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진범.
“네?”
갑자기 또 무슨 일일까.
“나와 봐.”
조사실 문을 닫고 나가니.
“구속해제 됐던 하남시청 공무원 있잖아.”
치헌이 인상을 구기며 덧붙였다.
“살해된 채로 발견됐대.”
*
잠시 후, 살인사건 현장.
찰칵- 찰칵-
현장에 가니 이미 과학수사 요원들이 도착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방 안쪽에 피해자 사체가 보였다.
“목을 반쯤 썰었대. 미친 새끼…”
목 앞 부위가 반 정도 절단돼 벌어져 있었다.
“피해자는 28세 여성이고, 어머니랑 둘이 살아. 어머니는 시장에서 일을 하시는데, 마치고 집에 와 저 모습을 보고 신고하셨나봐. 신고한 뒤에 그대로 기절하셔서 지금은 병원에 가 계셔.”
방 두 개에 조그만 부엌이 딸린 다가구주택 3층 집.
크기는 10평 정도.
나는 대문부터 집까지 오는 계단, 현관문과 집안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여기.”
경수가 휴대폰에 동영상 화면을 띄워 내보였다.
“관제센터에서 보내준 영상이야. 사망 추정시간대에 이 대문 쪽으로 수상한 남자 하나가 다녀갔어.”
모자부터 신발까지 검정색 옷을 입은 남자가 대문에서 나와 골목길 밖으로 사라졌다.
“중범에서 곧장 추적 중이야. 아마 곧 잡힐 거야.”
“이 남자가 집으로 들어온 시간은 언제죠?”
“들어온 시간은…”
경수가 휴대폰을 만지고는 다시 말했다.
“19시 50분. 53분에 나갔으니 살해하는 데 3분이 걸렸단 거야. 이렇게 금방 살해했다면 우발적으로 범행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계획살인 아닐까?”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스윽-
감식장비를 착용한 뒤 플라스틱판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피해자의 모습이 온전히 다 보였다.
곳곳으로 뿌려진 혈흔.
“잠시만요.”
“어,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나는 말리는 과수반 요원들을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서편, 동편, 북편에 각 하나 이상의 혈흔들. 동편에서 가운데로 올 땐 끌린 듯한 혈흔. 그리고 피해자의 상태.’
내가 계속 방안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심하게 저항했어요.”
“……”
“피해자의 상체 곳곳에 찰과상이 나 있습니다. 게다가 손바닥에 칼자국. 칼이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날을 손으로 잡고 밀어내려 했어요. 방안 곳곳에 부딪히며 끈질기게 저항한 겁니다.”
그러자 과수반 요원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른 사진촬영 후 피해자 몸이나 이 방 안에서 흔적을 찾으려 하는 거잖아요. CCTV에 피의자 모습까지 찍혔다고 하니 감식자료와 영상자료 대조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
“제 말은 그 말이 아닙니다!”
나는 소리친 뒤 책상과 책장을 가리켰다.
“피해자는 과할 정도로 깔끔한 성격입니다. 필기구와 책상의 라인을 맞춰 정리하고 책들은 시리즈별은 물론이고 색깔까지 맞춰서 정리했어요. 그런 피해자가.”
이어 방 밖으로 나와 신발장을 가리켰다.
“신발을 저렇게 마구 내팽개쳐놨을 리 없습니다.”
“아, 그럼…”
“범인은 집에 몰래 침입한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인 척하며 현관을 열었고, 그때부터 피해자와 실랑이가 시작된 거예요. 그건 피해자 이빨에 낀 털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 앞니엔 정말 얇은 털이 끼여 있었다.
“범인이 피해자 입을 막으며 방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피해자는 범인의 팔을 문 겁니다. 팔에 있던 털이 빠져 이빨이 끼인 거고요.”
“…!”
“팔이 물린 범인은 이 방안에 들어와 칼을 꺼냅니다.”
내가 책상 위에 있던 펜 하나를 들고 설명을 이었다.
“피해자 몸에 난 자상은 총 11개입니다. 방문 위치와 혈흔으로 봐선 처음에 서편으로 몰아넣고.”
슉- 슉- 슉-
“이렇게 피해자의 좌측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래서 발자국 왼쪽 벽으로 피가 뿜어져 나온 거예요.”
이어서 피해자를 끌고 북편.
