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9
19화. 파슬리.
주름이 자글한 눈을 보니 교철은 이제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눈에서 깊은 야망이 보였다.
언젠가 경수도 말했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야망 없는 사람이 없다고.
“왜 대답이 없노? 창진서에 딱 남아 있으면 탁정태 니 하고 싶은 거 내가 다 하게 해주겠다고. 그라이 남아있으라고.”
하지만 교철은 이제 승진도 할 수 없는 나이인데 무엇 때문에 야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안득에게 미리 듣고 왔다.
형사과장실에서 나오기 직전, 안득이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승진 욕심 없이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은 서장. 그런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어. 윗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서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휘어잡거든. 아마 우리 서장도 탁경위 자네를 밑천삼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모양이야. 최고의 경찰서를 지휘한 경찰서장으로 퇴직하고 싶은 거지.’
퇴직을 앞둔 교철도 남다른 야망이 있었던 것이다.
“내 말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나?”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역경찰 순환보직 6개월이 끝나면 수사부서에 2년간 복무를 해야 하는데, 그런 규정을 무시하고 이리저리 부서를 옮길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
“어허이, 이 친구 참. 이런 쪽으론 맹탕이네.”
교철이 넥타이핀을 꽂으며 말을 이었다.
“본청이 움직있다꼬 본청이. 내부 규율 그런 거 싸그리 밟는 건 일도 아이라 이 말이야.”
“당장이라도 부서를 옮겨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본청도 엄연히 경찰 조직이란 큰 틀에 속해 있는데.
규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파워가 있는 본청을 왜 다들 비난하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글마들은 경찰이 아이다. 범인 잡고 이딴 거는 온데간데없고, 맨날 윗사람들 똥 닦아 주다가 겨우 승진 한 번 하고 나오는 데가 본청이다. 게다가 특히 정태 니 같이 빽없이 불리간 아들은 여기저기 갖고 놀리다가 순식간에 팽 당해뿐다니까?”
“……”
“지금 본청에 니 소문이 우째 나 있는지 아나?”
“소문이요?”
“피도 눈물도 없는, 똑 부러지는 놈으로 소문이 나있다. 징계위원회 끝나고 이철성이 글마가 경무에 인사 보는 아들한테 니 정보를 전달한 거지. 내가 이래봬도 한 서에 서장인데 그 정도 소식은 다 듣고 있다.”
본청에서 남들이 얘기하는 내 소문까지 꿰고 있다니.
서장의 소식통은 남다른 것 같았다.
“피도 눈물도 없다. 그게 뭘 뜻하겠노?”
머리를 다 빗은 교철이 이제 자켓을 입으며 말을 이었다.
“감찰 저거가 직접 니를 데리고 가겠다 이 말인기지. 감찰이 뭐 하는 데고? 동료들 뒤 캐는 데 아이가? 그런데는 니처럼 냉정하고 차가운 아들이 적격이거든.”
“아…”
“감찰이 부서 파워가 씨긴 씨지. 근데 그것도 다 빽 있을 때나 도움이 되는 거고, 니는 거 가면 클난다. 감찰 내부에서 뭔 문제 생기는 동시에 니한테 다 덮어씌우고 지방으로 팽 해버릴 걸?”
그리고는 이쪽으로 걸어와 내 어깨를 탁 짚었다.
“니 징계 건 때문에 티를 안 내서 카지, 지금 우리서 홍보계랑 언론사랑 연계해서 니 미담사례 기사화 시킬라 하는 것만 해도 두세 개는 된다. 이런 인재를 그따위 뱀소굴에서 썩히면 되겠나?”
나는 그게 교철 자신을 위한 말인지 나를 위한 말인지 헷갈렸다.
“뭐 최종 선택은 니가 하는 거지만, 나는 니가 우리 서에 남았으면 한다. 내 마음 알겠나?”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나가자.”
방을 나왔다.
#
며칠 뒤.
“사복 차려 입으니 인물이 더 난다 야.”
나는 경수와 함께 레스토랑에 나란히 앉았다.
“긴장하지 말고.”
“긴장 안 합니다.”
경수가 사정사정해 나온 이 자리는 바로.
“하, 나도 더블 소개팅은 처음인데.”
소개팅 자리다.
어제 경수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와 소개팅이 잡혔다며 막무가내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본청장 표창까지 양보한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며 우는 소리를 하기에, 원성에 못 이겨 나왔다.
“근무할 때처럼 뻣뻣하게 있지 말고, 여자를 대할 땐 여유 있고 부드럽게 해야 해.”
“여유 있고, 부드럽게요?”
