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전혀 예상치 못한 색깔과 소리.
나이는 50대 초반 정도.
작지만 땅땅한 몸.
5cm가량 기른 턱수염.
분명 중범 회의 때 봤던 임광천이 맞았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순식간에 정장 남자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폐건물 안 십여 명 뿐만 아니라.
저벅- 저벅- 저벅-
스윽- 스윽- 스윽- 스윽-
밖에 있던 정장 남자 스무 명 가랑이 더 들어와 우리와 대치했다.
“찾아온 건 용한데.”
또각- 또각-
남자들이 비켜서 길을 만들더니.
“고작 셋이서 너무 당돌한 거 아이가.”
광천이 앞으로 나왔다.
교철과는 다른 굵직한 음성의 경상도 억양.
깊게 주름이 패인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
“티비에서 마-이 보던 놈들이네.”
“……”
“저거 때문에 온 거제?”
그가 저쪽에 놓인 컴퓨터 본체를 가리켰다.
이어 본체 옆에 망치를 들고 있던 정장남자들을 쳐다보더니.
“뭐하노. 작업 계속 안 하고.”
낮은 음성으로 지시했다.
그러자.
깡- 깡- 깡-
다시 작업이 재개됐다.
그렇게 잠시 동안 망치소리가 이어지다가.
“아아. 잠시만. 스돕!”
갑자기 광천이 다시 그들을 멈춰 세웠다.
“상황이 이래된 김에.”
그리곤 치헌을 보고 씨익 웃었다.
“우리 딜을 해보는 게 어떻겠노?”
“……”
“너거가 원하는 걸 줄테니, 너거도 우리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어떻겠냐 이 말이야.”
그가 치헌의 앞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이철성이가 요새 영 힘을 못 쓴다 싶디, 결국엔 너거한테 잡히뿟다매? 뒤를 봐주던 놈이 사라져뿌이 우리가 마음이 불안해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거든.”
“……”
“너거 짜바리들 돈 마이 쪼들리제?”
그가 안주머니에서 오만원권 뭉치를 꺼내 앞에 흔들어보였다.
“우리 사업하는 데서 일정 부분 수수료 떼 줄게. 대신 너거는 우리 쪽 일에 간섭 안 하는 걸로.”
“……”
“이철성이하고 서울청 경무관하고 잡아들일 정도면 너거도 그 정도 권력은 있는 거잖아. 어떻노? 오케이 됐나?”
“……”
“오케이 됐냐고.”
치헌이 대답을 하지 않자.
“하, 참내.”
광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뭐 너거는 책에 나오는 정의로운 경찰이다 이거가? 지랄병하고 자빠졌네. 이거 오케이 하면 매월 너거들 앞으로 들어갈 돈이 최소 3천씩이다 3천. 너거 1년 연봉을 매월 내가 주겠다고. 그것도 제일 안전한 방법으로, 뒤탈 없게!”
“……”
“이래 개고생해가 너거가 얻는 게 뭐고? 숭고한 척 그만하고 서로 윈윈하자고. 오케이만 하면 이 하드 넘겨받아 승진도 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노?”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와 돈뭉치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대답해라. 오케이 됐나?”
“……”
“어허이. 참 독불장군일세 이 양반들.”
그가 다시금 물러나며 헛웃음을 지었다.
“안 되겠다. 야들아, 연장 꺼내라.”
광천이 지시하자.
스윽- 스윽- 스윽- 스윽-
덩치들이 품에서 날이 시퍼런 사시미를 꺼냈다.
“오케이 안 하면 죽어야지. 오늘 있었던 일은 없던 일이 돼야 하니까.”
“……”
“마지막으로 묻는다. 오케이 됐나?”
그의 마지막 질문에도.
“……”
치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광천이 얘기하는 동안 계속 치헌의 행동을 살폈다.
‘평소보다 자주 침을 삼키며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 떨리는 어깨와 다리.’
그는 확실한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하지만.
“후-”
그는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꽈악-
참고 있는 것이다.
“아직이에요.”
주먹을 꽉 그러쥐는 그를 보자마자 내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광천이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 뭐라꼬?”
나는 그에 별 반응하지 않고.
“아직 입니다, 팀장님. 기다리세요.”
치헌을 다시 말렸다.
“이것들이 돌았나. 뭘 기다려?”
“조금만. 조금만 더…”
광천을 무시한 채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내가 찾는 소리.
그것이 들려야 한다.
