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8
18화. 황금알.
네 명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숨기던 걸 들켰을 때 표정.
– “아아.”
그때, 무전이 들려왔다.
얇은 음성. 국진의 목소리였다.
– “매천 팀장과 매천 하나, 여기 매천 둘입니다. 요청했던 치킨집 배달원 찾아 사독(확인)해보니 파자마를 입고 있던 긴 생머리 여성이 현금으로 계산을 했답니다.”
무전을 듣고 내가 성혁에게 말했다.
“그래놓고 계산은 진희 씨를 시켰군요.”
앞에 서 있는 두 여자는 단발. 게다가 원피스를 입고 있다.
진희는 자기 돈을 내고 이들에게 치킨을 사 먹인 뒤, 자기는 이들이 강제로 먹인 뼈를 삼키다 기도가 막혀 기절한 것이다.
“게다가 이 메시지들.”
나는 진희에게서 받은 메시지 캡처본을 보여줬다.
모두 성혁을 비롯한 이들이 진희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문 안 열어? 부시고 들어간다?]
[돈 안 보냈네. 죽고 싶어?]
[또 엄마한테 일러보지 왜? 병신 같은 년아.]
“그리고 이 사진과 동영상들.”
이어서 줄에 포박되어 있는 진희의 사진, 뺨을 맞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사진과 영상 속 진희의 모습은 참혹했고, 그녀를 보고 웃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악랄했다.
이들은 이런 사진과 영상을 SNS에 잠깐 올렸다 내리는 식으로 진희를 조롱했고, 진희는 나중을 대비해 이 자료들을 다운로드 받아놓았다고 했다.
영상을 보고 있는 청년들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 “매천 둘, 여기 매천 하나. 병원 공착까지 몇 분 남았습니까?”
– “공착 1분 전.”
– “칠팔(알겠다.) 아까 지원 부탁드린 광현 하나 순마도 공착 다 되어가나요?”
– “광현 하나도 공착 1분 전입니다.”
나는 이들을 만나러 내려오면서 미리 지원을 요청해놓았다.
혹시 체포를 해야 할 상황이 오면 수갑이 훨씬 많이 필요하니까.
“이 사진과 영상을 보고도 범행을 부인할 겁니까?”
“……”
성혁은 이제 완전히 주눅이 들었다.
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표정.
“어이, 경찰 아저씨.”
그때, 뒤에 있던 여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 이름을 물었을 때 방혜수라고 알려줬던 여자였다.
그녀는 내 근무 조끼를 들어 이름을 확인하더니.
“탁정태? 무궁화 한 개면, 경위?”
팔짱을 탁 꼈다.
“나이가 어린 걸 보니 뭐 경찰대나 간부후보생 같은데. 젊으신 분이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는 거예요?”
“빡빡하게 군 것 없습니다. 저는 단순히 피혐의자의 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요?”
혜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청에서 일하는 경무관이에요 경무관! 당신 같은 사람은 쳐다도 못 보는 사람이라고요!”
경무관.
다섯 개의 무궁화가 모여 하나의 큰 무궁화를 이루고 있는 계급.
서울청 소속 경무관이면 부장 직을 맡고 있을 것이다.
아까 소연과 대화할 때 ‘가해자 중 한 명의 아빠가 경찰 높은 사람이래요. 그래서 신고를 해도 다 소용이 없었어요.’하며 울더니.
혜수의 얘기였나.
“이것 봐. 아빠 얘기 하니까 찍소리도 못하네?”
“……”
“그 표정 뭐예요? 안 믿기면 청에 전화해보든가.”
“……”
“전화해보라니깐?”
나는 근무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래. 전화해서 당신 소속 이름 다 밝히고 물어보라니깐? 넌 이제 좆됐어.”
“그러니까 지금…”
그리고 수갑을 꺼냈다.
“범행을 부인하고, 아버지를 이용해 수사에 외압을 넣겠단 말씀이죠?”
“… 뭐라고?”
웨애애애앵-
끼익-
때마침 매천 둘과 광현 하나 순찰차가 도착했다.
국진과 수호, 그리고 광현 파출소 직원들이 내리는 게 보였다.
“사실 인적사항을 밝히셨기 때문에 죄만 인정하시면 딱히 신체 구속할 사유 없이 귀가하고 나중에 조사받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덧붙였다.
“범행을 부정하고, 부친의 직위를 이용해 수사상 외압을 넣으려는 자는.”