“일단 뭐 할 말 없으면 칭찬이라도 해. 여자는 칭찬하면 대부분 좋아하거든. 예쁘다, 매력적이다 뭐 이런 말 있잖아.”
“안 예뻐도요?”
“아이 참. 그냥 네가 사무실 들어올 때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거라 생각하고 내뱉어. 별 의미 담지 말고.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예쁠 거야. 이 자리 만들어준 사람이 그랬어. 여자분들 되게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그때.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들리며 두 명의 여자가 우리 테이블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고경수 씨?”
“주민경 씨?”
“아,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경수가 의자에서 일어나 웃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그녀들이 다 앉은 후.
“이쪽 분은 성함이?”
“이은빈이에요.”
갈색 머리가 민경, 검정색 머리가 은빈이다.
“이름이 뭐예요?”
은빈이 내게 물었다.
“매천파출소 근무하는 경위 탁정태입니다. 반갑습니다.”
“……”
황당하다는 표정.
잠깐의 정적 후.
“아 하하하… 이 친구가 실무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군기가 바짝 들어 있네요.”
“호호호. 재미있는 분이네요.”
민경이 웃으며 경수의 말을 받았다.
“배고프시죠? 일단 음식부터 시킬까요?”
“네, 좋아요.”
다들 메뉴판을 확인하고는 파스타나 스파게티를 시켰다.
나는 고기가 먹고 싶어 스테이크를 시켰다.
가장 비싼 메뉴이긴 했으나 오늘 계산은 경수가 한다고 했으니 별 상관이 없다.
종업원에게 메뉴를 주문한 뒤 민경이 경수에게 물었다.
“두 분 다 경찰이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같은 파출소 같은 팀에 근무해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 질문에 경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서른 둘입니다.”
“크허억, 케헥.”
경수의 대답을 듣고 나는 물을 먹다 사레가 들렸다.
소개팅에 나오기 전 나이를 속이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8살이나 속일 줄은 몰랐다.
“정태 씨는 몇 살이에요?”
“스물다섯입니다. 민경 씨는 무슨 일을 하시고 나이는 몇 살입니까?”
“몇 살 같아 보여요?”
“…?”
“무슨 일 할 것 같아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나와 토론을 하자는 건가?
그렇다면 환영이다.
나는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 스타일과 피부 상태, 말투와 제스처, 단어 선택 등을 고려했을 때 민경 씨의 나이는 이십대 중후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앉아 있을 때 과도하게 턱을 당기고 허리를 곧추 세우는 걸 보니 요가나 필라테스를 오래하신 것 같군요. 어쩌면 강사일 수도 있고요.
계속 거울을 확인하는 걸 보니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스타일입니다.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 화면 중앙 아래쪽에 손톱 스크래치가 많은 걸로 봐서 본인사진도 자주 찍으시고요. 어쩌면 예쁜 사진으로 인기를 많이 얻고 있는 SNS 인플루언서일수도 있겠습니다.”
“헉.”
깜짝 놀라 눈이 커진 민경.
나는 그에 별 반응 없이 은빈을 돌아봤다.
“은빈 씨는 민경 씨보다 한두 살 어릴 확률이 높습니다. 언니의 기에 눌려 말을 잘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풍기거든요. 전혀 그을리지 않은 피부를 보니 해가 떠 있는 시간엔 실내에서 근무하시나 봅니다. 입고 계신 자켓과 셔츠 스타일을 봐선 공적인 일을 하는 사무직일 확률이 높고요.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시종일관 입 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을 응대하는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손목을 빙빙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는 걸 보니 타자기를 많이 치시나보네요. 중지 안쪽에 굳은살이 있는 걸로 봐선 쉬는 날엔 직접 연필이나 샤프를 잡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가지신 듯합니다.”
“……”
그 말에 은빈도 놀라 입을 쩍 벌리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제 말이 맞나요?”
내 질문에.
“맞아요… 저는 필라테스를 가르치고 있어요.”
민경이 신기하다는 듯 대답했고.
“……”
은빈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고,
다들 접시에 놓인 것을 점잖게 입에 떠 넣으며 대화를 계속했다.
“민경 씨는 취미가 뭐예요?”
“운동하고 강아지랑 산책하는 거요. 경수 씨는요?”
“오, 저도 운동하는 거 좋아하는데. 키우진 않지만 강아지도 좋아하고요.”
“강아지 너무 귀엽죠-”
“정말 귀엽죠.”
그러더니 둘이 동시에 입을 앞으로 내밀고 “어~~”하며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지금 강아지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은빈 씨는 취미가 뭐예요?”
경수가 묻자 은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정태 씨가 말했듯 저는 혼자 글 쓰는 거 좋아해요. 독서도 좋아하고요.”
