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2
2화. 카타르시스.
“색연필 세트가? 어디 놔뒀는데?”
선생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지혜에게 다가갔다.
“책상 위에요.”
“확실해? 다른 곳에 둔 건 아닐까?”
“확실해요. 여기 위에 올려뒀어요.”
지혜는 이미 울상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미간을 찡그리며 지혜의 책가방 지퍼를 열었다.
“이상하네. 일단 가방 안을 한 번 더 찾아보…”
“그 색연필 세트.”
그때, 내가 선생님의 말을 끊고 지혜에게 물었다.
“언제 샀어?”
“오늘. 아침에 학교 오면서 문방구에서…”
“그럼 색연필을 가방에서 처음 꺼낸 건 언제야?”
“아까 2교시 영어시간에 꺼냈어.”
지금은 엄연히 수업시간.
자리를 이탈해 지혜의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말했다.
“정태야. 선생님이 해결할 테니까 자리에 가 앉아있…”
“그럼 플랫된 음들은 들을 필요가 없어요.”
“… 응?”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생각. 내 사고를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했다.
“그러니까, 다른 반 애들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니?”
“범인은 우리 반 안에 있다고요.”
그러자 선생님이 눈을 치켜뜨며 내게 말했다.
“범인이라니! 탁정태, 말조심 안 할래? 반 친구들을 함부로 의심하면 못 써!”
“저도 들었어요. 지혜가 영어시간에 색연필 세트를 꺼내 짝꿍에게 자랑하는 걸요.”
하지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주장을 이어나갔다.
“2교시 영어수업은 평소보다 7분이나 늦게 마쳤어요. 때문에 3교시 과학시간까지 쉬는 시간은 3분밖에 없었죠. 그 3분 동안 지혜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다른 반 애들은 우리 반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색연필 세트가 없어졌죠.”
“너 그만하지 못…”
“선생님이 들고 있는 지혜 가방 안에도 없는 걸 보면 우리 반 아이들 중 누가 가져간 게 분명해요.”
그 말에 선생님은 당황하며 지혜의 가방에 손을 넣어 다시 한 번 안을 뒤졌다.
하지만 아무 것도 잡히는 건 없었다.
저벅- 저벅-
나는 곧장 앞으로 걸어가 교탁 앞에 섰다.
대상의 수를 줄인 뒤엔 일처리가 쉽다.
상대는 ‘애들’이니까.
“방금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 손 들어줄래?”
아이들 표정을 보니 교실 분위기에 압도된 듯했다.
손을 든 아이는 반 정도 됐다.
나는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다 청록색인데 한 명만 주황색이다.
“그럼 지혜 색연필 세트를 들고 간 사람, 손 들어줄래?”
내가 다시 묻자 아이들이 들고 있던 손을 다 내렸다.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또 한 명만 주황색이다.
“두 번 연속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네.”
반 아이들 나이는 고작 열 살.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난다.
내 말에 주황색은 다홍색이되더니 이내 새빨간 색이 되었다.
“선생님.”
내가 부르자 턱을 괴고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이 나를 돌아봤다.
“반 친구 중에 거짓말을 하면 미세하게 눈썹을 꿈틀거리는 버릇을 가진 친구가 있어요.”
빨간색이 뜨끔하며 행동을 멈췄다.
“걔는 지난 번 우유를 훔쳤을 때도 그 표정을 짓고 있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들키고 혼이 났죠.”
“…!!”
“맨 뒤에 앉은 영철이. 쟤가 범인이에요.”
내 말에 영철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정태야.”
선생님은 아직 내 말이 납득되지 않는 듯했다.
“저번에 영철이 사물함에서 우유가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영철이가 색연필을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야. 색안경을 쓰고 친구를 대해선 안 돼.”
“그럼 왜 영철이가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 뭐?”
“영철이는 평소에 땀을 많이 흘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세수를 하고 와요. 그런데 수건은 가지고 다니질 않아 항상 얼굴에 물이 잔뜩 맺혀 있죠.”
내가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 말했다.
“그런 영철이가 화장실에 갔다 왔다고 손을 들었어요. 저렇게 매끈한 얼굴을 하고요.”
영철의 얼굴을 확인한 선생님이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다시 돌아봤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세요.”
