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이면엔 생각지 못한 것들이.
신고 장소는 관내의 한 유흥주점.
신고 내용은 ‘손님이 제 허벅지 안으로 손을 넣었어요.’였다.
나는 현장이 어떤 상황일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왜 말 할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경수는 신고보다 지난 소개팅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은빈 씨랑 무슨 대화를 했길래?”
“개인적인 일로 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사귀는 건 아닙니다.”
“어허이, 이 쑥맥아.”
그가 빨간 신호에 정차하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여자는 절대 ‘나랑 사귀어요.’하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 온갖 이유와 구실을 만들어 사귀는 방향으로 유도할 뿐이지. 너한테 조언을 구했다는 거 자체가 이미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보낸 거라고. 그린라이트 몰라, 그린라이트?”
“그린라이트… 초록 불. 신호등 말입니까?”
“그래 신호등.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면 어떻게 해야겠어?”
“가야죠.”
그때,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고 경수가 차를 출발시켰다.
“그래. 신호등이 신호를 주면 이렇게 그냥 가면 되는 거야. 은빈 씨가 저 신호등이고 네가 이 순찰차라고 생각하면 돼. 신호등은 이미 신호를 줬다고. 근데 네가 가만히 있는다? 그러면 도로교통법 위반이라 이거야.”
“초록불… 그런 정황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요.”
“아이 정말.”
그가 답답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은빈 씨가 번호 달라고 할 줄 알았어, 몰랐어?”
“몰랐습니다.”
“만나서 너한테 조언을 구할 줄은?”
“그건 더더욱 몰랐습니다.”
“거 봐. 보이는 정황이 다가 아니라니깐? 네가 눈썰미가 좋아서 상대의 직업과 나이는 유추할 수 있을진 몰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 모두 다 캐치할 수 있는 건 아냐. 이면엔 다른 것들이 숨어 있다고.”
“……”
“특히나 여자는 더 그래. 완전히 자기 사람이 되기 전까진 말 하나 행동 하나 온전히 보여주는 법이 없이 다 가려버리지. 보이는 정황만 맹목적으로 믿어선 안 돼.”
여자에 관해 얘기할 때 경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진지했고, 또 출중했다.
일류 학원가에서 수험생들을 가르치는 일타 강사처럼.
“아무튼 은빈 씨랑 잘 한번 해보라고.”
“……”
“일단 내리자.”
강의를 듣다보니 어느새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지하의 주점으로 내려갔다.
바로 뒤에 따라 온 매천 둘 순찰차에선 덕규와 철수도 내려 지원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매천파출소에서 나온 고경수 경사입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들어가니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탁 끼고 무표정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4번방이 어디죠?”
“이쪽이에요. 안내해드릴게요.”
“4번방 손님, 자주 오는 분입니까?”
“최근에 몇 번 왔어요.”
“그 손님, 일행은 있습니까?”
“아뇨, 일행은 없어요. 늘 혼자 와요.”
우리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4번방에 다다랐다.
“사장님은 카운터에 가 계십시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그녀가 카운터로 돌아간 뒤.
경수가 방문을 여니.
“드르렁 푸후우–”
소파엔 중년 남자가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자고 있었고.
“도… 도와주세요.”
룸 구석엔 짧은 원피스를 입은 20대 여자가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다.
테이블엔 양주와 맥주, 음료수와 컵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곧장 업무용 휴대폰을 꺼내 현장 사진을 찍었다.
경수가 여자에게 물었다.
“신고… 하셨습니까?”
“네…”
“진술 가능하시겠어요? 여경 불러드릴까요?”
“아뇨, 여경은 괜찮아요.”
그녀는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이름은 신소희, 나이는 스물네 살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경수가 묻자, 소희는 자신이 이 근처 유흥주점 몇 곳을 옮겨 다니면서 일하는 유흥접객원이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1종 유흥업소에선 합법적으로 소위 ‘아가씨’로 불리는 유흥접객원을 고용할 수 있다.
“손님이 한 명 왔다고 해서 안 그래도 찜찜한 마음으로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분이 더러운 짓을 하네요. 원래 저희 아가씨들은 혼자 온 손님을 꺼려하거든요. 변태나 진상이 많기 때문에.”
“더러운 짓이라는 게, 허벅지에 손을 넣어 추행한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것뿐만 아니라 제 목을 강제로 핥아대고 가슴도 만지고… 게다가 제 속옷까지…”
소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누워 있는 남자 쪽을 가리켰다.
그쪽을 돌아보니.
“이런 씨…”
남자의 손에는 여성의 팬티가 걸려 있었다.
정황상 소희의 것인 듯했다.
그것을 본 덕규와 철수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경수가 계속 물었다.
“소희 씨가 거부했는데도 저 남자가 강제로 소희 씨를 추행했단 말이죠?”
“네. 힘을 써서 강제로요.”
“저렇게 잠이 든 건 언제입니까?”
“경찰관 분들이 오시기 직전에요. 원래 술이 많이 취해있었는데 갑자기 소파에 눕더니 코를 골고 자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어려운 진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밖에 나가 계시겠습니까?”
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철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덕규는 사업자등록증과 CCTV 위치를 확인해봐야겠다며 카운터로 갔다.
“저기요, 선생님-”
소희가 나가자마자 경수는 남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술에 많이 취했는지 그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정태야. 이 사람 가방 한번 확인해 봐. 지갑 있으면 인적사항 기록하고.”
나는 경수에게 가방을 건네받아 안을 살폈다.
지갑과 휴대폰, 담배가 들어 있었다.
신분을 확인해 남자의 이름이 최동민이라고 알려주었다. 나이는 72년생.