“여기선 목을 찌릅니다. 힘이 빠진 피해자가 소리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완벽히 죽이기 위해 목부터 공격한 거예요. 그 뒤에 피해자가.”
내가 동편 벽을 가리켰다.
“동쪽으로 쓰러지며 여기까지 혈흔을 묻힌 겁니다. 이걸 행동으로 재현해보면.”
슈슈슉-
파밧-
질질질질-
슉- 슉- 슉- 슉-
나는 방 안 플라스틱판을 자유자재로 밟고 다니며 펜을 휘둘러댔다.
“이런 상황이 되는 거죠.”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고개를 드니.
“……”
다들 입을 벌린 채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감탄만 하지 마시고요.”
“……”
“아직 제가 뭘 말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까?”
“…?”
나는 걸어 현관문까지 나간 뒤.
“이곳을 다녀갔던 수상한 남자가 CCTV에 찍힌 시점부터 1층 대문까지 오는 데 10초.”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3층까지 계단을 올라오는 데 10초, 다른 사람인 척 문을 두드리고 이 현관문이 열리는 데까지 최소 10초. 그러니 범인과 피해자가 얼굴을 맞닥뜨리는 데까지 벌써 30초가 소요됩니다.”
“……”
“이어 현관에서 방까지 밀고 들어가는 과정.”
내가 씽크대 옆에 넘어져 있는 수저통을 가리켰다.
“이것도 한 번에 들어간 게 아닙니다. 현관에서부터 심한 실랑이가 있었죠. 아무리 피해자가 여성이라고 해도 있는 힘껏 반항하며 이 좁은 공간에서 불편하게 대치했다면 방까지 끌고 들어가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심한 반항까지 했으니 현관에서 방까지 들어오는데 최소 30초는 소요되었을 거예요.”
“아…”
“이어서 방에서 대치하는 상황.”
내가 피해자 사체를 가리켰다.
“피해자의 몸엔 자상이 총 11개. 각기 다른 부위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 있습니다. 반항하는 피해자를 상대로 방 곳곳에서 부딪히며 11개의 자상을 내려면.”
슈슈슉-
파밧-
질질질질-
슉- 슉- 슉- 슉-
내가 다시 펜을 휘두른 뒤 말했다.
“사람 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도 1분이 걸립니다. 실제 사람을 상대로 했다면 2분이 넘게 걸렸을 거예요. 이렇게 하면 대문으로부터 이 집에 들어와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4분 이상 걸립니다. 이건 행동을 조금 빠르게 한다고 시간을 더 당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빨리 행동 했다고 해도 4분이 필요한 범행이에요. 따라서.”
내가 펜을 놓고 모두를 둘러봤다.
“CCTV에 찍힌 남자는 범인이 아니에요. 미끼입니다.”
“!!”
드르륵-
이어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 옥상들이 보였다.
“진범은 대문이 아니라 옥상을 통해 현관까지 진입한 거예요. 미끼는 현관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
“감식 요원 더 불러야 합니다.”
내가 모두를 둘러보며 덧붙였다.
“옥상을 포함, 예상 도주로 전체를 감식해봐야 해요.”
*
잠시 후.
“팀장님!”
기섭과 현민이 대문 앞에 있는 치헌을 불렀다.
“어, 포렌식 맡겼냐?”
“네. 방금 맡기고 오는 길입니다.”
“폰 사진 한 번 보자.”
“여기요.”
기섭이 휴대폰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대포폰인 것 같아요. 총 3개고 배터리는 다 방전된 상태였습니다.”
“이거 모양 그거잖아. 예전에 조선족 애들 쓰던 거.”
“정말입니까?”
“아, 나 창진서 근무하던 시절이라 너흰 모르겠구나. 이거 조선족 새끼들 쓰고 버리던 대포폰이야. 홍설희가 어디 뒷골목 쑤시고 다니면서 주워놨다고 하더니, 이거였네.”
설희는 소위 말하는 ‘심부름꾼’들이 쓰고 버린 휴대폰 몇 개를 주워 별장 근처에 묻어놓았다고 했다.
기섭과 현민이 그 내용을 전달받고 가서 발견한 것.
“조만간 포렌식 결과 나올 겁니다.”
“오케이, 고생했어.”
“그런데.”
기섭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탁주임님이랑 고주임님은 어디 있습니까?”
그 말에 치헌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올라가봐. 난리도 아니야.”
*
“놓으세요.”
“안 됩니다! 위험해요!”
