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맞지 않는 퍼즐을 겨우 끼워 맞추며.
“그곳에 있던 머리카락을 모두 수거했습니다.”
가락이 힘겹게 지붕을 타넘으며 설명했다.
“대부분은 본청 범죄자 데이터와 별 관련이 없는 자들 것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사람의 머리카락도 있었습니다.”
“누구 말입니까?”
“사망한 한시호요.”
“…!”
“한시호의 머리카락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 이건 우연이라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우연으로 볼 수 없다.
시호는 그곳으로 갈 이유가 없으니까.
분명 어떤 목적을 갖고 간 것이다.
“그래서 일단 머리카락은 각각 따로 분류해 보관 중입니다. 머리카락들을 쭉 모아놓고 특이점을 꼽아 보자면…”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다 짧은 머리카락인데 긴 머리카락이 하나 있었어요. 처음엔 여자 머리카락인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니 남자 머리카락이더군요.”
“……”
“게다가 이 머리카락이 특이한 게 냄새가 나요.”
“냄새요?”
“뭐랄까. 쉰내? 짠내? 아무튼 뭔가 찌든 냄새가 납니다. 외형도 특이해요. 보통 남성의 두피에서 떨어져 나온 긴 모발은 가늘기 마련인데 이건 엄-청 굵어요.”
“혹시.”
내가 옥상 바닥에서 머리카락을 하나 주워 올리고는 물었다.
킁킁-
“이 냄새입니까?”
“…!?”
길고 굵은 머리카락 세 가닥.
가락이 조금 놀라며 가까이 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이…”
눈을 크게 떴다.
“이 냄새… 맞아요. 이거에요!”
*
“이야.”
예상 도주로를 모두 수색하고 CCTV 번호까지 다 딴 뒤 치헌에게 돌아와 머리카락을 보여줬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정태 네 눈은 현미경이냐?”
“냄새 맡아보세요.”
내가 머리카락을 그의 코에 들이대니.
킁킁-
그가 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는.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정태 너 창진서 형사과 발령받고 첫 근무 때 실종사건 출동한 거 기억나지?”
“네. 그때 나무에 걸린 천 냄새를 맡고 팀장님이 피의자가 조선족일 거라고 유추하셨죠.”
“그래. 그때 그 냄새야. 퀴퀴한 짱깨 새끼 냄새.”
“동일한 머리카락이 임광천 검거했던 폐건물에서도 발견됐답니다. 한시호 머리카락도 있었고요.”
“오호.”
“임광천과 한시호가 모일만한 은밀한 장소. 아마 그곳은 백양의 비밀모임장소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음, 그렇겠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족 범죄자들 중 이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동시에 백양의 비밀장소에 갈 만한 조선족 범죄자는 한 명 밖에 없습니다.”
내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바로 장천입니다.”
“야, 발음 똑바로 해. 장, 천 이렇게 딱 끊어서. 내 이름 부르는 것 같아 재수 없으니까.”
“그러니 이번 살인사건 진범도 장, 천이라는 겁니다. 미끼를 두고 본인이 살해한 거예요. 아마 미끼는 자신이 검거될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일이라며 허위로 범행을 실토할 거예요.”
“하, 안 그래도.”
치헌이 인상을 쓰며 휴대폰을 빙빙 돌렸다.
“아까 중범과장 전화 왔더라고. 그 미끼 놈 검거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범행을 다 실토했대. 근데 정태 넌 그게 다 거짓이란 말이지?”
“네, 거짓말이에요. 미끼를 추궁해 수사하는 건 시간낭비입니다. 오히려 그간 행적을 물어 그가 누굴 만났는지, 어디에 다녀갔는지 알아내는 게 수사에 훨씬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장천이 직접 피해자를 살해한 이유는…”
“백양의 지시였겠죠. 그만큼 중요한 정보를 피해자가 알고 있었단 거고요.”
“이 씨발새끼들 정말…”
치헌이 주먹을 터질 듯 꽉 그러쥐었다.
“다 싸잡아 죽여 버리고 싶네. 특히 장, 천 그 씹새끼는 진짜 꼭 내손으로 죽이고 싶은데.”
“아마 곧 만나게 될 겁니다.”
내가 여태 했던 모든 수사들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곧 엄청 큰 판이 벌어질 거예요.”
그때.
“팀장님.”
전화를 받고 있던 경수가 이쪽으로 왔다.
“피해자 모친 의식 차렸답니다. 그런데…”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좀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
잠시 후. 병원.
“충분히 시간을 가진 뒤 말씀하셔도 됩니다.”
나와 치헌, 경수는 병상 옆에 나란히 섰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여자의 이름은 정미화.
피해자의 어머니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멍해졌다가,
금방 눈물이 차오르며 통곡하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눈물은 단순히 슬픔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한과 미안함, 그리움과 분노가 담긴 울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경수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라 말했지만.
“범인을 보셨다고요.”
나는 곧장 질문을 시작했다.
울음소리보다 진술을 듣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목격한 것을 그대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최초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범인을 봤다고 했다.
단순히 범인의 모습만 본 게 아니라 딸의 목이 절단되는 과정을 다 봤다고.
“범인 인상착의는 기억나십니까?”
내가 계속 쏘아붙이자 옆에서 경수가 날 말렸다.
하지만 나는 그에 아랑곳 않고.