나는 계속해서 동민의 가방 속 소지품들과 룸 안의 정황 등을 세심히 살폈다.
“최동민 씨 일어나보세요!”
“… 헉! 뭡니까?”
겨우 눈을 뜬 동민이 경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멈칫했다.
“매천파출소에서 나온 고경수 경사입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네… 정신은 드는데. 경찰 분들이 여기 왜 오셨습니까?”
“이 룸에서 있었던 일 전혀 기억이 안 나세요?”
“룸에서… 있었던 일요?”
동민은 살살 우리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이 가게에 들어온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룸에 들어온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나네요. 갑자기 술이 확 올라 잠들어버려서.”
“그럼 선생님 손에 들린 팬티는 뭡니까?”
“… 예?”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동민이 자기 손을 보더니.
“우왁! 뭐야 이거?”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선생님이 호출하셨던 아가씨 속옷입니다. 강제로 벗기신 거 아닙니까?”
“강제로요?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미쳤다고 여자 속옷을 강제로 벗기겠습니까?”
“목도 핥고 가슴도 만졌다고 하던데요.”
“전혀…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까?”
“기억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아가씨 몸에 손을 댔다고 하더라도 강제로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의 대답에 경수가 꼬리를 잡았다.
“강제로 하진 않았을 거라고요? 그럼 접촉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아니, 솔직한 말로. 룸빵 와서 아가씨 불렀는데 당연히 접촉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절대로 강제로 만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항상 팁을 많이 주고 합의 하에 터치를 한다고요. 그러면 아가씨들이 오히려 먼저 가슴을 내놓고 달려들 때도 있습니다.”
“거참, 그건 선생님 생각이고요. 여자 분들은 강압과 수치심을 느꼈을지도 모르잖아요.”
동민은 그럴 리가 없다며 억울해 했다.
나는 얘기하는 둘을 가만히 지켜보던 중.
‘…?’
경수의 뒤쪽 소파위에 놓인 여성 손가방을 발견했다.
아마 소희의 가방인 것 같은데.
그 가방 밖으로 무언가 삐져나와 있었다.
내가 그 가방을 주워 들고 내부를 살피는 동안 경수가 계속 동민을 추궁했다.
“제가 유흥업소 신고 꽤 많이 나가봤지만, 팬티 강제로 벗겨서 아가씨 울린 손님은 처음봅니다. 오죽했으면 아가씨가 경찰에 신고했겠습니까?”
“강제로 했을 리가 없다니까요. 저 매너 좋다고 이 근처 룸 아가씨들한테 소문이 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 보세요. 서로 자기 지명해달라고 이렇게 개인 메시지까지 옵니다.”
동민이 나에게 가방을 달라고 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내역을 보여주었다.
몇몇 직업여성들이 ‘가게에 언제 와?’, ‘오늘 와서 나 한 번 초이스 해줘’, 하며 추파를 던진 내용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동민이 유흥주점에 많이 다녔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끼익-
그때, 덕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동민에게 말했다.
“거, 선생님. 젊은 아가씨한테 왜 그랬습니까? 지금 밖에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아니, 제가 안 그랬다니까요.”
“안 그러긴 뭘 안 그래요. 내가 CCTV 다 봤는데 이 방에 들어간 사람 선생님하고 저 아가씨 둘 뿐이더만.”
“그렇다고 제가 추행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 방 안엔 CCTV도 없는데.”
동민이 퉁명스레 말하자 덕규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경찰관들하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야 이 사람아. 당신 손에 저 아가씨 팬티가 턱 걸쳐져 있고, 아가씨 목에서 당신 걸로 추정되는 타액까지 채취했어. 진짜로 추행한 게 아니면 저 아가씨가 미쳤다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고 불면서 경찰에 신고했겠어!?”
“증거도 없이 저한테 자꾸 왜 이러십니까! 저는 합법적으로, 또 매너를 갖추고 이곳에 놀러 온 사람이라구요.”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겠다 이거야!?”
“안 한 걸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이 사람 진짜 안 되겠네.”
덕규가 인상을 확 구개고는 경수에게 말했다.
“이 인간 강제추행 혐의로 체포해!”
“알겠습니다.”
이어서 경수가 수갑을 꺼내.
“현시간부로 당신을 강제추행 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동민의 손목에 걸려던 찰나.
“잠깐만요.”
내가 경수를 멈춰 세웠다.
아까부터 계속 뭔가 이상했다.
체포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맥주 잔.”
내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가리키며 동민에게 물었다.
“선생님 거죠?”
“… 네 맞습니다.”
“옆에 있는 잔은요?”
“아가씨 거겠죠?”
“맥주는 누가 따랐습니까?”
“아가씨가요.”
내가 자세를 낮추고 두 잔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세히 보시면 신소희 씨 잔에 비해 최동민 씨 잔에 담긴 맥주에 거품이 지나치게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색깔도 조금 다르고요.”
“……”
“그리고 이 맥주를 마셔보면.”
나는 동민의 잔을 들고 맥주를 조금 맛본 뒤 입에 씹히는 이물질을 손에 뱉어냈다.
“이렇게 가루가 나오죠.”
“뭐야, 그 가루는!?”
“아티반 가루입니다.”
“아티반? 그게 뭔데?”
덕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룸 내부 정황상 누가 봐도 동민이 소희를 강제추행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을 명확히 봐야 한다.
사람과 사물의 이면엔 생각지 못한 것들이 숨어 있으니까.
“아무래도 신소희 씨가 최동민 씨의 맥주잔에.”
내가 소희의 가방에서 약봉지를 꺼내며 덧붙였다.
“수면제를 탄 것 같아요.”
좀처럼 섞이기 힘든 범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