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어떤 감정을 건드려야.
“사람의 눈은 항상 밖을 보도록 되어 있어요.”
정우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개를 아무리 돌려도 안은 볼 수 없어요. 늘 밖을 보죠.”
눈은 항상 밖을 본다라.
“그래서 인간은 늘 현상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아요. 외부의 물질과 외부의 사건에서 인과를 찾아 연결하죠.”
그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베베 꼬여 있는 대부분 문제들의 실마리는 내부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
“눈을 억지로라도 돌려서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해봐요.”
나는 눈을 감고 눈알을 억지로 뒤집어보려 애썼다.
“피의자와 현장에서 찾지 못한 걸 경찰조직과 내 주변인들에게서 찾아보라구요.”
경찰조직과 내 주변인들.
그런 생각을 하니 순간 뒤통수에 눈이 생긴 듯 시야가 확 트였다.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퍼즐들이 머리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
새로운 모양의 퍼즐.
“그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 봐요.”
그 낯선 조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거기에 해결책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
나는 머릿속 퍼즐을 맞춰보며 정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분명 그가 해준 말은 내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대체 어떤 경로로 이런 발상을 하게 된 걸까.
왜 내부에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답을 내놓는 그의 머릿속엔 어떤 퍼즐이 떠다니고 있는 걸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 주변인들에게서 사건과의 인과를 발견하는 것.”
그는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너무 짜릿할 것 같지 않아요?”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이내 풀어지는 동공.
벌어지는 입.
익숙한 표정이다.
나는 지금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지 안다.
그의 뇌에선 지금.
“수사는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
다음 날, 경기북부지방청장실.
“시청 공무원들을 계속 구속해놓긴 어렵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관우가 쌓인 서류를 살피며 말했다.
“허위임을 인식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부정행사하긴 했지만, 죄를 다 시인한 데다 시장의 개입으로 어쩔 수 없이 지시를 행했다는 게 모두 증명된 상태니까요.”
어제 조사를 끝으로 시청 말단 공무원들은 귀가조치 되었다.
“임학수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수는 구속해야 마땅했지만 관우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다.
“큰 세력을 잠시 잡아두는 건 가능하지만 곧장 반대 세력이 들고 일어날 겁니다. 이전 양대석 건 관련 시청 영장집행에 대해 태클을 걸겠죠. 재량권을 초과한 게 아니냐고.”
시청 압수수색 때 일부러 더 신경을 써서 아무 문제없이 영장을 집행하긴 했지만, 이 정도 세력 간의 싸움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는 언론을 이용하는 데 타고났다.
그들은 순식간에 논란을 불법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시장은 안동현이나 홍설희와는 다릅니다. 후자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히면 그대로 도태되는 개인이지만, 시장은 ‘기본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입니다. 여론의 힘을 받으면 시너지가 폭발하죠.”
셋 모두 범죄자인건 마찬가진데.
기본 지지세력들은 왜 시장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걸까.
“피의자들을 잡아둘 시간은 많지 않고 백양 관련 증거는 없는 상황. 이게 저희가 처해 있는 현실입니다.”
“……”
“탁경위님은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해나갈 생각이신가요.”
관우가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떠오르는 방법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내가 여태 해오던 것들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또 다시 사건의 겉만 돌 것 같은 방식들.
어제 정우와 대화하며 생각이 확장되긴 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사할지 정하진 못했다.
머리는 계속 새로운 방향과 색깔을 찾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상황.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관우.
나는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내가 곧장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당황한 걸까.
…
아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지금 오히려.
“임광천이 딜을 하자고 했다면서요.”
내게 해결책을 제시해주려 하고 있다.
“그게 어쩌면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
“딜에 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제시한 내용은 모두 불법입니다. 경찰은 그런 제안에 응해선 안 됩니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이어서.
하지만.
“진짜 응하라는 게 아닙니다.”
“…?”
“응하는 척해서 수사상 이익을 취하라는 거죠.”
“……”
“또한 작은 걸 내주고 큰 걸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단순폭행을 눈감아주고 살인피의자를 발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폭행을 눈감아줘야 한다는 겁니다.”
폭행을 눈감아주라니.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볼까요. 단순폭행을 한 A의 죄를 눈감아주면, 감금치상죄를 저지르고 있는 B의 행방을 알 수 있다고 칩시다. B가 감금하고 있는 피해자는 곧 죽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수사관은 B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때 수사관의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
“경찰은 절대 폭행을 봐줄 수 없어! 하며 계속 정의롭게 수사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딜을 해서 얼른 B를 잡 고 피해자를 구출해내는 게 맞을까요?”
“……”
“전자를 진정한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질문은 간단했지만 머리는 복잡해졌다.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나는 단순 폭행과 감금치상의 상황을 시각화해봤다.
“피의자와 늘 딜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
“수사상 이익이 훨씬 커지는 딜이 있다면.”
단순 폭행은 상호 합의로 내부 종결되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반면 감금치상은 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어차피 내부 종결될 단순 폭행사건을 포기하고 감금치상죄 피해자를 구출할 수 있다면.
“그럴 땐 유도리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땐 나도 유도리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발휘해야만 했다.