이제 들릴 때가 됐다 싶었을 때.
부와아앙-
부와아앙-
저 멀리서 미세한 소리가 감지되었다.
“이 씨발롬들이 지금 무슨…”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치헌을 돌아봤다.
“팀장님 지금입니다.”
내가 신호를 줌과 동시에.
빠악-!
치헌의 주먹이 광천의 얼굴에 날아가 꽂혔다.
“억!”
스윽-
부웅-
쾅-!
치헌은 날아가는 광천을 다시 붙잡아 벽으로 내던졌다.
그리곤 곧장 총을 꺼내 광천 쪽으로 겨눈 채 덩치들에게 소리쳤다.
“이 씨발새끼들아 전부 칼 내려놓고 바닥에 엎드려.”
“…!”
순식간에 일어난 일.
나와 경수도 얼른 38권총을 빼들고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총구를 겨눴다.
덩치들은 자기들이 수적으로도 우세하고 무기까지 들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잠시 동안 멍하니 우리를 바라봤다.
“안 엎드려!? 임광천 이 개새끼 총 맞는 꼴 보고 싶어!!?”
치헌이 그렇게 소리치고.
“지금 저희는 협박을 하는 게 아니라 경직법을 근거로 공무집행에 항거하는 자에게 총기로 대응하는 겁니다. 지금은 야간이고 피의자가 다수이며 칼까지 들고 있는 상황이라 경찰관의 과잉방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요건을 모두 갖춘…”
내가 그의 행위를 법적으로 수습했다.
“그러니.”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전부 칼 내려놓고 엎드리세요!”
“……”
“엎드리세요!”
내가 거듭 소리치자.
툭- 투둑-
한 명씩 칼을 내려놓더니.
투두두두둑-
투둑- 툭-
풀썩- 풀썩- 풀썩-
덩치들이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그때.
끼익-
“형님! 지금 밖에 짭새들 차 수십 대가…”
앳된 정장 남자가 들어와 무언가를 알리려다 치헌과 눈이 마주쳤다.
“너도 엎드려 씹새야.”
풀썩-
상황을 파악한 덩치가 곧장 바닥에 엎드렸다.
“도주 하려는 낌새 보이면 바로 쏜다. 전부 가만히 있어.”
치헌은 그들을 모두 묶어놓은 뒤 광천에게 다가가.
빠악-!
빠악-!
빠악-!
얼굴에 몇 차례 더 주먹을 꽂았다.
“씨발새끼가 조폭 주제에 어디서 돈 살랑살랑 흔들면서 가오 잡고 있어? 뒤질라고.”
“……”
광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추욱 늘어졌다.
부와아아앙-
부와아아앙-
이어 밖에서 거친 차소리가 이어지더니.
다다다다다-
끼익-
“괜찮으십니까!?”
관할 경찰서 형사와 파출소 경찰관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맨 앞에 서 있던 중년 사복 경찰이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 “가… 강북서 형사과장입니다. 출동 인원들 모두 현장 공착(도착)했고요… 피의자는 서른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전했다.
– “피의자들은 이미 다 검거되어 있습니다. 다친 등원(경찰관)은… 전무(없음)입니다.”
*
며칠 후.
나는 앉아서 그날을 회상했다.
그날, 내 귀는 망을 보던 조폭의 눈보다 빨랐다.
우린 순식간에 조폭들을 휘어잡았고, 모두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북성파 두목과 피의자 30여 명을 검거한 것.
물론 엄청난 성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우린 애초에 그것을 찾기 위해 그 폐건물에 들어간 거니까.
‘복구는 할 수 있겠어요. 물에 빠진 것보단 낫습니다.’
그들이 망치로 내려친 탓에 깨지고 망가지긴 했지만, 가락은 충분히 데이터 복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물을 먹은 경우보단 수월하다고.
그는 단 이틀 만에 의미 있는 내용들을 복원해냈다.
그 내용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형.”
정우가 왔다.
“이거 제 커피에요?”
“응. 너 한 종류만 마시잖아. 미리 시켜놨어.”
그는 나랑 똑같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먹는다.
“은빈 씨는 잘 있어?”
내가 묻자.
“… 안 어울리네요.”
그가 날 빤히 바라봤다.
“형이 안부를 묻다니.”
“……”
사실 나도 말을 내뱉으며 놀랐다.
내가 ‘안녕하세요.’를 제외하고 남의 안부를 물은 적이 있던가.