이어 그녀의 한 쪽 손에 수갑을 채우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체포를 할 수 있습니다.”
손을 뒤로 꺾어 다른 손에 마저 채우며 덧붙였다.
“방혜수 씨. 당신을 폭처법상 공동감금, 공동강요, 공동폭행 등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수 있어요. 체포적부심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뭐, 뭐야!?”
곧이어 국진과 수호, 광현파출소 직원들이 청년들을 둘러쌌고.
“다른 분들은…”
나는 혜수의 손목을 꽉 잡은 채 성혁과 친구들에게 물었다.
“죄 인정 합니까, 안 합니까?”
#
그날 혜수가 체포되는 걸 본 그녀의 친구들은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고, 곧장 경찰들에게 잡혀 모두 체포되었다.
과수반에서 진희의 집을 감식한 결과 여러 개의 족적과 머리카락이 발견되었고, 이는 모두 체포된 피의자들의 것과 일치했다.
과학수사 결과와 영상자료 등을 토대로 추궁하니 피의자들은 그제야 죄를 인정했고, 형사들은 수월하게 조서를 꾸며나갔다.
나는 그날 진희를 추궁할 때 그녀의 표정을 보자마자 범인이 ‘또래 친구들’일 거라고 확신했다.
학대 내용을 고발하기보단 숨기며 두려워하는 상태.
이것은 전형적인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후유장애 증상이기 때문이다.
그 증상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보복을 심히 두려워하기 때문에 진술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피해자의 입에서 나오는 직접적 진술이 아닌 간접적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 낫다.
예를 들어 피해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메시지 캡처본이나 사진, 영상 같은 것들.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하지만 날카로운 질문들로 그런 간접 자료들을 확보했고, 덕분에 신속하게 피의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얘기를 지금.
“키햐. 그래서 경무관 딸 손에 수갑을 걸어버렸다고?”
최안득 형사과장 앞에서 하고 있다.
근무 전에 들르라고 해서 왔더니 신이 나서 내 얘기를 듣고 있다.
“네. 부친 직위를 이용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다분했으니까요.”
“담배 갑이랑 열린 창문을 통해 추리했다는 것도 인상 깊군. 저번엔 귀로 범인을 잡더니 이번에 눈으로 잡았네?”
“명확한 수사를 하려면 눈과 귀를 다 잘 열고 있어야 합니다.”
“캬, 아직 지역경찰인데도 수사, 수사 하는 걸 보니…”
그가 소파에서 등을 떼더니.
“내가 사람 하난 잘 봤구만 그래.”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고 손에 깍지를 꼈다.
“자네, 나중에 나랑 같이 멋진 수사 한 번 해보지.”
“멋진 수사요?”
“위험하고 짜릿한 그런 수사 있잖아. 형사들도 겁내는 수사.”
위험하고 짜릿한 수사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두렵다기보단 황홀하단 느낌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리고는 앞에 놓인 다과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그 경무관이라는 사람 쪽에서는 뭐라든?”
“연락 없었습니다.”
“에? 정말?”
“네.”
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민상 과장은 별 말 없고? 되게 신경 쓰고 있을 텐데.”
“표창 내려주실 때 말곤 전화 없으셨습니다.”
“아 그랬구… 잠시만, 뭐? 표창!?”
안득이 깜작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무슨 표창? 설마 경무관 딸 잡은 이 사건으로 표창이 나왔단 거야?”
“네. 이것뿐만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차량털이 절도미수범 검거, 에어컨 배관 절도범 검거, 자살기도자 구조에 대한 표창도 모두 나왔습니다.”
어제 출근해 관물함을 열어보니 표창 4개가 놓여 있었다.
그것도 모두 본청장 표창.
순식간에 표창점수 20점을 채워버린 것이다.
내가 경수에게 ‘차량털이 절도미수범은 부장님이 검거했는데 왜 제가 표창을 받습니까?’하고 물으니, ‘너도 그날 같이 나갔잖아. 선물이야.’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강도용의자 검거 건은 내가 징계를 받는 바람에 표창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다.
어찌됐건 본청장 표창 4개를 동시에 받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팀원들 모두 나를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당연히 안득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하, 이거 큰일 났네.”
대뜸 한숨을 푹 내뱉었다.
“왜… 그러십니까?”
“뭔가 이상한 게 안 느껴지나?”
“이상하다고요?”
“경무관 딸을 체포했는데 본청에서 상을 내려준다? 이상하잖아.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잖아.”
