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을 할수록.
“한시호를 살해한 건 백양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설희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한시호는 살해당하기 전, 저와 한 마지막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백양에서 가지치기를 당한 것 같다고. 곧 거대한 괴물들이 올 거라고.”
“……”
“그 통화를 하던 와중에 별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한시호는 살해당했죠.”
이어 흔들리는 눈동자.
“실제 살인을 행한 건 북성파 조폭들이지만, 그것을 지시한 건 백양일 겁니다.”
떨리는 입술.
“이후 홍설희 씨는 안동현 목사와 함께 한시호의 집에 다녀가셨죠?”
“……”
“아마 백양 멤버들의 지시를 받고 증거를 인멸하러 갔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모습이 촬영된 CCTV에서 분명히 봤습니다.”
내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덧붙였다.
“홍설희 씨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요.”
그녀의 눈엔 지금도 조금씩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온갖 거짓을 일삼으면서도 한시호에게 만큼은 진심이었나 보군요. 이렇게 동요하는 걸 보면.”
“……”
“제 수사는 여태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모두 정확하게 범인을 예측했죠.”
“……”
“한시호 사건의 범인은 백양의 누군가가 확실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호중 의원, 서인혁 차관 중 한 명일 확률이 높죠.”
빨개져 훌쩍거리는 코.
인상을 찡그려 패이는 미간 주름.
그녀의 감정 결계는 이제 완전히 풀어졌다.
그녀는 솟구치는 감정을 점점 표출하고 있었다.
“홍설희 씨가 진술을 거부하셔도 지난 감금치사 혐의는 그대로 기소가 될 겁니다.”
“……”
“하지만 한시호 건은 추가 진술이 없으면 북성파 조직원들만 처벌하는 것으로 수사가 종료될 수 있어요.”
질문을 하다보니 촉매가 되는 감정을 건드렸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제 나는.
“수사에 협조를 해주세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한시호 살인을 지시한 게 누군지 알아내야 해요. 홍설희 씨도 그걸 원할 거고요.”
“……”
“백양 관련 아시는 게 있으면 뭐든 다 말씀해주세요. 명백한 혐의 하나만 나오면 나머지는 여죄로 풀어 가면 되니까요.”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했다.
그녀의 반응만 남았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나도…”
그녀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한 차례 목을 가다듬은 후.
“나도 잘 몰라요.”
진술을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정체가 뭔지,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잘 몰라요. 우리한테도 말한 적이 없으니까.”
“말씀하신 ‘그 사람들’은 이호중 의원과 서인혁 차관이 맞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지칭하는 겁니까?”
내가 물었지만.
“그들은 항상 베일에 가려져 있었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할 말만 계속 했다.
최대한 자기를 방어하며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이익만 취하고 어느새 뒤로 빠져버렸죠.”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씩 분노가 깃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이용당한 게 맞는 것 같아요.”
“……”
“하지만.”
그녀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나름 대비책을 세우곤 있었죠.”
“…?”
“뒤가 구린 놈들은 언젠가 뒤통수를 치니까.”
스윽-
그녀가 베드 옆 서랍을 열어 수첩을 꺼내더니.
슥- 슥- 슥-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잡히고 나서 이걸 가르쳐주는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완성된 그림은.
“같은 팀원을 죽인 배신자 놈들은 물귀신 당해야지. 안 그래요?”
도로와 건물이 간단히 그려진 지도였다.
그녀는 그림 옆에 주소까지 적어.
“여기.”
종이를 찢어 내게 건넸다.
“쓸 만한 게 묻혀 있어요.”
*
잠시 후, 광수대 사무실.
[“모함입니다.”]
오늘도 저 멀리 6팀 책상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뉴스 소리.
[“직접적인 근거도 없이 제가 개입했다니요.”]
이호중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물론 처제의 잘못은 공인으로서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개입되었다는 건 완전한 거짓입니다. 대선을 의식한 여당의 모략질이에요! 저는 하남시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지지직-
이어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야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는 이호중 의원입니다. 당내에서도 이의원에 비견될 마땅한 후보가 없는 것으로…”]
다른 채널에서 호중에 대한 여론을 얘기했다.
최근 하남시청 사건 관련 논란이 있긴 하나, 그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잡음은 곧 사그라들 거라고.
나는 잠시 그 뉴스를 듣다가.
끼익-
조사실로 들어갔다.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까지 작성된 피신조서 다 훑어봤습니다.”
조사를 시작했다.
내 앞엔.
“진술을 엉망으로 하셨더군요.”
철성이 아무 표정 없이 앉아있다.
“일부러 방민신 서울청 2부장님과 같은 질문을 만들어 조사했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백양, 또는 저와 관련된 사안에서만 두 분 진술이 엇갈렸어요.”
“……”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했단 거죠.”
내가 CCTV 캡처본 사진을 내보였다.
“방민신 2부장은 진술한 시간, 그 장소에 항상 위치해 있었습니다.”
거리를 거닐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민신의 모습.
“반면.”
내가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계장님은 모두 없는 일을 사실인 것처럼 진술하셨죠.”
텅 비어 있는 거리와 가게.
철성이 허위진술을 한 것이다.
“거짓 진술로 수사력을 낭비시켰어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될 겁니다.”
“……”
“왜 거짓진술을 한 겁니까? 이 시간대에 어디 계셨습니까?”
“……”
내가 추궁하는 데도 그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미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라는 큰 죄를 저질렀기에 자잘한 혐의에 별 자극이 없는 것이다.
“본청 감찰 사무실 압수수색을 해보니.”
