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본능.
4~500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여객선.
통로를 기점으로 선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배 크기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중간 중간 복도를 밝히는 희미한 조명.
잠깐 창밖을 봤지만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벌써 해가 저물어 밖은 어둑했고, 허허벌판인 북항 끝엔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다.
저 멀리 반짝이는 건물만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나는 주위를 살핀 뒤.
슥- 슥- 슥- 슥-
발걸음 소리를 완전히 죽이고 안으로 이동했다.
슥- 슥- 슥- 슥-
누가 보면 차분히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후… 후…’
사실 숨소리를 내지 않는 것조차 버겁다.
흥분과 분노가 동시에 몰려와서.
‘후…’
슥- 슥- 슥- 슥-
아까 퍼즐을 추려내고 장천의 행동을 예측하고 나서부터 감당하기 힘든 흥분이 몰려왔다.
어긋나기만 했던 퍼즐이 딱 맞아 떨어질 때의 그 쾌감.
부르르-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털이 쭈뼛쭈뼛 선다.
그동안의 모든 수사와 지금 장천이 하는 행동.
전혀 맞지 않던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의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슥- 슥-
빼꼼-
슥- 슥-
그 후엔 화가 밀려왔다.
장천이 그동안 저지른 범죄들.
그리고 은빈과 정우 납치.
그의 심리를 파악하고 나선 분노의 감정이 점점 더 커졌다.
그는 경찰을 갖고 논 게 맞다.
아마 백양은 그에게 선금 일부를 주며 나를 제거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천이 원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돈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
설희의 말처럼 그는 돈 너머의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너무 뒤틀려버린 사람.’
추구하는 신념이 뒤틀려버려 문제이긴 하지만.
돈에 있어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장천은 굳이 백양의 위험한 제안을 승낙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의 쾌락을 위해.
우우우웅-
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 밀항은 한국에서 출발하는 배의 선장을 매수해 몰래 탑승한 뒤, 바다 가운데서 중국 배에 옮겨 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장천이 나를 인천으로 끌어들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한 뒤 중국으로 도주하려 했던 것.
해경이 바다 길목을 막고 있긴 하지만, 아마 장천은 이것까지 다 예상했을 것이다.
이 배는 바다 곳곳에서 밀항을 위한 중국 배와 끊임없이 교신할 것이고,
장천은 길목의 안전이 확보된 배로 옮겨 타면 그만이다.
바다에 배 길이 정해져있다곤 하지만, 해경이 그 모든 길을 막을 수는 없다.
슥- 슥- 슥- 슥-
나는 팀원들을 속이고 혼자 여기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 행동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다.
따지고 보면 은빈과 정우도 나 때문에 장천의 일당에게 납치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 배로 들어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 배에 대해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들은 게 없다.
괜히 뛰어들었다간 총알받이가 될지도 모르는 곳.
그런 곳에 또 다른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아마 내가 치헌과 경수를 속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억지로라도 나를 따라 이 배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저벅- 저벅- 저벅-
‘…!!’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
나는 곧장 숨을 죽이고.
스윽-
벽 뒤로 숨었다.
‘후… 후…’
다시 흥분과 분노가 밀려왔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후…’
흥분을 가라앉혔다.
저벅- 저벅-
나는 눈을 감고 내 생각의 과정을 다시 한 번 복기했다.
‘302명.’
기동대장은 분명 공사현장 옆 부지에서 확인된 조선족 피의자 인원이 302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사전에 관제센터 영상으로 확인했던 북항 피의자 수는.
‘303명이었어.’
303명이었다.
딱 장천 하나 빠진 숫자.
은빈과 정우를 납치했던 피의자 둘은 원래부터 서울에 있었을 것이다.
숫자가 정확히 딱 맞아 떨어졌다.
밖에서 피의자 둘이 검거되었으니 이제 북항 안에 조선족은 장천 한 명이다.
지금 조선족을 찾아 검거하면 그가 바로 장천이라는 얘기다.
킁킁-
이 냄새.
나는 이 냄새를 쫓아 이 배로 들어왔다.
킁킁-
하남시청 공무원 살인현장에서 맡았던 그 머리카락 냄새.
조선족의 냄새가 맞다.
저벅- 저벅-
끼익- 끼익-
게다가 저 발걸음 리듬.
눌림의 정도.
분명 내가 영상에서 분석했던 장천의 움직임이었다.
저 발걸음의 주인은 장천이 맞다.
다만 주의할 건.
끼이익- 끼이익-
저버억- 저버억-
평소보다 긴 눌림.
그가 은빈을 어깨에 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어떻게 제압해야 할까.
‘음.’
생각은 금방 끝났다.
끼익-
나는 옆에 있는 두꺼비집을 열어.
딸깍-
선실 전체 불을 껐다.
“… 뭐이야?”
저 멀리서 장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캄캄한 어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불 어딨니.”
장천이 혼잣말을 하며 벽을 쾅쾅 쳐댔다.
나는 그에 전혀 동요 없이.
“……”
눈을 감고 오감을 집중했다.
‘내 예감에 이번 작전도 키포인트는 정태 네가 될 거야.’
치헌의 말이 맞았다.
결국 이번 작전의 핵심은 내가 되었다.
‘그땐 가장 너답게 행동해야 돼. 그래야 제수 씨 구할 수 있어.’
나는 가장 나다운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은 못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
문제를 해결할 나만의 특장점.
‘이성’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차가운 이성’이었다.
은빈을 구하겠단 조급함에 매몰되지 않고 수사를 생각하는 것.
이건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되는 것이었다.
분노와 흥분은 잠깐이었다.
