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새로운 종류의 흥분.
“아, 다른 게 아니라…”
은빈이 한 차례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동생한테 변화가 좀 생겨서요.”
“변화요?”
“네. 긍정적인 변화.”
무슨 변화가 생겼다는 걸까?
“정태 씨는 쉬는 날 판례를 읽거나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신다고 하셨잖아요.”
“네.”
“혹시나 해서 동생한테도 범죄 다큐멘터리를 한 번 보여줘 봤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엄청 집중을 해서 보는 거예요!”
“……”
“눈도 떼지 않고 몇 시간을 연달아 보는지. 완전 흠뻑 빠졌더라고요.”
나도 그랬다.
학창시절,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 영상을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혹시나 경찰이 아닌 범죄자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가 싶어 물어보니, 그건 아니더라구요. 범인 잡는 경찰이 멋있대요.”
“다행이군요.”
“수갑 채우는 장면을 막 따라 하기도 했어요.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헉헉 소리를 내면서.”
“그건 열심히 해서 그런 게 아니라 흥분을 해서 그런 겁니다.”
“… 네?”
“처음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감당하기 힘든 흥분을 느끼거든요.”
나는 아직도 그때의 전율을 또렷이 기억한다.
초등학교 3학년, 지혜의 색연필 세트를 찾아줬을 때 그 쾌감을.
“아, 그래서 그런가?”
“뭐가요?”
“웃었어요, 동생이.”
그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웃었다고?
잘못 본 게 아닐까?
“정우가 너무 재미있다면서 눈을 크게 뜨고 활짝 웃는데,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동생이 웃는 걸 본 게 얼마만인지, 눈물도 조금 흘렸다니까요. 저 이상하죠? 동생 웃는 걸 보고 울기나 하고.”
정우는 은빈의 동생 이름인 듯했다.
진짜 웃었다니. 신기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은 거 가지고 웬 요란이냐고 하겠지만, 나와 정우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 웃는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뭐랄까. 우리에게 웃음은 ‘경험할 수 없는 일’ 같은 것이다.
“정태 씨도 좋아하는 일 할 때 막 웃고 그래요?”
“아뇨.”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웃은 적은 언제인가?
하하 소리를 내며 웃은 적이 있긴 한가?
쏟아지는 도파민에 저항하려 호흡을 조절하고 돌아가는 눈을 바로잡은 적은 있지만, 웃었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정우는 어떤 감정으로 웃은 걸까?
“… 아무튼 정우도 정태 씨처럼 경찰 쪽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어쩌면 걔도 정태 씨 같이 멋진 경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도…”
“은빈 씨.”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나쁜 감정은 아니었다.
설레고 흥분되는 느낌인데, 새로운 종류의 흥분이었다.
“다음에 혹시 기회가 되면.”
나는 난생 처음으로.
“제가 은빈 씨 동생을 좀 만나볼 수 있을까요?”
사건이 아닌 사람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
이틀 뒤.
나는 야간 근무 전에 서에 들렀다.
오늘은 무도 훈련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경찰관은 지식을 위한 교육 뿐 아니라 체력 증진을 위한 교육도 정기적으로 받는다.
보통 각종 무술이나 체포술을 배우고, 가끔 체형교정이나 요가 시간을 가질 때도 있다.
4층 강당에 도착하니 바닥에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었다.
줄을 맞춰 서서 잠시 기다리니.
“안녕하십니까.”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강단에 들어섰다.
“저는 현재 창진서 형사과에 근무하고 있고, 전 유도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인 경사 강상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짝짝짝-
작은 박수 소리.
경찰 채용 중엔 ‘무도 특채’라는 것이 있어, 매년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들 중 지원자들을 별도로 채용한다.
그들은 곧장 형사과로 발령이 나 강력사건 등을 담당하는데, 아마 상민도 그런 루트로 조직에 들어왔을 것이다.
“제가 이번 무도 훈련 일일 강사를 맡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체포 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유도 기술을 한 번 배워보겠습니다. 조교 앞으로.”
상민이 손짓하자 옆에서 사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강단으로 올라왔다.
형사과 후배인 모양.
두 사람은 강단 위에 깔린 매트에 마주 섰다.
“경찰 체포술을 배울 땐 흉기를 든 범인을 상대로 술기를 배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실전에선 흉기보다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범인이 더 많습니다. 조교, 주먹 한 번 내질러볼까요?”
