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단 하나의 방법.
“회의는 위원장인 제가 진행합니다. 심문 시작하겠습니다.”
철성이 앞에 놓인 펜을 들고 내게 질문했다.
“지난 2월 20일 21시 05분 경. 탁정태 경위는 편의점에 강도가 들어 현금과 목걸이를 가져갔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당시 현장 상황을 한 번 설명해주시죠.”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시간 순으로 설명해주었다.
최초 덕규와 상의해 용의자의 도주 범위를 설정하고, 인근 순찰차를 동원해 도주로를 막은 것.
그 후 덕규, 경수와 함께 매천 하나 순찰차를 타고 현장 인근을 수색한 것.
CCTV 관제센터 정보를 통해 범인의 도주로를 예측하고 원룸 빌라 주차장 차 밑에서 그를 찾은 것.
그 후 추격하고 검거하는 과정에서 용의자가 경수를 칼로 위협했고 내가 총을 쏜 것 등.
“잘 들었습니다. 위원 분들은 자유롭게 심문해주세요.”
철성이 말하자 줄곧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민상이 입을 열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탁정태 경위의 총기사용이 적절했냐 하는 겁니다. 탁경위는 고경수 경사가 용의자에게 칼로 위협을 당했다고 말했지만, 피의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고 현장에 이를 증명할 CCTV는 없었습니다. 정말 피의자가 칼로 고경사를 위협한 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탁경위는 그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고요?”
“네.”
내가 덤덤히 답하자 민상이 고개를 빼 뒤쪽을 보며 말했다.
“거기 고경수 경사. 앞으로 잠깐 나와 보세요.”
그 말에 뒤에 앉아 있던 경수가 앞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위원들의 출석 요청으로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긴장한 듯한 그에게 민상이 물었다.
“탁경위의 말대로 피의자가 칼로 고경사를 찌르려고 한 게 맞습니까?”
“마, 맞습니다.”
“피의자가 왜 고경사를 위협했습니까?”
“… 네?”
“칼로 찌르려 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경수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당시 궁지에 몰린 피의자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 상황까지 몰아간 경찰관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칼을 든 것 같습니다.”
“고경사는 장구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까?”
“테이저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그 질문에 경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과장님도 아시다시피 테이저건을 발사할 때는 두 개의 전기 침이 상대 신체에 꽂혀야 합니다. 그래야 전류가 흘러 전기충격을 줄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지금 같은 겨울엔 테이저 건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얇은 침이 두꺼운 겨울옷을 뚫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테이저 건을 사용했는데 침이 안 들어갔다는 얘긴가요?”
“아니오. 아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민상이 더더욱 인상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테이저 건을 사용해보지도 않고 최후의 수단인 38권총을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아, 아니. 그게…”
“안전하게 피의자를 검거할 모든 수단을 동원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총을 쏴댔다는 말입니까!?”
민상이 언성을 높여 쏘아붙였다.
며칠 전 대강당 앞에서 나와 대화를 나눌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정작 총을 쏜 건 나인데.
경수는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자, 생안과장님. 진정 좀 하시고. 저는 탁정태 경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이번엔 안득이 입을 열었다.
“최초 빌라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 밑에서 피의자를 발견했을 때. 그곳엔 탁경위 혼자 있었습니까?”
“네, 혼자 있었습니다.”
“왜 혼자 있었죠?”
그가 턱을 괴며 질문을 이었다.
“3인 1조로 수색을 실시했는데 왜 탁경위 혼자 그곳에 있었냐는 말입니다.”
“김덕규 팀장님과 고경사님이 눈으로 현장을 훑으며 수색하는 방식이 느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 혼자 빠르게 앞으로 나와 따로 수색을 했습니다.”
“눈으로 하는 게 느리다? 수색을 눈으로 하지 뭘로 한단 말입니까?”
“저는 귀로 했습니다.”
“귀로요?”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쫓기고 있는 상황을 토대로 바스락, 지익, 거친 숨소리. 이 세 가지 소리를 특정했습니다.”
소리만으로 용의자를 특정한다.
안득은 20년 경찰 생활 동안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봤다.
“수색이 늦어지면 피의자가 다른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 2차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눈보다 훨씬 더 빨리 목표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그럼 이번엔 고경사에게 묻겠습니다.”
안득이 고개를 돌려 경수를 바라봤다.
“탁경위가 앞으로 빠르게 나갈 때 왜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따라갔습니다. 너무 빨라 따라가지 못했을 뿐입니다. 정태는 발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거의 뛰듯이 빨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랑 김덕규 팀장님이 정태를 따라가려면 발소리를 내며 뛰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피의자에게 위치를 알리는 꼴이 되니 그럴 수도 없었고요. 정태는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 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안득이 질문을 끝내자 곧장 민상이 소리쳤다.
“3인 1조 수색 중 한 명이 단독 행동을 하지 않나, 테이저도 쏴보지 않고 38을 갈겨대질 않나. 이건 처음부터 다 잘못되었습니다.”
“아뇨, 잘못된 거 없습니다.”
“… 뭐예요?”
“오히려 대성공이라고 봐야죠.”
내 말에 민상이 눈을 부릅떴다.
나는 아랑곳 않고 그에게 물었다.
“생안과장님. 이번 일로 잘못된 게 무엇입니까?”
“불필요하게 과한 공권력을 사용해 피의자가 다쳤잖아요!”
“그러니까 38권총을 사용한 게 공권력 남용이다, 이 말씀이시죠?”
“바로 그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답변 드리죠.”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민상의 얼굴을 보며 난 점점 흥분했다.
어쩜 저렇게 멍청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줘야 한다.