내가 또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최근 여권을 발급받으셨더군요.”
“……”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여권도 최근에 다 만들었어요.”
“……”
“도망가려 한 거죠?”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정리했다.
“해외로 도주하기 전에 뒷마무리를 하러 포천에 간 거예요. 계장님은 백양과 어떤 거래를 했고, 그 내역이 담긴 문서가 홍설희의 별장에 있었던 거죠.”
“……”
“백양과 약속했던 일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계속 조여 오는 수사에 압박을 느낀 계장님은 도주를 계획했고, 백양 관련 문서를 없애기 위해 억지로 홍설희의 별장에 침입하려 한 거예요. 별장을 찾는 과정에서 홍설희와 실랑이가 있었고, 그 사이에 경찰이 들이닥친 거죠.”
“……”
“별장 내 문서들만 없애버리면 큰 형벌을 받지 않으니 검거될 걸 각오하고 그곳에 불을 지른 거예요. ‘외딴 곳에 있는 별장 방화’라는 작은 죄로 그동안 저질러 온 큰 죄들을 다 덮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의도치 않게 사람 22명을 죽인 살인자가 되셨어요.”
방화는 명백히 증명되었지만 그 내막에 대해선 증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고,
딱 들어맞는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유관우 청장과 안동현, 한시호와 저에 관련된 일들도 모두 백양과 관련이 있겠죠. 계장님은 그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던 거고요.”
“……”
“백양과의 관련성이 명백해지고, 추후 백양의 죄들이 드러나게 되면 계장님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한 형을 받게 될 겁니다. 그게 두려워 백양 관련 질문엔 모두 거짓으로 답하는 거예요. 큰 죄들이 드러나는 것보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처벌을 받는 게 훨씬 나으니까.”
철성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내가 차가운 음성으로 계속 말했다.
“잘못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
“거짓 진술을 하시면 형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죄가 추가될 뿐입니다. 이전 범죄들은 결국 다 밝혀질 거니까요. 제 수사는 늘 그랬습니다.”
“……”
“지금이라도 죄를 인정하시고 수사에 협조하세요. 경찰관으로서 양심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하하…”
그가 마침내 입을 뗐다.
힘 없는 웃음.
“양심이라… 지금에 와서 그걸 지킨 들 저에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예상대로.
“저는 아무 것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을 말했지만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된다면 죄를 받아야죠.”
그는 계속 혐의를 부인했다.
나는 작전을 바꿔 그와 ‘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창진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저희 사무실에 방문해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딜이란 원래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합치를 말하는 거지만.
“반 아이 하나가 왕따를 당하고 있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죠.”
나는 철성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마음이 없다.
“그 아이 이름은 방수혁. 방민신 2부장의 아들이었습니다.”
나는 나만의 딜, 일방적인 딜을 할 것이다.
상대가 응할 수밖에 없는 딜.
“누나인 방혜수가 닭뼈 학대사건으로 검거된 뒤부터 아이들의 왕따가 시작되더니, 아버지까지 구속된 후로는 아이들의 무관심이 ‘혐오’로까지 이어졌답니다. 이유 없이 때리고 비난하는 생활이 며칠 째 반복되고 있대요.”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던 철성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아버지와 누나의 잘못이 죄 없는 수혁군에게까지 이어진 겁니다. 수혁군은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
“계장님 자녀 두 분 모두 중학생이죠?”
그의 눈이 커졌다.
“유명 연예인이었던 박지석 살해 및 장기적출, 동료형사 납치 및 사망사건, 유명 기자 사망, 버팔로 마약 및 돈세탁, 하남시 땅투기, 사이비 종교단체의 대량 살인 및 장애인 세뇌·살인교사 혐의 등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루된 경찰 내부 스파이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이었다.
“내 아버지라면.”
“…!”
“자녀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의 입술이 덜덜덜 떨렸다.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는 겁니다.”
초점을 찾지 못하는 눈.
“요즘은 인터넷과 SNS가 발달해 정보가 순식간에 퍼집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낙인찍히죠.”
“……”
“사상 최악의 경찰관 아버지를 둔 자녀분들은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요?”
“아아…”
그는 이제 몸을 움츠리고 무릎을 쓰다듬으며 신음까지 하기 시작했다.
눈은 금세 촉촉이 젖었다.
“저는 혐의가 밝혀지는 족족 뉴스를 통해 가감 없이 계장님의 죄를 퍼뜨릴 생각입니다.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니 피의사실공표죄에도 해당하지 않아요.”
“하아… 아…”
“아시다시피 언론은 이를 더 과장할 겁니다. 몇 주, 아니 몇 달간 계장님을 마음껏 물고 뜯으며 형체도 없이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예요.”
“아아…”
“그런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 별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신음은 점점 심해졌다.
매 맞기 직전의 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그.
“허나.”
내가 그를 달래듯 말했다.
“수사에 협조해주신다면 언론의 노출 빈도는 조절해드릴 수 있습니다. 백양이 저지른 죄를 대대적으로 터뜨리고, 조력자인 당신은 자막에 조그맣게 내보내드릴 수도 있죠.”
“하아…”
“그 차이만으로도 자녀들이 훨씬 적은 위험에 노출될 겁니다.”
“……”
“어떻게, 수사에 협조하시겠습니까?”
“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철성은 마침내.
“다, 당연히 해드려야죠! 죄송합니다! 거짓 진술을 해서 저, 정말 죄송합니다! 협조하겠습니다!!”
내 딜을 받아드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끼익-
“야, 정태야. 씨팔 좆됐어!”
다른 일이 들이닥쳤다.
진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