그게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수사의 궁극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길이었으니까.
“정의는 비틀어도 정의입니다. 오히려 비틀 때 더 큰 정의가 되기도 하죠.”
머릿속 정의가 뒤틀리며 더 큰 정의를 만들어냈다.
“우리한텐 아직 카드가 많습니다. 백양 관련자들은 물론 실제 백양 멤버들까지 신병을 확보해놓은 상황이죠.”
정의를 뒤트니 수사의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유도리를 발휘해야할 때입니다.”
“……”
“탁경위 님이 힘드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사건을 중범으로 완전히 넘겨주시겠습니까?”
“아뇨.”
이제 퍼즐은 평평하게 깔린 퍼즐 판에만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구 튀어나와 수직으로도 쌓이며.
“끝까지 제가 합니다.”
3차원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
1시간 뒤.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의 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입구에 나와 나란히 선 금주희 과장이 병실 안의 여성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일시적 장애와 영구적 장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환자는 홍설희.
“현재로선 명확히 판단내리기가 어려워. 말을 전혀 안 하니까.”
이전에 난리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평온한, 아니 해탈한 얼굴로 가만히 밖을 바라봤다.
“실어증은 보통 뇌 쪽에 강한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서 생겨. 하지만 정신적 충격으로도 발병할 수 있지. 이와는 좀 다른 개념으로 함묵증이란 게 있는데, 이건 병이라기보단 심리학적인 이유에서 말을 안 하는 증상이야. 둘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지.”
그녀는 말을 못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그렇게 큰 충격을 준 돈과 남자.
그것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치헌이 느끼는 딸의 소중함, 은빈이 느끼는 정우의 소중함과 비슷한 느낌일까.
“이왕 온 김에 얘기라도 해봐. 의사 간호사한테는 안 하던 얘기를 형사한텐 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고 주희는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
“안녕하세요.”
설희에게 인사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는 그녀.
그녀의 표정엔 놀람도 불쾌함도 없었다.
그저 벽을 보듯 날 봤다.
“지난 사건관련 조사를 위해 왔습니다.”
“……”
“질문을 하면 사실 그대로 답해주세요.”
굳게 닫힌 입술.
“유리방 안 남자들은 어떻게 별장으로 데리고 온 겁니까?”
“……”
“그들 중 대다수는 일신교회 어린 시절을 보낸 고아들이었습니다. 안동현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나요?”
“……”
“이철성이 별장에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다툰 흔적이 있던데, 그와 다툰 것 아닌가요?”
“……”
“그가 왜 별장에 불을 질렀다고 생각하십니까?”
“……”
내가 계속 질문했지만 그녀는 입도 꿈쩍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녀의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을까.
“화재를 다 진화하고 난 뒤 현장감식한 결과 별장 내부에서 GHB를 비롯한 다량의 마약이 발견되었어요. 하지만 홍설희 씨의 머리카락에선 마약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대신 유리방 한편에 외부 공기를 주입하는 구멍을 발견했어요. 이 구멍을 통해 마약을 기체화하여 남자들에게 강제 환각작용을 일으키게 한 것 같던데. 맞습니까?”
“……”
“유리방 옆 서랍에선 다량의 성인용품, 고문·학대용 도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홍설희 씨는 남자들을 상대로 가학적 성행위를 즐긴 겁니까?”
이건 모르고 묻는 질문이 아니다.
별장 내부 살림살이들은 대부분 여성을 위한 것밖에 없었다.
유리방에 갇혀 있던 22명의 남성을 위한 것은 단출한 옷 몇 벌과 수건들 뿐.
마약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설희 뿐이었다.
“남자들은 언제부터 그곳에 갇혀 있었던 겁니까?”
이 모든 행위들, 그리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여죄들까지 확실히 처벌하기 위해선.
“수백억에 달하는 돈의 출처는 어디죠?”
그녀의 혐의 인정이 필수다.
“사우나 마약파티 현장에도 계셨죠? 거기서도 홍설희 씨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입을 열기 위해.
“그 파티에 참여한 인원은 누구입니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경상도 억양을 쓰는 남자가 있다던데. 그가 누구죠?”
“……”
“사라진 더퀸 소속 여성 유흥접객원들 또한 지하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있습니까?”
“……”
시호에겐 마약, 동현에겐 살인, 설희에겐 섹스가 최고의 쾌락이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만 공감하진 못한다.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쾌락을 추구하겠다는 그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최근 압수수색한 하남시청 컴퓨터 자료에서 홍설희 씨 오빠 분의 개발사업 비리 혐의가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나요?”
감정의 영역은 아직 내게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
양으로 질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감정을 건드려야 그녀의 입을 열 수 있을까.
“멤버들과 결탁해 백양이 벌인 일 아닌가요?”
계속 질문을 하다보면.
“이호중 의원, 서인혁 차관과 함께 꾸민 일 아니에요?”
하나 걸려들 것이다.
‘흠.’
나는 잠시 틈을 두고.
“홍설희 씨 휴대폰 포렌식을 해보니.”
질문을 색깔을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한시호 기자와 연인사이였더군요.”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