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검고 울퉁불퉁한 것들.
잠시 후, 차 안.
“백양이 심부름꾼 세력을 옮긴 거예요.”
내가 팀원들에게 말했다.
“왕청현이 이끄는 조선족 조직에서 임광천의 북성파로, 북성파에서 다시 장천으로 옮겨간 거예요.”
“우리가 조선족 때려잡고 북성파까지 잡으니, 다시 조선족한테로 간 거구나? 조선족 중에서도 최고봉으로.”
“그렇죠.”
“음…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경수가 룸미러로 날 보며 말했다.
“장천 그놈은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
“사람 죽여서 장기 파는 놈들보다도 위에 군림했다면, 게다가 백양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흑사파 출신 중국 조폭이라면 도대체 얼마를 벌어들이는 거야? 얼마나 벌길래 이렇게 위험한 짓을 일삼는 거냐고.”
“돈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 응?”
“돈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난 아까 전 홍설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나는 지도를 받아든 뒤 계속 물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범죄를 그만두고 조용히 살았어도 됐을 텐데. 왜 계속 범죄행위를 한 겁니까?”
“……”
사실 그때까지 설희는 혐의를 시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범죄자라 단정하고 그냥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하더니.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의 잔인함을 따라올 수 없어요.”
“…?”
“없는 걸 만들려는 사람보다 있는 걸 지키려는 사람이 더 독한 법이니까.”
생각해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도 있죠.”
“…?”
“돈 너머에 있는 사람.”
“……”
“돈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 하지만 그 신념이…”
그녀가 잠시 말을 흐렸다 이었다.
“너무 뒤틀려버린 사람. 그런 사람들이 제일 무섭죠.”
*
“돈 이상의 것이라면…”
경수가 중간중간 눈을 위로 올리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나는 그에 별다른 대답을 않고.
“첫 번째 목적지 다 와갑니다. 다들 장비 챙기세요.”
품 안의 38권총을 확인했다.
치헌이 뒤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떻게 들어갈까?”
“그냥 들어갑니다.”
“뭐?”
“미끼가 이미 중범에 잡힌 상황이에요. 장천은 별다른 긴장을 하지 않고 있을 겁니다. 그대로 들이닥쳐도 문제없을 거예요.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끼익-
차가 멈췄다.
드륵-
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앞으로 쭉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여기네.”
달동네의 한 주택.
대문은 다 삭아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누르는 벨도, 별도의 시정장치도 없는 집.
“계십니까.”
나는 한 번 물어본 뒤.
끼익-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마루가 보이는 옛날식 집.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거 너무 마구잡이로…”
벌컥-
문까지 열어보니.
“예상대로에요.”
“… 응?”
“아무도 없어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텅 비어 있었다.
소복이 쌓여 있는 먼지, 구석엔 커다란 거미줄.
게다가.
“장천이 온 적도 없는 곳입니다.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은 죄다 짧은 것들이며 최근에 찍힌 족적도 없어요.”
“뭐야. 그럼 왜 이리로 오자고 한 건데? 없을 걸 예상했다는 그 말은 또 뭐고.”
치헌이 물었지만.
“빨리 다음 목적지로 가봐야 해요.”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차에 올라탔다.
잠시 후 그 다음 목적지에도.
“……”
그 다음 목적지에도.
“……”
마지막 목적지에도.
“뭐야, 씨팔.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은 없었다.
“장천 이새끼 진짜 우리 일부러 놀리고 있는 거 아냐!?”
“저희를 놀린 건 장천이 아니에요.”
“… 뭐?”
아니었으면 했던 옵션.
그 최악의 옵션까지 오고 말았다.
“지금 당장.”
내가 치헌과 경수를 둘러보며 말했다.
“영등포로 가야 해요.”
*
1시간 뒤, 영등포 통합 CCTV 관제센터.
“성수-356 주취자가 길에 쓰러져 있습니다. 119와 함께 조치하기 바랍니다.”