“말씀을 해주셔야 범인을 빨리 잡을 수 있습니다. 범인 검거는 따님 피해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주민들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목격한 걸 그대로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울음을 듣는 게 아니라 수사를 해야 합니다.”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미화는 한참을 더 울다가.
“기…”
겨우 입을 뗐다.
“기억이 안 나요.”
“……”
“인상착의는 물론이고 그 사람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조차도… 기억이 안 나요…”
정신적 충격이 큰 탓일까.
성별도 기억나지 않는다니.
“단 한 가지 기억나는 건…”
“…?”
“이빨.”
이빨?
“범인이 이빨을 훤히 드러내놓고 웃었어요. 마치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는 듯이.”
“…!?”
“게다가 시선은 계속 나를 보고 있었어요… 칼은 딸을 향해 휘두르면서… 눈은 내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
“목을 절단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가 울음이 섞여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덧붙였다.
“끝까지 나를 쳐다봤어요… 활짝 웃으면서…”
*
잠시 후, 광수대 사무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타닥- 탁- 탁-
딸깍- 딸깍-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CCTV 영상을 확인했다.
휘릭- 휙휙-
눈은 손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처음 나는 관제센터에 24시간 동안의 인근 CCTV 영상을 요청했다가, 다시 최근 2주간의 영상을 요청했다.
나는 오늘도 10개 이상의 영상을 띄워놓고 완전히 몰입해서 범인을 찾고 있다.
‘골목에서 1회, 골목 출구에서 1회. 그 후로는 모습이 없어.’
예상대로 발생지 인근 골목에서 장천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장발, 얼굴에 칼자국.
왕청현이 말했던 인상착의와 일치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기색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 현장을 이탈했다.
‘그 전날은 전혀 다른 곳에서 수 회, 일주일 전에도 다른 곳에서 수 회. 하지만 거주지는 파악 불가능…’
특이한 것은 거주지 파악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서울 이곳저곳에 잠깐씩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모습을 비춘 곳은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중심지.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자유롭게 돌아다닌 듯했다.
하지만 중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의 모습은 영상에서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서울 시내 CCTV 위치를 다 꿰고 있다는 건가?
그는 보란 듯이 나타났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모습을 감췄다.
머릿속 퍼즐은 그의 형상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의 집은 가리키지 않았다.
‘이 시간엔 여기 있다가, 이 시간엔 여기? 그리고 이 시간엔 이 방향으로…?’
특이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간도 이상했다.
그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간대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이렇게 움직였을 땐 이 시간대에 여기 나타나야 하는데, 전혀 다른 시간에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나곤 했다.
그의 움직임이 어떤 목적을 그리기 바로 직전, 시간과 장소가 모두 뒤틀렸다.
‘마치 내가 이 영상을 볼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놀리는 것처럼.’
조그만 정신을 흩트리면 나는 영상에 놀아났다.
범죄 혐의를 찾지 못하고 범인에게 휘둘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하 참 이 개 또라이 새끼.”
옆에서 치헌이 궁시렁거렸다.
“피해자 모친 보고 웃긴 왜 웃은 거야? 설마 모친 올 때까지 일부러 기다린 건가?”
저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범죄행위를 하다 발각되면 부리나케 도주하기 마련인데.
왜 그는 태연히 웃고 있었던 것일까.
“에이,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은데요.”
경수가 치헌의 말을 받았다.
“범인 성별도 기억하지 못한다는데. 모친이 잘못보신 거 아닐까요? 범인을 아예 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충격이 너무 커서 헛것을 보셨을 수도 있잖아요.”
“흠,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당시 현장에 관한 진술은 모친 것 밖에 없으니 맹신할 순 없겠어.”
정말 모친이 잘못 본 걸까.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장천은 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백양과 장천의 행동 사이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나는 떠오르는 수많은 의문들과 단서를 겹치는 작업을 했다.
결론을 도출하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찌됐건 결국 가장 확률이 높은 시각화 장면을 선별했다.
탁-
빙그르르-
작업을 마친 내가 의자를 돌려 팀원들을 쳐다보자.
“벌써… 끝났어!?”
경수가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봤다.
눈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긴 하지만 매번 놀랍긴 한 모양.
난 그에 별 대답을 않고.
“이상한 점이 많긴 합니다.”
내 할 말을 했다.
“시간과 인물, 장소에 전혀 일관성이 없어요. 장천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요. ‘인간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보입니다.”
“……”
“하지만 인간적이지 않기에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다고도 볼 수 있죠. 정상과 이상은 ‘사실’의 개념과는 다른 거니까요.”
나는 머릿속에 장천의 주거지를 몇 군데 추렸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실제로도 그가 그 이상한 곳에 거주할 수 있을 터.
확인해보려면 실제로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선 장천이 범죄 장소에 갔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상으로 그의 모습이 확인되고 근처 주택가 옥상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등 수사의 필요성은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에요. 현장 나가 검거해서 추궁해봐야 합니다.”
“오케이.”
“예상 거주지 수가 많지 않으니 저희 5명이 함께 움직이며 하나씩 점검해보죠.”
거기 더해 나는 ‘특별한 옵션’까지 염두에 두었다.
일어나선 안 되는 옵션.
그 무엇보다 추잡한 최악의 옵션.
나는 맞지 않는 퍼즐을 겨우 끼워 맞추며.
“일단 출발하죠.”
사무실을 나섰다.
검고 울퉁불퉁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