아무튼 난 은빈의 안부가 궁금했다.
“잘 있어요. 별 일 없이.”
나는 오랜만에 사건에서 빠져나와 그녀 생각을 했다.
머리에 그녀를 그리고, 그녀가 느낄만한 감정들을 상상했다.
“네가 나 만나러 나온 거 알아?”
“네.”
“만나지 말라고 안 해?”
“그런 말은 안했어요.”
“은빈 씨가 불편해할 수도 있겠어. 네가 나 만나는 거.”
내 말에 정우가 아메리카노를 두 모금 마시고 퉁명스레 답했다.
“저 성인이에요. 누나가 어떻게 느끼든 제 일은 제가 결정해요. 저는 형을 만나는 게 즐겁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니까 나온 거예요.”
“……”
“형도 그렇지 않아요? 저를 만나는 게 즐겁거나 유익하지 않으면 저를 만날 이유가 없잖아요.”
정확하다.
이유 없는 만남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오늘은 어떤 이유로 절 보자고 한 거죠?”
“네 생각을 물어보려고.”
“제 생각이요?”
“며칠 전 임학수 시장 컴퓨터를 압수했어.”
“알아요. 뉴스에서 봤어요. 조폭들 잡으면서 컴퓨터도 압수했다고.”
“그래. 컴퓨터를 압수한 이유는 백양의 하남시 개발사업 비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어. 하드디스크가 좀 부서지긴 했지만 다행히 서울청 내 유능한 과학수사관들이 복구를 해줬어.”
나는 데이터 복원 뒤 가락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계속 말했다.
“다행히 유의미한 증거들이 나왔어. 하남시는 외부의 청탁을 받아 개발사업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갖가지 비리들을 저질렀어.”
임학수 시장은 청탁세력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따로 다 저장해놓았었다.
그도 그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우고 싶었던 듯했다.
“함께 비리를 꾸민 이들의 신원까지 모두 파악됐어. 영장도 다 발부되었고. 대부분은 신병을 확보해서 구속한 상태야.”
“그럼 이제 수사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제 무슨 생각이 궁금하다는 거죠?”
“응, 수사를 하면 되긴 하지만.”
내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이번 수사로도 결국 내가 원하는 실체적 진실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
“애초에 마지막 장막을 숨겨놨어. 본체는 몸을 숨기고 심부름꾼만 처벌을 받도록 만들어 놓은 거야.”
가락이 복원한 이메일의 발신자들은 모두 타기관 말단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사무적인 언어로 학수에게 ‘부탁조’ 메시지를 보냈고, 학수는 그 말을 그대로 문서에 담아 일을 진행했다.
학수의 진술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만의 암호이자 방어적 메시지 전달방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학수의 진술일 뿐.
증거로 남은 것은 말단공무원의 메시지와 학수가 결재한 공문서들뿐이었다.
우리가 찾던 백양의 그 누구도 서류와 데이터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황철나무 구성원들인 백양의 가족들도 범죄를 시인하긴 했지만 다 자기 스스로 벌인 일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백양 멤버들인 이호중, 서인혁, 안동현, 홍설희와는 관련이 없다는 거야. 이들 진술에 반박할 수 있는 증거 또한 전혀 없어.”
황철나무 구성원들은 죄를 시인했지만, 백양과의 관련성은 부정했다.
게다가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며 고의를 부정했다.
죄를 끌어안되 최소한의 형량만 받는, 전형적인 경제사범들의 수법이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수사를 열심히 하고 있고, 이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있어.”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수사,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정곡을 파지도 못하고 있고. 무언가 보완이 필요해. 하지만 내 시야에선 그게 보이지 않아.”
백양을 수사하면서 처음으로 ‘수사’에 고민이 생겼다.
안동현과 양대석, 홍설희를 검거하긴 했지만 계속 뭔가 겉을 돌고 있는 느낌.
분명 옳은 수사를 하고 있지만 내가 둘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진 않을까 하는.
“그래서 너한테 묻고 싶어. 넌 나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졌잖아.”
그걸 정우는 알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가 내 상황이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수사의 방향과 색깔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남들은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
왜 경찰이 일반인에게 수사기법을 묻느냐고.
하지만 난 지금 수사기법을 묻는 게 아니다.
내 생각의 확장.
전혀 예상치 못한 색깔과 소리의 영감이 필요한 것이다.
나만큼 수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
나는 그가 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마치 내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씨익-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어떤 감정을 건드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