“방금 술집에서 나와서 운전석에 탔어요. 24조5XXX 흰색 세단입니다!”
“공원에서 학생들 여러 명이 한 명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고림파출소 관할입니다.”
“호평로 57 북편으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1분전 용의자 마지막 모습 사독(확인) 됐어요!”
수십 명의 경찰관들이 모니터를 보며 전화나 무전을 하고 있었다.
각자 2-3개의 모니터를 끼고 있는 것은 물론 전면엔 엄청난 크기의 대형스크린이 수백 개의 화면으로 나뉘어져 서울 시내 전체 영상을 현출했다.
영상은 일정 시간을 두고 바뀌며 각기 다른 방향을 비췄다.
그 수가 너무 많아 CCTV가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모든 직원이 바쁘게 소리치고 있는 가운데.
“확인하고, 시프트 딜리트… 시프트 딜리트…”
구석에 있는 직원 한 명은 혼자 키보드만 두드려댔다.
그는 폴더에 따로 모아둔 파일을 하나하나 훑으며 무언가를 부분적으로 계속 제거했다.
“확인하고, 시프트 딜리트… 시프트 딜리트…”
그가 누르는 버튼은 시프트와 딜리트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파일을 지웠을까.
벌컥-
갑자기 사무실 문이 세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함기영 경사가 누구야!?”
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자마자.
다다다다다-
빠악-!
커다란 발이 얼굴에 날아와 꽂혔다.
*
1시간 뒤, 서울청 광수대 사무실.
“하, 씨팔 쥐새끼들 어디까지 퍼져 있는 거야!?”
치헌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타닥- 탁-
그동안 나는 관제센터에서 가져온 자료를 컴퓨터로 확인하고 있었다.
“함기영 경사. 영상 왜 그따위로 보냈어?”
기영은 오늘 일어난 살인사건 관련 CCTV영상을 광수대로 보내준 직원이다.
그가 최근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폴더에 들어가 보니 잘리고 수정된 영상들 수십 개가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시간과 장소가 뒤틀린 듯 이동하는 것.
그것은 장천이 기이해서가 아니라 영상이 조작된 탓이었다.
기영은 장천이 뚜렷한 동선을 나타내기 전에 그의 모습을 다 잘라내버렸다.
‘화용-67, 화용- 125, 차양-990, 차양-996…’
조작된 파일들을 보고나서야 퍼즐들이 제 모양을 갖췄다.
장천은 정확한 목적을 갖고 움직였고, 장소와 시간도 일관성을 찾아갔다.
“최근 2주 화용동, 차양동 영상 모두 필요합니다. 건대 교차로 남쪽 방면 두 블록 전부 다요.”
“오케이, 확인.”
내가 영상이 필요한 위치를 얘기하면 경수가 곧장 관제센터에 전화를 해 영상을 전송받았다.
“와, 청장 파워가 세긴 세네. 바로바로 영상 날아오네.”
기영을 검거한 직후 내가 종직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렸다.
그러자 종직은 곧장 영등포서장을 털었고, 서장은 관제센터를 뒤집어놓았다.
관제센터 내 모든 직원들은 바짝 긴장을 한 채 우리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아, 씨팔 왜 대답을 안 해?”
치헌은 계속 기영을 추궁했다.
“뭐 또 누가 시킨 거야?”
“……”
“시킨 거냐고!”
치헌이 언성을 높이며 책상을 팡 치자.
“저, 저… 그게…”
입술을 떨고 있던 기영이 입을 열었다.
“사건 직후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지시를 하셨는데… 제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분이라…”
“그분이 누군데?”
“……”
“말하기 곤란하면 고갯짓만 해. 청장이야?”
기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럼 차장이구나?”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끄덕-
맞다고 시인했다.
그와 동시에.
끼익-
“조직 2인자 쥐새끼 대령입니다-!”
기섭과 현민이 빡빡머리 직원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치헌이 그 모습을 보며 기영에게 말했다.