조교가 뻣뻣하게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이렇게 범인이 주먹을 휘두른다 하더라도 우리 경찰관은 이에 대항해 펀치를 칠 수가 없습니다. 펀치는 직접적 폭행이니까요.”
그의 말대로 경찰관은 범인에게 직접적인 폭행을 행사할 수 없다.
체포 같은 특수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한다 하더라도 ‘제압’정도에 그치는 물리력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저희 경찰관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꺾고 조르고 넘어뜨리는 기술들이죠.”
그 정도가 전부다.
물론 지난 강도 사건 때처럼 범인이 흉기를 든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에 조금 더하자면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메치는 기술 정도까지 허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의자를 다치지만 않게 한다면 메치는 것까지 가능하다.
그래서 경찰대에서도 유도를 가르친다.
“오늘은 꺾고 메치는 기술들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먼저 꺾기입니다. 이렇게 상대 주먹이 들어올 때 반대편으로 피하면서 그대로.”
상민이 순식간에 조교의 팔 사이 공간을 통해 어깨 뒤로 손을 집어넣었다.
“뒤로 꺾는 겁니다.”
“아아아아!”
조교가 뒤꿈치를 들고 탭을 쳐댔다.
확실히 운동을 한 사람이라 그런지 동작이 빠르고 정확했다.
“자, 다시 한 번.”
상민이 몇 번 시범을 더 보여주고는.
“자 이제 모두 옆에 있는 동료와 마주보고 서 주십시오.”
교육 참가자들을 마주 세웠다.
“제가 방금 보여드린 동작을 서로 5회씩 주고받아 보겠습니다. 너무 세게 하지는 마세요. 다칠 수도 있으니.”
내 파트너는 나이 60이 다 된 경위였고, 우리는 서로 술기를 하는 시늉만 했다.
이어서 상민이 몇 가지 다른 술기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다시 시늉으로 그것을 따라 했다.
“다음은 메치기입니다. 메치기는 지난 무도 교육 때 실습을 하다 부상자가 발생한 관계로 제 시범을 보기만 하겠습니다. 나중에 지원자를 받아서 지원자만 실습을 할게요.”
상민이 손짓하자 다시 조교가 주먹을 내질렀다.
“자, 이건 유도의 다리 후리기를 응용한 기술인데. 이렇게 주먹을 피하면서 상대 팔과 옷깃을 동시에 잡은 뒤.”
이어 그는 순식간에 상대 중심을 무너뜨리고는.
“상대의 중심 다리를 제 다리로 이렇게.”
콰당-!
그대로 다리를 걷으며 땅에 메쳐버렸다.
박수 소리와 함께 약간의 환호성이 나왔다.
동작은 간결하고 아름다웠다.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 해도 될 정도로.
그렇게 몇 번 더 시범을 보인 뒤.
“자, 혹시 나는 꼭 이 동작을 실습해보고 싶다 하시는 분 있습니까? 없으면 오늘 교육 일찍 마치겠습니다.”
경찰대 토론 수업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자들 모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찍 마치는 게 좋겠죠? 자, 오늘 다들 수고하셨…”
“저요!”
상민의 마무리 멘트를 끊고 내가 손을 들었다.
“그 동작, 해보고 싶습니다.”
“아…?”
상민은 잠시 벙진 표정을 짓더니.
“앞으로 나오시죠.”
나를 불러냈다.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른 교육생들이 나를 흘겨보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자, 그럼 빠르게 실습해보죠. 저를 상대로 아까 메치기 동작을 해보시면 됩니다. 실습인 만큼 실전처럼 강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매트 위에 올라가 상민과 마주섰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경위 탁정태입니다.”
“아, 그 경찰대 졸업하신?”
“맞습니다.”
“그럼 유도를 어느 정도 하시겠군요.”
이어서 상민이 룰을 설명했다.
“제가 주먹을 내지른 후 버틸 테니 탁경위님은 저를 메쳐보십시오. 아마 절대 안 넘어갈 겁니다. 그렇게 다섯 차례 메치기를 시도한 후, 여섯 번째는 제가 힘을 풀고 넘어가며 낙법을 치겠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바로 시작하시죠.”
그는 왼손에 그대로 마이크를 쥔 채 오른손을 내질렀다.
