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누군가 같이 있었죠?
“치킨 먹다 목에 뼈가 걸린 건데. 웬 감식?”
“단순히 치킨만 먹은 게 아닙니다. 이곳은 범죄현장입니다.”
흠칫 놀라는 경수에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했다.
설명이 끝나자 그가 입을 쩍 벌렸다.
“와, 너 진짜 실무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신임 맞아? 어떻게 그런 걸 캐치를…”
“감식 해봐야겠죠?”
“응. 네 말 들어보니 무조건 감식 해야겠어. 일단 팀장님한테 보고부터 하자.”
경수는 ‘경찰대가 진짜 대단한 곳이긴 하다.’고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들고 덕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덕규도 과학수사반을 부르자며 감식을 허락했고, 매천 둘 순찰차를 현장으로 보낼 테니 경수와 나는 병원으로 가 진희와 신고자를 다시 만나보라고 했다.
잠시 후 우리는 매천 둘 순찰차를 타고 온 국진과 수호에게 현장을 인계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님.”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입구를 통과하니 신고자가 서 있었다.
“어? 여긴 어쩐 일로…”
“어머님과 따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인적사항을 확인해보니 그녀의 이름은 김소연.
내가 소연에게 물었다.
“오늘을 제외하고, 진희 씨와 최근에 만난 것이 언제입니까?”
“한… 2주 전쯤이요.”
“그때 어디서 만났습니까?”
“아까 그 원룸 자취방에서요.”
“만날 당시에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소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집인데 춥다고 패딩을 입고 있었어요. 그것도 긴 롱패딩을.”
“패딩을요?”
“네. 패딩뿐만 아니라 장갑까지 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보일러를 틀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이러고 있으면 따뜻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가스비 때문에 그랬던 건지…”
“2주 전에 진희 씨와 집에서 만나셨고, 또 그 전에는 어디서 만났습니까?”
“한 달 전쯤인가? 밖에서 쇼핑을 잠깐 같이 했어요. 독립시키고 초반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는데, 1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자주 보진 못했어요. 대신 전화는 많이 했죠.”
자주 보진 못했고, 최근 집에서 롱패딩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핵심 내용들을 머릿속에 넣었다.
“진희 씨 가족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애 아빠랑 저, 아들이랑 진희 이렇게 넷이에요. 애 아빠랑 아들은 타지에 있어서 자주 못 만나요.”
“음, 알겠습니다. 저희가 진희 씨를 잠깐 만나 봐도 될까요?”
“네. 저기 안쪽에 있는데 카운터에 이름을 말하면 간호사가 안내해줄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소연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진희가 누워 있는 베드로 갔다.
그녀는 팔에 링거주사를 맞고 누워 있었다.
“이진희 씨?”
“네? 어?”
“아까 현장에 출동했던 탁정태 경위입니다. 잠시 대화 가능하시겠습니까?”
“아, 네.”
잘 대답하는 걸 보니 신체에 별 이상은 없는 듯했다.
조금 힘이 없어 보일 뿐.
“제가 진희 씨 흉부를 압박하니 입에서 닭 뼈가 나오던데, 닭을 먹다 뼈가 목에 걸려서 기절을 한 겁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치킨은 혼자 먹었습니까?”
“네, 저 혼자 자취하니까요.”
“정말로 혼자 먹었습니까?”
순간 그녀가 아주 미세하게 멈칫했다.
내가 맞추고 있는 퍼즐의 그림이 더 명확하게 그려졌다.
“… 네. 혼자 먹었다니까요?”
“치킨을 두 마리 시키셨던데. 그럼 두 마리를 혼자 다 드시려고 한 겁니까?”
그녀는 다시 한 번 멈칫하더니.
“네. 남으면… 다음 날 먹으면 되니까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나는 계속 질문했다.
“그럼 책상 위에 담배 갑은 뭐죠?”
“… 네?”
“브랜드가 전부 다른 네 개의 담배 갑이 나란히 놓여 있던데.”
“……”
“진희 씨가 흡연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 담배들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한 명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네 명의 담배인 것 같던데요?”
흡연자는 보통 한 브랜드의 담배를 태우지, 여러 브랜드 담배를 섞어 태우지 않는다.
게다가 책상 위 각각의 담배 갑 위엔 라이터도 하나씩 놓여 있었다.
이건 분명히.
“진희 씨가 기절할 당시, 누군가 같이 있었죠?”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조금 더 추궁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진희 씨 방의 창은 방충망까지 모두 열려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금처럼 추운 겨울엔 그렇게 창문을 열어놓지 않죠.”
“……”
“제 생각엔 창문을 통해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밖으로 빠져나간 것 같은데, 맞나요?”
“그, 그게…”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이.”
내가 진희의 손목을 확 잡아 채 소매를 걷어 보이며 말했다.
“진희 씨를 이렇게 학대한 것 아닙니까?”
드러난 그녀의 손목엔 얇은 상처가 여러 갈래로 패여 있었다.
마치 줄로 손목을 거칠게 강박한 듯한 자국.
“이 손목뿐만이 아닙니다. 왼쪽 귀 뒤에 아직 다 아물지 않은 멍 자국. 쇄골에 담배 불로 지진 듯한 흉터. 머리에 원형 탈모 같이 뻥 뚫린 상처까지. 누군가 진희 씨를 지속적으로 악랄하게 학대한 겁니다.”
“……”
“저는 처음에 학대를 가한 사람이 어머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대를 해놓고 아닌 척 연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희 씨 방 벽에 걸린 십 수장의 사진을 보고 나선 어머니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진희의 방 벽은 줄로 이어 붙인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다.