“놓으시라니까요.”
“내려오세요!”
소방대원은 끝까지 나를 잡고 놓지 않았다.
“이러면 수사 시간만 길어집니다. 그 사이 다른 살인 피해자가 발생하면 어떡할 겁니까?”
“당연히 피해자가 발생하면 안 되죠! 하지만… 교육도 받지 않은 분에게 함부로 장비를 내어주면 저희로서도 책임소재가 뒤따르니…”
나는 옥상에 설치된 줄에 내 몸을 의지한 채 난간 끝에 서있다.
소방대원들이 정신없는 틈에 줄을 설치하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시뮬레이션을 하기 직전 제지를 당했다.
“장비사용관련 문제가 생길 것이 염려되어 주민들을 살인 위험에 노출시키겠단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놓으세요.”
“하…”
한숨을 쉬는 소방대원 옆에서.
“정태야.”
경수가 날 타일렀다.
“타기관과 공동대응 하는 건 되게 민감한 문제야. 네가 지시하고 그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여기서 저보다 범인을 더 빨리 잡을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
“없으면 전부 잠자코 제가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여러분들이 걱정하는 그 무엇보다 주민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요.”
“……”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경찰과 소방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내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더니.
스르륵-
날 잡고 있던 소방대원도 손을 놓았다.
“소방은 여기 밑에 에어매트 설치하시고, 감식반은 계속 감식 진행하세요. 나머지는 다 대문 밖으로 나가세요. 감식 방해되니까.”
우르르르-
사람들이 밖으로 쭉 이동했다.
“송가락 경정님!”
내가 맨 뒤에 움직이던 가락을 부르니 그가 뒤돌아봤다.
“송경정님은 저랑 똑같이 몸에 줄 감으세요.”
“예!?”
“예상 도주로 설정과 감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니, 무슨…”
“빨리요!”
내가 소리치자 가락이 후다닥 장비를 챙겨 입었다.
“어후, 이거 안전한 건 맞죠?”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주변 집들을 보세요.”
좌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전부 다닥다닥 붙어 있긴 하지만 서편 건물이 가장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피해자가 있던 집 창문도 서편으로 나 있으니 현관을 열어주지 않으면 창으로 진입할 생각도 했을 거예요. 진범은 저 서편 건물로 온 겁니다.”
“아…”
“점프하세요.”
“… 네?”
가락이 잘못 들었다는 듯 물었다.
“점프하라고요. 예상 도주로 파악해야 하니까요. 송경정님이 앞에 있으니 먼저 가셔야 저도 갈 수 있습니다.”
“아니, 저는 과학수사요원인데 왜 이런 걸 시키는…”
“얼른요!”
“… 에잇!”
풀쩍-
가락이 긴 다리를 뻗어 서편 옥상 담벼락에 위태롭게 섰다.
이어서 나도.
휘익-
건물을 넘어갔다.
“눈으로 주변 살피면서 지붕으로 올라가세요.”
“……”
이제 가락은 별다른 대꾸 없이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밑의 소방대원들은 사방에서 에어매트를 쥐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픽-
우리는 줄이 연결된 고리를 풀고 맨몸으로 나아갔다.
읏차-
“계속 진행하세요.”
“범인이 이렇게 계속 지붕을 타고 갔을까요?”
“네. 주택가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각 옥상 전면 담이 꽤 높아 시야 차단에 좋습니다. 밤에 몰래 이동했다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물론 소리까지 죽이고 접근할 수 있었을 거예요.”
가락이 후레시를 켜고 주변을 살폈다.
“이렇게 어디까지 가야한단 거죠?”
“50m쯤 가면 아래에 동쪽으로 이어지는 긴 골목이 나옵니다. 아마 범인은 그곳을 이용했을 거예요. 거긴 인적이 드물고 공용 출입 가능한 건물도 몇 개 있으니까요.”
“아…”
“가는 동안 임광천 검거했던 폐건물 감식내용 브리핑 해주세요.”
가락은 어제까지 임광천과 북성파 조직원 30명을 검거했던 폐건물 감식을 하고 왔다.
“가는 동안요? 지금은 수사에 집중하고 나중에 들으시는 게 낫지 않…”
“수사 집중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브리핑 해주세요.”
지금 내 집중력은 극도로 올라가, 눈과 귀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 알겠습니다. 먼저…”
가락은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맞지 않는 퍼즐을 겨우 끼워 맞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