나는 예행연습 삼아 팔과 깃을 잡고 몸을 붙여봤다.
“와.”
그러자 상민이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고 교육생들에게 말했다.
“탁경위님 몸이 생각보다 굉장히 단단합니다. 동작도 아주 깔끔해요.”
상민의 멘트에 사람들이 중얼거림을 멈추고 강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깃을 놓고 다시 물러섰다.
상민은 다시 오른손을 내지르며 계속 멘트 했다.
“자, 이제 제대로 들어 와보세…”
그 순간.
쉬식-
나는 깃을 잡고 그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휙-
콰다다당-!!
그대로 다리를 후려 그를 매트에 메다꽂았다.
“허억.”
깜짝 놀란 표정.
그는 바닥에 누워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정적 후.
“뭐야!?”
“메달리스트를 넘겼어?”
“와, 대단한데?”
중간 중간 박수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가 나왔다.
그 환호 속에서 내가 손을 건네 상민을 일으켜주며.
“수고하셨습니다.”
교육은 끝이 났다.
#
그날 저녁, 매천파출소.
“하, 이 답답아.”
출근을 해 사무실에서 경수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기껏 데이트자리 만들어놓고 난데없이 동생을 왜 보자고 해?”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동생이 여자야?”
“남잡니다.”
“하, 정말.”
이제는 아예 고개를 저쪽으로 돌려버린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은빈 씨가 번호 물어볼 땐 좋다고 달려가더니, 지금은 완전 관심이 다른 데로 쏠렸잖아?”
“그땐 또 다른 궁금한 게 있었습…”
“아 됐어, 됐어. 말 하지 마. 듣고 있으면 나까지 답답해지니까. 나 이제 너한테 카운슬링 같은 거 안 할 거야, 이 연애 고구마야.”
그 말을 듣고 있던 덕규가 입을 열었다.
“경수 너 왜 이렇게 정태한테 쌀쌀맞게 구는 거야? 너도 메쳐지고 싶냐?”
“네?”
“못 들었냐? 정태가 강상민이 메다꽂은 거?”
“헉.”
이어서 덕규가 나를 돌아봤다.
“정태 너 서에 소문 다 났어. 뭐야? 너도 선수 출신이야?”
“아닙니다. 대학교 때 열심히 배운 게 다입니다.”
경찰대 재학시절.
내가 형법과 함께 가장 잘하던 과목은 유도였다.
상대의 논리에 따라 대응책을 바꾸는 토론처럼,
유도도 움직임만 잘 읽으면 상대를 넘기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주고받음이 좋았고, 그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게 짜릿했다.
“뭐야?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정태 너 만능이야?”
“……”
“만능이면 상을 하나 내려줘야지.”
덕규는 뜬금없이 서류함을 열더니 표창장을 하나 꺼내 나에게 건넸다.
“강상민이 넘긴 기념으로 주는 거야.”
“… 네?”
“농담이고.”
그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번 주점 신고 때,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중범죄자 두 명이나 검거했다고 본청에서 내려온 표창이야.”
“아…”
“너 요 몇 달 사이 본청장 표창을 몇 개나 받는 거냐? 참 대단하네.”
옆에 있던 직원들도 도돌이표처럼 ‘대단하네.’하며 감탄했다.
“이야, 이제 주민상이 애 닳아서 어떡하냐? 이렇게 되면 정말 정태 너한테 승진 티오 뺏겨버리겠는데?”
“……”
“1년에 한 장 받기도 어려운 본청장 표창을 이렇게 수두룩하게 받은 직원이 떡하니 있는데, 어떻게 다른 직원을 승진시킬 수 있겠어? 게다가 정태 넌 신문이랑 라디오까지 탔잖아.”
돌이켜보니 표창을 많이 받긴 했다.
언론사나 방송 관계자와 통화를 한 것도 수차례나 되고.
“이거 정말 주민상이가 갑자기 우리 파출소 들이닥쳐서 ‘순찰 안 나가고 뭐해! 근무태만 아니야 이거!?’하면서 꼬투리 잡고 징계주지 않는 이상, 자기가 짠 승진 계획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해.”
밤에 하는 말은 쥐가 다 듣고 있다고 했던가.
덕규가 그 얘기를 하기가 무섭게.
끼익-
파출소 문이 열리더니.
“아, 다들 고생 많으시죠??”
배불뚝이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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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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