모두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은 아주 어릴 때 적부터 최근 것까지 다양했으며, 하나같이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활짝 웃고 있던 그녀가, 지금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진희 씨는 오히려 방 안에서도 롱패딩과 장갑을 착용하여 흉터를 감췄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
“어머니, 그리고 멀리 있는 가족들을 제외하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진희 씨를 괴롭힐 수 있는 건 ‘그들’ 뿐입니다.”
이어서 내가 그녀의 휴대폰을 집어 건네며 말을 이었다.
“가해자들, 연락처가 뭡니까?”
*
잠시 후, 나는 병원 앞에서 4명의 청년들을 만났다.
남자 둘, 여자 둘.
경수가 따라 내려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피해자 보호가 더 중요하니 진희 씨를 지켜봐달라고 했다.
“각각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아, 왜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다리를 다 드러낸 원피스.
남자들은 손목에 얼핏 보이는 색깔 문신.
내가 알고 있는 ‘불량함’의 표본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수사목적으로 경찰과 대면했을 때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건 기본입니다.”
“무슨 수사목적이에요? 잘못한 게 없어서 당당하게 온 건데.”
“잘못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도 수사의 일환입니다.”
나는 진희에게 이들의 연락처를 얻은 뒤 업무용 휴대폰으로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처음엔 거절했으나, 왜 당당하게 만나지 못하냐고 추궁하니 금방 병원 앞에 찾아왔다.
“야, 그냥 알려주자. 어차피 경찰한테 알려주는 거라 문제될 거 없어.”
그렇게 나는 차례대로 인적사항을 받았다.
모두 스물한 살.
그들 중 계속 썩은 표정으로 말대답을 하던 박성혁이란 남자에게 내가 말했다.
“이진희 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친군데요?”
“언제부터요?”
“중학교 때부터요.”
나는 그들 모두의 표정을 살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최근에 이진희 씨를 언제 만났습니까?”
“모르겠는데요. 기억이 안 나요.”
“오늘은 만나지 않았습니까?”
“기억이 안 난다니까요?”
오늘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이건 진술이 아니다.
거짓이고 반항이다.
내가 성혁과 대화하는 동안 나머지 세 명은 뒤에서 담배를 피며 바닥에 침을 뱉어댔다.
“오늘 진희 씨의 책상 위에서 총 네 갑의 담배 갑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세 갑은 뒤에 성혁 씨 친구들이 피는 저 담배들이었죠. 아마 성혁 씨 담배는 남은 하나인…”
내가 사각형 모양으로 튀어나온 그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베세 쑨이겠죠?”
내 말에 그가 당황하며 주머니를 감추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아. 이제 기억나네. 아까 전에 진희 집에서 같이 놀았어요. 저희 다 같이요.”
“같이 논 게 맞습니까?”
“그렇다니까요?”
“괴롭힌 게 아니고요?”
그러자 성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친구끼리 괴롭히긴 뭘 괴롭혀요? 누가 그래요? 진희 걔가 그래요?”
“아뇨, 진희 씨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희 씨 어머니가 성혁 씨와 그 친구들을 싫어하더군요.”
“……”
진희에게 이들의 연락처를 넘겨받은 후, 엄마인 소연에게 이들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소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몸을 벌벌 떨었다.
이들은 학창시절 잔혹하게 진희를 괴롭히던 학교폭력 가해자들이라는 것.
신고를 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이들을 피해 진희를 전학시켰지만, 전학하고 나서도 진희의 학교에 찾아와 학대와 괴롭힘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소연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걔들이 또 우리 딸 찾아왔어요?’ 하며 물었다.
내가 상황을 말하려던 찰나, 경수가 날 막아서며 ‘그냥 알아볼 게 좀 있어서요.’하고 둘러댔다.
소연이 싫어한단 말에 눈빛이 잠깐 흔들리던 성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걔 엄마가 저희를 왜 싫어하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저희는 그냥 걔들 집에서 같이 놀았다니까요?”
“진희 씨 집에서 같이 뭘 했습니까?”
“치킨 시켜서 같이 먹으면서 티비 봤어요.”
“그냥 같이 재미있게 놀았단 말이죠?”
“네.”
“그런데 왜 경찰이 찾아왔을 때 창문으로 도망쳤습니까?”
“… 네?”
그가 다시 한 번 멈칫했다.
“왜 뭐라도 잘못한 사람처럼 창문으로 도망쳤냔 말입니다.”
“누… 누가 도망을 쳐요? 경찰 아저씨들이 저희 가고 나서 왔겠죠.”
“현재 과학수사반 요원들이 진희 씨 집을 감식하고 있어요. 방안의 흔적들은 물론 창틀의 족적까지 다 확인을 할 겁니다. 게다가 빌라 1층 출입문 CCTV를 확인하면 성혁 씨와 친구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다 확인할 수 있죠. 분명 1층 출입문을 통해 들어온 뒤, 다시 그 출입문을 통해 나간 게 맞습니까?”
“……”
과학수사반 얘기가 나오자 성혁의 말이 멎었다.
그리곤 우려 섞인 표정으로 친구들과 서로 눈짓을 했다.
그때.
위이이잉-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열어서 확인해보니, 경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성혁 씨.”
“네?”
“아까 진희 씨 집에서 같이 치킨을 먹었다고 했죠?”
“… 네.”
“그런데.”
나는 경수의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첨부된 사진은.
“살은 성혁 씨와 친구들이 다 먹고, 진희 씨에겐 닭 뼈만 먹였나 보네요.”
닭 뼈로 가득 찬 진희의 복부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황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