안 멍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러다가.
“증태야. 그래 다 좋은데…”
다과를 입에 물고 있던 교철이 천천히 입을 뗐다.
“설날에까지 꼭 이캐야겠나?”
*
잠시 후.
“정태야, 나 갈게. 서장님은 내가 모셔다드릴게.”
경수가 교철을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철은 ‘설날엔 술 한 잔씩 해야 된다!’며 자기 혼자 막걸리를 한 병 넘게 마셨다.
“나도 간다. 설 마저 잘 쉬고 내일 보자.”
“네. 안녕히 가십시오.”
치헌도 겉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빈 씨는 안 갑니까?”
“저는 조금 있다 갈게요. 치울 거 좀 치우고.”
“제가 치우면 됩니다.”
“아니에요. 같이 해요.”
은빈은 굳이 더 있겠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교철이.
“그래 오늘 모처럼 둘이 쉬는 날인데 오붓한 시간 보내야 안 되겠나.”
배시시 웃었다.
“증태야. 내는 간데이. 소 맛있게 잘 무래이.”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다들 집에서 나가고 은빈과 나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가 끝났다.
그때도 은빈은 집에 가지 않고.
“정태 씨 술 한 잔 할래요?”
“아뇨.”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네 개나 꺼냈다.
“난 한 잔 할 건데.”
“……”
“정태 씨는 안 마실래요?”
“네, 안 마시겠습니다. 수사 관련 생각할 게 많습니다.”
딸깍-
내 거절에 별 반응도 없이 은빈은 맥주 캔을 따더니.
벌컥- 벌컥- 벌컥-
마구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개는 점점 젖혀져.
“캬하-”
그대로 한 캔을 다 원샷 해버렸다.
왜 저러는 걸까.
은빈은 술이 그렇게 센 편이 아닌데.
딸깍-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벌컥- 벌컥-
두 번째 캔도 반 정도를 한 번에 비워버렸다.
“왜 그럽니까? 기분이 안 좋습니까?”
그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맥주를 두 차례 더 마신 뒤.
“하… 이제 좀 취하네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단시간에 맥주를 많이 들이킨 터라 그녀의 목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돌려서 얘기하지 않을게요.”
“…?”
“아까 말한 백양이란 조직의 멤버들 수사하는 거…”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물었다.
“그거 안 하면 안 돼요?”
“……”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정태 씨 충분히 열심히 수사했잖아요. 밥상은 다 차려놨으니 다른 팀보고 수사 좀 해달라고 하면 안 되냐구요.”
갑자기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왜 이러는 걸까.
“정말 몰라서 물어요?”
당연히 몰라서 물은 것이다.
알면 내가 왜 묻겠는가.
“너무 위험하잖아요.”
“……”
“지금 정태 씨는 마치 상어 입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작은 물고기 같아요. 굳이 그렇게 위험한 수사를 할 필요가 있어요?”
“……”
“굳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수사를 할 필요가 있냐구요…”
그녀의 말꼬리가 점점 늘어졌다.
희한하게도 그 늘어짐 속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억눌려져 있던 진심은 술을 타고 조금씩 밖으로 새어나왔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일 뿐입니다. 통계상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 개인의 생명·신체에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질 확률인 극히 적은…”
“그 극히 적은 확률이 정태 씨 눈앞에서 실현됐잖아요!”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태 씨 스스로 그렇게 말했잖아요. 백양의 적개심이 정태 씨 살인으로 이어질 뻔했다고. 그래놓고 어떻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 수사를 계속 하겠다고 할 수 있어요?”
“……”
“그때 그 남자 목에 들어갔던 칼이… 원래는 정태 씨 목에 들어가려 했었단 거잖아요. 그 장면을 내가 다 봤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날 앞에 두고 더 거창하고 더 위험한 수사계획을 얘기할 수가 있냐구요!”
한 번 더 소리를 내지른 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조금씩 영롱해지는 눈.
금세 물이 차올라 굴곡을 만들었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를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게다가 수사를 하겠다고 결정한 건 ‘나’고, 직접 실행하는 자도 나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난데.
왜 그녀가 내 행동에 간섭하며 화를 내는 걸까.
은빈이 대충 눈물을 훔친 뒤 다시금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캔을 내려놓는 그녀의 손이 휘청였다.
눈도 점점 느리게 감았다 떴다.