“와, 되게 고상하시네요.”
“하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이 커서 고개를 내려도 초롱한 눈망울이 다 보였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정태 씨는 쉬는 날 뭐하세요?”
“범죄 관련 다큐멘터리나 최신 판례집을 봅니다.”
“아…”
내 대답에 경수가 날 노려봤다.
다시 잠깐의 정적 후, 은빈이 또 물었다.
“그럼 정태 씨는 좋아하는 분야가 뭐예요? 뭐 운동이라든지, 음악이라든지…”
“수사요.”
“… 네?”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범죄 혐의 유무를 밝히는 행위요. 수사.”
“아… 수사… 그럼 싫어하는 건요?”
“지루한 거요.”
“……”
“따분하고 싫증나는 건 싫습니다. 흥분되고 재미있는 게 좋죠.”
내 말에 은빈이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지금 자리가 지루한 건 아니죠? 하하…”
“솔직히 말하면… 헛!”
사실 지루하다고 말하려던 찰나, 옆에서 경수가 내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나는 얼른 생각을 고쳐먹었다.
“… 재미있습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꼬집은 뒤에도 경수는 계속해서 내게 뭔가 눈짓했다.
입모양을 보니 ‘빨리 주제를 다른 걸로 돌려.’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 참 민경 씨.”
이에 나는 고개를 돌려 곧장 민경을 불렀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네?”
“저…”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앞니 사이에 파슬리 꼈습니다. 엄청 큰 거요.”
그 말에 민경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하하… 저희 잠시 화장실 좀…”
경수가 내 뒷목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
화장실에 들어와 문을 닫은 뒤.
“야 탁정태! 너 지금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네?”
“이빨에 파슬리 꼈다는 말은 왜 하냐고. 소개팅 자린데 얼마나 민망하겠어?”
그녀가 민망할 것이라는 걸 몰랐던 게 아니다.
오히려.
“민망하니까 빨리 알려줘서 빼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계속 파슬리가 낀 채로 웃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하이 참. 그게 꼭 그런 게 아니라니깐.”
경수는 많이 답답한 듯했다.
“상대 취조하듯 대화하는 건 또 뭐야? 여기 범죄 현장 아니라고.”
“나이와 직업을 유추해보라기에 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자세히 유추할 필요 없어. 그냥 어려 보인다고 말하고 괜찮은 직업 몇 개 던지면서 이런 일 하실 것 같다, 이렇게 기분만 맞춰주면 돼.”
“어려 보인다고 말하라고요? 거짓으로 진술을 하란 말입니까?”
“진술은 무슨 진술? 여기 범죄 현장 아니라니까!”
“……”
“하, 내가 보기엔 오늘 글렀다. 이건 나중에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경수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주선자가 말하길 여자 분들이 우리가 마음에 들면 애프터 신청을 하기로 했대.”
“애프터요?”
“뭐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거나, 아니면 다음에 또 만나자면서 번호를 교환한다거나 이런 거 있잖아.”
“아…”
“근데 오늘은 딱 보니까 글렀다. 밥만 먹고 집으로 도망갈 삘이야. 이거 다 정태 너 때문이니까 저녁에 술사라. 원래 여자한테 까이고 나면 남자끼리 술 한 잔 하는 게 전국 공통 규칙이야. 오케이?”
그의 말대로 분위기가 안 좋아진 게 내 탓인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여자들이 당황하며 냉랭한 기운이 돌았으니까.
“일단 다시 돌아가자.”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민경은 그 사이에 이에 낀 파슬리를 뺐다.
경수는 다운된 무드를 살려보려 애썼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결국 식사가 끝난 뒤.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민경의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계산하고 가게를 나온 경수는 괜히 길가의 돌을 뻥뻥 차댔다.
“하, 오늘 민경 씨랑 느낌 좋았는데…”
“나이를 너무 많이 속이신 거 아닙니까?”
“뭐 어때. 겉으로 봐선 서른둘인지 마흔인지 잘 분간이 안 되잖아?”
“……”
“내가 나이 속인 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은 정태 네 멘트가 거의 핵폭탄 수준이었어. 하, 너는 진짜 내가 멘트 교육 좀 해줘야겠다. 일단 저기 어디 포장마차 같은 데 들어가서 소주나 한 잔 하자.”
그렇게 당차게 나서려는데.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경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기다렸다는 듯 받았다.
“어, 철호야. 여자분들 뭐래??”
그리고 잠시 후.
“뭐!?”
인상을 팍 찡그리며 날 보더니.
“정태야.”
예상 밖의 말을 했다.
“은빈 씨가 너 연락처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는데?”
가장 좋은 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