“그럴 줄 알고 우리가 미리 잡아왔지.”
“…!”
연행되어 온 빡빡머리는 바로.
“함기영 너 이 새끼…”
공수훈 경찰청 차장이었다.
그가 기영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그런 그를 보며.
“씨팔 어디서 욕질입니까?”
치헌이 인상을 구겼다.
“… 뭐?”
“피의자로 잡혀온 주제에 어디서 인상 쓰고 욕질이냐고요.”
“… 인상이랑 욕은 자네가 더…”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 계세요. 필요한 내용만 진술 받고 유치장에 넣어드릴 테니까.”
“뭐? 유치장!?”
“피의자가 유치장가지 그럼 어디 갑니까? 호텔이라도 예약해줄 거라 생각한 겁니까?”
“……”
그렇게 치헌이 수훈을 털고 있는데.
끼익-
“탁경위님!”
가락이 날 부르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홍설희 별장 근처에 묻혀 있던 대포폰들, 그리고 임학수 시장 휴대폰 포렌식 결과 나왔습니다.”
나는 잠깐 눈짓을 해 그를 봤다가 다시 모니터를 보며 답했다.
“말씀하세요.”
“메시지랑 통화내역에서 서인혁, 이호중 쪽 사람들이랑 접촉한 정황이 드러났어요.”
“…!”
“또 임학수 컴퓨터에서도 개인 메일을 주고받은 내역이 있습니다. 범죄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도 많고요.”
그때.
띠리리리리-
울리는 사무실 전화를 경수가 받고 잠시 대화하더니.
“야, 정태야.”
날 보고 말했다.
“중범에서 잡은 미끼 있잖아. 그쪽에서도 서차관 얘기를 했다는데? 장천이 그 폐건물에 갔을 때 자기가 운전을 해서 갔었대. 그때 서차관 모습을 봤다네.”
그들의 말을 들으며.
“후…”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귀에 들리는 음악과 모니터에 보이는 그림들이 머릿속에서 섞여드는 순간.
퍼즐 판은 평소보다 훨씬 더 커졌다.
퍼즐은 수천 개에서 수만 개로, 수만 개에서 십만, 백만 개로 많아졌다.
수백만 퍼즐들이 하늘에 어지러이 날아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그림과 음악이 내 오감을 감쌌다.
그렇게 뜨거워진 가슴이 진정될 때 쯤.
“다들 이거 보세요.”
나는 영상 열람을 끝냈다.
그리고 가장 의미 있는 화면을 띄웠다.
사람들이 내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뭐야? 어디야 여기?”
“화용동 장천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구석에 긴 머리가 장천이고요.”
“어, 그건 알겠는데. 여기서 뭘 보란 거야.”
“여길 잘 보세요.”
내가 검고 울퉁불퉁한 것을 가리켰다.
밤 시간대 어두운 화면이라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건 그냥 벽이잖아. 이게 뭐?”
“벽이 아니에요.”
“에?”
“낮 시간대 사진을 보면.”
내가 로드뷰로 사진을 띄워 보였다.
“텅 비어 있죠.”
“어, 그러네. 그럼 그림자인가?”
“자세히 보시면.”
내가 가만히 검은 것을 가리켰다.
잠시 후.
꿈틀-
그것이 움직였다.
“씨팔 뭐야? 설마 이거…”
“사람입니다.”
“…!”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거예요. 모여서 가만히 장천이 무언가 지시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겁니다.”
검고 울퉁불퉁한 것들은 간헐적으로 꿈틀꿈틀 움직였다.
“아니 그런데 숫자가…”
경수가 옆에서 손가락으로 수를 헤아려보고는 놀라며 물었다.
“너무 많잖아?”
“최소 300명입니다.”
“!”
“여기 모인 것만 300명이에요. 조선족 범죄조직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규모였던 거예요.”
내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 사건. 단순히 장천 한 명을 검거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건 수사라기보단…”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이었다.
“전쟁입니다.”
행방불명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