“……”
“누군가가 외압을 넣은 거야.”
안득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노려봤다.
“저는 외압을 넣은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어. 자네한텐 별 다른 세력이 없다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는 다시 한숨울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본청에서 자네를 스카웃하려는 것 같네.”
“네?”
“자네가 체포한 사람의 아버지는 경무관이야. 그냥 경무관도 아니고 서울청 소속.”
본청과 서울청은 전국에 날고 긴다 하는 경찰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딸이 체포되었는데 얼마나 열이 받겠나? 그런데 자네에게 아무 해코지를 안 한다? 그럼 외압이 들어간 거지. 서울청 소속 경무관에게 외압을 넣을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단 한 군데 밖에 없어.”
“본청입니까?”
“그렇지.”
이어서 안득은 그 경무관 이름이 방민신이며, 갑질을 많이 해서 후배들에겐 평이 안 좋지만 아부와 청탁을 잘 해 고속승진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본청에서 왜 저를 위해 외압을 넣습니까? 저는 본청과 아무 연관이 없는데요.”
“저번에 징계위원회 했었잖아. 그때 위원장 기억 안 나?”
“이철성 경정님이요?”
“그래. 그때 그 인간이 널 좋게 본 거야. 나처럼 떡잎을 딱 알아본 거지.”
본청 감찰 소속으로, 나와는 징계 위원회에서 처음 만난 그 사람이.
내 뭘 보고 떡잎을 알아봤다는 걸까?
“저번에 징계로 경고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이거 완전 본청 스타일 스카웃이잖아.”
“본청 스타일 스카웃이요?”
“본청은 최고의 직원들, 그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들 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거든. 때문에 징계이력 같은 게 있어선 안 돼. 본청 감찰에선 전국에 퍼져 있는 각 청과 서 감찰 직원들을 통해 유능한 직원들의 동향에 대해 보고받고, 조용하고 은근하게 스윽 본청으로 스카웃해버린다고.”
“아…”
“그런데 자네는 본청 감찰 직원인 이철성 경정에게 다이렉트로 찍혀버렸으니, 일찍이 부터 작업에 들어가는 거야. 징계는 감추고 상은 퍼주는 거지. 본청 들어올 자격을 만드는 거라고.”
열심히 설명하던 안득이 갑자기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본청 가기 싫다고 해.”
“네?”
“어느 날 불현듯 연락이 올 거야. 본청에서 근무해보지 않겠냐고. 그때 싫다고 해. 끝까지 싫다고 하면 강제발령을 내야하는데, 본청에선 그렇게까지 하진 않거든. 본청 들어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널렸으니까.”
“……”
“본청 가면 자네 좋아하는 수사도 못해. 매일 상급자들 눈치봐가면서 아부나 떨어야 한다고. 그런 경찰생활을 원하는 건 아니잖아?”
정말 본청이 그런 곳이라면 가고 싶지 않았다.
“부디.”
그가 다시금 내 손을 꽉 쥐어 잡으며 덧붙였다.
“우리 창진서에 남아주게. 나랑 같이 수사경찰을 하자고.”
그때.
위이이잉-
위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어어. 편하게 받아. 괜찮아.”
안득이 허락해주어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나는 조금 놀랐다.
발신자가 너무나도 예상 밖의 사람이라.
“형사과장님 방입니다… 알겠습니다. 과장님께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네.”
내가 전화를 끊자 안득이 물었다.
“누군데?”
“서장님입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덧붙였다.
“저더러 지금 서장님 방으로 오라는데요?”
*
안득은 깜짝 놀라며 얼른 가보라고 했다.
나는 안득에게 인사한 후 방을 나와 서장실이 있는 2층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고 부속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니.
“충성! 경위 탁정태입니다!”
“어어. 왔나? 신고식 때 보고 처음보제?”
경상도 억양.
백발에 다부진 인상인 서장의 이름은 황교철.
그의 어깨엔 네 개의 무궁화가 빛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어어. 뭐 다른 건 아니고, 마침 형사과장 방에 있다 카길래 할 말이 있어가 잠깐 불렀다.”
그는 스케줄이 있는지 근무복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본청에 뱀 같은 새끼들한테 황금알을 빼앗길 수가 없다 아이가.”
“… 네?”
“내 돌리가 안 말한데이.”
그러더니 고개를 꺾어 날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정태 니는 우리 창진서 자원이다이. 본청 갈 일 없다. 알겠나?”
파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