“정태 너… 만약 영철이가 가져간 게 아니면 혼날 줄 알아. 친구를 의심하는 건 물건을 훔쳐가는 것만큼 큰 잘못이니까.”
그리고는 뒤쪽에 있는 영철의 사물함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 사물함엔 없을 거예요. 영철이는 별표형 성격이라 이미 들켰던 곳에는 물건을 감춰놓지 않을 테니까요. 서랍이나 책가방을 확인해보세요.”
“……”
선생님은 다시 한 번 나를 흘겨보고는 영철의 책상으로 갔다.
그리고 서랍에 손을 넣더니.
“영철이 너…”
아니나 다를까 바비인형 캐릭터가 그려진 색연필 세트가 나왔다.
견출지에 적힌 이름은 ‘박지혜’
선생님은 그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무릎 꿇고 손바닥 대!!”
영철의 손바닥에 회초리를 휘둘렀다.
‘하아…’
나는 매 맞는 영철을 보며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것을 읽어내는 짜릿함.
그것은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였다.
#
학창시절을 거치며 내 생각은 정제되었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농축되었고 또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빨간색, 별표, 플랫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도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계속 평온했던 건 아니다.
나는 자주 불안해졌고 때론 그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때마다 난 숨겨진 것을 밝히는 데 몰두했다.
범죄 스릴러를 읽었고, 미제사건 다큐멘터리를 탐닉했다.
세기의 미스테리에 관한 자료들을 모두 찾아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고, 즐겁기까지 했다.
학교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 원하는 것을 배우려면 시험을 잘 쳐야 했다.
고등학교 시험은 초등학교 때보다 더 정형화되어 있었고, 점수를 잘 받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경찰대학]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
대학 강의는 훨씬 흥미로웠다.
숫자와 역사에서 벗어나 증거를 수집하고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일을 배우는 것은 나를 흥분시켰다.
특히 나는 토론수업을 좋아했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좋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의에 성실히 임했고, 덕분에 성적은 우수했다.
“오늘 주제는 경범죄처벌법상 관공서주취소란죄의 입법취지다.”
오늘도 나는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강단에 서 있는 남자는 장규석 교수.
그는 모든 수업을 토론으로 진행한다.
“의견을 얘기해 볼 사람?”
그가 묻자 남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는 잠시 동안 나를 흘겨본 뒤.
“관공서주취소란은 술에 취한 채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장하거나 시끄럽게 하는 것을 말하며 이 죄를 범한 자에게는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쟤 이름은 이한철.
우리 학년 차석으로 입학해 쭉 2등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모범생이다.
그는 항상 모든 수업에 열과 성의를 다해 앞장섰다.
다른 학생들은 한철이 나를 시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기라.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함.’이라고 되어 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니까.
내가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감정은 ‘지루함’과 ‘흥분’ 뿐이다.
“2009년, 공무원의 공무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술에 취한 사람이 관공서에서 행패를 부려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던 셈이죠.”
덕분에 내 좋고 싫음의 기준은 명확하다.
지루한 건 싫고 흥분되는 건 좋다.
내가 경찰대 강의를 좋아하는 이유도 흥분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의 안전과 업무 효율을 위해 이는 반드시 보완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입법된 것이 바로 이 관공서주취소란죄죠. 더불어 본죄는 공무수행을 저해하는 주취소란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모로 반드시 입법되어야 했던, 경찰관에게 꼭 필요한 법조항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경찰대 강의가 항상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지루하고 따분해질 때도 있다.
마치 지금처럼.
“조리 있게 잘 말했군.”
규석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또 의견 말해볼 사람?”
한철의 의견이 완벽했다고 생각한 탓일까.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굳이 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탁정태. 네가 한 번 말해볼래?”
자연히 내게 질문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학기 초부터 토론 수업은 한철과 나의 대결구도로 진행되었다.
자기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둘 뿐이었으니.
“한철이랑 같은 의견입니다.”
“오 그래?”
“같은 의견인데…”
한철의 의견을 듣고 있으니 입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결론은 달라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저는 한철이가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관공서주취소란죄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법조항에서 삭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요 없는 법이거든요.”
왜 다들 말 같지도 않은 한철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는지를.
박수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