지금 나는 모든 수사기법과 법적 절차를 되뇌며 백 개가 넘는 검거 시뮬레이션을 떠올리고 있다.
‘감각’
그 다음 떠오른 것은 ‘민감한 감각’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더 잘 보고, 잘 듣고, 잘 냄새 맡고, 잘 맛보고, 잘 느낀다.
시각이 차단된 지금도 나는.
“가오리(고려-한국을 비하하는 말) 배 이 빙신 같은 게!”
저버억- 저버억-
쾅- 쾅-
장천을 ‘감각’할 수 있다.
나는 온 감각을 그에게 기울인 채.
철컥-
슥- 슥- 슥- 슥-
38권총을 파지하고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이라니?”
장천이 수상한 기운을 느낀 듯했다.
“누구 있니?”
전혀 떨림 없는 음성.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
“키햐아- 너 배 탔었니?”
실실 웃어댔다.
이어서.
“이 가오리 짭새 새끼 어딨니!”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쿵-! 쿵-!
발을 놀리며 여기저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빛이 있는 데서 봐야 할 거 아이니!”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겁을 먹고 장천과 협상을 시도했겠지만.
슥- 슥- 슥- 슥-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장천이 원하는 게 뭔지 아니까.
“어이, 탁정태!”
나는 내 모든 소리를 죽이고 이동했고.
“너 어딨니!!”
내 모든 정신을 집중해 그를 감각했다.
“이 개새이야! 너 어딨어!? 크하하.”
그는 내가 보이지 않는 이상 은빈을 해코지 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가 원하는 게 아니다.
슥- 슥- 슥-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 쾌락은 이 어둠 속에선 이룰 수 없다.
“인천에서 역사를 쓴 장본인들인데, 우리 얼굴은 한 번 봐야 안 되겠니!?”
그래서 나는 더 확신을 갖고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슥- 슥- 슥-
다가갈수록 확신은 더 강해졌고.
슥- 슥- 슥-
나는 더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 계집 안 구할 거니!?”
‘하아…’
집중력이 최고치로 올라가니 다른 종류의 흥분이 몰려왔다.
초등학교 3학년.
지혜의 색연필 세트를 찾아줄 때 그 느낌이었다.
손끝이 떨려왔다.
절대 잊지 못할 그때의 카타르시스.
‘후… 후…’
손끝에 이어 팔과 가슴, 종아리와 사타구니가 찌릿찌릿하더니 이내.
‘하아…’
뇌가 즐거워졌다.
나는 오랜만에.
‘하…’
쏟아지는 도파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미지의 무언가에 지배되어버린 느낌.
이 느낌이 내가 수사에 빠져드는 원초적 이유다.
이성과의 육체적 관계, 동료와의 우정. 모두 좋다.
하지만 그것들은 수사를 대신할 수 없다.
이 맛.
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수 없다.
나는 쾌락의 다음 순서를 안다.
몸과 뇌, 그 다음은 눈이다.
이제 곧 눈이 돌아갈 것이다.
눈 다음은 입 안에서 거품이 올라올 것이고,
나는 곧장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져 쾌락의 호흡을 내뱉을 것이다.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여기선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건 내가 저항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니다.
이 쾌락은 이성을 초월해 정신을 잡아먹는다.
나는 이제 몇 초간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다.
그동안은 행동을 제어할 수도, 소리를 감출 수도 없다.
그때 장천이 날 찾아낸다면 난 꼼작 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난 이성의 끝을 겨우 잡고 다음 시뮬레이션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쾌락에 지배당하기 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몇 번 돌려보기도 전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마 나는 곧 주저앉고 말 것이다.
…
그런데.
‘…!’
눈은 돌아가지 않았다.
입에서 거품이 올라오지도,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놀랍도록 맑아졌다.
도파민으로 뇌가 청소된 듯,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남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이제 내 몸은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움직였다.
단 하나의 움직임도 버릴 것이 없었다.
나는 도파민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슥- 슥- 슥- 슥-
사삭- 사삭-
나보다 더 나 같이 움직였다.
“뭐이야? 내가 잘못들은 기야?”
장천을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내 움직임은 기민해졌다.
나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움직였고.
‘이 소리와 냄새. 텁텁한 맛과 바닥의 느낌.’
더욱 더 선명히 목표물을 감각했다.
“불을 키보면 알겠지. 여기 어디 공구함이…”
이제 감각은 선명하다 못해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소리가 ‘보였다.’
그의 냄새가, 그의 맛이, 그의 느낌이 ‘보였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의 총체가 그의 위치와 형상을 그렸다.
슥- 슥- 슥- 슥-
그리고 너무나도 선명한 그 감각에.
착-
차디찬 이성까지 깃들었다.
나는 38권총으로 정면을 조준한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내 감각은 놀랍도록 뜨겁게 타올랐지만 차가운 이성이 그것을 눌러주었다.
내 몸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냉정하게 움직였다.
“아, 여기 있구나 공구함.”
슥- 슥- 슥- 슥-
마침내 형상이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은빈을 메고 있는 모습까지 정확히 그려졌다.
여전히 내 손엔 떨림이 없었고.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레시 찾았다!”
나는 알맞은 거리까지 왔다.
정확한 타이밍까지 잡았다.
그리고.
‘……’
내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부턴 몸이 뇌의 통제를 벗어났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뇌가 아니라.
슥-
본능이었다.
“탁정태 이 개새이야 너…”
전방에서 장천이 소리치며.
“어디 있니!!?”
딸깍-
후레시를 켜는 그 순간.
타앙-! 타앙-! 타앙-! 타앙-! 타앙-!
손가락이 본능을 뿜어냈다.
꼬인 신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