오랜만에 장교수의 토론 수업이 생각났다.
“먼저 아까 과장님이 정말 피의자가 칼로 고경수 경사를 찌르려고 한 게 맞느냐, 피의자는 행위를 부정하고 CCTV도 없는데 어떻게 그 행위를 증명할 거냐고 하셨죠?”
“그랬습니다.”
“사건발생 직후 현장엔 과학수사팀이 도착해 감식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피의자가 고경수 경사에게로 다가간 듯한 족적, 고경수 경사가 그 자리에 쓰러져 뒤로 몸을 끈 듯한 흔적, 그 바로 옆에 피의자의 오지 지문이 다 묻어 있는 칼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안득과 철성을 돌아본 뒤 다시 민상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과장님 말씀대로 피의자는 칼로 고경수 경사를 위협한 행위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이 족적과 현장 흔적들에 대해 추궁하니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CCTV가 없다는 건 우리 경찰관의 진술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의자의 진술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이 상황에서, 과장님은 증거가 명백한데도 대답을 회피하는 피의자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증거와 일치하는 일관된 진술을 하는 세 명의 경찰관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민상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나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곧장 말을 이어갔다.
“다음으로 총기사용 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과장님은 경찰관의 38권총 사용 요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당연하죠. 범인의 체포, 도주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신체의 방어 및 보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제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위해를 끼쳐서는 안 돼요! 경고사격 정도로 마무리 지어야 한단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위해를 끼치는 것을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있습니다. 조항을 아십니까?”
“……”
“첫째,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에 해당할 때. 둘째,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가 경찰관 직무집행에 항거하거나 도주할 때, 셋째 경찰관으로부터 3회 이상 무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고도 따르지 아니하고 항거할 때. 다른 몇 가지 조항이 더 있지만 지역경찰 신고출동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은 이 세 가지 정도입니다.”
내가 설명하자 민상은 탐탁지 않다는 듯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하는 것이 있습니까?”
“셋 모두에 해당합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에 대해선 마지막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피의자는 강도의 죄를 범하고 도주하였으며 발각되고 난 뒤에도 경찰관의 직무집행에 항거하였으므로 두 번째 조항에 해당합니다. 또 칼을 버리라는 경찰관의 요구를 3회 이상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으므로 세 번째 조항에도 해당합니다.”
“참나.”
내 말에 민상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튀어나온 배를 책상에 걸쳐놓고 허리춤에 손을 얹힌 채 목소리를 높였다.
“누굴 바보로 알아요? 그렇게 법대로 할 것 같으면 전국에 밤새 총소리가 들릴 겁니다. 요건에 맞기만 맞으면 아무 대나 총을 갈겨도 되는 줄 압니까? 법 조항에 해당되어도 판례가 총기사용을 함부로 허용하지 않잖아요!”
“……”
“총기는 기본적으로 ‘이 무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될 때’ 발사할 수 있단 말입니다. 당시 출동한 경찰관이 자그마치 15명에 순찰차가 7대입니다. 다른 경찰관에게 도움 요청할 생각은 왜 못했습니까? 게다가 테이저도 안 쐈어요. 왜 총기 사용 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하지 않았습니까? 예?”
“과장님 여기…”
나는 민상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미리 파출소에서 가져온 38권총을 그에게 건넸다.
“지금 뭐하는…”
“실탄이 장전된 총입니다. 과장님이 갖고 계십시오. 그리고 이건…”
이어 가방에서 날이 시퍼런 회칼을 꺼냈다.
“당시 피의자가 들고 있었던 것과 최대한 비슷한 칼을 가져와봤습니다.”
“회칼을 여기 왜…”
“그때 상황을 재현해보겠습니다.”
나는 민상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가 칼을 머리 위로 들어 내리찍을 듯한 모션을 취했다.
“으악!”
그 모습만으로 겁에 질린 민상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허리를 숙였다.
“이 상황입니다.”
“…?”
“고경수 경사가 직면한 상황이요.”
“……”
“이 칼이 과장님 머리에 꽂히는 데 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1초? 아니, 0.5초?”
민상은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을 떨며 나를 빼꼼히 쳐다봤다.
내가 우측에 앉아 있는 경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시 김덕규 팀장님은 저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성인 걸음으로 세 걸음 정도 거리. 저도 마찬가지로 그 정도 거리에 있었고요. 짧다면 짧은 거리지만 0.5초 안에 칼을 든 피의자를 제압하기는 먼 거리입니다.”
“……”
“게다가 신고를 지원해준 나머지 6대의 순찰차, 12명의 경찰관은 전부 다 50m 밖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들 중 누가 고경수 경사를 구해줄 수 있었겠습니까?”
민상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철성과 안득, 경수도 가만히 집중해서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이어서 나는 입고 있던 두꺼운 겨울 근무복을 만지며 말했다.
“테이저 건을 쏘면 되지 않느냐 하셨죠? 0.5초 안에 총집에 있던 테이저건을 꺼내 이 두꺼운 옷을 관통시켜 전기충격을 줄 수 있었을까요? 아니, 그 순간에 그런 판단을 하는 게 가능하긴 했을까요?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
“지금 이 상황에서 단 하나 피의자의 행위를 막을 수 있었던 방법은.”
내가 책상에 놓인 38권총을 가리켰다.
“이 38권총으로 위해를 가해서라도 피의자의 행위를 제지하는 것. 그 방법밖에 없었단 말입니다.”
“……”
“그리고 이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 형법 제 21조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므로…”
이어서 나는 칼을 총 옆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공권력 남용이 아닌 적법한 행위가 되는 거죠.”
감정수업 한 번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