“정태 씨 지금 왜 제가 정태 씨 일에 이렇게 깊게 관여를 하나 의아해하고 있죠?”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이 흘러나왔다.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말에 조금 놀랐다.
“정태 씨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죠?”
“…?”
“그 생각 틀렸어요. 절대 그러면 안 돼요.”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정태 씨 몸은 온전히 정태 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
“정태 씨는 누군가의 동료이자 후배이고, 누군가의 연인이자 존경받는 형이에요. 정태 씨가 죽거나 다치면 정태 씨 개인의 피해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주변 모든 사람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구요.”
“…!”
그녀의 말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태 씨한테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고 생각해봐요.”
나는 곧바로 그녀의 가정을 시각화했다.
은빈과 정우가, 치헌과 경수가, 교철과 주희가 죽거나 다치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 사람이 위험 속으로 들어가도록 가만히 놔둘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강도 용의자의 허벅지에 총을 쐈고 칼을 든 피의자들을 업어쳤다.
어쩌면 내 신변의 안전보다 그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놔둘 수…”
나는 어느새 입을 열고.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진심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정태 씨를 가족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가족.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존재.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저는 이미 정태 씨를 가족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요.”
저 말이 너무 기뻤다.
내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은빈.
그 옆으로 경수와 치헌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은 날 보며 모두 환히 웃고 있었다.
“그런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정태 씨는 정태 씨 몸을 함부로 다뤄선 안 돼요…”
그녀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어요.”
이어 그녀의 몸이 점점 내 쪽으로 기울더니.
“그러니… 그 수사 그만둬요… 나 너무 걱정돼.”
털썩-
내 품에 기대 그대로 눈을 감았다.
“……”
나는 잠시 동안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스윽-
침대에 눕혀 고이 이불을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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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정말 여론은 알 수 없어요. 그죠?”
옆에서 윤정수 기자가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기자 입장에서 봐도 매번 놀라워요. 어찌 이렇게 여론이 급변하는지.”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는 YBC 방송국에 와 있다.
단독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현재 여론은 임병규 사건 직후와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시금 나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기사 댓글은 온통 날 위해주는 글로 도배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신기했다.
어찌 하나같이 자기 의견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최상단 댓글에 끌려 다니는지.
“언론사들이 더 해요. 여우같은 놈들.”
태도를 바꾼 건 국민들만이 아니었다.
가장 나에게 공격적이었던 ZBC를 비롯한 다른 모든 방송국들도 태도를 바꿔 나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YBC말고도 많은 방송국에서 내게 기자회견 요청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중립을 지켜준 YBC 기자회견만 수락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개인은 사회에 저항할 수 없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그 말 또한 이해가 되었다.
거대한 세력이 움직여 선동하면 사람들은 휩쓸릴 수밖에 없다.
언론사 또한 이익이 되는 여론을 형성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태도를 계속 바꿀 수밖에 없다.
나는 그저 세력보다 더 단단한 정의로 사람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면 된다.
그런 행동에 언론을 이용하면 되는 거고.
“어 이제 시작한다네요. 탁경위님 준비하시죠.”
“네.”
정수가 넥타이를 고쳐 맸고 앞엔 카메라가 돌았다.
전방 화면의 카운트 다운이 끝난 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YBC 윤정수 기잡니다.”
방송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시청자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탁정태 경위님의 단독 기자회견 인터뷰를 생중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탁경위 님을 만나보시죠. 안녕하세요, 탁경위님.”
“안녕하십니까.”
“아, 오늘 오랜만에 다시 탁경위 님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앞에 중요한 이슈가 있었던 만큼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하실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주시죠.”
정수의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나를 비추는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그 짧은 찰나에 며칠 전 은빈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내 몸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던,
그러니 몸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던 그 말.
“지난 임병규 사건 수사내용입니다. 이에 더불어.”
그때 느꼈던 울림은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었다.
뼛속깊이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임병규 사건의 배후인 일신교회 안동현 목사. 그리고.”
허나 그 울림이 수사를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안목사가 깊이 관여하고 있는…”
오히려 내 수사의지를 더 불태웠다.
내 자신, 나아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선 이 수사를 피하면 안 되었으니까.
결국 이 수사의 끝을 봐야 우리 모두의 완벽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회피가 아닌.
“우리나라 최악의 범죄조직, ‘백양’의 실체에 대해 폭로하고자 합니다.”
전면전을 택했다.
원하던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